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디] 늑대소년
04
w. 마카
밖에서 들려오는 철문 열리는 소리에, 경수는 엄마가 돌아왔음을 알았다. 거실에 나와 하릴 없이 TV를 보던 경수가 곧이어 현관문이 열리자 괜스레 현관 쪽을 흘끔거렸다.
"늦었네."
"촌이라 그런지 서도 꽤 멀리 있더라고. 확인할 건 또 어찌나 많은지."
현관에서 신발을 벗으며 들어서며 경수의 엄마는 피곤한 듯 어깨를 두들겼다. 경수는 아직도 거실 구석에 앉아있는 소년을 곁눈질로 돌아보았다.
"경찰서에선 뭐래?"
이내 다시 TV로 시선을 돌린 경수는 무심한 척 물었다. 왠일로 관심 가지는 일이 생겼나 싶어 살짝 놀란 경수의 엄마는 살풋 웃어버렸다. 민망함에 경수의 귀가 살짝 빨개져 있었다.
"이 동네 자체에 실종 신고 들어온 게 없다더라. 하도 좁은 동네라 사는 사람들도 얼마 되지 않잖니. 그래서 일단 상황만 말하고 돌아 왔지. 나중에 서에 한 번 데려 오라고 하더라."
그으래. 느릿하게 대답한 경수가 다시 한 번 소년을 흘끔 쳐다보았다. 어느새 소년은 무릎에 얼굴을 묻고 졸고 있었다. 그와중에도 손에는 연필을 꼭 쥔 채였다.
"그럼 그때까진 어떡할거야..?"
"글쎄, 일단은 갈 데도 없는 것 같고 그렇다고 어디 맡기자니 영 찝찝해서. 그때까진 우리가 데리고 있어야지."
"아..."
"그래도 괜찮지?"
나는 뭐... 뜸을 들이던 경수가 이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야, 왜 자꾸 따라와."
그 날 저녁, 잠자리에 들기 위해 방에 들어가려는 경수를 계단서부터 쫄래쫄래 쫓아와 자신의 방 앞에까지 따라온 소년에, 경수가 뒤를 돌아 소년에게 팩 쏘아붙였다. 그래도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만 보고 있는 모습에 경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 방, 저기거든?"
소년의 팔을 붙잡은 경수가 소년을 자신의 옆 방인 소년의 방 앞으로 이끌어주었다. 방문까지 열어준 경수가 다시 뒤를 돌아 자신의 방으로 가려하자, 또다시 소년이 경수의 뒤를 쫓아왔다.
"야! 나 잘거야. 그니까 쫓아오지마. 알았어?"
소년의 어깨를 돌려 다시 방쪽으로 돌려주고 나서야, 경수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도 자신을 흘끔 거리는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진짜 이상한 애다. 곧 침대에 누워 까만 천장을 올려다 보던 경수가 피식 웃어버렸다.
왠지 오랜만에 쉽게 잠이 든 밤이었다.
"어디가니!"
온 집안을 뛰어다니는 쿵쾅거리는 소리와, 엄마의 소리치는 목소리가 아침부터 시끄럽게 울렸다. 그 덕에 잠이 깬 경수가 자리에서 부스스 일어나 방을 나섰다.
"뭔데 이렇게 시끄..."
방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보이는 모습에 경수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혹시 자신이 꿈을 꾸는건가 싶어 눈을 비빈 경수가 다시 자신의 앞에 펼쳐진 상황을 바라보았다.
"...뭐야 너."
상의를 벗은 소년이 온 몸이 젖어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 상태로 경수의 앞에 선 소년은 색색 작게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소년을 쫓아 경수의 엄마가 2층으로 올라왔다. 경수의 엄마 역시 팔과 다리의 옷을 걷어 올린 채였다.
"뭔 일이야?"
대충 짐작이 가는 상황이었지만 경수가 다시 엄마에게 물었다. 한참을 자리에 서 경수의 엄마는 말을 잇지 못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숨을 골랐다.
"하이고 숨차라. 아니 너무 더러운 것 같아서 씻으라고 욕실에 들여보내 줬더니 아무것도 못하고 서 있는거야 글쎄. 그래서 상의만이라도 벗기고 씻겨주려 했더니 애가 놀라서 온 집안을 저 채로 뛰어다니더라고."
상황 설명을 들은 경수가 소년을 돌아보자, 이 상황이 민망한 건 아는지 모르는지 경수만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럼 김씨 아저씨보고 부탁 좀 하지."
"그래볼까 했더니 아침부터 일찍 시내 나갔다고 하더라. 정말, 이 상태로 내버려 둘 수도 없고."
뚝뚝 소년의 머리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들을 경수가 어이없는 듯 쳐다보았다.
"야, 내가 너 씻겨주고 싶어서 씻겨주는거 절대 아니다. 너 감기 걸리면 엄마만 고생이니까, 그래서 씻겨 주는거다."
결국 소년을 씻기기 위해 나선 것은 경수였다. 팔과 다리의 소매를 걷어 올린 경수가 소년을 끌고 욕실에 들어서자 의외로 순순히 들어오는 모습에 안심한 경수는 샤워기의 물의 온도를 맞추면서 괜스레 절대 자신이 하고 싶어 나선 일이 아니었음을 강조했다.
"으 구정물 봐. 이런 데도 안 씻겠다고 버티면 어떡해 바보야."
물만 끼얹었을 뿐인데 까맣게 흘러내리는 물에 경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소년의 머리에까지 다시 물을 끼얹은 경수가 이내 물을 잠그고는 손 한가득 샴푸를 짜내었다. 그대로 소년의 머리로 손을 가져가려던 경수는 어쩔 수 없이 손을 높이 들어야 하는 불편함에 손등으로 소년의 어깨를 눌러 욕조 바닥에 앉혔다. 샴푸를 비벼 거품을 낸 경수가 소년의 머리에 샴푸를 감겨주기 시작했다.
"눈 감아. 눈에 들어가면 따갑다."
그러나 경수의 말을 못 알아듣고 아직 멀뚱멀뚱한 눈을 뜬 채인 소년에, 경수가 이내 머리 위를 문지르던 손을 멈추고 무릎을 굽혀 소년과 눈을 마주했다.
"꽉! 이렇게 꽉! 눈 감아."
따라하라는 듯 경수가 눈을 꽉 감았다 떴다 하자, 소년도 이내 경수처럼 눈을 꽉 감았다.
"그래, 그러고 있어. 잘했어."
경수가 꼭 어린애를 가르치는 듯한 기분에 소년의 머리 위를 쓰다듬었다. 그러나 그때 다시 눈을 뜨는 소년에 경수가 다시 눈을 꽉 감았다 떴다. 아니, 눈뜨지 말라니까. 다시 경수를 따라 눈을 감는 소년의 모습에 살풋 웃었다. 정말 애기같은 동생이 하나 생긴 기분이었다.
잔뜩 물에 젖은 소년의 옷을, 민망하지만 시선을 딴 곳에 두며 벗겨낸 경수가 그 위로 빨리 목욕가운을 둘러주었다. 그리곤 새 수건을 꺼내 소년의 머리와 얼굴의 물기를 닦아 주었다. 깨끗해진 소년의 얼굴은 꼭 경수 또래의 아이들과 같은 소년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입 밖으로 말하기엔 그렇지만 소년은 꽤나 잘생긴 편이었다. 키도 큰게 잘생기기까지 하네. 왠지 모를 부러움까지 느낀 경수였다.
욕실 밖으로 소년을 데리고 나온 경수는 욕실 옆에 달린 거울 앞에 소년을 앉혔다. 선반에서 드라이기를 꺼내온 경수가 드라이기를 켜 소년의 머리 위를 말려주기 시작했다. 갑자기 얼굴 위로 닿는 드라이기의 바람에 소년이 찡긋 눈을 감았다. 피식 웃은 경수가 부드러워진 소년의 머리를 부스스 흐트려뜨렸다.
"다 됐다."
드라이기를 끈 경수가 거울 안 소년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소년이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꽤나 얌전하게 자신의 손길을 받은 소년에 경수는 내심 소년이 기특한 기분이 들었다.
"잘했어."
경수가 머리를 감아줄 때처럼 소년의 머리 위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거울 안으로 경수와 눈을 마주쳐 오는 모습에 경수는 씨익 웃음을 지었다.
"이야, 이제보니까 되게 잘생겼네. 수고했어, 경수도."
엄마의 칭찬에 민망해진 경수의 귀 끝이 빨개졌다. 식탁 의자를 끌어 자리에 앉은 경수가 자신의 옆 의자를 빼주며 소년을 앉혔다. 경수에겐 큰 후드티를 입고 자신의 발목까지 오는 츄리닝을 입은 소년이 경수의 손을 따랐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경수의 엄마는 살짝 웃음을 지었다. 조금씩 다른 이인, 소년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경수의 모습이 기특했다. 어쩌면 소년을 데리고 있게 된 것이 잘 된 일일지도 모르겠다고 경수의 엄마는 생각했다.
"어, 야. 손으로 먹지 마!"
식사가 시작 되자, 또다시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으려는 소년의 모습에 경수가 그 손을 잡아 제지했다. 손을 가져와 젓가락을 쥐어주었지만 제대로 잡지 못해 젓가락이 바닥으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젓가락질도 못하는 건가. 바닥으로 떨어진 젓가락에 작게 한숨을 쉰 경수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내 소년의 앞에 놓인 밥그릇을 가져왔다. 그러곤 자신의 숟가락으로 밥을 떠, 그 위에 반찬을 올린 경수가 소년의 입가로 숟가락을 가져갔다.
"먹어. 오늘만 이렇게 해주는 거야."
곧 소년이 숟가락을 입에 물자 경수가 숟가락을 빼내 다시 밥을 뜨곤 반찬을 올렸다. 그리고 또 다시 소년의 입가로 가져가는 모습에 경수의 엄마가 이내 큰 소리를 내며 웃어버렸다.
"경수한테 동생생겼네."
그러자 엄마를 돌아본 경수의 얼굴이 살짝 빨개졌다. 꽤나 민망한 상황이란 것은 생각 못하고 충동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그냥 자신도 모르게 소년을 챙겨준 것이었다. 아니, 그게 아닌데... 경수가 민망함에 말끝을 흐렸다.
그때, 소년이 경수도 모르게 살짝 내려간 손목을 가져와 숟가락을 입에 물었다. 그 모습에 결국 경수도, 경수의 엄마도 픽 웃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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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 들고 일주일 만에 찾아왔습니다. 사실... 이렇게 장편을 기획해놓고 써보는 건 처음이라 조금 힘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즐겁게 쓰고 있습니다 ㅋㅋ 이번편에는 유독 카디카디한 장면이 많네요. 다른 작가님들 픽에서 카디카디한 장면 볼때는 상상하면서도 엄청 좋아했는데, 막상 제가 써보려니 조금 민망하기도 하고 그렇네요... 작가님들 존경합니다
암호닉> 됴르륵, 똥주, 두비랍, 왕관, 동해, 고등어, 전주 비빔밥, 도도하디오, 향수, 김미자, 알찬열매, 사물카드, 얌냠냠, 흰자부자, 민트초코, 맥쥬
암호닉 신청해주시는 분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ㅠㅠ 나중에 완결났을 때 암호닉 걸어주신 분들께 많은... 혜택이 있을거에요...ㅎㅎ 2월 안에 늑대소년 완결 낼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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