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주웠습니다.
w.muscle king
전정국과 처음 만난 건 겨울이 거의 끝나갈 때 쯤이었다. 나는 야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고, 전정국은 아마 배고픔과 추위에 허덕이다 내 집 담장에서 쉬고 있을 때였을 것이다.
사실 그 때 전정국을 처음 본 건 아니었다. 내가 전정국에게 말을 걸기 전부터 전정국은 계속 그 자리에 있었고 나는 그것을 봤으면서도 모르는 척 내쫓지 않았으니까. 곧 있으면 그 자리를 뜨겠지, 생각했지만 전정국은 일주일이 지나도록 특정 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찾아와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마치 땅바닥에 있는 돌맹이가 몇 개인지 세는 것처럼 미동도 없이 정말 그 자세 그대로 말이다.
그리고 3주가 넘어서도 그 아이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 나는 생각했다. 내 외로움을 없애 줄 아이를 찾았다고.
그 뒤로는 뭐, 돈이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이를 꼬셔 집으로 데려왔다. 마치 집에 애완견이 하나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애완견과는 확연히 달랐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그 공허함을 전정국이 한 번에 해결해줬으니까. 덕분에 지금까지 나름대로 잘 살고 있는 것이고. 어느새 전정국을 우리 집으로 처음 데려왔었던, 그 계절이 돌아와 있었으니 적어도 1년은 넘었을 것이었다.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전정국은 일주일동안 아주 독한 감기에 시달렸고, 그와 동시에 영양실조까지 걸려 바로 입원을 해야 했다.
잔병치레는 비단 그 뿐만이 아니었다. 퇴원을 하고 나서 며칠 후에는 죽이 아닌 좀 제대로 된 음식을 먹어야겠다 싶어 기름진 음식을 좀 사다 먹였었다. 그런데 전정국이 음식 아까운 줄도 모르고 먹은 것을 다 토해내니 그것도 문제였다.
손이 많이 가는 아이는 딱 질색이었다.
내가 보모도 아니고 이 나이 먹고 어린애나 돌보고 있어야 한다니.. 조금은 후회가 돼 다시 밖에 내다버릴까 했지만서도 우선은 아픈 거나 좀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턱대고 내쫓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내 의지로 데려온 아이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렇게 치료를 시켜야겠다는 일념하에 허둥지둥 집으로 의원을 불렀을 땐, '기름진 것을 오랫동안 먹지 못 하다가 갑자기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으니 소화를 하지 못해서.'라는 대답만이 돌아왔었다.
전정국은 제 생각보다 훨씬 더 몸이 망가져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런 전정국의 몸상태를 회복시키고 살이 통통하게 오르기까지는 약 한 달 정도가 걸렸다.
'아니, 그동안 대체 어떻게 지냈길래 몸 상태가 이래?'
'들어봤자 좋을 거 없어.'
'네 몸 치료 누가 다 해줬어? 밥은? 잠을 잘 곳은?'
'별 좋은 이야기도 아닌데.. 말해주면 분명 너 나보고 나가라고 할 걸.'
'난 자선단체 아니야. 생각없이 너 데려온 거 아니란 소리야.'
'.......'
'나가라고 하더라도 지금 당장은 안 그럴 거야. 나도 네가 필요하니까. 그럼 괜찮잖아.'
전정국은 뜸을 들이더니 곧, 내게 제 이야기를 잔뜩 펼쳐 놓았다.
알코올 중독자인 부모님 아래서 자랐고 15살, 키도 다 자라지 못했을 시기에 폭력과 가난을 버티지 못 하고 집을 나왔다고 했다.
집을 나와서 정국이가 한 일은 다름이 아닌, 나쁜 길로 빠져든 것이었다. 자신도 처음에는 그저 먹고 살아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들어간 거라고 했었다. 제대로 된 판단을 하기엔 15살이라는 나이는 너무 어렸고, 어리다는 것을 봐줄 정도로 세상은 따뜻하지 못 했으니 마냥 정국이를 욕할 일도 아니었다.
전정국이 그 곳에 들어가자마자 한 일은 다름이 아닌 칼을 다루는 일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짜고짜 제 웃통을 벗어 내게 제 맨몸을 드러냈었는데, 칼을 다뤘다는 말이 사실이었는지 전정국의 몸 곳곳에는 크고 작은 상처들이 적지 않게 있었다.
그 중, 유독 눈에 띄는 길고 큰 상처가 하나 있었다.
나는 그것을 보자마자 정국이에게 물었다.
'..사람을 죽이다가 생긴 것도 있니.'
'.....'
'네 손으로 직접 사람을 죽이는 과정에서 생긴 흉터가 있냐, 묻는 거야.'
제발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에 물어본 것이었다. 사람을 죽였다는 것은 아무리 어린 나이라고 해도 마냥 봐줄 일이 못 됐으니까.
무표정한 얼굴로 날 쳐다보던 정국이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응.'
'......'
'네가 지금 보고 있는 상처.'
'......'
'죽이다가 생겼어.'
내 예상보다 더 위험한 아이였다. 전정국은. 입술을 깨무는 날 보며 정국이는 '무고한 사람은 아니었고, 같은 일 하는 사람이었어. 스파이니까 죽여도 된댔어. 죽이라고 해서 죽였더니 내게 차원이 다른 대접을 해주던데. 거기서.'라고 덧붙일 뿐이었다. 얼마나 독하게 살았던 건지 눈 한 번 깜짝 안 하고 사람을 죽인 이야기를 했었다.
그럼 왜 그곳에서 나왔냐고 묻는 나에게 정국이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사람을 죽이면,
죽은 사람의 지위에 따라 큰 선물을 받아.
처음 죽였던 게 그 스파이었는데 내가 뭐 받았는지 알아?
3천만원.
15살에 사람 한 번 죽이고 3천만원을 받았어. 그지새끼였던 내가.
그래서 17살이 되던 해에 또 죽였어. 간부였는지 임원이었는지 몰라. 죽이라길래 죽였어.
그랬더니 5천만원을 주더라. 그러면서 하는 말이 다음에는 내게 집을 주겠다는 거야. 17살한테.
그러다 보니 내가 진짜 이 곳에 맞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 일 하는 기분도 들고.
근데 계속 그렇게 한 명, 두 명 죽이다 보니까..
왠지 이러다가는 평생 사람만 죽이고 살 것 같은 거야.
그래서 나왔어.
그동안 받았던 거 다 뱉어내고 죽을 뻔한 거 겨우 도망쳐서 나왔어.
처참했다.
아이가 살아온 길은 너무나 처참하고 잔인했다.
나는 전정국의 이야기를 들으며 잘했다는 말도, 못했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마른세수를 할 뿐이었다.
전정국은 날 뚫어져라 쳐다보며 다시 한 번 내게 물었다. 자신을 내쫓을 거냐고. 난 곧바로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아마 그 이야기를 듣고도 멀쩡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될 것이었다. 나는 한참동안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족히 20분 넘게 생각만 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야 난 대답을 할 수 있었다.
'네가 계속 내 옆에 있겠다고 한다면,'
'.....'
'덮어줄게.'
'......'
'내가 널 질려할 때까지, 내가 너에게 그만 이 집에서 나가라고 하기 전까지,'
'......'
'나와 함께 하겠다고 하면 덮어줄게.'
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는 내 외로움이 우선이었다. 그 때의 난 외로움이라는 사소하고도 굉장히 큰 그 감정 하나 때문에 정말 일 분, 일 초도 못 견딜 것 같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고.
원체 사람을 빨리 질려하는 것도 외로움의 원인 중 하나였는데, 이상하게 전정국은 그렇지 않았다.
내 외로움을 달래 줄 사람으로는 전정국이 유일했다.
밤이 새도록 사람을 만나도 외로움을 느꼈던 내가 전정국을 처음 만나고 5일 째가 되어서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분명히 다른 사람들과는 달랐기 때문에 난 전정국을 놓을 수 없었다. 고작 그 5일이 내 발목을 단단히 붙잡은 꼴이었다.
밤을 꼬박 새서 들었을 정도로 아주 많은 이야기가 있었고, 아주 많은 생각을 했지만 대충 간추려서 말하면 이게 끝이었다.
수 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외로움에 허덕이고 있고, 전정국은 참 꾸준하게 그런 내 외로움을 말끔히 없애주고 있으며, 전정국이 이렇게 태평하고 권태롭게 사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전정국 또한 나에게서 만족감을 얻는 듯하다.
어른스럽게 구는 것 같아 보여도 아직 19살이라 그런지 자동적으로 어린 티가 나는 아이였다. 정국이는.
"김탄소."
"....."
"탄소야."
"....."
"누나."
"왜."
"키스할까?"
"....."
"누나 혀 말랑말랑해서 기분 좋아."
"..미친새끼."
뭐.. 마냥 그런 것 같진 않지만 어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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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은 아직 안 받겠습니다..!
한 3화나 4화 쯤 받을게요..!
스토리가 좀 전개된 후에 받고 싶어서..헿..(이유없음)(그냥)(죄송해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