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제가 할게요.”
처음에는 내 이름을 부르는 우지호쌤에게 굉장히 당황스럽다는 눈빛을 쏴댔지만, 역시 보통이 아닌 우지호쌤(확신)은 생글거리며 그런 내 눈빛을 무시해버렸다. 매니저에 임시반장... 이 겹경사에 나는 당장이라도 일어나서 자진모리 장단으로 장구를 두들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말 적응이란게 무섭게도, 엄청나게 착잡함과 동시에 나를 그래... 인생 한방이지... 하면서 이 상황을 이해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정재현은 나를 임시반장으로 임명하고싶다는 우지호쌤에게 김여주 혼자는 힘들지 않겠냐는 듯이 말했고, 팔랑귀 우지호쌤은 그걸 적극반영했다. 배구부끼리 똘똘 뭉쳐라~ 좀 친해져라~ 하는 그런 뉘앙스였다.
그런데 더 심각한 건, 그나마 교실 들어와서 얘기 몇 마디라도 나눠 본 정재현도 아닌, 극히 초면에 말 한마디 안 나눠 본 무뚝뚝 최강 보스일 것 같은 간지주장 김동영이 임시부반장으로 임명됐다는 것이었다.
HOT-FRESH-SPIKE !
1교시가 끝나자마자 우지호쌤은 나와 김동영에게 교무실로 따라오라고 하고선 먼저 나가버렸다. 나에게는 그 파워 어색한 기류를 견뎌낼 항마력 같은 건 차마 없었고... 덕분에 나는 졸지에 선생님의 뒤를 따르는 김동영의 뒤를 따르는 김여주가 되어버렸다. 그래 차라리 이렇게 뒤에서... 마치 나 혼자 복도를 걷는 것 처럼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사실 속으로 아무리 학기초라도 이렇게 어색한 적이 있었던가 싶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계속 애써 침착한 척을 하고있는데, 김동영은 원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성격인건지(사실 뒷모습밖에 안보임) 나처럼 어색해하는 그런 낌새같은건 보이지 않았다. 느긋하게 걷는 김동영의 발걸음에 맞춰 김동영의 발자국을 따라 나도 그대로 따라 걷는데,
“김여주 뭐해. 옆으로 와.”
갑자기 김동영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앞으로 내딛던 왼발이 움찔하면서 하마터면 웃긴 꼴이 될 뻔했다. 김여주 뭐해. 옆으로 와. 차분하지만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꺼낸 김동영은 대답이 없는 나를, 그 훨씬 큰 키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려다본다, 라기 보다는 기다리고 있었다. 라는 게 더 어울리는 표현인 것 같기도 했다. 김동영은 예정에 없던 일이 터졌음에 정말로 당황스러워 하며 어...? 응...? 을 연발하는 나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또는 내 대답을.
“어어... 그래.”
“내가 되게 어색한가보네 넌.”
“응? 아니아니, 어색한 게 아니라... 그냥 초면이다보니까 그런거지 뭐...!”
“초면 아닌데?”
“...엉? 아니 초면... 나 오늘 너 처음 본... 아닌가..”
“나 너랑 동창인데. 만양중학교.”
“......아~ 그치그치, 어쩐지 낯이 익더라!!(핵당황) 나랑 중학교때 같은 반이었던가..?!”
“아니, 한번도 붙은 적 없었어.”
“어 그렇지!!! 나도 같은 반은 아니라고 생각했어ㅎ 아 근데 복도 지나다니다가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닐 걸. 우리 계속 다른 층이었는데.”
“아...... 미안... 사실 진짜 기억이 안 나.. 미안..”
약간 찌질하게 대답을 하곤 김동영 옆으로 슬쩍 가서 걸었다. 세상 어색... 누가 봐도 이거 지금 나 협박당해서 옆에서 억지로 걷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일 것 같은데...?
김동영과 나는 계속해서 느릿한 걸음으로 걸어갔다. 다행히도 김동영이 먼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근데 세상에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얘랑 중학교 동창이라고? 심지어 나는 중학교 때 김동영을 스쳐라도 본 기억이 하나도 없었다. 중학교 때 내가 아무리 교실에만 짱박혀있었다고 해도 그렇게 볼 일이 없던가...! 김동영 본인이 동창이었다고 굳이 말까지 꺼낸 마당에, 솔직히 나는 이 감사한 토크 주제를 금세 끊어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내 기억에 너는 없다만... 뭔가 기억이라도 나는 척 우리 같은 반이었냐(물론 아님), 복도에서 본 것 같다(전혀 아님) 같은 말들을 투척했지만, 단호박 같은 김동영은 정말 뭐라고 변명조차 할 수 없게 몰아세우는 듯한 그런 대답만을 내놨다. 그래 미안하다. 내가 너는 기억이 안난다, 그래. 솔직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내 말에, 김동영은 ‘미안하긴.’ 이라며 아주 젠틀하게 대답했고. ‘너 맨날 교실에만 있었잖아.’ 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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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교무실 앞까지 도착했고, 김동영은 내게 먼저 들어가라며 문을 열어줬다. 우지호쌤은 나에게 종이 한 장을 주며 반 아이들이 각각 희망하는 상담 날짜와 시간을 조사해오라고 했다. 내 옆에 있던 김동영은 반 아이들의 아침자습과 야간자기주도학습 희망 신청서를 받아오라는 임무를 받았다. 아니, 이런 종이쪼가리들 줄거면 그냥 한명만 부르시는 건 어떤가요...^^ 종이를 받은 김동영이 우지호쌤에게 인사를 하고 먼저 교무실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우지호쌤한테 인사를 막 하려는데, 우지호쌤이 갑자기 내 이름을 불렀다. 여주야. 이따가 학교 끝나고 선생님이 우리 반 아이들 전화번호 정리한 종이 줄테니까 집에 가서 카톡방 좀 대신 만들어 줄 수 있을까? / 네. 그럴게요. 긍정의 대답을 하고선 우지호쌤에게 인사를 한 후, 교무실 문을 열고 걸어나왔다. 아까 김동영이랑 겨우 말문도 텄는데 아쉽다, 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던 차, ‘오래 걸렸네.’ 라고 말하는 차분한 음성이 들려왔다. 고개를 들었다.
“같이 가려고.. 기다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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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냐 여주~”
“어어 왔다~”
“야, 근데 어째 둘이 사이좋게 같이 잘 갔다가 돌아왔네?ㅋㅋ”
“득츠르...ㅎ 그럼 교무실 갔다오는데 뭐 치고박고 싸우기라도 하랴?^^”
김동영이 교무실 앞에서 날 기다린 건 정말 상상밖의 일이었다. 드디어 3학년 만에 처음으로 공학의 묘미를 느껴봤다. 교실에 도착해서 나는 정수정의 옆에, 김동영은 정재현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정수정은 내가 의자에 앉자마자 바로 또 날 놀리려는 태세에 돌입했다. 왠지 바로 내 대각선에 앉은 김동영의 눈치가 보이는 바람에 정수정의 짖궂은 말을 딱 잘라 끊어버리자 치... 하고 아쉬워하던 정수정이 내가 들고온 종이를 보고는 그건 뭔데? 라고 곧바로 물었다. 이거? 상담 희망 날짜랑 시간 조사해오라고 받은 거. 내 대답을 들은 정수정은 내 책상 위에 올려져있던 종이를 제 쪽으로 가져가 펜과 핸드폰을 꺼내더니 프린트 된 자신의 이름 옆에 ‘3월 6일 월요일 방과후’ 라고 적었다. 이런 건 선점해 줘야 제맛이지~^^ 너 빨리 쓰고 주변부터 돌면 되겠다. 너 언제 할건데? 정수정이 다다다 말을 쏟아냈다. 음 글쎄, 난... 그럼 수요...
“아, 수요일은 안 돼 여주야!”
“왜...?(니가 왜...?)”
“우리 수요일마다 오전 오후 훈련 되게 빡빡하게 하거든. 우리 매니저니까 우리랑 함께 해야한다고 생각해^^ 그렇지 주장?”
“그렇지.”
“야 어째 사기조작단 같은데...?”
“음, 우린 어차피 특기생 전형으로 갈 것 같으니까 상담도 일찍 끝날 거야 아마.”
“그럼 너네 언제 할거야? 빨리 적고 종이 돌리게.”
“펜 줘봐, 내가 적을게. 다음주 금요일 방과후로.”
“어 다음주 금요일은 방과후에 훈련 없는거야?”
“아니, 있지.”
“근데 왜.....?”
“그날 우리 회식 딸거야.”
“....어떻게..........?”
“나 주장이잖아.(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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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 나 체육관 가야 되지...”
“어이구 우리 바보 김여주... 매니저 일은 그렇게 하지 마라...”
“죽인다 수정이...ㅎㅎ”
“응 미안. 안그래도 나 올해부터 훈련 바로 간다. 굿럭 여주~^^”
훈련 얘기가 나온 김에 이제서야 말하는 거지만, 정수정은 테니스 선수이다. 그것도 준국가대표 급의. 전국체전에서 수상경력도 많은 기대주이다. 올해부터는 체대를 목표로 실적을 더 올리겠다며 뒷심을 발휘한다고 학교가 파하면 바로 훈련을 간다는 것 같다. 어쩜 내 주변은 다들 체육인들 뿐인걸까... 외로운 인생...^^ 정신없는 첫 날이 지나고, 종례까지 파한 후 그렇게 정수정이 가방을 들쳐메고 교실을 나가자, 김동영이 나에게 와서 말을 걸었다.
“김여주.”
“응??”
“체육관 이제 가?”
“응!”
“.....어..음....”
“..왜?...혹시 나 뭐 늦기라도 한건가....?..”
“어? 아니... 그게 아니라,”
“같이, 같이 갈까.....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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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US 1 ; 민망... 부끄... “아, 저기.” “어?” “나 궁금한 거 있는데 물어봐도 돼?” “물어 봐.” “그 정재현 있잖아.” “걔는 왜?” “정재현 걔도 우리 중이었던가? 내 이름 알고 있던데 난 걔 몰랐거든. 원래 배구부랑 응원부는 서로 다 알아?” “아니, 우리 중학교 아니었어. 배구부랑 응원부랑 다 아는 것도 아니고.” “아 그렇구나... 난 배구부 애들 한 명도 모르거든. 응원부일 때 회식도 맨날 빼고 사실 춤 끝나면 경기 안보고 바로 집 갔어서.” “알아.” “안다고??” “응. 너 응원부였을 때 우리 사이에서 인기 엄청 많았는데.” “......나 놀리는거야...?” “아니 진짜 너 엄청 좋아한다니까?” “...” “...” “...” “...애들이.” “...어~ 그치! 알지!! 다 알아들었어!!!!ㅎ(민망)” “.........(부끄)” HOT-FRESH-SPIKE ! -BONUS 2 ; 뜻밖의 시꾸릿또-★ “어 여주야!!! 선생님이 한참 찾았다 너!! 이거 아까 선생님이 학교 끝날때 준다고 했던 거 자!” “네?? 아 맞다.. 까먹었어요 죄송해요!!” “아냐 그럴 수도 있지! 선생님도 자주 깜빡깜빡 하는 걸.. 동영이랑 둘이 체육관 가는거니?” “아 뭐.. 네!” “으음 그렇구나 주장이랑 매니저랑 나란히 보기 좋다~ 그럼 위에 올라가서 보자? 선생님은 먼저 갈게~” ## “....저기 근데 쌤 배구부에 되게 관심 많은 것 같지 않아? 오늘 체육관도 오시려나봐...!” “?당연하지 배구부 담당선생님인데.” “..?????(깊은 깨달음) 아... 아 그랬구나.......^^ 와 진짜.. 근무환경 최고다 배구부...ㅎㅎ”+보너스 ; 동영이와 여주의 동행
암호닉
농구장
바나나
헤이헤이헤이
도령
COMMENT ; 세상에 오늘 편 보면 그냥 남주가 동영이다 싶네요... 아직 인물 등장도 다 안했는데...ㅎ... 아직 남주는 미정이에요... 미정이라구욧 동영이 아닐걸요 아마?ㅎ 이번 편 완전 제 충동심이 다 했는데여? 절대 오해하지 마시죠..?(오열) 다음 편에 인물 다 등장 예정입니다! 아 근데 동영이 남주처럼 써놓으니까 굉장히 좋네요...ㅋㅋㅋㅋㅋ쓰면서 행복했다 이번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