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레이가 이름을 불렀다. 레이는 항상 말을 꺼내기 전 크리스의 이름을 불렀다. 누군가 옆에 있다는걸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말하던 생각이 얼핏 났다."왜?""그 친구 뭐에요?"크리스는 또 시작이구나 싶어서 쇼파에 깊이 몸을 묻었다. 대답도 없이 자꾸 늘어지자 레이가 벌떡 일어섰다. 크리스가 흠칫 레이를 올려다 보았다."자꾸 그럴꺼면 데려와요.""내가 뭘 했다구.""대답 안했어."새침하게 톡 쏘는 말투에 크리스는 한숨을 쉬었다. 잠깐의 시간을 사이로 레이도 한번. 레이는 일부러 탁탁 큰 소리가 나도록 발을 딛으며 구슬이 있는 탁자로 걸어갔다. 의자에 앉은 레이가 살짝 손을 대자 곧바로 시우민이 떠올랐다."왜그래 자꾸."크리스가 드디어 나른했던 몸을 일으켰다. 그 소리에 레이는 한번 째릿 눈초리를 주었다. "눈 풀어. 왜그러는데. 시우민은 그냥.""나도 그냥이에요?""무슨 말을..그냥 진정하고."짜증 섞인 말투가 나왔다. 레이의 표정이 점점 더 뾰로통해지자 크리스는 살짝 짜증이 올라왔다. 그동안 대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감정이었다."거봐 그냥 이잖아요. 크리스는 날 불쌍한 아이로 봐. 난 불쌍한 아이가 아니야. 나는 크리스가 없었을때도 있을때도 불쌍한적 없어. 나는 꿈을 꾸고 있는거야."레이는 하나의 떨어지는 꽃잎처럼 빙그르 돌았다. 연약하고 불쌍한 모습이었다. 크리스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여기가 다가 아니야. 넌 감옥에 갇힌거야."크리스의 말에 레이는 뚝 멈춰섰다. 크리스를 바라보는 눈빛에 어쩐지 측은해진 크리스는 돌아가겠다며 방을 나갔다. 레이는 크리스가 나간 문쪽을 잠시 보다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의자에 앉았다.**성에 가지마. 시우민이 단호하게 말했다. 예상하고 있던 말이었지만 직접 들으니 확실히 기분이 이상했다. 마치 내 소유 하나를 빼앗기는듯 했다."안갈순 없어.""그래도 가지마. 괴물이 아니라고? 그 성에 걔말고 누가 또 살아? 없지? 근데 걔 혼자 어떻게 컸을것 같아? 이래도 걔가 괴물이 아니야?""괴물 아니라니까?""그래 괴물 아니라고 쳐. 어쨌든 걘 사람이 아니야. 위험하니까 가지마."시우민은 더이상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듯 고개를 돌렸다. 크리스는 더이상 누구의 편에 서기도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 가라고 해' '넌 평생 나랑만 있을꺼야?' 서로 한숨을 쉬었던 그때가 문제였다. 아이들의 큰 의미없는 약속에 목숨을 걸고 함께 한다는건 그 아이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안갈꺼지?"시우민이 애원하는 목소리로 물었다. 크리스는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대답 안하고 또 갈꺼지?""예전에 너 성당에 갇혔을때."뜬금없는 소리에 시우민은 얼굴을 찌푸렸다."그때 너 구해준게 걔였어."잠깐동안 정적이 있었다. 시우민은 여전히 찡그린 얼굴이었다. 이 시간이 고문같았다. 크리스는 마음속으로 모든일이 그때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그게 뭐..그래서 또 가겠다는 거야?"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시덥잖은 반응이었다. 크리스가 고개를 저었다. 시우민은 혀를 쯧쯧 찼다. 그 소리가 귀에 자꾸만 맴돌았다. 옛날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그랬던것처럼. 두개의 다른 소리가 딱지가 앉도록 반복됬다."안갈께."크리스의 작은 목소리에 시우민은 곧바로 안심하는듯한 표정을 지었다. 슬쩍 웃는 표정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안가겠다고 했잖아.""안가.."책상에 가지런히 앉은 시우민과 달리 크리스는 다리 한쪽이 가지런하지 못한채였다. 핀잔을 줄때마다 다리를 달달 떠는것이 속마음을 대신했다."가면 뭐해?"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크리스가 바보처럼 허둥댔다. 가면 암것도 아, 안해. 더듬더듬 변명을 하다가 이내 포기했는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왜 말 못해? 둘이 밀애라도 즐겼어?"시우민이 약올리듯 말했다. 크리스는 아예 대화자체를 포기하곤 책상에 축 쳐졌다."그냥..항상 보던 앤데 안보니까 이상해서.""난 처음 본 애고?""말을 말자."어딘가 안쓰러운 모습이었다. 생각해보면 제가 끼어들일도 없는 일이었지만. 이젠 마을에 한두명뿐인 어린아이들도 알 수 있는 괴물이야기였다. 어릴적에 그리 떨던 기억이 사라지고 집처럼 드나드는건 참 알수없는 것이었다. 아무도 기억해내지 않을 옛 이야기지만 제가 성당 다락방에 들어가 있던것도 보이지 않는 그 성의 괴물 이야기에 떨며 숨었던 이야기였다. 어쩌면 부러운걸지도 모르겠다라고 생각했다. 매일 찾아주는 친구가 있다는게 부러운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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