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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설명은 언제나 사담에)
남편이 돌아왔다
레브
[여주야, 내일 5시쯤에 만나는 걸로 해도 될까? - 지민]
화장실에서 씻고 나오는 길에 문자 알림이 울리길래 뛰쳐나와 확인했는데 맥이 탁 풀렸다. 급한 일이 생겼나. 괜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괜찮아! - 여주 ]
[미안해. 5시에 너네 집 앞으로 갈게 - 지민 ]
[알겠어 그럼. 잘 자~ - 여주 ]
[진짜 미안하고 잘 자. 좋은 꿈꿔 - 지민 ]
늦춰진 약속 덕분에 오랜만에 여유로운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방문 앞에 붙은 쪽지를 보니 주인아주머니네 가족들은 놀러 간 모양이었다. 고요한 방 안에서 무릎을 감싸고 의자에 앉아 느긋하게 햇빛을 즐겼다. 날씨는 춥지만 햇빛은 여전히 따뜻해서 기분이 좋았다.
[일어났어? - 지민 ]
[응! 일어난 지 꽤 됐어 - 여주 ]
[잘 잤고? - 지민 ]
[잘 잤어. 너는? - 여주 ]
[나도. 오늘 5시, 절대 잊지 말고 - 지민 ]
시계를 힐끔 쳐다봤다. 아직 5시가 되려면 한참이나 남았다. 무료해.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핸드폰 갤러리를 올려다봤다. 시간을 거꾸로 달리는 느낌이 들었다. 캐나다를 처음 왔던 날. 지민을 처음 봤던 날이라던가. 지금 생각해보니 캐나다에 와서 지민과 엮이지 않은 일이 없다. 캐나다에서의 몇 달은 한국에서 보다 훨씬 빨리 지나간 듯하다. 사진 몇 장을 더 넘기자 우리 엄마가 보였다. 엄마랑 마지막으로 통화한게 언제였지? 나는 서둘러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딸?]
"엄마! 지금 전화돼? 너무 늦었나?"
[당연히 되지. 너무 오랜만이다, 딸.]
"응, 엄마. 너무 오랜만이지. 잘 지냈어?"
[엄마는 딸 보고 싶어서 하루하루가 힘든데 딸은 캐나다 좋나 봐? 목소리가 밝다.]
"에이, 무슨 그런 섭섭한 말을. 엄마 딸도 매일매일 엄마 보고싶지! 우리 가족이랑."
[일 끝나면 얼른 한국 돌아와.]
"어…,엄마."
[응?]
"저번에 우리 회사에 한국 사람 있다고 했잖아."
[응.]
"그 사람이랑 지내보니깐 되게 좋은 사람 같아. 친절하고 나한테 정말 잘해줘."
[…남자야?]
"…."
[우리 딸 다 컸네. 일하러 가서 딴짓도 하고.]
"아아, 그런 거 아니야. 근데 한국 지금 늦지 않았어? 그럼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요. 끊어, 엄마. 잘 자."
나는 말을 돌리며 얼른 전화를 끊으려 했다. 엄마가 이쪽으로는 촉이 특히 더 발동해 내가 질 것이 불 보듯 뻔했다. 하지만 엄마는 전화를 끊지 않고 웃었다. 딸, 엄마는 네 편이야. 알지? 나는 끝까지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엄마는 단정 지은 듯했다. 그 후로도 엄마는 계속해서 질문 세례를 해댔고 나는 일관되게 모른다고 대꾸하였다. 엄마는 한참 시간이 흘러서야 전화를 끊었고 나는 기가 모두 빨린 느낌이었다.
4시 55분. 준비는 일찍이 마쳤고 시계를 계속 확인하고 있었다. 시간이 더디게 간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꼭 고교시절 마지막 교시 마지막 5분 같다. 50분보다 더 안 가는 마지막 5분.
"여주야!"
나는 창문으로 빼꼼히 밖을 바라보다가 지민의 차가 집 앞에 멈춰 서는 걸 보고서야 집 밖으로 나왔다. 나는 힘차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차에 올라타고 목적지에 대한 말도 없이 지민은 차를 출발시켰다.
"어디가?"
"도착해서 알려줄게."
지민은 고개를 으쓱였다. 차가 외곽으로 빠져나가고 있는지 창밖으로는 조금씩 낯선 풍경이 보였다.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 때 즈음에 차가 멈춰 섰다. 도착한 곳은 겨울이라 그런지 앙상하게 뼈만 남은 나무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겨울을 지나서 봄에 오면 분명히 아름다울 곳들이다.
"여기는 '더 리빙 워터 웨이사이드 채플(The living water wayside Chapel)'이라고 엄청 작은 교회인데 너한테 꼭 보여주고 싶었어."
저기. 지민은 손가락을 들어 힌 곳을 가리켰고 거기에는 정말 말 그대로 조그만 교회가 있었다. 천장에는 작은 종이 매달려 있는.
교회 안으로 들어서자 더욱더 교회의 크기를 실감하게 되었다. 성인 5명이 들어가기에도 조금은 비좁다. 하지만 다행히 사람은 없었고 우리는 정중앙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딱히 믿는 종교는 없었지만 이국적인 풍경에 내부를 둘러보고 있었다. 때마침 종소리가 울렸다.
"이 종소리, 우리가 왔다고 울리는 거다?"
나는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하는 지민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걸로 치자.
"곧 어두워질 텐데 밖에 둘러볼래?"
밖을 나오자 역시나 몇 분 사이에 밤이 짙어져가고 있었다. 우리는 교회 옆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지민의 말로는 이 주위가 전부 포도 밭이라고 한다. 지금은 겨울이라 그 자취를 감췄지만. 조금 더 걸어 나가자 길은 막혀있었고 그 끝에는 오래된 벽과 함께 나무들이 무성했다.
"여기서 웨딩촬영 정말 많이 해. 겨울 지나서 주말에 여기 오면 여기서 다 사진 찍고 있어."
"그럴만하다. 진짜 예쁘다."
"저기 있잖아."
지민은 앞서가던 발걸음을 돌려 멈춰 섰다. 우릴 위해 울리던 것만 같던 종소리가 멎은지는 오래였다. 지민은 초조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여기 어때? 지금 너 기분 좋아?"
"응."
"다행이네. 그럼."
나도 따라 괜히 긴장하여 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여주야."
"…."
"연애 할래? 우리가 서로에 대해서 아는 점 보다 모르는 점이 더 많지만, 너 놓치면 안 된다는 건 분명히 보여서."
나는 오솔길을 따라 걷던 발걸음을 멈췄다. 그 어떤 표정도 지을 수 없었다. 지민이 멈춰 선지는 오래였다. 지민은 항상 그렇다. 처음에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하다가 나중에 가서는 자신만만 해진다. 그리고 끝자락엔 폭격기처럼 퍼붓고는 상대방의 반응이 흥미롭단 듯이 웃기까지 한다. 아니, 어쩌면 지민은 내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일찍이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저렇게 여유롭게 웃을 수 있나. 그러면서도 지민은 재촉하는 법 없이 내 대답을 기다렸다. 그 모습이 더 미웠다.
나는 마침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따라 웃는 지민.
"여기 너랑 꼭 오고 싶었던 이유 말해줄까. 우리도 겨울 지나면 언젠간 여기 꼭 다시 찾아 올거야. 그때는 하얀 드레스 입고."
나는 이 대목에서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고백에 이어 결혼까지 간접 언급하다니. 서양은 우리랑 마인드 자체가 다른 건가. 하지만 그런 고민을 할 여를이 없었다. 그냥, 막 어안이 벙벙하다는 표현이 딱일 것 같다. 그렇다고 그게 싫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내 귓가에 다시 그 종소리가 울리는 듯하였다.
남편이 돌아왔다
-현재
"영화 뭐 볼지 이걸로 좀 봐봐."
결국 지민과 영화를 보기로 하였다. 여기서 내가 거절하면 더 어색해지는 것만은 확실하니. 그건 둘 다 피하고 싶은 상황이다. 지민은 운전을 하며 한 손으로 나에게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었다. 핸드폰을 받아보니 현재 상영 중인 영화가 쫙 줄 지어져 있었다. 음…, 나 이런 거 잘 못 고르는데. 영화 목록만 한참 보고 있자 지민이 말했다.
"솔직히 말해. 너 결정장애 있지?"
나는 소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민이 웃더니 핸드폰을 도로 걷어갔다.
"그럼 그냥 내가 보고 싶은 거 봐도 돼?"
"응. 뭔데?"
"The Engraver."
나는 'engraver라는 단어를 곱씹어 보았다. 많은 들어본 단어인데 어디서 들었었지.
"…유치한 거 아냐."
아, 설마. 문뜩 스치는 그림 속에는 책장 속에 꽂힌 책이 어렴풋이 그려졌다. The Engraver. 달빛 조각사. 반사 신경처럼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지민은 당황한 듯이 날 곁눈질 해보았다. 그건 바로 지민이 예전에 좋아하던 책 제목이었다. 예전에 지민이 몇 날 며칠을 그 책만 끼고 살기에 나도 무슨 책인가 싶어 보려 했지만 지민이 끝끝내 못 보게 했던 그 책. 이유는 자기 나이에 아직 이런 책을 보는 게 부끄럽단다.
"나름 명작이니깐 웃지 마. 부끄럽게."
결국 귀까지 빨개진 지민을 보며 참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크게 소리 내어 웃어버렸다. 우리 아직 이 정도로 안 풀렸는데. 지민은 전방에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얼굴을 구겼다.
"너 설마 한국에서 해야 한다는 일이…?"
"절대 아니야!"
지민은 앞으로 보며 고개까지 도리질 쳤다. 어떻게 이걸 까먹었을까, 나도. 그 책이 영화로 제작된다는 소식을 듣고 무엇보다도 네가 생각난 나였는데. 네가 떠나고 난 후에야 나는 그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다.
"그 책 아직 집에 있는데."
"진짜?"
"응."
"…이제 그런 거 안 읽어. 나이가 몇인데."
"그럼 버려도 돼?"
지민이 말이 없다. 옆에서도 굳어버린 모습이 보였다.
"안 버려. 캐나다 갈 때 다 들고 가."
"책만?"
"응?"
"그거 말고 데려갈 거 있어서 안돼."
지민이 무심하게 말했다. 나중에 다시 분위기가 가라앉고나서야 나는 느꼈다. 어이없게 풀려버린 우리 둘 사이의 분위기를.
안녕하세요. 못난 작가 레브입니다
일주일 만이죠?......진짜 빨리 오려고 노력했는데 이번편 쓰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마지막 프롤로그여서 해야할 장면도 많고해서 계속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다보니 이제서야...용서하세요
그리고 마지막 프롤로그란?
정말 말그대로 이제야 서막 끝났습니다ㅋㅋㅋㅋㅋㅋ(독자님들:응?) 다음화부터 드디어!!!!!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ㅠ.ㅠ 얼마나 쓰고싶었는지 몰라요
지금까지 다소 지루해도 읽어주셨던 독자님들! 이 글 중간에 안 나가신 독자님들! 고마워요! 다음편은 안 지루할꺼야!!(아마)
글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웨이사이드 채플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교회로 캐나다에 존재합니다!
또 달빛 조각사도 지민이가 본보야지에서 열심히 읽던 책!(너무 귀여워서 넣어버렸으....)
또 고백에 이어서 결혼 계획까지 말하는 지민이 보고싶었음 뭔가 열린 마인드로 부끄러워 하다가 막상 말하면 다 해버리는 그런 캐릭터...!
가끔 독방에서 제 글 언급되는 거 보면 신기하고 그래요 모두 감사드립니다
진짜로 암호닉은 다음화부터 꼭 가져올게요 그리고 암호닉은 다음화까지 받을 예정입니다 양식은 언제나 최신화에 [암호닉] 부탁드려요
그럼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기대해주시고 좋은 밤 되세요!
저번화 댓글 달아주신 독자님들 모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