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부 주장 전정국 X 교대생 너탄
W. 교생쌤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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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다, 곧있으면 새해네"
"그러게요. 곧있으면 새해네요"
"너도 이제 수능준비 해야지"
벌써? 아직 괜찮아요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하다 수능망치는 애들 한 둘 본게 아니거든?
공부 잘하는 여자친구는 그리 좋지 않네요
그래서 싫어?
그것빼고 다 좋아요, 그렇게 말하고는 웃어보이는 정국이다. 축구 경기가 끝난 뒤 출출하기도 해서 밥을 먹기로 결정했다. 나란히 걷다가 문득 12월도 끝을 달리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12월 중순이구나. 정국이도 곧있으면 열아홉이고 나도 스물셋이네. 같이 걷다가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췄다. 내가 멈췄다는 걸 자각하지 못했는지 꿋꿋히 걸어가는 정국이다. 둔한 놈. 동글동글한 정국이의 뒷통수를 멍청히 바라보았다. 뒷통수도 예쁘게 생겼네.
이제야 내가 옆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당황하더니 뒤를 돌아본다. 빨리 와요, 없어져서 식겁했네. 그렇게 말하고는 살짝 인상을 쓴다. 그게 전혀 귀엽지도, 웃기지도 않는데 이상하게 웃음이 터졌다. 그런 정국이를 보며 웃으면 뭐가 그렇게 재미있냐고 나에게 다가온다. 나도 천천히 정국이에게 다가갔다. 자연스레 내 손을 너의 손에 끼운다. 나를 내려다보며 웃는 정국이다. 그런 정국이를 올려다보다가 맞잡은 손을 쳐다봤다. 그러다 우린 아무말없이 다시 가던길을 갔다.
좀 걷다보니 정국이와의 첫 약속장소였던 버스정류장이 보였다. 좀 더 걸어가면 바나나 우유를 사먹은 편의점이 나왔고 모퉁이를 돌면 정국이가 나에게 바람개비를 건낸 장소도 나왔다. 괜히 설레는 마음에 정국이의 손을 꼭 잡은채 웃음을 참았다. 니가 나에게 한 행동들은 모두 처음이었다. 민윤기도 해주지 못했던 일들을 너와는 잔뜩하고 있다. 내가 바라지 않아도 넌 틈만 나면 나타났다. 너는 내가 어디있던, 내가 무엇을 하던 곁에 있어줬다.
말없이 정국이의 옆모습을 쳐다봤다. 뭐가 그리 신나는지 콧노래를 부른다. 아, 에뻐. 턱끝까지 차오르는 그 말을 간신히 삼켰다. 참아야겠지. 너무 한꺼번에 하고싶은 말을 다하면 나중에 들을때 시시해지잖아. 천천히 걸어가다 정국이가 자주 간다던 분식집이 보였다. 먼저 가게 들어가는 정국이였고 그 뒤를 곧장 따라갔다. 나는 너와 좀 더 오래 설레고 싶다. 금방 끓어서 넘치는 연애말고 답답할 정도로 느리게 달아오르는 연애가 하고 싶다.
다른 이가 보면 무슨 애가 그렇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난 너를 오래 담고싶다. 얇디얇은 종이에 너를 그리고 그려 차곡차곡 모으고싶다. 나는 너에 대해 매일 하나씩 듣고싶다. 듣다가 또다른 너를 더 듣고싶을만큼 천천히, 하나씩 너의 이야기를 듣고싶다. 그래야 내가 너를 계속 만날 수 있으니까. 나도 너에게 매일 하나씩 말해주고 싶고. 그러면 너와 난 서로에게 질릴틈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정국이는 아주머니와 꽤나 두터운 친분인지 늘 먹던 것으로 달라고 말했다. 웃으며 대답하던 아주머니가 나를 발견했고 나를 향해 웃어보였다. 아가씨는 뭐로 줄까? 아, 저도 같은걸로 주세요. 그래요, 정국이한테 이렇게 예쁜 여자친구가 있을 줄은 몰랐네. 짧은 대화가 오고가고 아주머니는 안으로 들어가셨다. 여자친구라. 머릿속에서 맴도는 단어다.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내가 아닌 정국이의 얼굴이 말이다.
"얼굴이 빨갛네. 왜? 부끄러워?"
"부끄럽긴 뭐가 부끄럽다는 거예요"
"그럼 왜 얼굴이 빨개지고 그래"
"그야 당연히"
좋아서 그렇죠
그렇게 말하고는 눈을 맞추는 정국이다. 한동안 서로 쳐다보다 내가 먼저 시선을 피했다. 싱글벙글 웃고있는 정국이가 예쁘다. 무슨 남자애가 웃는게 나보다 예쁘다냐. 물이 담긴 컵을 들고는 살짝씩 흔들었다. 한 방향으로 돌리니 물이 천천히 소용돌이친다. 김탄소. 갑자기 불린 내 이름에 깜짝 놀라 컵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목소리의 범인은 정국이었는지 날 바라보며 실실 웃고있다. 누나 이름은 아무렇지 않게 부른다?
"너 내가 요새 반말, 존댓말 섞어서 쓰는거 뭐라고 안하니까 친구같고 그렇지?"
"이름이 예쁜데 자주 못부르니까 그렇지"
"어쭈? 또 반말쓴다?"
"왜요, 혼내게?"
하나만 해, 하나만
기왕이면 반말이 좋은데
난 존댓말이 좋은데?
탄소야요
즘 들어 자꾸만 나와 똑같아 지려는 정국이였다. 꽤나 무섭게 말해보았지만 이름이 부르고 싶다는 이유로 나에게 말을 놓는 정국이다. 내가 그걸 또 지적하면 다시 존댓말을 쓰며 대답하고 말이다. 진짜 사람 들었다놨다 거리고 못됐어, 전정국. 내가 살짝 인상쓰면 아무말 없이 내 미간을 손가락으로 꾹 누른다. 하나만 하라고 말하면 능글거리는 대답을 한다. 변했어. 원래 이렇게 능글거리는 애였어?
반말을 하겠다는 정국이의 대답에 내가 싫다는 식으로 대답하면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온다. 너무 자연스럽게 부르는 바람에 하마터면 왜 부르냐고 대답할 뻔했다. 내가 뭐하는 짓이냐는 듯이 쳐다보면 좀 웃으라며 내 머리에 손을 얻는다. 너같으면 웃겠어? 뭔가 계속 주도권을 밀리는 느낌에 정국이의 손을 떼어냈다. 이게 뭐야. 왜 자꾸 너한테 휘둘리냐고.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너를 쳐다봤다. 내가 너를 휘둘러야되는데 자꾸 밀리네.
뭔가를 말하려고 입을 우물대다가 말하려는 걸 관뒀다. 말해서 뭐하나, 어차피 내가 또 밀릴텐데. 입맛을 다시며 정국이를 한 번 쳐다보는 물 한잔 들이켰다. 시원한 냉수가 목구멍으로 들어가니 속이 다 뚫리는 느낌이었다. 때마침 울리는 벨소리에 가방을 열었다. 가방을 여니 나란히 들어있는 바나나우유 두개였다. 맞다, 태형이랑 헤어지고나서 편의점 들어가서 샀지. 멍청히 가방 속만 들여다보느라 전화를 못받았다. 확인해보니 모르는 번호였고 미련없이 휴대폰을 다시 가방 속으로 집어넣었다.
때마침 주문한 음식이 나왔고 정국이는 빠르게 젓가락을 들었다. 꽤나 배가 고팠는지 허겁지겁 먹어댄다. 아, 찍어놓고 싶다. 아무리봐도 철없는 열여덟같았다. 나도 고등학생때 저랬었나. 들었던 젓가락을 내려놓고 맛있게 먹는 정국이를 바라만 봤다. 예전에 민윤기가 나 고등학생 때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 때는 그 말이 이해가 안갔는데 지금은 조금 이해가 가네. 내가 안먹고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아챈 건지 입안에 음식을 가득 담고는 나를 쳐다보는 정국이다.
"누나는 안먹어?"
"오빠는 안먹어?"
"너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 많이 먹어"
"너 많이 먹어라, 나는 너 먹는거 보니까 배부르다"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빨리 먹어요"
"그래? 오빠 안먹으면 내가 다 먹는다?"
내 말을 듣고는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 말라며 나에게 숟가락과 젓가락을 쥐어주는 정국이었다. 그래도 정국이가 나보다는 낫네, 민윤기. 괜히 민윤기와 학창시절에 들렀던 음식점이 떠올랐다. 그리워서라기보다는 말로는 명확하게 내려지지 않는 감정으로 인해서 떠올랐다. 미안함? 추억? 잘 모르겠다. 근데 확실한 건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철이 없었고 정국이는 그때의 나보다 훨씬 나은 고등학생이라는 거다.
갑자기 느껴지는 배고픔에 정국이에게 웃어보이고는 앞에 놓인 떡볶이를 쿡 찍어 입 안으로 넣었다. 민윤기는 이 배고픔을 어떻게 참아대냐. 웃음이 났다. 예전같았으면 그리워하며 아파했을 과거가 지금은 그냥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몇 년 뒤, 정국이와 나란히 앉아 술 한 잔하며 안줏거리 삼아 민윤기와의 연애담을 이야기할 날도 오지 않을까 싶다. 아, 정국이가 싫어하려나. 그래도 나름 재미있을 것 같은데.
허겁지겁 먹어대던 정국이는 물을 찾기 시작했고 서둘러 정국이에게 물을 건네주었다. 가슴을 두어번 주먹으로 치더니 괜찮아졌는지 다시 젓가락을 들고는 다시 먹기 시작한다. 먹는게 꼭 밥먹는 기계같아서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내 웃음소리에 젓가락질을 멈추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는 정국이었다. 아, 비웃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귀여워서 웃었던 건데. 뭔가 기분 나빠했을 것 같아서 민망한 마음에 볼을 살짝 긁적였다.
"기분 나빴어? 너 먹는게 귀여워서"
"나 먹는게 재미있어요?"
"응?"
"재미있으면 계속 먹지, 뭐. 누나도 웃고 좋네"
기운 빠질 때까지 웃어요, 누나 웃는거 예쁘니까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먹기 시작하는 정국이다. 갑작스런 공격에 나도 모르게 가슴을 부여잡았다. 깜짝 놀랐네. 멍청히 앞만 쳐다보다 정신차리고는 정국이의 뒷통수를 훔쳐봤다. 주인따라서 머리카락도 신이났는지 방방 뛰어댄다. 나도 모르게 크게 웃어버렸다. 아, 진짜 너무 귀엽다. 전정국. 정국아, 넌 말이지. 가만히 있어도 사람을 웃게 만드는 힘이 있는거 알아? 울던 사람도 웃게 만드는 그런 힘이 있어.
처음 너를 만났던 날만 해도 말이야. 너는 울고있는 나를 웃게 했잖아. 언제나 내가 힘들때마다 너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굉장히 기뻤고 벅찼어. 응, 벅찼어. 가슴이 터질만큼 벅차오르는 감정이었어. 너가 내 옆에 있다는 사실이 말이야. 사실, 지금도 가슴이 막 벅차. 내가 보지 못한 너의 모습을 또 발견했거든. 너랑 나란히 앉아서 밥을 먹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잖아. 행복하다, 정말.
그릇은 점점 바닥을 보였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턱을 괸채로 너가 밥먹는 모습을 담아내기에 급급했다. 너를 좀 더 알고싶다. 너에 대해선 내가 모르게 없고싶다. 너가 모르는 너의 모습도 나는 알고있고싶다. 그러니까 좀 더 너를 담아낼게. 밥을 다 먹었는지 고개를 든다. 배가 부른지 흐뭇한 표정을 한 채 나를 바라보는 너에게 잘먹었냐는 물음 대신 웃음 건네주었다. 너도 내 웃음이 마음에 들었는지 천진난만하게 웃어보인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했다. 계산을 하는 나를 보며 자기가 할 건데 왜 내가 하냐며 화를내는 정국이었다. 그런 정국이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밀었다. 이번엔 내가 할테니까 다음에는 너가 확실하게 쏴. 그렇게 말하고는 아주머니에게 카드를 돌려받았다. 알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내가 계산한게 마음에 안들었는지 가게를 나오면서도 툴툴대는 정국이었다. 아, 이 주둥이를 어떻게 막아야할까. 때마침 가방에 들어있던 바나나우유 두개가 떠올랐다.
"전정국"
"전정국이라고 부르지마요. 딱딱해 보이.."
"맛있게 먹어라"
"바나나우유네"
너 생각나서 샀어
누나꺼는요?
당연히 있지
쫑알거리는 정국이에게 바나나우유를 가볍게 던졌다. 운동신경이 좋아서 그런가 갑자기 던진 것도 덥석 잘도 받는다. 뭐냐고 인상을 쓰다가도 바나나우유라는 것을 알고는 미소를 짓는 정국이다. 찢어지려는 입꼬리를 내리려는 것 같지만 이미 찢어진 정국이의 입꼬리다. 내꺼는 어디있냐고 물어오는 정국이에게 내 바나나우유를 흔들어보이고는 저국이에게 빨대를 건넸다. 서로 바나나우유에 빨대를 꽂고는 쪼록쪼록 마시며 걸었다.
겨울이라 그런지 해는 이미 저버린지 오래였다. 가로등이 하나둘씩 불을 키기 시작했다. 가로등이 밝힌 거리는 늘 봐왔지만 오늘따라 예쁘게 느껴졌다. 두근대는 마음에 빨대를 깨문채 먼저 정국이의 손을 잡았다. 갑자기 잡힌 손에 놀랐는지 움찔거리는 정국이다. 그게 귀여워서 웃음이 났고 나도 모르는 새에 얼굴이 빨개져버렸다. 가린다고 가려질 얼굴이 아닌 걸 알면서도 바나나우유를 든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렇게 좋아요?"
"그럼 넌 안좋아?"
"그럴리가 없잖아요"
"나도 그래"
좋다, 정국아
나도 좋아요
가로등 아래 멈춰선 너는 얼굴을 가린 내 손을 너의 손으로 치워버린다. 바나나우유는 벌써 다 마셨는지 빈 각이었다. 나를 보는 정국이가 왠지 모르게 귀여워서 눈을 피한 채 세어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았다. 안그래도 빨개진 얼굴이 가로등에 비춰서 잘 보였을텐데 웃으면 더 새빨개질게 뻔했다. 내가 자기를 피한다는 걸 알았는지 허리를 숙여 나와 눈을 맞추는 정국이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참았던 웃음은 폭포수처럼 쏟아져나왔다. 내 웃음을 본 정국이의 얼굴도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마를 쿵 한 번 찍어내고는 나에게 그렇게 좋냐고 물어오는 정국이었다. 주도권따윈 버린지 오래다. 망설임없이 안좋냐고 다시 물었고 그럴리없다고 말하는 정국이었다. 너의 대답을 듣자마자 벅차오르는 마음에 냉큼 너의 허리를 내 팔로 확 감아버렸다. 나는 너에게 어떠한 벽도 세울 수 없어졌다.
도도하게 굴어볼수도, 줄다리기에서 내 쪽으로 당길 수도 없어졌다. 도도하게 굴려고 세워둔 벽도 내가 다 무너뜨리게 되고 긴장감을 쌓기위해 먼저 시작한 줄다리기도 당기기를 한 번 못한채 내가 네 쪽으로 뛰어가버리게 되는걸. 넌 이런 내 모습을 알기는 한 걸까. 몰라도 좋다. 그냥, 그냥 지금처럼 내가 축구공처럼 날아갈테니까 너는 내가 골대에 들어가지 않게 막아주면 돼.
내가 지금처럼 설렐 수 있게 안아주면 그걸로 충분해, 정국아.
교생쌤 |
안녕하세요, 교생쌤입니다:) 끄앙, 오늘 하루종일 집에만 있었던 것 같아요. 방학도 얼마 안남았다고 생각하니까 우울하기도 하고 친구들 볼 생각하니 좋기도 하고 오늘 하루종일 기분이 오락가락하네요ㅠㅠ 다음 작품 기대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꽤 놀랐어요 호호 오늘 축구부에서 음식점 얘기가 나오니 저도 배가 고프네요. 언니한테 부탁해서 빵이라도 사먹어야겠어요! 오늘 글에는 바나나우유가 나왔지만 저는 딸기우유를 마시고 있습니다:) 슬픈 일이 있어서는 아니고 오늘따라 딸기우유가 땡기더라고요 핳 어찌됐든 이번화도 재미있게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교생쌤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