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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언덕

남우현 김성규

 

 

치프

 

 

 

 

 

 염색한 머리가 신경 쓰여서 괜히 창에 비친 모습을 계속 바라본다. 원래 검은 머리였을 터인데 오랫동안 염색을 하니 검은색 머리카락이 어색할 지경이다. 성규는 마른 손가락으로 머리를 빗어 내린다. 예쁘다는 말은 글쎄, 검은 머리에 교복을 입던 그 파릇한 때에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다. 우현의 눈빛은 프리지아를 보던 때와 비슷했다. 다정하지만 깊게 가라앉은 검은 눈동자 안에 고여 있는 빛덩이는 어쩐지 불안해보였다. 우현은 웃으며 눈꺼풀로 불안을 덮어버리었다. 자상함만 남도록. 무심코 마주친 시선과 말 한 마디는 감히 불순한 마음이 들게 한다.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울컥 솟구치는 죄책감을 온전히 느끼면서도 저는. 별 것 아닌 단어 하나에 가슴 떨리고 말았다. 머릿속에 아내가 떠오르지만 부끄러움 보다는 비열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괘씸한 마음만 든다. 이럴 때 마다 항상 거리를 둬야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쉽게 부러지는 얇은 나뭇가지처럼 바람결에 푹 꺾어지고 만다.

 

 사실은 밀린 일도 없다. 며칠 동안 야근을 해서 꽤 큰 기획안을 하나 끝마쳤더니 노트북을 가지고 하는 것은 그저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를 읽거나, 포털사이트의 검색어 순위를 구경하는 것이 전부다. 그럼에도 노트북을 가방 속에 넣을 수 없는 건 카페 안에 떳떳하게 있을 수 있는 구실이기 때문이다. 성규 자신에게도 그것은 마지막 확신이다. 목적 없는 손짓은 금방 지루해진다. 치켜올라간 턱을 괴고 눈을 내리깔아 모니터를 보던 시선을 슬쩍 옮겨 우현을 바라본다. 우현은 줄을 서서 기다리는 손님들의 주문을 받아내고 있다. 주말에 손님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에 따라서 더욱 시간이 없어지는 것도 당연하다. 조명의 불빛에 반짝이며 웃는 우현은 꼭 다른 공간이 있는 것 같다. 성규는 조금씩 미어오는 가슴을 애써 달래며 검은 커피를 마신다.

 

 테이블이 점점 비어가고 우현과 명수가 의자에 앉아 쉬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점심시간이 두어 시간 쯤 지난 후였다. 우현이 남을 시간을 이용해서 설거지를 하고서 마지막 커피잔을 닦아 내려 놓을 때에 성규는 포털사이트 검색어에 올라온 영화를 검색하고 있다. 갑자기 화제가 되어서 무슨 영화인가 했더니 액션 영화다. 액션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정신없고, 시끄럽고, 결국 정의는 승리한다는 구성의 한계는 진부하다. 활성화된 사이트를 닫으려고 하는데 다가오던 우현이 어, 하고 소리를 낸다. 성규는 퍼뜩 멈춰서 우현을 올려다본다. 이거, 이 영화.

 

 

 “보고 싶었던 건데. 봤어요?”

 “아뇨.”

 

 

 사실 보고 싶지도 않다.

 

 

 “같이 볼래요? 무료 티켓 있는데.”

 

 

 성규는 눈을 꿈벅꿈벅거리며 대답이 없다. 성규를 내려다보던 우현은 반응이 없자 민망한 듯 웃는다.

 

 

 “아, 혹시 액션 영화 싫어하시나.”

 “아니, 좋아해요. 보러가요.”

 

 

 오늘 일 끝나고 가요. 미소를 지으며 뒤돌아가는 우현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무슨 말을 했는지. 좋아하지도 않는 영화를 보러간다고 했다. 분명 보는 내내 시끄러운 스피커 소리로 얼굴을 찌푸리고 있을텐데, 실망한 것처럼 조금씩 내려가다 억지로 웃는 입을 보기가 겁나서 얼른 말을 바꿔버렸다.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을 틈도 없었다. 무슨 짓을 한 걸까. 한참이나 어린 남자애랑 무엇을 해보겠다고. 성규는 머리를 감싸 쥔다. 이 와중에 마음속에 들어차는 설렘이 싫다. 스스로 죄인이 되기를 자처하고 있다. 몰아치는 감정 속에서 성규는 갈대처럼 힘없이 흔들리고만 있다.

 

 

 사실 신경이 쓰인다. 일이 끝나려면 어둑어둑해지는 열 시는 지나야할텐데. 그 동안 성규는 테이블에 달랑 혼자 앉아 몇 시간 동안이나 저를 기다리고 있어야하는 것이다. 커피를 만들다가 잔에 담기는 시간을 기다리며 슬쩍 쳐다보면 턱을 괴고 창밖을 쳐다보고 있고, 손님이 다녀간 테이블을 닦다가 또 찾아보면 핸드폰을 만지고 있고. 가게가 한산해져서 바닥을 닦다가 말을 붙여보려 다가가려하면 어디론가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하얀색 노트북과 커피가 조금 남겨져있는 잔은 그대로인데 마른 몸만 팔랑팔랑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훌쩍 떠나가버린 것도 아닌데 가슴이 울렁거린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서 그 하얗고 동그란 얼굴을 찾아보니 가게 맞은편의 꽃집 앞에 무릎을 접고 앉아있다. 우현은 저도 모르게 허, 하는 웃음이 난다.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꽃송이 하나를 들었다가 햇살에 비추어 보다가 다시 내려놓는다. 검은 머리칼과 대조되는 하얀 얼굴이 말갛게 빛나고 있다. 나이도, 이름도 상관없다. 몽글몽글 달큰한 향기가 피어나는 웃음이면 그저 됐다.

 

 시간이 갈 수 록 초조해진다. 성규가 조금이라도 지루해하는 티가 보이면 금방 불안해지고. 시계를 보니 여덟 시가 조금 넘었다. 밖은 이미 어두운데 시계의 침은 저무는 해보다도 느리게 뉘엿뉘엿 고개를 꾸벅인다. 가게를 둘러보니 손님이 얼마 없어 테이블이 많이 비어있다. 우현은 카운터에 앉아 핸드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는 명수를 야, 하고 부른다. 명수가 고개를 푹 꺾고 핸드폰 화면을 쳐다본 채 응, 하고 대답한다. 다시 명수야, 하고 부르니 말이 없다가 게임 캐릭터가 죽어버리자 퉁명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들고서 왜.

 

 

 “나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런데, 미리 퇴근 좀 할게.”

 “뭐?”

 “다음에 너 대신 내가 가게 봐줄게. 미안하다.”

 

 

 앞치마의 리본을 푸르며 탈의실로 걸어가는 우현의 뒤로 명수의 목소리가 들린다. 잠깐만 기다려봐. 탈의실 문을 닫아버리자 목소리가 뚝 끊긴다. 검은 앞치마를 접지도 않고 둘둘 말아 캐비넷 안에 던져버리고 재빨리 셔츠의 단추를 푼다. 철문을 세차게 열고 들어오는 명수를 애써 못 본 척 한다.

 

 

 “지금 뭐하는 거야?”

 “오늘만 봐주라. 미안.”

 “저 손님이랑 뭐, 어디 가게?”

 

 

 저 손님은 아마 성규를 말하는 것일 테다. 분주하게 움직이던 우현의 손이 멈추고 시선이 명수를 본다. 명수의 눈썹이 묘하게 일그러져있다.

 

 

 “뭐하는 건데. 내가, 아.”

 

 

 명수는 기가 차다는 듯이 한숨을 쉬며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린다.

 

 

 “내가 형이 어떤 여자를 꼬시던, 사귀던 별 말 안하는데. 저 사람 남자라고.”

 “그런 거, 아니야. 그냥, 그냥.”

 “저 사람은 알아? 형이 이러는 거 알아?”

 

 

 우현은 명수의 얼굴을 보며 가만히 서 있다가 옷 갈아입어야 하니까 나가, 하며 명수를 탈의실 밖으로 밀어내고 철문을 닫는다. 명치까지 풀려있던 단추를 다시 만지작거린다. 끝이 뭉툭한 손은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헤매고 있다. 저도 모르는 것을 그라고 알고 있을까. 쉼 없이 팔랑이며 가슴 뛰게 하는 것을. 저는 모른다. 다만, 단지 호감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노을빛 맺힌 지평선처럼 그렇게. 끝을 어림할 수도 없고,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없는 것이다. 그에게 느끼는 감정은 그랬다. 한숨을 쉬며 머리를 쓸어넘긴다. 부정할 수 없다. 언젠가 분명히, 이것을 두 음절의 단어로써 확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이 어떤 고통과 후회와, 행복을 안겨주던. 그 모든 것들도, 감히 사랑하게 될 것이다.

 

 옷을 갈아입고 나가보니 명수가 카운터에 팔을 기대어 삐딱하게 서있다. 우현은 명수의 시선을 마주하지 않고 지나친다. 형. 나지막이 부르는 목소리에 몸이 멈춘다. 또 미쳤다느니, 하지 말라느니. 우현은 체념하고 있다. 그 어떤 질책에도 담담해지도록 마음을 다듬고 있다. 명수의 목소리가 어딘가 막혀있는 것 같다.

 

 

 “나는 형이 걱정돼.”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그저 서 있다. 문득 저를 쳐다보는 성규와 눈이 마주친다. 저는 그에게, 그리고 명수에게 죄인이 되어가고 있다.

 

 

 “좋아해?”

 

 

 짧게 성대를 울리는 말에 우현은 말없이 입술을 달싹일 뿐이다. 복잡하게 빛이 엉키는 눈동자가 헤매다가 땅으로 가라앉는다. 우현은 걸었다. 성규에게 다가간다. 우현을 올려다보는 성규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손목시계를 내려다본다. 여덟 시의 반절이 조금 넘었다. 벌써 끝났어요? 우현은 침착한 목소리로 네, 가요, 한다. 짐을 정리하는 성규를 묵묵히 바라보는 우현의 뒤로 명수의 시선이 느껴진다. 코트의 주머니 속에 넣은 손으로 주먹을 꽉 쥔다. 결국 대답하지 못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성규는 어깨를 움츠린다. 조금씩 피부를 깎는 찬바람이 셔츠의 깃 사이를 파고든다. 답답해서 푸러뒀던 첫 번째 단추를 여민다. 성규가 시린 손을 비비며 어디로 가죠, 하고 묻는다. 우현은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어, 하고 목소리를 길게 늘이다가 가까운 곳으로 가요, 하고 걸음을 옮긴다. 둘은 나란히 걷는다. 그들은 조근조근 대화를 했으나 대부분 성규가 날씨가 춥다, 하는 것이었고 우현은 따뜻하게 입고 다니라는 형식이었다. 그러다가 우현이 넌지시 일이 많이 바빴어요, 하고 묻는다. 성규는 입술을 툭 내밀고 고개를 끄덕인다.

 

 

 “갑자기 야근이라고 해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고 회사 늦어서 뛰어가고.”

 “아아.”

 “이제 끝났어요. 됐어요.”

 

 

 성규는 보란 듯이 어깨를 으쓱댄다. 두 개의 걸음 소리가 비슷한 박자로 울리다가 하나가 멈추자 다른 하나가 똑같이 멈춰 선다. 성규가 대뜸 발을 멈춘 우현을 바라본다. 왜요? 성규는 긴 속눈썹 하나가 빠져 광대 언저리에 붙어있는 것도 모르고 눈을 깜박이고 있다. 우현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뺨을 가리키며 속눈썹. 어설픈 손짓으로 뺨을 털어내지만 검은 한 가닥은 끈덕이게 붙어있다. 됐어요, 하고 물으면 우현은 고개를 돌리며 아니요, 한다. 눈썹을 찌푸리며 뺨을 건들이지만 조금씩 움직일 뿐 떨어지지 않는다. 아직도 안 됐어요. 성규는 갑자기 우현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그냥 떼어줘요, 한다. 우현은 바짝 가까워진 거리에 몸이 굳는다. 향수를 뿌리나. 달콤한 냄새가 확 퍼진다. 머리를 검게 염색해서 시야에는 온통 검고, 하얗고, 빨갛다. 작고 쌍꺼풀도 없는데 예쁜 눈이 저를 똑바로 쳐다보며 눈동자를 반짝인다. 우현은 저도 모르게 뒤로 뺐던 몸을 바로하고 손을 든다. 검지로 떼어내려다 손톱이 길어 피부에 닿을 것 같아 뭉툭한 엄지로 볼을 살짝 쓸었다. 밤바람에 식지도 않았는지 손끝에 닿는 온기가 짜릿하다. 우현의 손에 속눈썹이 뚝 떨어진다. 됐어요? 우현의 목소리가 뛰는 심장처럼 흔들린다. 네, 됐어요. 성규는 가요, 그럼, 하고 훌쩍 걸어가기 시작한다. 걸어가는 성규의 뒷모습이 잡히지 않는 꽃잎처럼 나풀거린다.

 

 

 

 영화관에서 무료 티켓을 내밀며 영화 제목을 말하자 남은 것은 커플 좌석뿐이라고 한다. 핑크빛 벨벳 소파가 덜렁 있는 좌석에 성규와 단 둘이 앉을 것을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하고 여간 손끝이 저리는 것이 아니었다. 슬쩍 성규를 보니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려 웃고 있다. 그냥 다른 거 볼까요? 우현이 묻자 성규는 어물어물 고개를 끄덕인다. 전광판에 떠 있는 영화 목록을 보자 성인 영화, 애니메이션 같은 것뿐이다. 가만히 전광판을 보던 성규가 긴 손가락을 뻗어 가르킨 것은 계절의 언덕. 남자와 여자가 사랑에 빠지고 권태기를 지나 이별의 과정을 그린 영화였다. 성규는 우현을 돌아보며 이게 제일 나은 것 같아요, 한다.

 

 개봉한지 꽤 지난 멜로 영화라 그런지 상영관 안에는 사람이 얼마 없다. 빈자리가 많은 곳에 앉아있는데 손에 땀이 맺힌다. 푸른 새벽이 밟은 겨울에 차에 올라타 운전을 하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됐다. 꼭 지금과 같은 때다. 노랗다 못해 황토색이 되어 바스러지는 낙엽이 땅을 구른다. 회색 코트를 여미는 남자는 우연히 여자를 만난다. 쌍커풀이 짙은 여자는, 아내와 조금 닮아있는 것도 같다. 그들은 사랑에 빠졌다. 같은 소파에 누워 서로를 바라보고, 땅거미 진 저녁에 차 안에서 키스를 하고. 성규는 눈을 느리게 깜빡인다. 저들은 사랑이라는 것을 하는 걸까. 아내와 저도 키스를 하고, 잠자리를 함께 했는데. 그것은 무엇일까. 도대체 뭐 길래 향기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것인가. 감정을 좀 먹고 관계에 곰팡이를 피우는 권태라는 것이 얼마나 무섭길래.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아주 가버렸다.

결국 서로에 대한 나태를 이기지 못한 두 남녀는 이별을 맞이한다. 훌쩍 계절이 지나고 다시 겨울이 와 소복소복 쌓인 눈이 녹아내릴 때 쯤. 남자와 여자는 헤어진다. 함께 술을 마시는 선배에게 남자가 말한다. 술에 취해 풀린 눈은 초점이 흐렸으나 확고해 보인다. 우리는 계절의 언덕을 넘었을 뿐이에요. 이 언덕을 넘고 넘다보면은 어딘가에는 닿게 되겠죠. 어딘가 있는, 누군가의 품에 있게 되겠죠. 예. 그 뿐이에요.

 

 

 

 밖은 더욱 서늘해져있다. 허공에 숨을 뱉으니 풀어진 솜처럼 입김이 부푼다. 걸으며 팔이 자연스럽게 흔들리는데 둘의 손이 살짝 닿았다가 떨어진다. 우현은 놀란 것을 숨기며 도톰한 주머니 속으로 손을 감춘다. 괜히 헛기침을 하니 성규가 슬쩍 우현을 보다가 땅으로 시선을 깐다. 가로등 밑을 지날 때 마다 빛을 받는 성규의 얼굴이 하얗게 빛난다. 우현은 저도 모르게 진짜 하얗다, 하고 말해버린다. 성규는 천천히 눈동자를 굴려 우현의 시선을 마주한다. 그 짧은 순간에도 너무 많은 떨림이 느껴져서 변명조차 하지 못하고 굳는다.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대다가 하는 말은 고작 잘 어울려요. 우현은 주머니에 있는 손에 힘을 주며 자책한다. 진짜 멍청이 같다. 성규가 하하, 웃는다.

 

 

 “잘 어울려요? 그건 또 처음 듣네.”

 

 

 근데 난 별로 안 좋아해요. 성규가 눈을 내리깔고 걷다가 작게 입을 몇 번 움찔댄다. 검은 눈동자로 거친 땅을 훑다가 달이 밝은 하늘을 보다가. 망설임 속에서 몇 걸음 걷지 않았을 때 성규가 우현을 마주본다.

 

 

 “아내가 싫어했어요.”

 

 

 우현의 입술이 천천히 떨어지고 아, 하는 소리가 흐른다. 아. 동그랗게 뜨인 눈동자는 길을 잃은 채로 앞을 향한다. 사실 그에게 무엇인가를 해보자하는 것도 아니었다. 설령 이것이 호감 이상의 것이라고 해도 그에게 무엇을 해보고자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지만. 그냥 보는 것만으로 마냥 좋았고, 얘기를 하고 같이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괜찮았다. 그의 앞에서 떳떳해질 수 없는 걸 알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이 성규에게 말을 걸고, 함께 걸어가고. 성규에게 무언가를 기대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건, 이건 힘이 든다. 목구멍이 욱신거린다. 우현은 입만 웃으며 말한다. 결혼, 하셨구나. 성규는 잠시 우현을 보다가 다시 땅을 본다. 둘은 말이 없다.

 

 성규의 집에 거의 다다랐을 때 우현에게 집이 이쪽인가 봐요, 하고 묻자 우현은 예, 뭐, 하며 말을 얼버무린다. 성규는 어둠 속에서도 빛이 나는 하얀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하늘하늘 흔들리는 성규의 손이 나비처럼 멀어진다. 우현은 발걸음을 따라 밝혀지는 조명을 올려다보다가 휴대폰을 꺼낸다. 화면을 몇 번 만지더니 귀에 가져다 댄다.

 

 

 "야, 술이나 마시자."

 

 

 지하철 역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우현의 어깨를 명수가 툭 건드린다. 명수를 돌아본 우현이 말없이 걷기 시작한다. 가까운 술집으로 들어선 둘은 가게의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아 앉는다. 다가와서 주문을 받는 점원에게 대충 안주와 술을 주문하고 의자에 몸을 기댄다. 명수는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우현을 바라보고 있다. 우현은 고개를 들어 가게에 달린 주홍색 조명을 바라본다. 따뜻하고 눈이 부시다. 전구의 불빛 사이로 동그란 성규의 얼굴이 떠오른다. 눈을 지그시 감는다. 빛덩이 하나가 피어나더니 점점 커져서 붉은 입술이 생기고, 검은 머리칼이 만들어지고, 작은 두 눈을 끈다. 우현은 번쩍 눈을 뜬다. 우현이 깊게 숨을 뱉는다. 명수와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로 중얼거리듯이 말한다.

 

 

 "명수야."

 "응."

 "네 말 들을 걸."

 "뭘."

 "하지 말라고 하는 거, 그거. 들을 걸 그랬다."

 

 

 실연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것이다. 그의 입에서 아내라는 단어가 나오고, 결혼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저는 깨달았다.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성규를 사랑하고 있다고. 주문하는 커피를 일부러 천천히 만들고, 괜히 말을 걸어보고, 보이지 않으면 초조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영원히 드러낼 수 없겠지만 그래도 그의 일상이라도 되고 싶었다. 성규를 깨우는 햇살이 되고 싶었고, 퇴근길에 솔솔 부는 바람이 되고 싶었을 뿐이다. 이제는 자괴감 때문에 그것조차도 할 수 없다. 저는 비참했다. 느껴지는 가슴의 저림까지도 미워할 수 없어 더욱 그랬다.

 

 성규는 뻐근한 몸으로 기지개를 켠다. 쫙 펼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린 후에 한숨을 쉰다. 아내의 전화를 못 이겨 받았지만 그마저도 얼마 되지 않고 바쁜 채하며 끊어버렸다. 아내라는 두 글자가 떠 있는 화면을 보고서 생각난 것은 우습게도 우현의 번호를 모르는구나, 같은 생각이었다. 며칠 전 영화관에 갔을 때가 생각난다. 우현은 영화가 별로 재미가 없었는지 몸을 자주 들썩거렸다. 저를 쳐다봤다가 스크린을 봤다가 옆에 앉은 사람을 보고는 했다. 지루한가, 재미가 없나. 괜히 초조해서 영화에 몰입한 체 했지만 영화의 후반은 기억나지도 않는다. 영화관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갈 때. 아내의 얘기를 할 적, 그 망설임 속에서 얼마나 방황 많은 방황을 했던가. 아내를 말한 것은 딴에 자신에게 끝을 고한 것이다. 이런 죄악의 설렘은 그만두라고. 처참해지는 것은 이쯤에서 그만두길 바랐다. 말없이 길을 걸을 때, 몇 번씩이나 왈칵 목이 메던지. 얼마나 자신이 처절하던지.

 

 

 

 

 의자를 뒤로 밀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담뱃갑과 라이터를 주머니에 넣고 나가려는데 사무실에 들어오는 호원과 마주친다. 눈으로 인사를 하고 지나가는데 호원이 형, 하고 성규를 부른다. 문 밖으로 나간 다리를 멈추고 허리를 젖혀 호원을 바라본다.

 

 

 "왜."

 "이번 주말에 시간 있어?"

 "그럴걸. 왜?"

 "동우 형이 한 번 보자던데."

 "아, 그래. 좋지."

 "그럼 주말에 연락할게."

 

 

 그래. 다시 걸음을 옮기려는데 또 문득 생각난 것은 귀를 축 내린 강아지처럼 웃고 있는 우현의 얼굴이다. 성규는 어처구니가 없는 얼굴로 헛바람을 뱉으며 웃는다. 이제는 끝이다. 그저 카페 점원과 손님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주말에 카페의 테이블 하나를 하루 종일 차지하고 있는 짓도 이제는 하지 말아야한다. 커피를 받아들고 가게를 나올 때 아쉬움이 드는 것도. 성규는 복도를 걸어가다가 우뚝 멈춰서 머리를 엉망으로 헤집는다.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는 걸음은 거의 뛰고 있다. 사무실에 들어서 야, 호원아, 하고 부르니 마침 자리에 앉은 호원이 허리를 꼿꼿이 펴고 고개를 내밀어 저를 쳐다본다.

 

 

 "평일에는 안 된데?"

 "평일에는 수업 있어서."

 "뭔 수업을 해."

 "아, 말 안 했구나. 동우 형 춤 가르치잖아."

 "춤을 가르쳐?"

 "응. 여기서 별로 안 멀던데. 형 오피스텔 쪽이던가."

 

 

 아차 싶다. 퇴근길에 음악을 울려대는 댄스 학원이 반짝 떠오른다. 성규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옥상으로 향한다. 철문을 열고 나가니 겨울 냄새가 훅 끼친다. 옥상에 심어진 나무의 가지가 바람에 파들파들 떨린다. 옷깃을 여미고 몸을 웅크려 팔짱을 끼는데도 찬기가 가시지 않는다. 난간 앞에 서서 불을 붙이는 손끝이 금방 차게 식는다. 숨을 빨아들이며 불을 붙이자 빛덩이가 빨갛게 타오른다. 라이터를 쥔 손을 바지 주머니에서 빼지 않고 몸을 떤다. 날이 춥다. 기대는 난간이 차가워 팔꿈치에 한기가 든다.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동네는 제법 한 해의 막바지의 모습을 했다. 번화가는 벌써 크리스마스 준비를 하고 있다. 눈 만 오면 얼추 겨울처럼 보일 것 같다. 성규는 한숨을 쉬듯 연기를 뱉는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다가 눈만 내리깔아서 카페를 본다. 저녁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아직 우현은 여유로울 것이다. 또 카운터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고 있겠지. 성규는 혼자서 콧잔등을 찌푸린다. 혼자 있을 때에도 우현을 생각하는 것이 싫다. 꼭 사랑에라도 빠진 것 같이. 꾸역꾸역 시선을 돌린 곳은 댄스 학원이 있는 건물이다. 동우가 얌전한 아이는 아니었지만 춤을 좋아했다는 것은 금시초문이었다. 산만하고 정신없지만 영리해서 곧잘 좋은 학점을 받고는 했다. 동우가 댄스 학원에서 강사로 일한다는 것을 듣고서는 동우가 왜, 하는 생각뿐이다. 성규는 반쯤 검게 타서 바스라진 담배를 끈다. 오늘은 동우를 찾아가 봐야겠다.

 

 

 

 


치프

 

ㅎ.. 늦게와서 되송합니다 미술땜에 바빳는데 때려쳤어요 이제...쿸....

이젠 빠딱빠딱 올게요ㅠㅠㅠㅠ

 

근데 ㅋㅋㅋㅋ 글잡오니까 하두 아고물 아고물해서 아고물이 도대체 뭐야...

이랬는데 으아니 내가 쓰고있던것이 아고물이었다니;;;;

 

어쨌든 이거 빨리 끝내고 쓰고싶은게 너무너무 많은데 ㅠㅠㅠㅠㅠ

아직 이게 반도 안끝났다는거에여... 거의 반인가? 어쨌던...흡..

 

계절의 언덕 내용 정리하다보니 대략 15편 정도에 끝날 것 같아요 그때까지 머리풀고 달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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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감성 이에요 보고팠어요 끼양 성규 검은머리좋죠 킁 그대글 분위기쩔어요 ㅠㅠ
11년 전
독자2
무럭자라예요!아 그놈의 아내....가 참 걸려요...그쵸.. 우현이랑 성규사이의 커다란벽!!!! 내가부셔버리겠어요ㅋㅋㅋ .,ㅈㅅ
11년 전
독자3
댕열이에요!달달하고좋네요ㅠㅠ근데진짜책같다...글잘쓰시네요ㅠㅜ
11년 전
독자4
비회원이에요 자까님....사랑해여 어떻게 이렇게 글을 잘쓰세여ㅠㅠㅠㅠㅠㅠ 그나저나 아고물이라니 우현이 고딩이에여??ㅋㅋㅋ 귀요워라 계절의 언덕이라는 단어 너무 예쁘고 좋아요ㅠㅠ 끝까지 함께할게요 자까님 사롱해영♥^^♥
11년 전
치프
아맞다 ㅋㅋㅋ 제가 헷갈렸어요.. 우현이 대학생이지... 저 멍청...
11년 전
독자5
자까님 저는 기다리고 있어요 언제든지요ㅠㅠ 혹시 시험기간이신가요? 아 제가 재촉하는게 아니라 저는 언제나 항상 자까님을 기다리고 있다는걸 알아주십사 하고ㅠㅠㅠ 자까님 편하실 때 언제든지 돌아오세요!!! 전 언제나 준비 되어있으니까요!!!!!!! 사랑해여 자까님^▽^!!!!!
11년 전
치프
죄송합니다ㅠㅠㅠㅠㅠㅠ... 요즘 알바때문에 여유가없어서ㅠㅠㅠㅠㅠㅠ 어휴 죄송할따름이에요ㅜㅜ 빨리빨리 올려야되는데 그래도 조금씩이라고 쓰고잇으니 기다려주세요 꼭 다시 올거에요ㅠㅠㅠㅠㅠㅠ
11년 전
독자6
아 아니에요 자까님 편하실때 언제든지 오셔도 되요! 바쁘신데 글쓰시기 힘드시죠ㅠㅠ 날씨 많이 추운데 건강 꼭꼭 챙기시고 편하실 때 언제나 오세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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