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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 비둘기의 주파수 01

w.비옴(viomm)

 

 

 

 

 

 

 

 

 

 

“야 백현아, 너 진짜 왜 그러냐.”

 

 

그러니까 찬열은, 앞에서 현재 저기압이라는 자신의 상태를 숨기지 않고 발을 구르며 걷는 백현의 뒤꽁무니를 졸졸 쫓았다. 따라오지 마라. 목소리를 깐 백현이 말했고 찬열이 보폭을 넓혀 뛰다시피 해서 백현의 앞을 막아 섰다. 백팩 끈을 꼭 쥐고 있던 백현의 손에 힘이 더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화가 나면 서는 이마의 힘줄도 찬열의 눈에 들어왔다. 백현이 눈을 지그시 감고 이로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너 진짜 추접스럽게 자꾸 쫓아올래? 너 차인거 자존심도 안 상해?

 

 

“실망이다. 너 내가 추접스럽냐? 아무리 그래도 우리 3년을 사랑한 사인데.”

“3년 전엔 아니었어도 지금은 졸라 추접스러워. 좀, 들러붙지 말고 니 갈 길 가. 나 늦었어.”

 

 

찬열을 비켜서 바쁘게 걸음을 옮기는 백현을 찬열이 다시 뒤쫓았다. 아직 강의 시작하려면 십 분 넘게 남았잖아. 백현의 규칙적인 스케줄을 줄줄 꿰고 있는 찬열이었다. 백현아, 뭐가 그렇게 니 맘에 안 드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다 고친다니까? 나 지금 이렇게 너 보내면 맘이 안 편해. 좀 나한테 말할 기회를 좀 줘라. 캠퍼스 언덕을 오르는 동안 뒤에서 종알종알대는 소리에 지나가는 아는 얼굴들이 백현과 찬열을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박찬열 진짜 짜증나. 하는 마음을 표정에 떡하니 박은 백현이 몸을 홱 돌렸다. 어이쿠야. 바로 뒤에서 따라오던 찬열이 조금 주춤했다.

 

 

“할 말이 뭔데?”

“나 연재 그만뒀어.”

“뭐?”

“내가 그동안 작업때문에 바빠서, 너랑 시간 못 보낸 거 같아가지고.”

“야.”

“일 때문에 내가 너한테 소홀해서 짜증난거면, 나 일 그만뒀으니까…”

“그러니까, 박찬열.”

“응.”

“너 지금 백수야?”

 

 

따지고 보면 그래. 대답하는 찬열의 말에 백현이 어이없다는 뜻의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는 미련없이 몸을 돌려 담쟁이넝쿨이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곳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찬열이 건물 앞에 우뚝 멈춰 섰다. 가끔씩 까칠하게 굴긴 했어도 갑자기 왜 저렇게 돌변을 했는지 모르겠다. 아오, 씨. 찬열이 이틀째 감지 못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시선을 아래에 두니 해진 운동화의 앞코가 눈에 들어왔다. 엄지발가락을 움직였더니 그 모양새가 그대로 운동화 위에 보였다.

 

사실 그동안 정신없이 바빴다. 여기저기에 단편으로 그린 만화를 들고 기웃거리다가 겨우 연재를 시작한 모 사이트의 웹툰 코너 월요일 게시판에 제 필명과 제가 그린 그림이 떡하니 올라갔을 때, 같이 기뻐해주던 백현이 생각났다. 특별할 땐 치맥이야! 그날 백현이랑 파닭을 시켜먹었는데. 그 때 파를 너무 많이 먹어서 코가 존나 매웠어. 생각한 찬열이 코를 훌쩍였다.

 

월요일 웹툰 중에서도 제일 인기있는 것으로 만들어 보겠다고 밤낮없이 일에 매달린 것이, 오히려 그 열정이 반감을 산것 같았다. 초반에는 신선한 장르라며 관심을 보이고 우르르 몰려와 자음을 남발하며 칭찬을 해주던 독자들이 어느 순간 눈에 띄게 덧글 수가 줄고, 평점이 떨어지고, 이딴 걸 그림이라고 그리고 돈을 받아먹냐는 악플까지 달아댔다. 내가 보기엔 존나 재밌는데 왜들 지랄인데. 생각한 찬열이 건물의 앞에 띄엄띄엄 놓인 나무 벤치에 앉았다가 곧 다리를 뻗고 누웠다. 작열하는 태양을 가리기 위해 팔을 들어올려 눈 위에 가져다 댔다.

 

백현에게 연재를 그만두었다고 말 하긴 했지만, 좋게 말해서 그만 둔거지 사실은 담당자에게 전화가 왔었다. 돌려서 말 안 할게요. 찬열 씨, 연재 계속하실 거에요? 평도 많이 안 좋고. 사실은, 새로운 작가님이 한 분 들어오셨는데 마땅히 연재를 시작할 요일이 없어서……. 어서 니 입으로 그만두겠다고 말하라는 강요를 하듯 걸려온 담당자의 전화에 마침 잘 되었다고. 저도 연재를 그만 두려던 참이었다고. 그렇게 찬열은 답했다. 얼마 안 있어서 찬열의 웹툰은 소리소문 없이, 연재 중단 공지를 기재하지도 못한 채 완결웹툰에 속하게 된 것도 아닌것은, 세상에서 흔적 없이 사라져버렸다. 물론 그런 찬열의 웹툰 작품을 찾는 사람 역시 한 명도 없었다. 씨발. 모든 것이 허무하다.

 

그게 바로 어제였다. 찬열이 공을 들여 그린 만화 전편이 사이트 웹툰 코너, 월요일 연재 목록에서 흔적없이 내려진 것도. 백현이 전화를 걸어와 무뚝뚝한 목소리로 우리 그만 끝내. 지긋지긋해. 한 것도.

 

말도 안 돼. 변백현이. 걔가 날 얼마나 좋아하는데. 찬열이 눈에서 팔을 내렸지만 여전히 감은 채로 주머니 속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원래부터 사람이 유행에 뒤떨어지기도 하고, 유행 따라가는 것에 관심도 없으며, 변화를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요즘 폴더폰 쓰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백현이 핸드폰을 선물하려던 게 생각이 났다. 야 돈도 없는 게. 필요 없어. 핸드폰으로 문자랑 전화 통화만 잘 되면 되지. 하고 대리점에 자신을 끌고 들어간 백현을 도로 끌고 나온 그 날, 백현이랑 내가 뭘 했더라. 기억이 잘 안 나네.

 

실눈을 뜨고, 백현아 수업 끝날 때까지 기다릴게. 띄어쓰기도 맞추고, 온점까지 찍은 찬열이 백현의 익숙한 백현의 번호를 누르려는데 핸드폰 키패드 하나가 잘 눌리지가 않아서 문자 보내기에 실패했다. 에이, 몰라. 기다리다 보면 나오겠지. 찬열이 폴더를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핸드폰 배터리가 간당간당했다.

 

 

 

 

 

- 네, 쿨 에프엠 김종인의 파인데이입니다.

“거기 도작가 있어요?”

- 박찬열?

“경수냐?”

- 너 내가 자꾸 여기로 전화하지 말라고 했지!

 

 

경수야, 쉿. 목소리가 들리고 경수가 얼른 입을 다물었다. 죄송해요, 선배. 사무실 테이블에 빙 둘러앉아 청취율이 저조하다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서 모여 앉아 회의를 하는 세 사람이 보였다.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경수야 쉿, 손을 검지로 입을 막아보였던 준면 선배. 국장이고 부장이고 할 것 없이 이리 까이고 저리 까여 너덜너덜해진 표정으로 이마를 긁적이다가 한숨을 푹 내쉬는 경수의 수장 민석 선배. 뚱한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서 다 제 탓이에요. 하는 디제이 김종인. 경수가 그들을 흘긋 보고는 전화기를 어깨로 고정시키고 앞에 놓인 오늘자 대본을 정리했다.

 

 

“왜 전화했어?”

- 야, 내가 백수가 됐어.

“자랑하는거야?”

- 자랑이겠냐?

“그럼 뭐. 취직 자리 알아봐 달라고? 그런 건 나한테 물어볼 게 아니라…”

- 백현이가 헤어지재.

“……헐.”

- 나는 지금 나한테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내 친구 도경수 너 말고. 하는 찬열의 목소리가 들리고 경수가 심각한 표정으로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무릎에 내려 놓으며 손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왜 헤어지자고 이유는 말 안 해줘? 찬열이 대답은 않고 깊은 한숨만 쉬었다. 야 박찬열, 내가 지금 널 위로를 해 주고는 싶은데. 나 한시간 사십분 뒤면 생방이라, 지금 좀 바빠.

 

 

“방송 끝나고, 회의 끝나면 전화할게. 술 한 잔 할래?”

- 니가 사는거지?

“너 백수라는데 그럼 내가 사야지. 나도 양심은 있다?”

- 지당하신 말씀이다. 그럼 이따가 전화해라.

 

 

도 작가, 좀 와 봐. 민석의 목소리가 들리고 경수가 급히 전화를 끊었다. 찬열은 전화가 끊기는 소리를 내는 핸드폰 폴더를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언덕을 올라오는 대학생들이 보였다. 하늘하늘 거리는 예쁜 치마를 입고 긴 생머리를 귀 뒤로 넘기는 여자도 그렇고, 깔끔한 남방에 삐죽 솟은 밤톨같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한 손에 전공 서적을 든 남자도 그렇고. 찬열은 그들의 모습과 제 모습이 전혀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백현과 함께 동대문에서 샀던 맨투맨은 하도 세탁을 많이 해서 페인팅 된 그림이 자글자글하게 갈라져 있고 소매는 실밥이 풀려 이빨이 빠진 것처럼 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색이 바래서, 원래는 갈색이었던 것이 이제는 살색 비스무리 한 것이 되었다.

 

사람 구경하는 거 재밌다. 조금 울적해지려는 기분을 찬열이 애써 마음을 바꾸었다. 저 여자 다리 되게 짧다. 흉터도 많네. 저 남자랑 저 여자랑 사귀나? 여자가 아깝다. 저 남자 눈썹 완전 송충이 같은데. 날씨 되게 좋다. 학교도 되게 좋고. 이런 학교는 등록금도 비싸겠지? 백현이 등록금 얼마더라. 아, 걔는 장학생이구나. 존나 자랑스럽다. 턱을 조금 들고 히죽 웃는 찬열을 지나가는 여대생 무리가 어머, 하는 소리를 내며 쳐다보았다. 그 소리를 들은 찬열이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멀쩡하게 생겨서 모자라는 사람인가 봐, 왜 우리 학교에 와 있지. 하고 저들끼리 소곤거리며 백현의 건물 옆 쪽에 나 있는 곳으로 사라졌다.

 

찬열이 다시 한 번 머리를 긁적였다. 이틀 안 감은 머리 치곤 괜찮은 외양새였다. 어차피 저녁 쯤에 만나게 될 거니까 깔끔 떠는 도경수는 이걸 몰라볼 거고. 말하지 말아야지. 아침도 안 먹고 변백현 붙잡는답시고 따라 나온 찬열의 배가 허기짐을 알렸다. 아, 배고파. 배에 손을 가져다 댄 찬열의 눈에 맨투맨 티셔츠에 묻은 얼룩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또 언제 묻었대. 손톱으로 긁어내봐도 긁어지지 않는 것에 찬열이 침을 묻혀 닦으려다가 말았다. 티도 안 나. 괜찮아. 그나저나 강의 끝날 때 됐는데, 지금 들으러 간 건 연강 아닌데. 여기 말고 수업 끝나면 나오는 데가 따로 있나.

 

보이지도 않는 건물 뒷편을 기웃거리는데 어쩌고 저쩌고 무리가 떠들어대는 소리가 입구에서 들렸다. 찬열이 홱 고개를 그 쪽으로 돌리니 높이가 들쑥날쑥한 무리들 속에 가장 키가 작은 백현이 보였다. 아까 캠퍼스를 거닐던 어떤 학생이 그랬던 것처럼 전공 서적을 옆구리에 끼고 무리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게 보였다. 부모의 마음이 이런 것인가. 혼자서 야무지게 대학 생활도 잘 하고, 선후배들과 잘 어울리는 백현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자랑스러워서 찬열은 아까처럼 또 히죽 웃어 보였다. 백현보다 선배인 것 같은 사람이 백현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는 게 보였다. 백현이 혀를 강아지같이 쑥 내밀고 헤헤 웃었다.

 

백현이는 내가 저러면 엄청 짜증내던데. 약간 맹해진 찬열이 벤치에서 일어났다. 등록금 비싼 명문대에 다니는 대학생들답게 명품이거나 유명한 브랜드의 옷이나 가방을 걸치고 메고, 알이 큰 시계를 찬 무리들 앞에 찬열이 섰다. 무스를 발라 재수 없는 모양으로 앞머리를 올린 알이 없는 안경을 낀 남자가 제일 먼저 찬열을 보고 풉, 하는 웃음 소리를 냈다. 백현의 시선이 찬열에게 닿고 기분 좋게 웃던 백현의 입꼬리가 언제 웃었냐는 듯 슬쩍 내려갔다.

 

 

“야.”

“……”

“나 배고파.”

 

 

왜요? 게이 커플 첨 봐요? 양 손에 팝콘과 콜라를 들고, 입에는 영화표를 문 찬열의 팔에 팔짱을 낀 백현이 생각났다. 미소지기 명찰을 단 여자가 커플 좌석을 예매한 그들에게 표를 건네주면서 미소 대신에 얼떨떨하게 입근육을 뒤틀어보이자 백현이 그 여자 대신 웃으면서 한 말이었다. 당당한 모습의 백현에게 뿅 갔던 그 때의 저 모습도 함께 떠올린 찬열이었다. 그 때가 사귀고 얼마 안 되서였는데. 무슨 영화를 봤더라. 아. 그게 국가 기밀 요원들 나오는 로맨틱 코미디였다. 둘이서 영화관에서 요란스럽게 팝콘을 튀기며 배 잡고 웃었던 그 영화는, 시간이 지나고 찬열의 집 TV를 틀고 채널을 돌리면 나오는 케이블에서 방영되는 빈도가 잦아질수록 그들은 덤덤한 표정으로 그것을 보았다. 저 여자 가방 뒤지면 이제 망치 나온다. 수저도 나오잖아. 남자도 와서 둘이 정체 알아채고. 맞아. 마지막에 펜싱해서 싸우는 거 좀 존나 오글거려.

 

백현의 표정에 당혹감이 스쳤다. 아는 애야? 하고 백현의 옆에 서서 아까 머리를 만졌던 선배가 백현을 툭 쳤다. 아아, 네… 백현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게이 커플 처음 보냐는, 그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찬열과 아는 사이라고 말하는 것에서 부끄러운 표정을 지어보이는 백현이었다. 내가 부끄럽냐? 찬열은 그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저 자신이 보기에도 지금 백현의 옆에 서 있는 무리들보다 차려 입은 것이 훨씬 추레해보였다. 암. 창피할 만 하지. 보편적인 사람이라면 아는 사람이 이렇게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나타나면 창피해하지. 근데, 내가 아는 백현이는 그런 애가 아닌데. 특별한 앤데.

 

쟤, 배고프다는데. 하고 무리 중 한 명이 말하자 백현이 아… 들었어요. 하고 다시 작은 목소리를 냈다. 밥 사줘. 주거니 받거니를 하듯 찬열이 목소리를 냈다. 백현이 그런 찬열을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올려다 보았다.

 

편의점 문을 혼자서 열고 들어간 백현을 찬열이 따라 들어갔다. 딸랑- 편의점 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연달아 울리자 다른 손님의 것의 바코드를 찍으면서 기계적으로 어서오세요, 대답하는 알바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백현이 삼각김밥 코너로 가 아무것이나 골라서 찬열의 손에 쥐어주었다. 야, 변백현. 찬열이 이름을 부르자 더 사줘? 하면서 옆에 놓인 포장된 도시락과 핫바, 샌드위치와 사은품으로 딸려 주는 캔커피까지 찬열의 품에 안겨주었다. 딸랑거리는 소리를 내는 문이 열리고 봉지에 담긴 것을 들고 나가는 손님의 뒷모습에다 대고 안녕히 가세요, 하는 알바생이 서 있는 카운터 앞에 백현이 찬열을 밀었다.

 

찬열이 카운터 앞에서 와르르 손에 들린 것을 쏟아놓자 알바생이 바코드를 찍었다. 700원, 3500원, 1800원, 700원, 1200원, 1500원… 비싸지 않은 것들의 합이 더해지자 이 만원이 훌쩍 넘었다. 백현이 체크카드를 내밀었다.

 

 

“야 변백현.”

“나도 이렇게 가격이 많이 나올 줄 몰랐네.”

“야.”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식당가서 뭐 사먹을 걸 그랬다. 그치?”

“백현아.”

“근데 난 너랑 같이 얼굴 마주보면서 밥 먹기 싫어.”

“우리 진짜 헤어지냐?”

 

 

찬열과 백현이 동시에 말을 꺼냈다. 알바생이 계산이 완료된 것을 봉투에 담아드려요? 하고는 답을 듣지도 않고 그것들을 넣었다. 백현이 말이 없었다. 알바생이 내민 체크카드를 빼앗듯 제 주머니에 넣고는 유통기한 잘 보고 먹어. 배탈 나. 그리고, 연락 하지마. 찬열을 밀치고 백현이 편의점 문을 열고 나갔다. 딸랑- 단호하게 헤어짐을 말한 백현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경쾌한 소리가 들렸다. 울룩불룩하게 물건을 담은 편의점 봉투가 찬열의 앞으로 밀어졌다.

 

맨 위에 쌓아져 있던 삼각김밥이 밑으로 떨어지면서 바스락 하는 봉지 특유의 소리를 냈다. 이거 환불 안 돼요? 묻는 찬열의 말에 결제한 카드가 있어야 되는데요. 하고 알바생이 딱딱하게 대답했다. 찬열이 망설임 없이 등을 돌려 딸랑, 소리를 내는 편의점 문을 열었다. 문 밖으로 몸을 뺀 찬열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약국 쪽으로, 총총거리는 백현의 모습이 작게 보였다. 카운터 앞에 선 알바생이 그런 찬열을 멀뚱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찬열이 다시 편의점 안으로 들어와 계산대 위의 봉투를 뒤적였다. 참치마요.

 

 

“저 이거 별로 안 좋아하는 거라서. 다른 맛으로 바꿔 갈게요.”

“그러세요.”

“수고하세요.”

 

 

삼각김밥 코너로 가 숯불갈비라고 쓰여져 있는, 딱 하나 남아있는 삼각김밥과 그것을 바꾸어 봉지에 넣고는 딸랑, 소리를 내는 문을 열고 나왔다. 알바생 불쌍하다. 저 소리 되게 거슬리는데. 찬열이 휘적휘적 걸어서 지하로 연결되어 있는 지하철 입구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계단에 앉아 편의점 로고가 박혀있는 봉지에서 그것들을 꺼내 먹는 찬열의 옆에 이미 쓰레기가 많이 쌓여 있었다. 배가 부를법도 한데 찬열은 먹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아, 그만 먹을까. 이따가 경수한테 뭐 얻어 먹게. 빈대같은 생각이 들면서도 옆에 있는 봉지에 담긴 것을 지금 다 먹어치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숯불갈빈가 뭔가 고기는 무슨 새 모이주듯 들어있네. 삼각김밥이 아니라 그냥 밥이다, 밥. 꿍얼거리는 찬열의 옆으로 꺅, 하는 소리를 내는 교복을 입고, 여성스럽게 혹은 편하게 옷차림을 한 여자들이 계단을 올랐다. 뭐야. 찬열이 그곳을 올려다 보았다.

 

딱 보기에도 연예인 ㅡ그중에서도 아이돌 포스를 풍기는 네 명의 남자들─ 주위를 여자들이 에워쌌다. 연예인인가. 찬열이 입에 담긴 것을 우적우적 씹으며 아무런 감흥 없이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촬영 하시면 안됩니다. 정중해보이려고 애쓰는 목소리가 여자들에게 말했고 그것은 곧 무시당했다. 여자들에 둘러쌓인 남자들은 천천히, 아무말 없이 찬열의 시야에서 멀어졌다. 방송국 로고 스티커가 붙여져 있는 유리문을 열고 들어간 남자들이 밖에선 내내 무표정으로 있다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손을 흔들어 보이는 여자들에게 따라서 손을 흔들거나, 손가락으로 총모양을 만들어서 날리는 모양을 해 보이거나, 하트를 만들거나 하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 저게 뭐 하는 짓이래. 윽, 완전 오글.

 

 

“누군지 못 알아보시나봐요.”

“예?”

 

 

말을 걸어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린 찬열이 손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있는 남자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어! 하고 놀라는 소리를 냈다. 왜요. 아메리카노를 든 남자가 웃었다.

 

 

“김종인이에요?”

“어? 어떻게 난 알아봐요?”

“못 알아보면 병신이죠!”

 

 

격한 찬열의 언어에 종인이 웃었다. 하하. 과거에서 살다 오셨나? 요즘에 진짜 인기 많은 애들은 쟤넨데. 요즘엔 쟤네 못 알아보면 병신 소리 들어요. 종인이 머쓱하게 말했다. 알아봐주니까 고맙긴 하네요. 덧붙인 종인의 말에 벌떡 일어난 찬열이 편의점 봉지 안에 담긴 것을 뒤적거렸다. 거의 다 먹어 치워서 얼마 남지 않은 것에서 그나마 제일 좋은 것을 주고 싶은데. 가격이 제일 비쌌던 도시락은 제일 처음으로 먹어 치워서 줄만한 것이 샌드위치 밖에 없었다. 햄 에그 샌드위치. 말 그대로 으깬 계란과 몇 장의 햄만 끼워져 있는 것이었다. 연예인 입맛은 비쌀텐데 생각한 찬열은 그것을 종인에게 건네기 민망해서 종인에게 등만 보인채 한참을 망설였다. 종인이 그런 찬열이 뭐 하는지 신기하다는 듯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저기, 제가 드릴 건 없고 이거…”

“식사하시던 거 아니에요? 받기 좀 미안한데.”

“아뇨, 거의 다 먹었어요. 이거 혼자 다 먹어서.”

 

 

찬열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의 종인이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하고 웃으면서 찬열이 손에 쥐어 준 샌드위치를 흔들어 보였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면서 계단을 올라가던 종인이 혹시나 하는 생각에 뒤를 돌아 찬열을 다시 쳐다보았다. 혹시, 내 팬이에요?

 

 

“아니요, 저는 아니고 제 친구가 엄청 팬이에요.”

“아, 여자?”

“아뇨. 남자.”

 

 

남자요? 신기하네, 나 좋아하는 남자 팬은 별로 없었는데. 종인이 신기하단 듯 웃었다. 그 팬 이름이 어떻게 돼요, 싸인이라도 해줘야겠네. 하는 종인에게 찬열이 답했다. 지금 같이 일하고 있지 않아요?

 

 

“예?”

“어? 걔가 팬이라고 말 안 해요?”

“누군데요?”

“도경수요.”

“아, 도 작가… 도 작가라고요?”

 

 

네. 도경수. 고등학교 다닐 때 그쪽 그룹 엄청 좋아해서 보러다닌답시고 학교도 여러 번 빠지고 그랬는데. 특히 종인 씨 제일 좋아했어요. 걔 지금 동창들 사이에서 성공한 팬이예요. 찬열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고 종인은 진심으로 놀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도 작가가요? 하고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은 종인이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면서 픽 웃다가 사레가 들린 듯 쿨럭거렸다. 어이구, 조심하시지. 걱정하는 찬열의 소리가 들리자 허리를 굽히고 기침을 하던 종인이 괜찮다는 듯 샌드위치를 받아든 손을 내저었다. 근데. 여기서 뭐해요?

 

 

“친구 기다려요. 저녁에 만나기로 해서.”

“아. 앞에 와서 나 진행하는 거 구경하지 그래요?”

“예?”

“아, 아니다. 지금 스튜디오 앞에 팬들 너무 많겠다.”

“예? 아, 예.”

 

 

저는 그럼 방송하러 가야 돼서. 나중에 도작가 따라서 스튜디오 한 번 놀러와요. 종인이 찬열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찬열이 얼떨떨한 듯 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친숙한 얼굴을 배웅한다는 듯 종인에게 덩달아 손을 흔들었다. 아닌게 아니라, 찬열에게 종인은 친숙한 얼굴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경수에게 어제 김종인이 어쨌고, 김종인이 뭐라고 인터뷰 했고, 걔 이상형은 뭐고, 하는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그리고는 사진과 영상을 찬열에게 들이밀어 주입되듯 얼굴을 외우고 노래를 듣고 가사를 외우고 경수가 따라해 보라는 응원법을 몇 번 같이 따라서 연습도 해 주었다.

 

그래, 교복을 입었던 때. 경수랑, 나랑, 백현이랑. 셋이 같은 교복을 입었던 때. 백현이가 우릴 보고 한심한 놈들이라고 혀를 쯧쯧 찼었는데. 찬열의 생각이 백현에게 닿았다. 아까 약국 쪽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겨 멀어지던 백현의 모습이 눈 앞에 다시 보였다.

 

아 씨. 생각나면 어쩔거야. 헤어졌는데. 나도 쫀심이 있지. 걔 말고 뭐 만날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고. 오래 사귀기만 했지 별로 만나지도 않았고. 만나봤자 한 것도 별로 없는데 뭐. …… 바꿔서 생각하면 해 준 게 없네. 아. 씨부럴.

 

 

 

 

 

 

 

 

 

 

 

하나 둘 셋, 안녕하세요 원 보이즈입니다. 우렁찬 남자의 목소리들이 부스 안을 꽉 채웠다. 오픈 스튜디오 밖에서 카메라를 그들의 모습을 담으며, 내부에서 외부로 스피커를 타고 들려오는 목소리에 반응하는 아이돌 그룹의 팬들을 보고 경수가 웃었다. 나도 저랬던 때가 있었는데.

 

요즘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원 보이즈. 모시기 정말 힘들었습니다. 자, 우리 파인데이 청취자 여러분들께 멋지게 자기소개 돌아가면서 해주실까요? 종인이 능숙하게 진행을 했다. 안녕하세요 원 보이즈 리더, 크리스입니다. 안녕하세요, 원 보이즈 메인보컬, 루한입니다. 안녕하세요, 원 보이즈의 댄스담당 레이입니다. 원 보이즈 막내, 산책을 좋아하고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쿵푸판다 타오입니다. 멤버들의 자기소개가 끝나자 꺅, 하는 소리가 스튜디오 엔지니어실에 작게 스며들었다.

 

마주보는 이들의 얼굴에서 빛이 난다며, 정말 잘 생겼다고 아이돌 그룹을 칭찬하는 종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경수가 조심스럽게 스튜디오 방음문을 열고 들어갔다. 경수에게 눈짓을 해 보이는 종인의 옆에 가서 수정된 대본의 내용과 문자로 받을 사연의 주제를 알려주는 것에 동그라미를 치면서 작은 글씨로 메모를 해가며 설명을 해주었다. 종인은 빠르게 쓰여지는 경수의 글씨를 주시하면서 아이돌 그룹과의 인터뷰를 이어나갔다. 네 명의 멤버가 모두 한 몸, 하나라는 뜻을 담았다는 팀명에 루한이 저는 십이지장이예요, 하며 우스갯소리를 하자 하하 웃는 종인의 소리가 경수의 귀에 가깝게 들렸다. 경수가 설명을 마저 적고 스튜디오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종인이 경수의 손을 잡았다. 평소엔 없던 돌발행동에 경수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짓고 돌아보자 종인이 웃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고갯짓을 살짝 해보이더니 곧 경수의 손을 놓아주었다.

 

경수가 스튜디오 밖을 나오고 민석이 손을 들어 사인을 알렸다. 노래 듣고 올게요. 종인의 멘트를 마지막으로 마이크가 잠시 내려졌다. 2부가 시작되기 전에 경수는 사연이 올라오고 있는 것을 확인하며 그것들을 복사해서 디제이가 볼 수 있도록 메모장에 옮겼다. 경수가 정신없이 빠르게 올라오는 활자들 중에서 눈에 보이는 아무것이나 가져다가 복사해놓았고, 동시에 스튜디오 안에서는 종인이 타자를 쳐 경수에게 무언가 하고픈 말을 썼다.

 

 

도 작가 그렇게 안 봤는데 음흉하네요.

 

 

 

 

 

 

 

 

 

 

 


도작가가 음흉하다니?

음흉한건 난데;

 

저번에 올린 1편은 부득이하게 삭제하고 새로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비음 아니고 비옴입니다. 잘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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