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매일매일 다른 사람을 만나요.
그래서 하루하루가 즐거워요.
근데 가끔, 나를 노려보는 사람이 있어요.
간혹가다가 내 어깨를 툭툭친다던가,
날 보고 눈물을 흘린다던가하는,
이해 안 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도 나는 행복해요. 왜냐구요? 매일매일 다른 사람을 만나니까요.
"안녕, 너는 누구야?"
잠에서 깨서 눈을 떴더니
목이 예쁜 남자아이가 있었어요.
그 목이 예쁜 아이는 웃는 것도 예뻤어요.
"내 이름은 차학연이야. 잘 잤니?"
"응. 학연이 너도 잘 잤니?"
내가 매일 만나는 사람들은 나를 살갑게 대해줘요.
오늘 만난 학연이란 아이도 그런 것 같아요.
학연이는 내 침대 옆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재환아, 아침은 뭐 먹을래?"
"음, 오늘은 스프 먹을래. 내일은 계란!"
"그래. 그러자."
학연이는 싱긋 웃었어요.
학연이는 나를 데리고 부엌으로 내려갔어요.
내가 잤던 침실은 2층이었나봐요.
부엌으로 내려갔더니 4명의 친구들이 더 있었어요.
"얘들아, 재환이 내려왔다."
"형 안녕, 난 김원식! 재환이형! 잘 잤어?"
그 중에 원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아이가 나에게 달려와 날 안아줬어요.
나보다 키가 더 컸는데, 안기니까 따뜻했어요. 좋았어요.
나는 좋아서 내 두 팔로 원식이의 등을 탕탕 쳤어요.
"아침부터 우냐, 김원식."
사실 어깨가 좀 뜨끈해지긴 했어요. 근데 그냥 기분탓인줄 알았는데,
원식이가 운대요. 소파에 앉아서 못마땅한 표정을 지은 소년이 말했어요. 아침부터 우냐구.
원식이는 내 품에서 벗어나면서 말했어요.
"안 울어."
그쵸. 원식이가 아침부터 울 이유가 어딨어요.
원식이는 웃는 게 예뻤어요.
원식이를 시작으로 상혁이까지 모두 나에게 이름을 알려줬어요.
김원식, 정택운, 한상혁. 마음처럼 이름도 예뻤어요.
근데요. 난 저 애 이름도 궁금했는데.
학연이가 스프를 끓이다 말고 고개를 빼꼼 내어
우리가 있는 거실을 쳐다봤어요.
"야, 빨리 재환이한테 이름 안 가르쳐줘?"
학연이는 그 심술난 표정을 지은 소년에게 말했어요.
나도 학연이의 눈을 따라 그 소년을 바라봤어요.
그 소년은 그 잘생긴 얼굴을 마구 구기고 구겼어요.
"어차피 알려줘도 까먹을거, 뭐하러 알려줘. 짜증나게."
그 소년은 말이 끝나자마자 소파에서 일어나 현관 문을 열고 나갔어요.
"야, 이홍빈!"
홍빈이었구나. 이름이.
"음.. 재환이형, 신경쓰지마요. 아마 홍빈이형이 잠에서 덜 깨서 비몽사몽한가봐요."
"맞아, 우린 밥이나 먹자. 학연이형!"
상혁이는 내 어깨를 토닥거려주며 말했어요.
원식이도 웃으며 동조했어요.
택운이는 밥 먹을 때 내 자리에 숟가락을 놔 줬어요.
학연이는 아침을 해주었구요.
모두 착한사람이에요. 오늘 만나는 사람들도, 모두 착해.
오늘, 저는 재밌게 놀았습니다.
상혁이와 마당에서 화분에 물도 주고
택운이와 고양이에게 밥도 주고
원식이와 학연이와 시내도 걸어다녔어요.
근데.. 아침에 나간 홍빈이는 달이 떴는데도 들어오지 않았어요.
"택운아. 홍빈이 말이야. 홍빈이는 잠 자러 안 와?"
"..들어올거야. 걱정하지 말고 먼저 자."
더 기다리고 싶었는데, 계속 눈이 감겨서 어쩔 수 없었어요.
미안해 홍빈아. 나 먼저 잘게.
내가 침대에 누워있으니 원식이와 상혁이,
택운이와 학연이가 잘 자라고 인사를 해주며 불을 꺼줬어요. 문도 닫아줬어요.
천장의 야광별이 빛났어요. 달도 있고, 별도 있고, 우주선도 있었어요.
"졸리다."
눈을 꼭 감았습니다.
잠이 왔어요.
"재환이형."
"..."
"미안해."
"..."
"그냥.. 나한테 짜증이 났던거야. 형한테는 아무것도 화난 거 없어."
꿈속에서
누군가가 내 머리를 쓰다듬는 것 같았어요.
이불도 잘 덮어줬어요.
"형, 내일은 꼭 내 이름 내가 알려줄게."
"..."
"내일은.. 화 안내고, 원식이처럼 나도 안아줄게.
그럼 웃으면서 안겨줘. 알았지."
"..."
"예쁜 재환이형. 예쁜 꿈만 꿔 오늘도.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아침이 되었다. 우리 6명은 같은 집에 사는, 정말 가족같은 사이였다.
아침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학연이형이 재환이형을 깨우러 가는 일.
우린 거실청소를 하며 재환이형을 기다리는 거였다.
"이홍빈. 어제 어디 갔다 왔냐."
"몇시에 들어왔고."
"형, 그런 말하고 나가버리는 게 어딨어요?"
"그냥 밖에. 새벽 1시에 들어왔고, 어제 일은 나도 반성하고 있어 진짜."
눈 뜨자마자 원식이, 택운이형, 상혁이가 날 쏘아붙였다.
하긴 그럴만도 하지. 내가 죄없는 재환이형 앞에서 화 내버리고 나갔으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재환이형은 어제 날 어떻게 봤을까. 미안해서 어떡하지.
재환이형은, 자고 일어나면 기억이 없어진다.
19살부터 그랬다. 그러면서 우리도 매일 잊어버린다.
처음엔 포스트잇으로 재환이형이 기억할만한 것들을 방마다 붙여놓으려 했는데,
재환이형은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한다고 해서
우린 매일 아침마다, 재환이형을 위한 자기소개를 시작한다.
"얘들아, 재환이 깼어."
"안녕. 내 이름은 이재환이야."
재환이형을 보자마자 달려갔다.
재환이형을 안았다.
따뜻했다. 부스스한 머리의 재환이형은 예쁘게 웃었다.
"따뜻해."
"난 이홍빈이야. 재환이형 진짜진짜 좋아하는.."
"나도 홍빈이 좋아."
보조개가 예쁜 아이는,
날 꼭 안아주었어요.
어젯밤 예쁜 꿈속의 요정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