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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언덕

남우현 김성규

 

W치프

 

 

 

 

 침대에 누워 끌어안고 있던 흰 이불에 몸을 부비던 성규가 얼굴로 쏟아지는 햇살에 얼굴을 찌푸리고 머리맡을 더듬어 핸드폰을 찾는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후에 베개에 얼굴을 묻고 앓는 소리를 내다가 몸을 벌떡 일으킨다. 늦잠을 잤다. 원래 일곱 시가 되기 조금 전에 눈이 저절로 떠지는 바람에 알람을 맞추지 않았는데 오늘 따라 늦잠을 잤다. 성규가 이불을 뿌리치고 몸을 일으키며 바지를 벗는다. 드로즈만 입은 하얀 다리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낄 여유도 없이 화장실로 달려간다. 샤워기의 물이 따뜻해지는 것을 기다릴 수도 없어 차가운 물을 그대로 머리에 가져다 댄다. 성규의 입에서 저절로 으악, 하는 소리가 난다. 옷에 묻은 먼지를 털듯 대충 머리를 감고서 수건으로 물기를 턴다. 머리칼은 젖어서 서로 뭉쳐있는 그대로인데 수건을 침대에 던져버리고 옷장을 열어 셔츠를 꺼낸다. 속옷만 입은 몸에 차가운 셔츠가 닿자 몸이 절로 떨린다. 젖은 머리를 말리지도 않고 옷을 껴입은 성규가 짐을 챙겨들고 가디건을 들고서 방을 나선다. 아차. 성규는 멈춰 서서 가디건을 내려놓고 옷장에서 도톰한 코트 하나를 꺼내 입는다. 몸을 감싸는 옷감이 보드랍다.

 

 시간이 촉박해서 카페에 들릴 수가 없다. 뛰다 시피하며 카페 앞을 지나가는데 슬쩍 안을 쳐다보니 손님이 몇 명 없는 가게의 바닥을 닦고 있는 우현이 보인다. 성규는 무의식적으로 느려진 걸음을 재촉한다. 손목의 시계를 보니 아슬아슬하다.

 

 숨이 찬 얼굴로 부서에 도착하니 마침 화장실을 다녀오는 호원과 마주친다. 성규는 숨을 헐떡거리며 손만 흔들어 인사한다. 호원이 입을 벌려 하하 웃는다. 형 뛰어왔어?

 

 

 “늦잠, 잤어.”

 “답지 않게.”

 

 

 모르겠다. 요즘 나도 내가 이상해. 아침부터 뛰어서 진이 빠진다. 성규가 코트를 벗으며 책상에 짐을 올려놓는다. 매일 아침마다 들리던 커피숍에 들르지를 못했다. 나사 하나가 툭 빠져 어딘가 엇나간 느낌이다. 겨우 커피 하나 때문에 상실감이 드는 것이 낯설다. 오는 길에 슬쩍 쳐다본 우현의 모습이 선명하다. 대충 감은 머리가 가렵지도 않은데 머리를 벅벅 긁는다. 커피숍 알바생이 다 뭐라고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지 모를 노릇이다. 관심이 그리웠던 걸까. 애정결핍 같은 건가. 작은 호의 때문에 자꾸자꾸 떠오르는 얼굴이 혼란스럽다. 이런 감정은 반갑지 않다. 우현은 성규의 일상에 침입하려 하고 있다. 낯선 것에 대한 경계심이 든다. 조금씩 발길을 끊어야지.

 

 업무 시간이 되자 회의를 마치고 들어온 부장이 직원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사원이 타다준 커피를 홀짝이던 성규가 부장의 얼굴을 바라본다. 주름이 깊은 얼굴이 이것저것 설명을 하다가 하는 말은, 이번 주는 다들 야근입니다. 성규는 손으로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린다. 내일은 따뜻하게 입구 와요. 문득 떠오른 것은 미소 짓는 우현의 얼굴이다.

 

 그 날부터 매일 열 시가 넘어서 일이 끝나는 바람에 집에 돌아가는 길이면 가로등 말고는 켜져 있는 불빛이 몇 개 없었다. 물론 카페의 조명도 모두 꺼져 검게 죽어있었다. 일 때문에 잠이 줄어들면서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어져 시간이 지체되다보니 또 출근이 촉박해지고, 그저 길가를 지나며 슬쩍 카페 안들 들여다보길 며칠 째였다. 성규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옥상 난간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며 멀리 있는 카페를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저절로 담배를 피우는 양이 많아진 것은 우스운 일이었다.

 

 자리에 앉아 차트를 정리하고 있던 성규가 무심코 혀로 입술을 쓰는데 거칠거칠하게 일어난 것이 느껴진다. 불빛이 없는 핸드폰의 검은 액정을 거울삼아 비춰보니 피로 때문인지 입술 여기저기가 조금씩 터져있다. 손으로 만지다가 주머니에서 보호제를 꺼낸다. 분홍색 복숭아. 손에 덜어서 입술에 문대니 말캉한 느낌이 든다. 뚜껑을 돌돌 돌리며 입술 보호제를 내려다본다. 남우현. 성규는 괜히 한숨을 쉰다. 골이 아프다.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까봐 두렵다. 허락되지 않은 감정을 기꺼이 환영해줄 수가 없다.

 

 

 

 

 카페에 들릴 만한 여유가 생긴 것은 마지막 금요일이었다. 모두 수고했으니 오늘은 일찍 가보라던 부장의 말에 다 끝내지도 못한 일을 급하게 정리해서 회사를 뛰쳐나왔다. 십 일 월의 저녁은 더욱 추워져서 바람이 매섭게 불었지만 도톰한 회색 코트는 은근히 흔들릴 뿐이다. 성규는 평소답지 않게 걸음을 빨리한다.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집으로 가는 것인지, 아니면.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가는지. 하지만 어디론가 가게 될 것이다. 바쁜 걸음으로 도착해서 벌컥 문을 열면, 저가 원하는 그리움이 있을 것 이라고 성규는 생각한다.

 

 테이블에 자리까지 차지하고 앉게 된 것은 순전히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정면에 보인 것은 우주 같은 눈, 명수. 그리고 그 옆에 허리 뒤로 두른 검은 리본을 단정하게 묶은 우현의 뒷모습이 있었다. 성규는 그제야 자신의 숨이 가쁘다는 것을 느꼈다. 바람에 헤집어진 머리를 손으로 정리하고 터벅터벅 걸어갔다. 성규를 돌아보는 시선. 성규가 카운터 앞에 섰을 때 그의 앞에 있는 것은 언제나 팔뚝 언저리까지 걷어 올린 셔츠, 어설프게 달려있는 이름표의 남우현. 우현은 성규를 보자마자 따뜻하게 입었네, 하고 웃었다. 그리고 마치 올 줄 알았다는 듯이 내주는 커피 한 잔. 성규는 그것을 받아들며 저도 모르게 마시고 갈 거예요, 한 것이었다.

 

 어쨌든 끝내지 못한 일거리도 있으니 나쁜 충동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트북의 자판을 두드리다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테이블에 내려놓는데 유리 접시가 달칵, 하며 놓인다. 조명을 등지고 선 사람을 올려다보니 우현이다. 오랜만에 보니까, 서비스. 우현의 두 번째 서비스는 노릇한 색이 예쁜 치즈 케이크다. 자연스럽게 맞은편에 앉는 우현을 보자 가슴께가 뻐근하다.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팔을 겹쳐 올린 우현이 성규를 가만히 응시한다. 성규는 까만 눈동자를 단단히 붙잡는다. 우현이 눈을 접는다.

 

 

“기다렸어요.”

 

 

 성규는 슬쩍 시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투명한 시선 앞에서 떳떳할 수가 없다. 괜히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노트북의 화면을 보는 채 하며 눈을 내리깐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딴에 공부를 잘한다고 이름을 좀 날렸지만 겨우 기다렸다는 말 한 마디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 바보 같았다. 우현이 특별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어떤 의미로든 그것은 사실이다. 사회 속에서 누군가의 동료, 선배, 또는 남편이었던 자신을 유일하게 김성규로 만들어 준 것이다. 겨우 사회 초년생인 우현은 그런 사람이다. 성규는 미묘하게 벅차오르는 가슴을 참아낸다.

 

 

 “일이 바빴어요. 아침이나 저녁이나 정신이 없어서…….”

 “알아요. 봤어요, 매일 아침에 뛰어 가던거.”

 “그걸 봤어요?”

 “네. 달리기는 별로 안 빠르던데.”

 

 

 우현은 하하, 웃었지만 성규는 추한 꼴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이 달아오른다. 허둥지둥 뛰어가는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웠을까. 한 번은 불툭 튀어나온 블록에 발이 걸려 휘청거렸을 때가 있었는데 그것도 봤을까. 성규는 애써 담담한 체 했다. 말을 하려고 입술을 달싹 거리는데 혼자서 많은 손님을 받고 있던 명수가 우현을 부른다. 우현은 의자를 끌고 일어나서는 또 내가 없음 안 되지, 하고 익살스럽게 웃는다. 점점 멀어지는 넓은 어깨를 바라보다가 모니터를 본다. 또 다시 까맣게 꺼져있다.

 

 갑자기 손님들이 늘어난 것은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서일테다. 손을 비비고 입김으로 불어대다가 카페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 시간은 여덟 시를 넘어 거의 아홉 시가 다 되었다. 괜히 일이 지루해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데 우연히 들어간 사진첩의 아내의 사진이 보인다. 연락을 안 한지 며칠이 됐더라. 몇 주던가. 이제는 아내 쪽에서도 연락이 드물어졌다. 잊혀지는 것에 대해서 두려움은 없다. 그것이 무섭다. 감정의 결여는 조금씩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모든 것에 무관심하게 된다. 늙고 병든 노인처럼 무기력해지는 것이 싫다. 성규의 시선이 우현을 좇는다. 우현은 손님에게 커피를 건네주며 웃고 있다. 그래, 아직은. 아직은 괜찮다.

 

 열 시가 되자 손님은 거의 없다.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있던 손님들도 겉옷과 가방을 챙기며 나갈 준비를 한다. 설거지를 끝낸 명수는 벌써 옷을 갈아입었다. 폐점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도 선뜻 가게를 정리하지 못하는 것은 미간 사이에 주름을 잡고서 노트북을 노려보고 있는 사람 때문이다. 서류 가방에서 꺼내놓은 서류들을 헤집더니 핸드폰으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우현은 의자에 앉아 카운터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괸다. 가만히 성규를 바라보고 있는데 가까이 다가온 명수가 말을 건다.

 

 

 “형 정리 해야지.”

 

 

 우현은 서 있는 명수를 대충 올려다보고서 다시 성규를 본다. 명수를 보지도 않고 손을 흔든다.

 

 

 “어, 먼저 가. 내가 정리 할게.”

 

 

 귀찮다는 듯이 대하는 우현의 태도에 입술을 내밀고 있던 명수가 우현의 시선을 쫓는다. 통화를 하고 있는 성규. 명수는 우현과 성규를 번갈아가며 보다가 우현을 부른다. 형, 설마 저 사람 때문에 그래? 우현은 인상을 팍 찡그린다. 아, 뭘 또! 빨리 가기나 해. 발을 들어 엉덩이를 밀자 명수가 힘없이 밀려난다. 다리를 쭉 뻗어도 발이 닿지 않는 곳에 선 명수가 제법 진지한 얼굴을 한다.

 

 

 “저 사람 남자야.”

 “알아.”

 “나이도 훨씬 많아 보여.”

 

 

 아니까 꺼지라고. 우현이 소리를 빽 지르자 통화를 하던 성규가 돌아본다. 우현은 얼른 자세를 바로하고 아무 일 없던 척을 한다. 그 모습을 지켜본 명수가 어이없는 얼굴을 한다.

 

 

 “요즘 이상하다 했더니, 미친. 형, 내가 동생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충고하는데.”

 

 

 우현은 눈을 감고 한숨을 쉰다. 무슨 소리를 할지는 뻔하다. 명수가 새까만 눈동자로 우현을 응시한다.

 

 

 “그러지 마.”

 

 

 갈게, 하고 뒤돌아서 가버린다. 뚜벅뚜벅 걸어가든 명수를 가만히 노려보던 우현이 입술을 씹는다. 그런 것쯤은 다 안다. 성규가 남자고, 적어도 자신보다 대 여섯은 많다는 것 쯤, 성규를 처음 봤던 순간부터 다 알고 있던 것이다. 이건 그냥 단순한, 호감일 뿐이다. 연애 감정 같은 남사스러운 것이 아니다. 여태까지 동성에게 이렇다 할 감정을 느껴 본 적도 없다. 첫사랑은 옆집 누나였고, 첫 연애는 같은 반 여자애고. 몇 개월 전 헤어진 여자 친구의 얼굴이 흐릿하지만 어쨌든 자신의 연애 대상은 여자였다. 단지 고양이 같은 눈매와 묘한 분위기가 저절로 시선을 끄는 것이다. 딱히 보려고 하지 않아도 정신을 차리고 보면 성규를 보고 있는, 자기 의지와는 별개의 문제다. 봄볕 같은 미소에서 눈을 뗄 수 없을 뿐. 그뿐이다. 우현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린다. 답답한 가슴이 울컥거린다. 잘 모르겠다. 아무것도, 잘 모르겠어.

 

 우현은 슬쩍 탈의실로 들어간다. 캐비넷 앞에 서서 검은 앞치마를 벗고 셔츠를 벗는다. 매끈한 몸에 찬 공기가 닿자 몸이 떨린다. 옷을 갈아입고 갈색 코트의 단추까지 잠은 우현이 탈의실을 나올 때 까지도 성규는 일을 하고 있다. 우현은 코트의 주머니에 손을 넣고 느린 걸음으로 카운터를 향해 걸어간다. 카운터에 엎드려 고개만 들어 성규를 바라본다. 검은 뿌리가 자라난 동그란 머리통과 쉽게 빨게 지는 작은 귀, 곧은 코. 빨갛게 익은 입술. 여자 마냥 곱고 예쁜 것도 아닌데 무심코 예쁘다고 생각해버린다. 작은 입술에 꾹 힘을 주더니 힘껏 기지개를 켠다. 그러고서 주위를 둘러보는데 사람이 아무도 없어 당황했는지 조그만 눈을 동그랗게 뜬다. 저절로 시선이 우현에게 닿는다. 멍청한 얼굴로 우현의 얼굴을 보다가 핸드폰의 시계를 보더니 몸을 벌떡 일으킨다. 시간은 열한 시에 이르고 있다.

 

 

 “열한 시예요.”

 “맞아요.”

 “닫을 시간 넘지 않았어요?”

 “그것두 맞아요.”

 “나 때문에 그랬어요? 왜 말을 안했어요.”

 

 

 성규가 정신없이 짐을 정리하고서 금세 겉옷까지 챙겨 입는다. 서두르는 모습에 천천히 해도 괜찮아요, 하는데도 성규는 고개를 저으며 아니에요, 아니에요, 한다. 성규가 종종 걸음으로 가게 밖으로 나가자 우현의 카페의 불을 끈다. 열쇠를 챙기며 슬쩍 밖을 보니 성규가 손바닥을 비비벼 서 있다. 발끝이 간지럽다. 괜히 머리를 손으로 빗어 내린다. 문으로 걸어가는 길에 보이는 거울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만진다. 코트의 깃을 정리하고, 비뚤어진 가방을 똑바로 하고 머리를 손질한 후에 밖으로 향한다. 부는 바람이 시린데도 마음 구석이 포근하다. 카페의 문을 잠그고 뒤를 돌아보자 카페의 계단 밑에서 저를 올려다보는 성규가 있다.

 

 

 “미안해요. 이렇게 늦은 줄 몰랐네.”

 “일부러 말 안했어요. 열심히 하길래.”

 

 

 그래두, 하며 입술은 오물거린다. 우현이 주머니에 열쇠를 쑤셔 넣는다. 가요. 둘은 같은 방향으로 걸어간다. 늦은 시간이라 불빛이라고는 가로등 빛뿐이다. 따갑게 살을 치대는 바람에 몸을 웅크리고 팔짱을 낀다. 황량한 바람소리, 낙엽 구르는 소리. 두 개의 발소리. 그들 사이에는 수줍은 정적뿐이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눈동자만 움직여서 우현을 보니 앞만 보고 걷고 있다. 쑥스러운 어색함이 싫다. 성규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말한다.

 

 

 “대학생이에요?”

 

 

 우현은 코트의 주머니에 손을 넣고 성규를 보다가 시선을 땅으로 박는다.

 

 

 “네. 지금은 휴학했어요.”

 “알바 때문인가.”

 “맞아요.”

 

 

 짧은 대화가 끝나면 사락사락 옷깃이 스치는 소리만 난다. 그 후로 몇 번인가 우현이 대화를 이끌어 나가다가 결국은 둘 다 말이 없어진다. 땅을 보고 걷는데 성규와 걸음이 맞아 떨어진다. 오른발이 함께 나가고, 다음은 왼발. 우현이 슬쩍 올라가는 입술에 힘을 주어 내린다. 행여나 가슴이 동할까 코트의 깃과 함께 마음을 다잡는다. 각자 가야할 곳으로 가는 데도 계속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성규는 미심쩍어 했지만 그뿐이다. 유독 날이 어둡고, 밤이 깊다. 총총히 별이 박힌 은하 밑을 걸으며, 그것쯤이야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어딘가에는 닿게 되겠지.

 

 손이 시려운지 성규가 하얀 손을 부비며 입김을 분다. 살결이 스치는 소리가 부드럽다. 오늘따라 더욱 느린 걸음은 결국 오피스텔 단지에 이른다. 집에 도착하자 성규는 멈춰 선다. 저는 여기예요. 우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한다. 들어가세요. 거꾸로 걸어가며 양팔을 흔드는 우현을 보는 성규의 손이 흔들리다가 뚝 떨어진다.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오른다. 다박다박 오르는 소리에 맞춰 가슴이 뻐근해진다. 현관문을 열고 쾅 닫자마자 성규는 멈춰 선다. 불이 꺼진 거실에는 야경의 불빛으로 아스라이 밝다. 켜지지 않은 전등이 달린 천장을 보던 성규의 몸이 쓰러질 것 같이 뒤로 넘어가다 철문에 기대어진다. 눈을 꽉 감고 손을 들어 얼굴을 덮는다. 이게 아닌데. 이러면 안 되는데. 손에 들려있던 가방을 던져버리고 코트의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꺼내든다. 급한 손길이 전화부에서 아내의 두 글자를 찾아낸다. 세게 누르니 여러 가지 메뉴가 떠오르고, 통화로 손길을 옮긴다. 차마 누르지 못하는 손이 멈춰 있다가 소파 위로 핸드폰을 던져버린다.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앓는 소리를 내자 손 안에서 소리가 울린다.


 우현은 가만히 멈춰 서서 점점 멀어지는 성규의 발소리를 듣는다. 곧이어 쾅 소리를 내며 닫히는 현관문.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쉬자 입김이 피어난다. 우현은 왔던 길을 되돌아 걷기 시작한다.

 

 

 

 

 원래 잠이 많은 체질이라 긴장감이 없는 주말에는 느지막이 눈이 떠지고는 했는데 일어나 시계를 보니 아홉 시가 겨우 넘었다. 큰 창문이 있는 침실 안으로 늦가을의 볕이 가득하다. 흰 시트와 이불 사이에 묻힌 성규의 하얀 몸이 더불어 반짝인다. 성규는 눈을 찡그리며 베개에 얼굴을 파묻는다. 온기로 데워진 포근함이 좋아서 그저 그렇게 있는데 베개 옆에 둔 핸드폰이 큰소리를 내며 진동한다. 성규가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로 끙끙 거리며 손으로 머리맡을 더듬어 핸드폰을 쥔다. 보지도 않고 통화 버튼을 누르고서 귀에 가져다대니 곧바로 형, 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응. 소리는 베개에 먹혀서 먹먹하게 들린다. 전화기 건너편에서 호원이 되묻는다. 뭐라고? 그제야 고개를 들은 성규가 손으로 머리를 헤집는다.

 

 

 “아, 왜. 아침부터.”

 “형 아직도 안 일어났어?”

 “일어났어.”

 “방금?”

 “일어났어.”

 “알겠어.”

 

 

 한바탕 호탕하게 웃은 호원이 내 메일로 자료 보냈어, 라고 묻는다. 성규는 잠겨서 거칠어진 목소리로 목을 울려 응, 하고 답한다. 이상하네, 아무것도 못 받았는데. 성규는 입을 크게 벌려 하품을 한 다음 눈을 부빈다.

 

 

 “보낼 때 오류 떴는데 귀찮아서 그냥 넘어갔더니 제대로 안 갔나보다. 다시 보내줄게.”

 “응, 고마워.”

 

 

 전화를 끊고서 굳은 몸으로 기지개를 켠다. 얇은 팔이 허공에서 달달 떨리다가 뚝 떨어진다. 속옷만 입고 자는 바람에 다 드러난 몸에 서늘한 공기가 닿는다. 소름이 돋으며 털이 서자 하얀 이불을 들어 몸에 감는다. 얼굴만 빼꼼 나와 긴 다리로 휘적휘적 걸어간다. 노트북을 어디다 뒀지. 침실을 나가는 성규의 발이 멈춘다. 문득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이리저리 뻗쳐서 머리는 산발이다.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카락 사이로 검은 머리가 얼룩처럼 자라있다. 머리카락 한 가닥을 손가락으로 잡아당긴다. 미용실에 가야겠다.

 

 오전이라 미용실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머리를 자르는 남자 한 명, 파마를 하는 아주머니 한 명. 가게에 들어서자 여자 종업원이 곧바로 무얼 할거냐며 물어온다. 염색이요. 성규는 자리를 안내하는 종업원의 뒤를 따른다. 푹신한 의자에 앉자 색은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한다. 거울 속의 자신을 응시하던 성규가 고민하지 않고 말한다. 그냥 검은색으로 해주세요.

 

 남자인지라 머리가 짧아 약을 바르는 데에도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아 염색은 금방 끝이 났다. 축축하게 젖은 머리를 드라이기로 말리자 검게 물들여진 머리카락이 보송보송하게 부푼다. 마른 머리를 가위로 몇 번 다듬더니 뒤로 물러나며 다 됐습니다, 한다. 새까만 머리가 낯설다. 성규는 거울 앞머리 고개를 돌려가며 머리를 만져보더니 작게 웃는다. 오랜만의 변화에 기분이 좋다.

 

 그 동안의 야근으로 밀린 일은 없지만 카페로 가는 것은 습관이었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지났는지 테이블이 가득 차 있다. 성규가 투명한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자 문에 달려있던 종이 소리를 낸다. 몇몇의 여자가 카운터로 걸어가는 성규를 돌아본다. 머리를 하나로 묶은 여고생의 주문을 받던 우현이 내렸던 시선을 올려서 성규와 마주친다. 의식적인 웃음을 짓고 있던 얼굴이 멍청하게 풀리며 성규의 얼굴을 바라본다. 우현은 금세 웃으며 머리 하셨네요, 하고 말을 건다. 성규가 눈웃음을 짓는다.

 

 

 “괜찮아요?”

 

 우현이 웃는다. 보기 좋기 도톰한 입술이 반짝거린다.

 

 “네. 예뻐요.”

 

 

 


치프

흐유 분량조류 내용고자...... 불치병이라는 것이 사실.....

이번부터는 조금 재밌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네여 ㅋㅎ...

컴퓨터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다보니 검토할 시간도 없고 깊게 생각할 시간도 없어서ㅠㅠㅠ

진짜 부끄럽네요.....

그래도 기다리시는 분들을 위해서 최대한 빨리 왔어요

 

덧글ㅋㅎ... 사실 덧글에 대해서는 이미 포기를 했기 때문에ㅋㅋㅋㅋㅋ

그냥 한 분 만 있더라고 그분을 위해서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꾸준히 사랑주시고 덧글로 힘주시는 분들한테는 뭔가 저도 드려야겠다고 생각해서

나중에 완결나서 메일링 할 때 외전같은 거라도 따로 넣어서 보내드릴까하는데

아니면 뭐가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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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오늘도 잘읽고갑니다~ 자고일어나서 신알신 몇 분전에 봤네요ㅎㅎ 다음편도 기다릴게요 작가님 호이팅!
11년 전
독자2
ㅠㅠㅠ 감성 이에요 ㅠㅠ 흐잉 ㅠㅠ 수업들어가야해 ㅠㅠ 재밌게보구가요 ㅠㅠ
11년 전
독자3
으아ㅏㅠㅠㅠㅠ 잘봤어용 ㅠㅠㅠ 곰팡이에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독자4
암호닉은요.. 음...무럭자라예요(고민한척하지만 똑같다는건 안거짓말이요. .ㅠㅜ) 아,읽으면서 뭐랄까 지금 되게추운데 뭔가따뜻해지는 느낌을 받은거같아요.! 딱히 사랑한다는표현이나 좋아한다는표현은 없는데도.말하지않아도 알아요~~♬ 성규앞에붙은 유부남 타이틀이. ..문제네...음
11년 전
독자5
댕열이에요!한번도말씀드린적없나..싶은데ㅠ내용이정말 감성적이라좋아요!!! 잘읽구있어요 ㅎㅎ
11년 전
독자6
자까님 저 비회원이요!! 와 인스티즈 들어오니까 이런 행운이!!! 오늘도 즐겁게 읽었어요 자까님 힘내시고 꼭 완결 내주세요!!!! 응원할게요^ㅠ^!!!
11년 전
독자7
정주행하고왔어요ㅎㅎ 잘봤어요ㅠㅠ 유부남이라는게 발목을잡네요ㅜㅜ 부인도 바람피는데 규도 나무를 만나길바라요ㅋㅋ 암호닉신청 되면 하니 로 기억히니주세요ㅎㅎ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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