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T127 - 롤러코스터 (Heartbreaker)
롤러코스터
봄밭
야, 너 오늘 시간있냐.
있는데 왜.
그냥 놀러가자고.
…갑자기?
왜, 안 돼?
아니, 가자.
오늘도 휘말렸다. 원체 약속이라는 걸 일찍부터 잡아본 적이 없는지라 오늘도 그렇게 긍정의 대답을 해버렸다. 그러니까 오늘도 휘말린거다. 고로 나는 오늘도 너에게 졌다.
너는 종례가 끝나기도 전부터 가방을 맨 체 이리 갔다 저리 갔다하며 부산스럽게 행동했다. 오늘은 왠지 기분이 좋아보이는 너를 흐뭇하게 바라보다가도 혹시 다른 애가 내 멍청한 얼굴을 보기라도 했을까 싶어 금세 표정을 굳힌다. 가끔 난 내 자신이 불안하다. 그 애 앞에서 이렇게 티나게 웃으면 어떡하지. 아니야, 너는 둔하니까 내 감정 쯤은 눈치채지 못할거다. 그렇겠지. 그럴거야. 그럼 언제까지 그럴건데?
그래. 까놓고 말해보자면 너에게 들키는 것쯤은 무서울 것도 없다. 그야 너와 난 코를 흘리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남여가 함께 겪지 않을 만한 일들도 함께 겪고는 했으니까 말이다. 그런 너에게 들키는 건 나에게 아무런 타격을 주지 않는다. 그저 내가 걱정하는 건, 그렇게 너를 오래 알고 지냈음에도 난 여전히 너를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네가 어떤 애인지부터 시작해서 네가 어떤 걸 좋아하고 싫어하는지까지. 그런 사소한 것들은 당연히 알아야 하는데 어째서 너는 그런 것들조차 매번 달라져서 내가 짐작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거야. 그러니 너에게 들키는 건 문제 축에도 들지 않는다고. 그 다음부터가 문제인거지.
이동혁, 가자.
잠깐만, 너 또 교복 제대로 안 챙기고 가지.
아, 이제 알았으면 됐네. 가자.
뭐가 그렇게 급해. 천천히 가, 천천히.
알겠어. 그러니까 빨리 가자.
2차전이다. 뭐가 그렇게 신이 난건지 평소보다 두 배는 하이텐션인 것 같았다. 오랜만에 놀아서 그런가. 아니면, 혹시 상대가 나라서? 에이.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 네 손에 팔이 잡혀 끌려간다. 그럼 난 그 손을 내치지도 못하고 바보같이 끌려간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또 네 페이스에 별 수를 쓰지 못하고 말려들어간다. 2차전은 무슨, 나의 처참한 패배다. 역시 얘한테 당해낼 수는 없나보다. 너에게 끌려가면서도 슬금슬금 올라가는 입꼬리는 이미 답이 없다는 걸 의미하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네가 문제가 아니라 역시 내가 문제인 거겠지.
왜 이렇게 신났어. 내가 모르는 사이에 좋은 일이라도 있었냐?
아니. 그냥 오늘은 기분이 좋아.
그럼 그렇지. 내가 뭘 바래….
어, 이동혁. 저거 봐. 나 저거 해보고 싶어.
뽑기? 저거 유행 지난지가 언젠데 이제 와서,
대박, 스폰지밥이다.
잠깐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에 너는 또 재밌는 것을 발견하고 나는 안중에도 없는 듯 곧장 그 곳으로 뛰어간다. 평소에는 지나가면서 한 번만 해보자고 해도 들어주지도 않더니. 난 정말 너라는 애를, 조금 과장해서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겠다.
신이 난 너의 뒷모습에서도 매력이 퍼졌다. 눈에 콩깍지가 씌이면 그렇게 위험하다고 하던데 내가 딱 그런 꼴이다. 네 주변에 비눗방울이 퐁퐁 날아다니는 것 같은 환영을 벌써 606번째 겪는 중이니 말 다 했지. 이런 효과는 대체 왜 아른거리는 거야, 난. 누가 혼자있는 너에게 눈길이라도 줄까 싶어 생각하기를 멈추고 너의 옆으로 뛰어갔다. 너는 뽑기 기계의 투명한 창을 두 손으로 짚어 노란색, 분홍색의 솜뭉치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너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럴 수 밖에. 매일 봐도 항상 다른 네 매력에 어쩔 도리없이 빠져드는 건 패배자인 나니까. 오늘도 예쁜 네 옆모습을 구경하는 건 하루 중 12시간 이상도 거뜬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인형을 보는 그 눈빛을 나한테 비춰줄 생각은 없는 거냐고.
너 동전있어?
인형뽑기 처음 해보세요? 지폐 넣고 하면 돼. 어차피 한 판에 바로 못 뽑으니까.
왜? 너 그 말 책임질 수 있어?
당연하지. 내가 이래봬도 뽑기 선수야.
그래. 그럼 내기하자.
무슨 내기야, 또.
이동혁, 자신없어?
…콜. 하자. 그럼 이긴 사람이 뭐하는 건데?
음, 글쎄. 진 사람이 이긴 사람 소원 들어주기 하자.
너무 단순한데.
그냥 해, 할 것도 없는데. 그럼 내가 한 판만에 저 스폰지밥 뽑으면 네가 내 소원 들어주는 거다?
실컷 해봐라. 돈 날렸다고 나중에 울지말고.
의기양양하게 외치는 네 모습에 사실 조금은 불안하지만 그런 모습도 예뻐서인지 미워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난 느낌이 딱히 좋지 않은게 왠지 내가 질 것만 같았다. 워낙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애라 어쩌면 이 내기는 은연 중에 내가 지는 걸 알고 하는 내기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은 없다. 내가 지든 말든 네가 좋으면 된거니까, 뭐.
너는 처음하는 사람답지 않게 능숙하게 조이스틱을 움직였다. 그리고 기계의 앞 면과 옆 면을 번갈아 보며 위치를 재고는 이내 됐다는 듯한 표정으로 버튼을 꾹 눌렀다. 그리고 기계가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노란 솜뭉치는 허공으로 떴고 예상한 것처럼 우당탕 소리와 함께 너는 허리를 숙여 뽑혀나온 인형을 손에 들어 보였다. 뿌듯함이 가득 묻어난 네 표정에 담시 당황했다가도 너털웃음을 흘리며 내가 졌다는 표시로 두 손을 들었다. 그런 내 모습에 너는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박수를 쳐가며 웃어대다 얼이 나가있는 나를 또 다시 끌어당겼다.
나 배고파.
그래, 그럴 때 됐네. 오늘은 뭐 먹을래?
음…. 오늘은 너 먹고 싶은 거 먹자.
까다로운 친구 맞춰주는 게 제일 힘든데.
맞을래?
장난이야, 장난. 오늘은 따뜻한 게 좋지 않냐? 우동 어때!
그래, 가자. 앞장 서.
오늘따라 네가 좀 이상하다. 그렇게 느낄만도 한 게 사실 난 여태껏 네가 그날 그날 먹고 싶은 것을 맞추는 것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너는 매번 원하는 것이 달랐고 나는 그 패턴을 파악하지 못하는 게 이미 일상이 됐다. 여전히 너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싱글벙글, 네 품에 안겨있는 스폰지밥의 표정 못지 않게 밝은 얼굴이였다. 정말이지 나는, 널 알면 알수록 더 이해할 수가 없다.
벙벙한 얼굴로 하루종일 내게 끌려다니기도 해가 지고 나서야 끝이 났다. 당연한 수순처럼 나는 네 옆에서 나란히 걸으며 너를 너의 집까지 바래다주는 길이다. 아까보다는 조금 가라앉은 얼굴로, 어떻게 보면 조금은 긴장된 듯 굳은 얼굴이 되어 걷는 너를 말없이 바라보다 너의 집 옆 골목 가로등 아래에 너를 세웠다. 빛 아래에서 보이는 너의 얼굴은 당황한 표정이 서려있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너의 당당함과는 거리가 먼 표정에 되려 당황한 건 내가 되버렸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너는 하루종일 나를 바보처럼 만들고 있었다.
너.
어?
무슨 일 있지.
…아, 아니. 아무 일도 없는데.
입으로는 아무 일도 없다고 뱉으면서 도저히 네 표정은 펴지질 않았다. 대체 뭐야.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건 맞는 것 같은데. 혹시 고민이라도 있나? 나한테 할 말이 있는 거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뭘까. 하고 싶은 얘기는 바로 바로 내게 해주는 너였는데 이렇게 망설이는 이유는, …설마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생긴건가? 하루종일 밝은 표정이였던 것도 혹시, 그 사람을 생각해서? 이번에는 3차전일 것이다. 꼬리를 물어가는 내 생각은 멈추질 않고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음에도 나는 네 표정 하나에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다. 안 되겠다. 가만히 있다가 너를 놓칠 수는 없다.
저기, 이동혁. 나 너한테 할 말 있,
아니, 내가 먼저 말할게.
….
나 사실은 너 상대하는 거 되게 힘들어. 이랬다 저랬다, 좋았다 싫었다. 너는 어디로 튈지 몰라서 계속 나를 불안하게 만들고 네가 기분이 좋아보여서 긴장이 풀리면 또 내 눈 앞에서 열 걸음씩은 달아나있고. 꼭 나한테 장난이라도 치는 것 같아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어떨 때는.
….
그런데 이상하지, 나는 그런 네가 좋아.
….
어떤 날은 지루하지 않아서 좋고, 어떤 날은 특별한 것 같은 너한테 끌려.
…이동혁.
이제는 바보처럼 바라만 보는 거 말고 너를 더 알고 싶어. 어려워도 괜찮아, 상관없어. 나는 네 옆에서 천천히 너에게 날 맞춰갈게. 그러니까 나한테 널 알려줘. 너라면 뭐든 좋을 것 같아, 난.
….
그래서, …어떤 것 같아, 너랑 나?
그동안의 내 마음을 단 번에 쏟아버렸다. 시원하지만 급 긴장이 몰려와 가슴을 짚고 숨을 몰아쉬는데 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세상에, 부담이 됐을 널 생각하지 못하고 무작정 쏟아부어버린 내 자신이 바보같았다. 고개를 들고 그런 내 스스로를 자책하는데 밑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네가 허리까지 숙여가며 크게 웃었다. 뭐지, 대체. 너는 왜 이런 상황에서조차 나를 어쩔 줄 모르게 만드는 걸까.
…야, 이동혁. 너 바보야?
…뭐?
이거나 받아. 내가 이거 주려고 그동안 썼던 시간과 노력만 생각하면… 아, 이럴 줄 알았으면 그렇게 노력하는 것도 아니였는데. 너나 나나 진짜 바보다. 바보 멍청이들. 난 먼저 간다!
여태껏 네 품에 들려있던 노란 인형을 내게 던지듯이 안겨주고는 알 수 없는 말을 뱉은 체 그대로 너의 집으로 뛰어갔다. 뭐냐고, 대체 이 상황은. 순식간에 지나간 일에 나는 제대로 된 생각이 되질 않았다. 그 자리에 굳어 한참을 서있다 멍하니 네가 뱉은 말을 곱씹으며 너와는 반대 방향인 나의 집으로 걸어가는데 손에서 짧은 진동이 느껴졌다. 그대로 손을 들어 폰 화면을 보는데,
[ 어떤 것 같기는, 나도 너 좋다고 바보야. ]
여전히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없었나보다.
나는 결국 다시 몸을 돌려 반대 방향으로 뛰어갔다. 얼굴은 한껏 바보같이 웃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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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봄밭입니다
이게 무슨 망작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올려봅니다
단편이라 다음 편은 없어요 기다릴 분도 없을 것 같지만 하하하
그럼 다들 즐거운 엔덕질 하세요^0^!
+) 오타 지적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