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특별한 에피소드로 소설 형식으로 작성되었습니다.)
4시 35분, 느린 템포의 클래식이 흘러 나오는 카페 구석 테이블, 초조한 눈빛의 한 남자. 이 세 요소의 상관관계 속 중심엔 윤기가 있었다. 입은 셔츠의 촉감이 간지러워 자꾸만 손목과 어깨에 손이 갔다. 빨개진 귀를 수십번 매만지며 윤기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곧 오겠네. 윤기가 눈을 감았다.
스물넷, 이십대 중반이 다 되도록 가벼운 짝사랑조차 해본 적 없었다. 벌써 알고 지낸지 10년이 훌쩍 넘은 석진과 정반대였다. 끓어오르는 호르몬을 주체 못하던 시절에도 첫사랑의 낭만을 고수한다며 숱한 오해도 사곤 했었다. 친구들이 스킨쉽 진도 얘기를 하며 낄낄 거릴 때 윤기는 수학 진도를 나갔으며 주말엔 외출대신 방에 처박혀 게임을 즐겼다. 고3, 공대에 진학한다는 소식에 결국 친구놈들은 두손두발 들고 말았다.
공대? 진짜 고자 아니냐, 민윤기.
솔직히 말해. 너 숨겨둔 여자 있지? 제발 있다고 말해.
저 새끼한테 봄이 오기나 할까.
그런 친구놈들을 보며 윤기는 무심하게 대꾸하곤 했었다.
봄? 봄은 무슨. 개뿔.
"오빠!"
하지만 익숙한 목소리에 고갤 돌려 쳐다보니 봄은 어느 새 성큼 다가와 있었다.
츤데레 정석 공대남자 민윤기 X 천상여자 유교과 너탄 06
"…저녁 먹기엔 조금 이르다, 그쵸?"
"그러게."
서로의 숨소리가 들릴 정도의 어색한 정적이었다. 테이블 아래 자꾸만 떨리는 다리를 부여잡은 윤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탄소도 제 앞의 빨대를 만지작 거리며 작게 웃었다. 오늘따라 이상한 분위기에 입술이 타들어갔다. 평소 같았음 별 특별할 것 없는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며 잔잔히 흘려보냈을 시간. 근데 오늘은 달라. 탄소가 깔끔하게 정리된 손톱을 매만졌다. 아이를 돌보는 일, 손의 청결은 무척 중요한 사항이었다. 덕분에 학창시절엔 교칙때문에, 지금은 아이들로 인해 늘 청결을 유지했다. 그것이 좋으면서도 늘 아쉬운 이유는 평범한 여자로서의 사소한 욕심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윤기가 들릴듯 말듯 중얼거렸다.
"깔끔해서 더 보기 좋아."
"네?"
"…손 예쁘다고."
머릿속을 관통당하는 기분. 밀려오는 간지러움에 이리저리 움직이던 손의 움직임이 멈췄다. 멍한 표정으로 눈이 마주치자 윤기가 다시금 어색한 듯 웃었다.
"이제 슬슬 가볼까. 걸어가면 얼추 시간 맞을 것 같은데."
"아, 네!"
"고기 먹으러 가자.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우리'라는 말이 따스하게 들려도 괜찮은 걸까. 탄소가 남은 스무디를 멍하니 바라봤다.
**
학교 정문 앞, 언젠가 함께 왔었던 고깃집이었다. 익숙한 홀에는 아직 손님이 없어 적적했다. 출입문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메뉴를 읽는 핑계로 고갤 숙인 윤기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까 전 카페에서 무심결에 뱉은 말이 자꾸 떠올라 딱 죽고픈 심정이었다. '예쁘다'는 말은 엄마가 미용실에 다녀오셨을 때 영혼없이 뱉곤 했었던 낯선 용어였다. 미쳤나보네. 그때 윤기와 같이 메뉴판을 읽어나가던 탄소가 반가운 듯 말했다.
"이거 우리가 저번에 마셨던 술 맞죠?"
"어? 어, 그렇네."
"맛있긴 맛있었죠. 그치만 오늘은 안 마실거예요. 절대!"
탄소가 메뉴판을 가르키던 손가락을 X표시로 만들곤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눈에 담던 윤기가 이내 고개를 숙였다.
시바알… 귀여워.
윤기의 귓불이 붉게 물들었다.
**
"잠깐 걸을까?"
"네, 괜찮아요."
걷자는 건 단순한 핑계였다. 분명 데려다주겠다 말하면 미안함에 탄소가 극구 사양할 것을 알기에. 윤기는 학교 앞 버스 정거장까지 데려다줄 마음이었다. 저녁 찬 바람에 윤기가 탄소를 바라보았다. 가디건에 치마, 그리 짧거나 얇지는 않았지만 윤기가 탄소의 옷차림을 보며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무심결에 고갤 들자 탄소와 윤기의 눈이 마주쳤다. 쑥쓰러움에 탄소가 어색하게 웃었다.
"덕분에 저녁 맛있게 먹었어요. 고마워요."
"다음에 또 오자."
"좋아요."
"집까지 가려면 30분은 넘게 걸리지?"
"네, 아마 지금 가면 저녁 시간이라 차도 좀 밀릴 것 같아요."
하교 걱정에 시무룩해진 탄소를 보며 윤기가 손목시계를 쳐다보았다. 7시 40분. 아마 8시가 넘어서야 한산해질 것이다. 윤기가 무심결에 챙겨왔던, 목도리를 꺼냈다. 바로 데려다 주려했건만. 이로서 탄소를 8시까지 잡아둘 최소한의 명분은 생긴 것이다. 차마 둘러줄 용기는 없는지라 윤기는 대뜸 목도리를 내밀었다. 탄소가 제 눈 앞에 놓인 목도리를 어리둥절한 눈으로 쳐다봤다.
"뭐예요?"
"8시까지 나랑 있어달라는 뜻."
"네? 아, 괜찮은데…."
"어서. 밤이라 쌀쌀해."
"…고마워요."
목도리를 받아든 탄소가 작게 중얼거렸다. 받아든 목도리엔 섬유 유연제 향이 은은하게 스며있었다. 20분은 윤기의 생각보다 무척 짧은 시간이었다. 어느 새 버스 정류장까지 스무걸음도 채 남지않자 윤기의 마음이 일렁였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오늘이 아니면 안될 것 같아 불안했다. 결국 윤기가 걸음을 멈추었다. 오늘 내내 옆에서 느껴지던 인기척이 사라지자 탄소가 뒤를 돌아봤다. 어둑한 가로등 아래, 세상은 둘만 남겨진 것 같았다. 서로가 숨을 멈췄다.
"탄소야"
"이번엔 술도 마시지 않았고 새벽에 부리는 객기는 더더욱 아니고."
"오늘이 아니면 도저히 안될 것 같다, 내가."
"좋아해."
"울타리 단단히 치고 살아서 늘 혼자가 좋았는데"
"내 옆에 너라면 뭐든 다 괜찮아."
이제 끝이다. 다 말하면 후련해질까 생각했지만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여전히 깜빡이는 가로등 아래, 두 남녀가 서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정적을 먼저 깨트린 건 다름아닌 탄소였다.
"…나도 오빠면 다 괜찮을 것 같아요."
"……."
"그럼 앞으론 과제 말고도 만날 이유가 생겼다, 그쵸?"
"응, 이유없이도 만날 수 있어. 그냥 언제든지."
스물네해, 드디어 봄의 정의를 새롭게 내릴 때가 왔다.
Behind
1.
"아, 존나 배고파."
"어? 저기 민윤기 아냐?"
"헐, 진짜."
"야! 민유...ㄴ...."
"어어! 친구야, 좀 닥쳐줘."
"어?"
"아, 우리 오늘은 중식 어때."
"중식은 무슨. 고기 먹자며."
"갑자기 중식이 끌리네. 탕수육 내가 쏠테니까 좀 가지?"
2.
(기어코 직접 집으로 데려다준 민윤기)
"내일 보자."
3.
"민윤기."
"어."
"목소리 들으니까 해피엔딩?"
"엔딩 아니고 그냥 해피."
"별 트집 다 잡네. 할 얘기 많아 보이는데 집으로, 콜?"
"콜. 아, 그리고 비번 조만간 바꿀거니까 이게 마지막이다."
"뭔 개소리?"
"이제 탄소 생일로 바꾼다."
"지랄하네."
<작가의 말>
오늘 편은 저의 흑역사가 될 편이네요.... 줄글이 익숙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건 뭐... 너무 못써서 미쳐버릴 지경입니다 하핫...
부족한 글이라서 걱정도 많네요ㅠㅠ 그리고 이제 후속작도 생각을 하다보니 연재가 자꾸 늦어지는 것 같습니다ㅠㅠㅠㅠ 이젠 진짜 저 자신을 호되게 훈련시켜야겠어요 일찍 와야지ㅠㅠ 로맨스 장르도 자주 봐야겠어요 (((((((추리,스릴러 마니아 작가)))))))
늦었지만 올 2017년도 독자님들 모두 행복하길 바라고 방탄소년단 모두 정말 건강하고 더욱 도약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읽어주신 모든 독자님들 오늘도 감사합니다!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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