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파랗고 밖은 초록빛이고 크리스는 노란색이에요. 레이는 다락방 창문에 매달려 경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전 집주인의 배려로 먼지도 별로 없는 다락방에서 크리스는 짐을 풀고 있었다."이 방 맘에 들어?""응. 맘에 들어. 나 이 방 가질래. 여기서 글도 쓰고 책도 읽고."이미 따스해질대로 따스해진 햇살이 적당히 몸을 데웠고 저 산허리 쯤에서 불어오는듯한 바람은 머리카락 사이사이를 물흐르듯 지나갔다. 창문에서 떨어져 나와 뒤돌아선 레이는 곧바로 작은 책꽃이 하나를 들어 다락방 구석에 내려놓았다."거기다 놓을꺼야?""음..좀 그런가?"마냥 밝게 웃는 모습이 예뻐서 크리스는 옮기던 짐을 내려놓고 레이를 따라 책꽃이와 책을 하나씩 나르기 시작했다. 창문 하나를 제외하곤 다른 빛과는 여지없는 차단에 둘은 빛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이윽고 예쁘게 정리된 책꽃이에 꽂힌 책 하나하나를 손가락으로 훑던 레이는 한권을 빼들었다. 노란 커버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분이 둥실 떠오르게 만들었다."그건 뭐야?""크리스 머리."샛노란 책을 크리스의 얼굴옆에 들고서 레이는 천진한 웃음을 보였다. 「봄날의 노랑」크리스가 레이에게서 책을 건네 받았다. 제목을 찬찬히 뜯어보며 보기만 해도 사랑스러운 그 말을 입안으로 곱씹었다."내 머리가 그렇게 노래?""응, 병아리 처럼."이사 오기전 새로운 다짐겸 시작이라는 의미로 함께 염색을 했다. 서로 색을 정해주자며 고집을 부리더니만 결국 서양인마냥 샛노란 색으로 물들여 놓았다. 레이는 예쁘장하니 단정한 어두운 갈색으로 했건만. 병아리나 개나리 따위를 운운하며 머리카락에 강한 집착을 보이는 것은 크리스에게 그닥 싫지 않은것이었다. 가끔씩 머리카락을 덥석 물고 귀엽게 '아이 셔'를 오물거리는 입술은 굉장했다."아, 이제 강아지도 기르겠다."레이는 행복에 들뜬 목소리로 말하며 다시 창문에 매달렸다. 자칫 앞으로 고꾸라질것 같은 자세에 크리스는 모든 짐정리를 내려놓고 함께 창문에 섰다."저기! 저기다가 강아지 집 놔요."다락방에서 잘보이는 마당구석을 가리키며 곱게 눈을 접었다. 아직까지도 어린시절 모습이 겹치는게 우스웠다. 볼도 똑같고. 눈도 똑같고. 코도 똑같고. 입도 똑같네. 갑자기 세게 부는 바람에 크리스의 앞머리가 헝크러졌다. 노란색이 이리저리 흩어진것이 소스같다는 유치한 상상을 하며 레이가 손을 뻗었다. 하얀 팔뚝 위로 적당한 온기가 느껴졌다. 이마에 살짝 닿으며 간지럽게 움직이는 손과 눈 앞에 보이는 하얗고 마른 팔뚝은 묘한 느낌이 있었다."됐다."레이가 하얀 팔뚝을 빛이 닿지 않은곳으로 감췄다. 크리스가 두어번 눈을 깜빡였다. 자신의 앞머리도 야무지게 쓱쓱 만진 레이는 창문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자 햇빛이 제대로 눈가에 쬐이며 레이는 반사적으로 눈을 찡그렸다."으응.."어릴적부터 병이란 병은 다 달고 살던 훌쩍이가 잘 커서 제 앞에 떡하니 있는걸 보면 세상은 참 오묘했다. 세상의 모든것들에게 절이라도 올리며 그렇게라도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샘솟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크리스는 모든 고이 접힌 생각들을 모아 '고마워'라고 말했다. 그 안에 담긴 뜻은 누구보다도 레이가 더 잘 알터였다. 괜히 민망한 마음에 잠깐 투정하던 레이는 다시 하얀 팔을 뻗었다. 얇고 고운 손가락이 노란색 봄빛을 어루만지며 봄은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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