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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현

:검은 낮의 기억






너심.

심아, 사랑해.

너는 모르지.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하는지.

죽어도 모르지.






내 입술에서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다.

너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나는 다시금 너심이, 네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아야 한다.

빠져들지 말아야 한다.



"상처는 왜 냈어. 바보같이." 



내 손목에 나 있는 흉터를, 너는 어루만진다.

그 흉터는 나의 집착일까, 너의 미련일까.

애초에 상처를 낸 것은 네가 떠나갔기 때문이다.

한차례 밀려간 파도가 다시 밀려오기를 바라면서, 나는 몇 번이고 칼금을 냈었다.




결국 네가 돌아왔잖아.

그러면 안 되지.

너는 어떻게 사람 마음을 다 헤집어 놓고, 아무렇지 않은 듯이 나를 바보로 만들까.

하기야, 그런 너를 사랑하는 내가 더 문제다.

너는 그럴 만하다. 너심이는, 그래도 된다.
 


"그러게." 



너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목에 입을 맞췄다.

예정된 수순처럼 너는 나의 목에 팔을 두르고 끌어당긴다.

우리는 축축한 풀밭으로 쓰러졌다.

너는 조급하게 입을 맞췄다.

가만가만 너의 머리를 쓸어넘기면서, 가쁜 숨을 쉬면서, 나는 물었다.



"우리 사랑하는 거 맞지." 



"아니." 



우리가 지금 하는 게 사랑이 아니면 뭘까, 심아.

이걸 사랑이라고 그러던데.

이 감정이 너무 나를 아프게 한다.

지쳐 무릎꿇게 한다.





멍하니 나를 응시하던 네가 기절한다.

우리가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충격이라면 내가 드러누워야 할 텐데.

너를 데려가 언제나 입원하던 병실로 입원 수속을 밟는다.

의사도, 간호사도 더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지난 여름 이후로 너는 치료를 거부당했다.

이제 병실은 그저 소독약 냄새가 나는 모텔방 정도였다.




네 곁에 웅크린 채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가물거리는 눈앞보다 먼저, 시트가 바스락 하는 소리가 들린다.

소금기가 섞이고 무게를 지닌 물방울이 시트를 적시는 소리다.

찬 너의 손가락이 나를 감아오는 게 느껴진다.

네 쪽으로 천천히 돌아누워 너를 껴안았다.

너는 내 품 안으로 파고든다.

얼굴을 부벼댄다.



너라는 존재는 뭐길래, 사랑하지도 않는 나에게 머무를까.

너니까, 나는 이 모순을 그저 웃어넘긴다.

네가 고른 숨을 쉴 수 있게 등을 토닥이다 네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는다.

까치집처럼 제멋대로 뜬 머리가 우스꽝스럽다.



마냥 웃다 네 입술을 핥아 본다.

외롭고 까칠한 입술을.

너는 생명을 갈구하듯 입을 벌리고 나는 너의 깊숙한 입안에 나를 남긴다.

나의 마지막 잎새까지 네게 꺾어다 주고만 싶다.

혀끝이 네 목젖을 건드렸는지 너는 나를 밀치고 일어나 치미는 기침과 숨을 뱉고 입술을 닦는다.






즐겁다.

네가 이렇게 살아 있는 순간이,

네 눈가가 이토록 붉게 물드는 순간이,

우리가 사랑하는 이 순간이 즐거웠다.

다시금 나는 입을 맞춘다.

너를 쾌락의 한가운데서 죽이고 싶었으므로.



"심아." 



"왜?" 
 


"그렇게 사랑스럽게 보지 마." 
 


"내가 그랬나." 



"착각해버리니까." 



"무슨 소리야." 



"그래, 이게 너심이지." 
 


나는 입술로 너의 곳곳에 나를 새긴다.

내 손은 눈먼 사람처럼 네 이목구비를 더듬는다.

너를 보지 못할 것만 같아서 나는 두렵다.

내가 네 손목을 꽉 쥐고 끌어당길 때, 나는 네가 승낙한 것을 안다.

너는 결코 피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팔로 너를 가둔다.

내게서 도망가지 마.

절대 도망치지 마.

뭐든 좋으니까, 나에게서 떠나가지 마.

제발.








"심아, 어제 같은 말은 하지 마. 응?" 



"...왜?" 
 


"모르겠어. 네가 말하면 거짓도 진실이 되어버리거든. 그러니까..." 



"재현아, 아팠어?" 


넌 입술로 나를 달래고 묻는다.

아팠을까.

내 시선은 잠시 붉은 줄 위를 떠돈다.

네가 돌아오길 바라면서, 붉게 물드는 손목을 보면서, 나는 아팠을까.

아무렇지 않은 듯 씩 웃고서 너를 힘껏 끌어안는다.

너는 나의 웃는 모습만 보기를 바란다.

나의 천진한 미소와 장난스런 손짓에 너는 내게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 속에서는 울음이 치민다.

견디다, 견디다가 나는 울고 만다.

나를 버리고 떠나가려는 너를 예감하기에, 그 무섭도록 선명한 느낌에 나는 울 수밖에.



"아팠어. 많이." 



"왜 그랬어. 그러지 말지." 



"이렇게 아파할 만큼 너를 사랑해서." 



네가 살았으면 좋겠다.

내 생을 전부 네게 줄 테니, 네가 살았으면.

나는 너를 너무나 사랑해서 아플 수 밖에 없나보다.

우리는 울부짖는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사랑할 수 없는 지금을 원망한다.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것들에 잠겨 숨을 쉰다.

너는 눈을 꽉 감고 있다.

 아프다.

나를 바라보지 않는 너, 그런 너를 바라보는 내가 잘못됐다.






우리가 지난 여름 떠났던 바다가 떠오른다.

색색의 폭죽이 터지고, 시끄러운 인파가 물결치는 동안 나는 어둠만을 보았다.

그 어둠은 너의 눈 안의 눈동자였다.

검은 동공이었다.

그 어둠만을 나는 바라며 살아왔다.

어둠 속에서 아른아른한 불꽃들이 헤엄친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다가 웃음소리가 들렸다가 한다.

 불꽃이 모두 꺼져가고 온전한 어둠만 남았어도,

그것이 차갑고 공허한 어둠일지라도,

나는 그 어둠조차 사랑한다.




사랑이라 할까.

너를 끌어안는 지금,

 떠나보내 주고픈 마음이 없다면,

 조금이라도 너를 더 붙잡아두고 싶다면.


시들고 꺾이고 버려지고 나뒹굴고 하는 마음들이 가시가 되어 박히고,

 그 후에는 세상이 눈 멀 듯한 어둠으로 잠식한다면,

이게 사랑이라는 걸까.




그렇다면 우리는 사랑하는 게 맞다.

너를 사랑하다가, 아파하다가, 기어이 죽는다 해도,

나는 너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이제 너는 내 등을 끌어안지 않는다.

내 손목을 들어 그런 너의 어깨 너머로 본다.

칼로 그어버린 것은 너를 놓아주고자 하는 내 마음이다.

너는 울고, 나를 그런 너를 쓰다듬는다.

나의 삶에는 다른 선이 없다.



"재현아, 우리 사랑하지 말자." 



숨이 멎는다.

심장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시간이 그렇게 흐르고, 네 손가락이 내 등에서 유영한다.

청유형의 문장을 해석할 능력이 나에겐 아직 없었다.



"우리가 같이 울고 웃고 서로에게 미치는 한이 있더라도, 사랑하지는 말자."



심아.

네 눈.

어둠.

온통 어둠인 네 눈.

그 안에 무엇이 담겼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아프고, 너무 아파서 나는 차마 그 어둠을 마주할 수가 없다.

그 어둠 앞에 온전히 홀로 남겨진 채, 네 손을 놓을 용기가 없다.

내게 어둠을 알려준 순간부터 빛은 점멸하다 죽어버릴 뿐이다.



"그러지 마." 
 


너를 끌어안아 본다.

마지막이겠지.

네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마지막이다.



네 몸은 차다.

십이 월의 낮과도 같은 네 몸.

나는 네 몸만을 끌어안고 있다.

너는 내 눈을 피한다.

너는 내게 말을 건네지 않는다.

까만 어둠조차 감기고 희말간 달빛만 남는다.



"제발 그러지 마." 



너는 나를 알까.

찢어지는 속과 상반되는 탄성을 알까.

지독히 아름다운 너를 마주할 때마다 그만두겠다는 마음을 접는,

내 모든 걸 알까.



내가 너를 놓아줄 수 없는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그게 오히려 더 나았을까.

사랑하지 않았다면 너는 나를 떠나가지 않을 수 있었을까.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프다.

지금이 더없이 아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족하다.

너를 사랑하기에는.






네가 나를 밀어낸다.

나는 직감한다.

이것이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니 너를 놓아줘야만 한다.

너를 끌어안고 있던 나의 손이 떨어져 나간다.

네가, 나의 전부가 떠나간다.

손을 뻗어 잡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너는 내가 붙잡아서는 안 되니까.

나는 내가 아프지 않을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

어둠의 밑바닥과도 같은 사랑 말고.

눈이 멀어버릴 듯 환해서 어둠의 흔적조차 집어삼키는 빛을 만나야 한다.

그걸 잘 아는 너는 천천히 뒷걸음질친다.

상처입은 나를 두고 떠나가 버린다.








너를 알아내는 것은 쉽다.

네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네 집의 도어락 키는 뭔지.

너무 알기가 쉽다.

너는 나의 전부이므로.

나는 숨을 참고 도어락을 푼다.

경쾌한 소리를 내며 문은 열린다.

긴 현관을 지나자 익숙한 뒷모습이 보인다.



"왔어? 늦었네." 



"응." 



너를 안는다.

상처입지 않을까, 너를 둘러싼 가시에.

물이 들지 않을까, 끝이 없는 어둠에.

그러나 네가 너무나 소중해서 나는 그 모든 걱정을 다 으스러뜨린다.

너는 울고 있다.

그 흐느낌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이제는 고민하지 않는다.

너는 내게 말을 건네지 않는다.

우리의 공간에는 어느새 희말간 달빛만 남는다.

달빛조차도 어둠에 먹혀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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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61.43
무서운 듯 아련한 듯한 글이네요 재밌어요 ㅠㅠ 저 [다행]입니다~ 작가님 글은 뭔가 다음 글을 기대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로 저는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호호 기대하고 있을게요!!
7년 전
독자1
아 엄청 어두운데 또 민형이가 엄청 밝은 글이네요. 잘 보고 갑니다.
7년 전
독자2
[맹이]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해요 작가님
재현이의 입장에서 보니깐 더 맘이 아파오는 것 같아요

7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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