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안되는 연애
written SOW.
김태형이 들이민 핸드폰의 주인은 내가 맞았다. 그러니까 그 핸드폰 액정에 떠 있는 '정호석'이라는 이름도 나와 민윤기의 고등학교 동창인 정호석이
맞을거다. 그럼 그렇지, 민윤기가 내 프사보고 연락할리가 없지. 호석이는 나랑 윤기랑 싸운거 모를텐데. 괜히 원망스럽게 액정에 뜬 호석이의 이름을
바라보다가도 안 받냐는 김태형의 물음에 억지로 받았다. 어디야? 호석이의 물음에 잠시 뜸을 들였다. 얘가 이런걸 갑자기 왜 묻지?
"잠깐 포장마차. 왜?"
-어디 포장마차?
"어, 여기가 어디죠 태형씨?"
- ‥태형씨?
"아, 내 직장 후배. 아, 여기 거기야 너 22살 때 지현이한테 차이고 술 먹은 그 포장마차."
-아, 뒤질래? 그런 기억은 좀 접어라.
"워낙 인상적이여서. 근데 왜 묻냐니까?"
-너 멀쩡해?
멀쩡하냐는 호석이의 물음에 목을 가다듬었다. 난, 멀쩡하다. 비록 소주 2병을 마셨지만 난 멀쩡하다. 자기 최면을 걸곤 멀쩡하다고 호탕하게 웃자
옆에 앉아있던 김태형이 고깃집 앞에서 처럼 크게 웃어제끼기 시작했다. 시끄러워라. 시끄러운 건 나만 느낀게 아닌건지 호석이가 옆에 누구냐며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오늘 따라 꼬치꼬치 묻는게 많아 의심스럽긴 했지만 얘가 알아봤자 뭘 어쩌겠냐는 식이었다.
"아까 말한 그 후배야. 좀 시끄럽지?"
-니 프사도?
"어?"
-내가 방금 민윤기가 나가서 말하는건데.
"민윤기?"
-민윤기가 니 프사 보자마자 나한테 욕 한바가지 쏟아붓더니 포장마차 어딘지 듣고 방금 뛰쳐나갔다. 만나면 싹싹 빌어라.
"민윤기 너네 집에 있었어? 너 집에 누구 들이는 거 안 좋아하잖아."
-너랑 싸웠다잖아. 침울한 표정으로 들어오는데 어떻게 보내냐.
"민윤기 여기로 와? 지금?"
-어, 둘이 좀 잘 풀어라. 뭐 민윤기 지금 니 직장 후밴가 뭐시기 때문에 빡쳤으니까 직장 후배 빨리 보내라. 네 옆에 있는 꼴 보면 더 화날라.
끊어진 전화를 바라보다가도 내 어깨를 툭 치는 김태형에 간신히 정신을 붙잡곤 김태형에게 허둥지둥 말했다. 두서 없이 말하긴 했지만
내가 지금 볼 일이 생겼으니 먼저 가달라는 의도는 잘 전달 된 건지 김태형이 아주머니께 살갑게 웃곤 값을 계산하고 나가버렸다.
아, 내가 사주려고 했는데.
김태형이 나간 포장마차는 고요했다. 시끄럽게 주정하는 아저씨도 없었고, 조잘조잘 수다를 떠는 그 흔한 커플도 없었다. 모두 혼자 술을 먹으러 온 듯 했다.
저 사람들은 나와 김태형을 보고 사귀는 사이라고 생각했을까? 그 생각을 하다가도 그게 무슨 부질없는 생각인가 싶어 내 앞에 놓인 잔을 들어 벌컥 마시려 했을까.
"‥ 왜 혼자 마셔."
내 잔을 빼앗아 제가 단숨에 마시곤 왜 혼자 마시냐며 다정히 물어오는 민윤기에 울컥 눈물이 나올 뻔 했지만 겨우겨우 참곤 가슴 깊숙이 넣고 있던 얘기를 꺼냈다.
너, 왜 그날 그렇게 화 냈어? 너 원래 내가 그런 장난 쳐도 이렇게 무시하진 않았잖아.
내 울먹거리는 소리에도 가만히 잔을 쥐고 있던 민윤기는 다시 소주를 따라 또 벌컥 마셨다. 그게 왜 그렇게 미워보이는지 울컥 짜증이 나 민윤기를 확 째려보며
말했다. "야, 너 자꾸 술만 먹을래?" 내 화난 듯한 말투에도 민윤기는 마저 다 마시곤 나와 싸운 그 날 처럼 턱을 괴곤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도 그 날과 같이 민윤기의 눈을 똑같이 바라보았다. 눈물이 차올라서 민윤기가 흐릿하게 보였다. 눈 한 번 깜빡이면 눈물이 톡 떨어질 것 같았다.
"나, 화 다 풀린지 오래야."
"뭐?"
"나 때문에 우는거야?"
"‥그럼 내가 누구 때문에 울어. 넌 내가 연락 안 되면 나한테 지랄발광을 하면서 왜 연락을 안 받아! 나 진짜 걱정되서,"
"걱정했어?"
"‥몰라."
"천하의 김여주가 내 걱정도 하고, 나 때문에 우는데 화가 안 풀리겠냐."
"흐,진짜 내가 얼마나!"
"알았어, 내가 다 잘못했어. 미안해."
"아니야, 내가 미안해 민윤기야 ‥ 앞으론 그런 장난 안 칠게."
내 사과에 민윤기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20년도 더 된 나의 노하우를 써봐도 민윤기가 말이 없는 이유를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실수한 건 아닐거다. 사과 했고, 민윤기 군대 갈 때 빼고 울지도 않던 내가 울기까지 했는데 또 어긋난거면 난 민윤기 정강이 뼈를 어긋나게 할거다.
정말이다. 난 진짜 진심으로 사과했다고!
"나랑 사귈래?"
"야, 너 내가 한 방법 그대로 지금 나 놀리려고!"
"나랑 사귀자."
장난이라기엔 분위기가 무거웠고, 진심이라기엔 우리가 함께 보낸 세월이 너무 무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향한 그 올곧은 눈빛은 진심이라고
직접 보여주고 있었다. 언제나 민윤기는 그랬다. 민윤기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나는 민윤기의 눈빛으로 대충 그의 기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만큼 민윤기는 제 눈빛에 충실한 편이었고, 민윤기는 제 감정을 유독 눈으로 표현하곤 했다.
지금도 그랬다. 물론 말도 하긴 했지만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느껴졌다. 언제 잡았는지 살짝 마주잡은 손이 잘게 떨리는 느낌과
올곧은 눈동자 속에서도 보이는 작은 떨림은 민윤기가 지금 얼마나 떨고 있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심지어 수능날에도 떨지 않던 민윤기인데,
고작 나한테 고백하는걸로 떤다니. 참 민윤기 답다고 해야할지 ‥.
대답 없는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도 잡고 있던 손을 풀어 깍지 낀 민윤기가 그대로 손을 끌어당겨 내 어깨에 제 이마를 살짝 기댔다.
윤기의 불규칙적인 호흡과 아직도 잘게 떨리는 손가락 마디들이 말하고 있었다. 제발, 받아달라고.
좋아한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 * *
"야, 일어나."
"‥음, 윤기야 나 물."
"이게 뭐가 예쁘다고."
목이 마른지 손을 허공에 휘휘 저으며 내 이름을 부르는데, 그게 또 귀여워서 웃고 말았다. 어젯 밤, 그러니까 내가 10년도 넘게 해온 짝사랑을 청산하기 위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고백을 한 그 날 김여주는 내 머리를 제 어깨에 올리곤 거의 쓰러지듯이 잠에 들었다.처음엔 몰랐는데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딱 자는 소리길래
깍지 낀 손을 풀어 등에 업어 집에 데리고 왔다. 세상에 고백 받고도 편히 자는 애가 어딨어.
업고 오는 길 내내 얌전히 주무시는 김여주가 또 예뻐서 집에 가는 길 내내 입꼬리가 안 내려간게 어제의 내 흠이라면 흠이었다.
술이 체질적으로 안 받는 내가 맨정신으로 고백하기엔 도저히 무리일 것 같아 반 병을 마셨는데, 답도 안 해주고 자버리다니 솔직히 조금 밉기도 했다.
근데 뭐, 아무리 그래도 김여주 하나 데리고 살려면 이정돈 참아야지하는 생각에 혼자 투덜거리고 혼자 수긍했다.
"아, 진짜 숙취 쩔어. 윤기야 나가서 해장국 먹고 올까?'
"그 전에."
"어?"
"나한테 할 말 없냐?"
"뭐, 뭐가."
말 더듬는 거 보면 필름 끊긴 것 같진 않은데. 이거 또 빠져나가려고 한단 말이지. 물 한 컵을 다 비운 김여주 손에서 컵을 빼 테이블에 놓은 다음
어제와 같이 앉아 손을 잡았다. 그리고 똑같이 깍지를 낀 후 어깨에 이마를 또 기댔다. 어제보다 더 떨리는 걸 보면 어젠 확실히 알코올의 효과가
컸던 것 같다.
내 손에 쏙 들어오는 김여주의 손이나 깊게 느껴지는 김여주의 체향 때문에 슬슬 힘들어질 즈음이었다.
"아, 알았어."
"뭐가 알았어."
"아, 사귀자며! 알았다고!"
"근데 너."
"어?"
"지금 여기 소파인 건 알고 있냐."
"야, 윤기야. 잠깐만, 야!"
* * *
내가 민윤기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내 연애는 모두 헤어짐으로 끝났다. 솔직히 이유를 알고 싶었다. 난 왜 항상 연애가 이 모양일까.
민윤기랑 사귀고 한 두 달 지났나, 길 가다가 전정국을 만났는데. 전정국이 선뜻 먼저 얘기를 하자고 하더라.
"난 네가 나 보자마자 욕할 줄 알았는데."
"내가? 널?"
"알잖아, 내가 바람핀거."
"뭐야, 너 바람 폈었냐?"
"민윤기가 말 안했어?"
전정국이 바람 폈다는 것보다 나는 민윤기가 나한테 말 안한게 당시엔 더 충격적이였다. 바람이야 뭐 피던말던 이젠 상관 없으니까 괜찮은데,
왜 민윤기가, 왜 우리 윤기가 나한테 이 중요한 걸 말 안했느냔 말이다. 전정국이 말하는 걸 보면 민윤기랑 나랑 사귀기 전 부터 민윤기는 이걸
모두 알고 있었다는 건데, 대체 왜?
전정국과 헤어지자마자 나는 바로 민윤기 작업실로 향했다. 민윤기 옆에 앉아 웃음꽃을 피우고 있는 김태형을 내쫓곤 직접적으로 물었다.
빙빙 돌려말하는 건 진짜 내 성질에 안 맞아서. 내 말을 조용히 듣던 민윤기는, 딱 한 마디만 했다.
"너 상처받았을거 아니야. 그리고 그거 알아봤자 뭐가 더 좋다고. 그건 그렇고 너 전정국 만났냐?"
"‥윤기야, 감동이야."
"징그러우니까 달라붙지마."
"뽀뽀해줄까?"
"‥그러던가."
Epilogue. 왜 나만 안되는 연애라고 했냐.
-윤기야, 전정국이 그러는데 원래 걔 나 되게 좋아했었대.
-지금 내 화 돋구기 테스트 하냐?
-그래서 내가 그럼 왜 바람 피웠냐고 물어보니까, 너 때문이라는 거야.
-뭐?
-전정국이 나랑 자기랑 연애하는게 아니라, 너랑 나랑 연애하는 것 같았대. 그래서 점점 마음이 식었다나봐.
오늘 헤어진 이유 들으니까 납득이 좀 가더라.
-왜?
-그냥, 내가 그 때부터 너 좋아했나 싶어서.
- ‥네가 전 애인들한테 까인 이유를 알겠네.
-뭔데
-전정국이랑 똑같은 이유겠지 뭐.
+)
어느 새 친해진 김 스치면 인연씨와 여주씨 미래 남편
"태형씨, 여긴 왜?"
"아, 저 형이 음악 알려준다고 해서 왔어여! 두 분 사랑 맨날 하세요!"
"‥(할 말 잃음)"
* * *
여주가 커플링 사다 줬을 ㄸㅐ 윤기 반응
"이거 내꺼야?"
"어, 좋냐?"
"어, 진짜 좋다."
"우리 윤기 고마우면 여기 뽀뽀!"
"뽀뽀만?"
"아니옇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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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 진짜 민윤기 글 쓰면서 이렇게 설렌 적은 또 처음이네요ㅠㅠ 근데 독자님들이 안 설렜으면 어떡하징...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댓글 하나만 쓰고 가주세요ㅠㅠ 구독료도 아깝잖아요! 댓글 쓰면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사실 핑계고
댓글ㄹ이 고픕니다... 여러분 피드백으로 살아가는 SOW.... 댓글 많이 달리면 이거 텍파 기차 끓여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