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8편 올리고 사라졌던 나루나루 입니다(꾸벅)
원래는 이 내용이 9편에 들어갈 내용인데 왠지 오늘 올려야 될거 같아서...////
짧습니다ㅠㅠㅠㅠ매우 짧아요ㅠㅠㅠㅠㅠ
이번편에선 암호닉은 올리지 않을게요ㅠㅠ
나의 절망을 바라는 당신에게 |
계속되는 입덧에 결국 백현은 음식을 한입도 먹지 못한채 스카이 라운지를 나가야만 했다.
집에 가기 위해 준면이 미리 주차시켜놓은 차에 탄 백현은 자신의 옆에 찬열이 타는 것을 보고 찬열에게 왜 그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냐,밥은 잘 먹고 다녔냐 같은 질문을 물으려 했지만 싸늘하게 굳어있는 분위기 덕에 입만 몇번 오물거릴뿐 입 밖으로 질문을 꺼내지는 못했다.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를 눈치챈 준면이 가벼운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풀어보려 노력했지만 백현 만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애써 응해줬을뿐 큰 효과는 없었다.
집에 도착하자 찬열은 백현을 보지도 않은채 바로 자신의 방으로 직행했다. 백현이 급하게 따라 내린뒤 찬열의 뒤를 따라갔지만 찬열은 이미 자신의 방 문을 열고 들어간 상태였다.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방문이 닫히고 백현은 그 소리에 놀라 걸음을 멈췄다. 근처에서 청소를 하고 있던 가정부 들도 백현 만큼이나 놀랐는지 방문과 백현을 번갈아보며 이게 무슨 일인지 의아해 하고 있었다. 백현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근처에 있던 가정부에게 손님방이 어디있냐 물었다. 아무래도 찬열의 방에서 같이 - 라고 하기엔 찬열이 집에 거의 들어오지 않았지만 - 생활하는 지라 지금 찬열의 방으로 들어가봐야 상황만 더 안좋아 질것이 불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손님방에 들어가 침대에 걸터앉은 백현은 첸에게 받았던 이씽의 번호를 누른뒤 몇번 정도를 망설이다가 결심 했다는 표정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잠시동안 요즘 유행하는 걸그룹의 노래가 흘러나오더니 이씽 특유의 밝은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들려왔다.
[어?배큥군!왠일이에요?]
"이씽...혹시,나...진료좀 받으러 갈수 있을까요?"
[질료?]
"네,진료."
[음...그래요!이씽,배큥군 진,료 해줄게요!배큥군,그러면 언제?]
"내일...보단 3,4일뒤에 할게요."
[3일?4일?]
"...그냥 이씽이 편한 날짜에 해주세요."
[음...4일뒤 어때요?4일뒤, 사람 없어요!]
"그래요.그럼 그때 할게요."
[배큥군,그럼 그때 봐요!안뇽!]
이씽과의 전화를 끊은뒤 백현은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한번 쓸어내렸다. 내일 바로 검사를 받을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에 백현은,왠지 모르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뭔가,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했다.
* * *
4일이라는 시간동안 백현과 찬열 사이에는 이렇다 할 말이 오가지 않았다. 찬열은 백현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백현이 말을 걸라 치면 바로 자리를 뜨거나 백현의 말을 무시해버리기 일쑤였다. 사실, 백현도 백현대로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찬열 역시 머릿속이 복잡했다. 식사 때 보았던 백현의 헛구역질과 첸이 말했던 백현이 강간당할 뻔할 사실. 이것들이 겹쳐오면서 찬열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첸의 말을 믿기 힘든게 사실이었다. 백현과 친하게 지내던 첸 인지라 백현을 감싸주기 위해 그런 말을 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없으리란 판단 하에서 내린 생각이었다.
"...찬열아."
"..."
이씽에게 진료를 받기로 한 날 아침. 첸 은 때마침 운동을 나가고 없었다. 백현은 말할 타이밍을 찾지 못해 어쩔줄 몰라 하다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여전히 찬열은 백현의 말을 들은체 만체 하기 일쑤였다.
"오늘,이씽 한테 진료 받으러 가기로 했어."
"..."
백현은 잠시 망설이다가 옆에 있던 물을 한모금 마신뒤 말을 이어나갔다.
"혹시 오늘 시간 되면...같이 갈래?"
"..."
"..."
어색한 정적만이 식당을 감쌌다. 백현은 어색함에 어쩔줄 몰라했고, 찬열은 보고 있던 잡지를 자신의 뒤에 서있던 가정부에게 건냈다. 빨간 테두리의 표지옆에 어렴풋이 '알파 유전자 - 유전의 법칙' 이라는 하얀색 글씨가 보였다.
"찬열아.어..."
찬열은 백현을 지나쳐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 * *
결국 백현은 홀로 준면의 차에 올라타야 했다.
이씽이 근무한다는 E그룹재단 소속의 E병원으로 가던 중,문득 백현은 다른 날보다 바깥에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눈치챘다.
"아저씨,오늘 무슨 날이에요?"
"백현군,너무 날짜에 무심한거 아니에요?오늘이 바로 예수님 오신날 인데?"
"예수님 오신날?...크리스마스 요?"
"네,맞아요."
원래부터 날짜 개념이 딱히 없었던 백현인지라 준면의 말을 듣고 나서야 오늘이 크리스마스 임을 눈치챌수 있었다. 그제야 백현은 이씽이 4일뒤엔 사람이 없다는 말을 한 이유를 알수 있었다. 준면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수도 있었을 백현 이었다.
"자-,도착했습니다."
도착했다는 준면의 말에 차에서 내린 백현은 이씽이 알려줬던 곳으로 가 가볍게 노크를 한뒤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서류를 보고 있었는지 안경을 쓰고 무언가를 보고 있던 이씽이 반갑게 백현을 맞이했다.
"배큥군!"
반갑게 손을 흔드는 이씽에게 반갑다며 답을 해준 백현은 가볍게 안부를 물은뒤 이씽의 맞은 편에 앉았다.
"배큥군,그동안 잘 지냈죠?"
"아...그게,"
"응?"
"전화했던날에 식사를 하러 갔었는데, 그때 식사로 나왔었던 스테이크 냄새를 맡고 약간 헛구역질 비슷한걸 했어요."
"헛쿠역질?"
"...네.그리고 요즘 들어서 입맛이 없어지기도 했고."
이씽은 잠시 생각하는듯 하더니 청진기의 귀꽂이를 귀에 꽂은뒤 백현에게 옷을 잠시만 올려보라 말했다. 백현이 옷을 올리자 이씽은 청진판 을 백현의 가슴에 이리저리 대보면서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듯 했다. 차가운 청진판의 금속 느낌이 그닥 좋지는 않았는지 백현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뿌렸다.
"배큥군."
"네?"
"...정밀검사,해야될거 같슴니다."
이씽은 밖에 있던 간호사를 불러 백현의 검사를 준비해달라 부탁했다. 자신이 잘못한게 없는데도 백현은 자기자신도 모르게 덜컹 하는 느낌이 들었다.
* * *
생전 처음 받아보는 낮선 검사들을 받고 시간을 보니 어느새 정오를 넘겨 있었다. 준면에게 조금 늦을거 같다는 말을 한뒤 기다려달라는 간호사의 말에 따라 대기석에 앉아있던 백현은 멍하니 벽에 걸려있던 병원홍보전단 을 보다가 딱히 할것이 없어지자 두리번 거리며 시선을 돌렸다.그러다가 시선이 멈춘 그곳에선,산모로 보이는 여자와 남자가 유리창 너머 무언가를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호기심이 생긴 백현은 몸을 일으켜 남자와 여자가 서있는 쪽으로 향했다.
"..."
"여보,우리 애기 보여?나중에 크면 여보 닮아서 남자 깨나 울릴거 같지 않아?"
"에이,나 닮는게 아니라 나보다 더 예뻐야지.어,어!자기야!방금 손 조물 거리는거 봤어?"
"우와,우리 애기 벌써 손도 조물거리고. 곧 있으면 아빠 엄마 하는거 아냐?하하하..."
행복해 보이는 남자와 여자의 모습에 백현은 자신도 모르게 부러움을 느꼈다. 그때, 자신을 찾는 간호사의 목소리에 백현은 서둘러 이씽의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백현이 들어오자 이씽은 기다렸다는 듯이 몇장의 자료를 백현에게 넘겨줬다. 얼굴에는 묘하게 미소를 띄고 있었다.
"이게...뭐에요?"
"읽어봐요."
백현은 차분하게 자료를 읽어나갔다. 얼마나 자료를 읽어나갔을까, 맨 마지막 장의 끝부분에 적힌 말에 백현은 자신도 모르게 종이를 넘기던 손을 멈췄다.
"..."
"..."
"...이거...진짜에요?"
백현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려왔다.
"진짜,맞아요."
"...아."
"추카해요.차뇨리가,마니 좋아할거에요."
백현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배를 쓸어보았다.
이 뱃속에, 자신과 찬열의 아이가 살고 있다.
백현은 자신도 모르게 들고 있던 자료를 떨어뜨렸다. 자료의 맨 밑에 적힌 '임신 테스트 : 양성' 이라는 문장이 유독 더 돋보이는 착각 까지 들었다.
이씽의 뒤에 있던 창문으로 어느새 눈이 내리고 있는 서울의 풍경이 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