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내에서의 전정국은 여전히 내게 죽고 못사는 것처럼 굴기 때문에 아이들의 괴롭힘이나 멸시 같은 건 없다. 그 애들의 눈에는 아직도 내가 파티에서 아무나 붙잡고 입술을 부비던 미친년으로 보일 테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전정국 아닌 다른 사람에까지 바닥 취급을 받는 건 좀 서러우니까.
"여주야."
"네, 아버지."
그리고 새아버지는 나를 바닥 취급하는 데 탁월한 재주를 지닌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전정국보다 상냥하지만 민윤기처럼 잔인하게 나를 무시하고 경멸한다. 바쁘게 반찬을 내려놓던 엄마의 표정이 굳어진다. 전정국은 태연하게 반찬을 집어먹는다.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새아버지의 부름에 공손이 대답한다. 식탁 아래로 내려 모은 두 손이 바르르 떨린다. 새아버지의 도수 높은 안경도 가릴 수 없는 혐오가 온몸에 쏟아진다. 더러운 오물을 뒤집어쓴 기분이다. 전정국은 좋아하지도 않는 김치를 집어먹으며 다리를 달달 떨기 시작한다. 엄마는 이미 상다리가 휘어질 것 같은 차림에도 불구하고 종종대며 부엌으로 향한다. 새아버지는 자꾸만 뜸을 들인다. 나는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원래 이 세계에는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하는 일이 좀 있고 그렇다."
"...... (알아요, 아버지.)
"그래서 말인데..."
"말씀하세요. (씨발, 더럽게 뜸들이네.)"
"정략결혼이라고 들어는 봤을 거다."
"......"
"아직 나이도 어리고 하니까, 일단은 약혼만..."
엄마가 들고 오던 냄비를 떨어뜨린다. 뭉개진 무 조각들과 초점을 잃은 동태의 눈이 굴러떨어진다. 전정국은 젓가락을 내팽개친다. 철퍽, 쨍그랑. 날카로운 파열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쟤는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무조건 젓가락부터 던지고 보나. 민윤기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저녁식사에서 젓가락을 내팽개치며 자기 좆대로 굴던 전정국이 떠오르자 씁쓰르한 게 입안에 차오른다. 엄마는 놀랐고 전정국은 화가 났지만 새아버지는 묵묵히 내 대답을 기다리는 척한다. 제 친아들과 양아들까지 이용해가며 내 위치를 깨닫게 해줄 정도로 나를 증오하지만 필요할 때는 맘껏 이용해먹겠다는 속셈이 역겨울 정도로 적나라하다.
"그걸..."
"김여주."
"저보고 하라고요?"
"야."
"... 부탁한다. 착하고 좋은 집안이야."
"당연히 해야죠."
"김여주!"
전정국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나는 극심한 데자뷰를 느끼며 새아버지가 만족할 정도로 환히 웃어보인다.
내게 일방적으로 통보한 소식이었으니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은 당연했다. 새아버지는 내게 다정해졌고 (정말 민윤기보다 더한 나쁜 새끼) 전정국은 내게 말을 걸지 않기 시작했다. 어쩌다 집안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는 날이면 항상 제 방의 물건을 때려부쉈다. 집에서 잠잠하다 싶은 날이면 어김없이 학교에서 말썽을 피웠다. 그나마 갖춰 입던 교복을 벗어던지고 선생의 얼굴에 담배 연기를 뿜었고 수리 중인 화장실에서 여자들과 몰래 키스하다 물벼락을 맞기도 했다. 아이들은 전정국과 나의 사이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엄마는 한 술 더 떠 한밤중마다 내게 찾아와 우는 걸 다시 시작했다. 나는 잠이 덜 깨 피곤한 얼굴로 어깨를 들먹이는 엄마를 위로했다. 엄마, 당신의 두 번째 결혼도 당신 딸의 결혼도 실패한 것 같지만 어쨌거나 울지 마세요. 난 괜찮으니까.
"여주야."
"술 마셨네."
"마셨어. 너무 좆같아서."
"뭐가 그렇게 좆같아?"
전정국이 술을 마시는 날은 종종 있었지만 내 방으로 찾아왔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누가 죽기라도 한 모양인지 온통 검은 차림을 하고 들어온 전정국은 다짜고짜 내 침대에 쓰러진다. 살짝 벌린 입술에서는 죽어버린 아버지가 마시던 싸구려 소주 대신 고급스러운 양주 냄새가 풍긴다. 나는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정국아."
"응."
"술냄새 나."
"미안."
"미안하면 빨리 꺼져."
"싫어."
벌겋게 열이 오른 얼굴로 말대꾸는 따박따박 하는 꼴이 가관이다. 전정국의 뺨을 두어 번 쳤다. 살짝 손댄 것뿐인데 또 아프다며 욕지거리를 중얼거린다.
"네 방 가서 자."
"싫어."
"귀찮게 굴지 말라고."
"너 내일이 무슨 날인지 알아?"
전정국이 몸을 훅 일으킨다. 멀기만 했던 거리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좁혀졌다. 술냄새 섞인 더운 숨이 집요하게 목덜미 언저리를 맴돈다. 전정국의 풀린 눈과 마주한다. 독하기만 하던 술냄새가 끔찍하게도 달아지기 시작한다.
"알아."
"......"
"나 상견례 하는 날이잖아."
"......"
"모를 줄 알았어, 정국아?"
"......"
"나 약혼할 거야. 네 아빠가 시키는 대로."
"... 아."
전정국이 언뜻 감탄사 비슷한 소리를 낸다. 입술이 멍청하게 벌어진다. 뚜렷한 미간이 형편없이 구겨졌다. 문득 나는 그 입술에 미친 듯이 키스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나는..."
"......"
"네가 그렇게 하면... 생각했어."
"......"
"그래서..."
신들린 타이밍 덕분에 결국 뒷말은 듣지 못한 채 곯아떨어진 전정국의 옆에 누웠다. 담배와 술냄새가 지독하게 섞였음에도 전정국 본연의 향은 지치지도 않고 내 코를 괴롭힌다. 새우처럼 둥글게 몸을 구부리고 눈을 감은 채로 일어나자마자 이불을 빨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밤새 술을 마시고 신나게 탈선한 제 아들과 한 침대에서 자고 일어나 쾨쾨한 냄새가 나는 나를 새아버지가 어떻게 생각할지 상상해본다. 아침에 눈을 뜨자 전정국은 언제 있었냐는 듯 깨끗이 사라져 있었다.
고작 집안의 어른들끼리 만나 인사하는 자리에 예식장 규모의 홀을 빌리다니. 나는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게 닦여진 대리석 바닥을 밟으며 혀를 찼다. 바싹 틀어올린 머리는 자꾸만 당겨져 쓰라리고, 어울리지도 않는 높은 구두는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불안하게 삐걱거린다. 영 허술해 보이는 나와 달리 엄마는 오늘 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태어난 듯 완벽하다. 머리, 얼굴, 옷과 심지어 하는 행동마저도 여느 재벌집 안주인들의 것을 연상시킨다. 나는 밤마다 아빠에게 머리채를 쥐어잡힌 채로 울던 엄마를 생각하다가 이내 잊어버린다. 지금은 모든 게 달라졌다. 바닥에서 지상으로, 다시 바닥에서 다시 지상으로. 나는 다시 한 번 이번에는 멍청하게 나서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홀을 지나 딸린 방의 문을 열었다. 내 미래처럼 눈부시게 새하얀 빛이 주인공을 반겼다.
"아유, 이거 죄송해서 어떡하죠."
"뭐 그럴 수도 있는 거죠. 너무 마음 쓰지 마시고 먼저 식사합시다."
새아버지는 인자하게 손을 내젓고, 내 미래 '아버님'이 될 김 회장은 연신 미안하다며 곤란한 웃음을 머금는다. 내 미래 '어머님'이 될 김 회장의 부인은 곁눈질로 엄마와 제 옷의 브랜드를 비교하기 바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좆같은 사실은 말끔하게 머리를 빗어 올리고 정장을 빼입은 전정국과 민윤기가 각각 내 왼쪽과 오른쪽에 앉아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까지 사이 좋은 남매의 모습을 연출하고 싶었나. 전정국은 숙취가 가시기 않았는지 연신 찌푸린 얼굴로 이마를 만지작대고 민윤기는 말없이 스테이크를 썬다. 나는 그의 뻔뻔하고 하얀 낯짝에 와인을 부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참지 못한다. 분명 새아버지의 협박에 억지로 끌려왔겠지. 더럽고 역겹고 가식적이다.
"여주라고 했지?"
"아, 네. 회장님."
"애가 아주 예쁘고 참하게 생겼습니다."
김 회장은 어디에 이런 딸을 감춰두었냐며 속에도 없는 말을 잘도 내뱉었고 새아버지는 흐뭇한 미소로 은근슬쩍 내 칭찬을 곁들이기 시작했다.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입꼬리를 간신히 끌어올린다. 김 회장에게 한 번, 그의 부인에게 한 번. 포크로 샐러리를 마구 짓이기던 전정국의 시선이 흘깃 스쳐간다. 민윤기는 여전히 비어 있는 앞자리에 시선을 고정한 채 기계적으로 스테이크만 입에 집어넣는다.
"이쯤하면 올 때가 되었는데. 아. 저기 오네."
"늦어서 죄송합니다."
김 회장은 태생부터 다른 나를 더 이상 그 고귀한 입에 담고 싶지 않았는지 열리는 문에 반색하며 돌아본다. 모두의 고개가 문 앞에 서 있는 소년에게 쏠린다. 한껏 요란하고 튀는 색으로 물들인 머리에 집에서 입던 후드, 늘어지는 트레이닝 바지를 입은 꼴에 김 회장이 기함하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너, 지금 어른들 다 계신 자리에...!"
"미안, 아빠."
소년은 금방이라도 뒷목을 부여잡을 것 같은 김 회장에게 능청스레 웃어보이고는 성큼성큼 걸어와 자리에 앉는다. 비어 있던 민윤기의 앞자리가 채워진다. 소년은 막무가내로 민윤기가 먹고 있던 스테이크를 가져가 입에 넣는다. 표정 관리에 실패한 민윤기는 떨떠름한 얼굴로 새로운 스테이크를 주문한다. 전정국은 이미 다 짓이겨진 샐러리를 계속해서 찔러댄다. 나는 스테이크를 우겨넣는 그가 굉장히 낯익다고 생각한다. 어디서 많이 봤는데. 순간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어렴풋한 기억에 이내 입이 떡 벌어진다.
"아."
"......"
"너, 그 때 그..."
"기억하네? 난 처음부터 알아봤는데."
"......"
"어쨌든 오랜만이야, 자기야."
역시나 전정국이 젓가락 대신 포크를 집어던지는 것으로 식사는 마무리되었다.
암호닉과 서브 남주에 관한 사담 |
암호닉은 따로 신청하지 않으셔도 되고 새로운 분들만 최신 화에서 신청해주세요! 반겨주셔서 너무 감사했읍니다 허허 그렇지만 내용 개막장이네요 서브 놀라셨죠? 태형이가 누군지 눈치채신 분? 시즌 1 파티 편에서 정국이의 질투를 유발하기 위해 키스했던 남자가 바로 태형입니다 놀라셨죠? 저만 놀랍다고요? 알겠읍니다 그럼 20000 ♥ 거짓말 / 러빈 / 땅위 / 김말이야 / 동글아미 / 뿌이뿌이 / 쿠크바사삭 / 뉴이 / 사쿠라 / 김 / 수저 / 비비탄 / 천상계 / 스케치 / 가짓 / 바게트 / 융봄 / 진진츄 / 국산비누 / 앙 / 끌로에 / 짐고 / 바다코끼리 / 사랑해 / 달슈가 / 희48 / 대추차 / 과수밭 / 빛나무 / 염치 / 단잠 / 청포도 / 꾸꾸쓰 / 예화 / 코코링 / 혜향 / 침침이 / 구루메 / 태태 / 0428 / 미남과야수 / 얏빠리윤기 / 메리진 / 착한공 / B612 / 찡긋 / 오빠아니자나여 / 짐니어무니 / 미미미 / 델리만쥬 / 슝아 / 인연 / 윤맞봄 / 우유 / 피치 / 딸기 / 해말 / 예삐침뀽 / 태썸 / 나무야나무 / 뿡쁑 / 아모 / 삐삐걸즈 / 슙달 / 잘자네아무것도모르고 / 그레이스 / 너지 / 김까닥 / 봄아 / 지은쟁이 / 토끼 / 덮빱 / 보라보석바 / 갤3 / 감나무밑입쩍상 / 버츠비자몽 / 한우밭 / 시금치 / 전정국 / 습기 / ㄱㅎㅅ / ♥알루미늉기♥ / 모찌섹시 / 까꾹 / 핑쿠판댜 / 첫사랑 / 가위바위보 / 마일 / 망개구름 / 망개꽃 / 뀨쮸 / daydream / 유뇽뇽 / 망개와나 / 기억 / 다람이덕 / ♡구기 / 보보 / 0831 / 코코넛워터 / 자몽사탕 / 0501 / 딸기우유 / 우봄봄 / 전봇대 / 데스페 / 도로시 / 봄소서 / 붕어 / 다홍빛 / 레몬사탕 / 새벽 / 금잔화 / 벌스 / 짜근 / 너지 / 정꾸 / 냥꽁 / 무네큥 / 흑설탕융기 / 1225 / 탄둥이 / 코튼캔디 / 구리부리 / 헤몬 / 침침이 / 진진자라 / 두부 / 정국어 / 빛세 / 꾹푸린 / 1978 / 청멍 / 우유메 / 은아 / 흥흥 / 설한화 / 알루미슙 / 만두짱 / 그럴거야 / 쀼뀨쀼 / 이땡글 / 물결잉 / 보노보노 / 방울이 / 룰루랄라 / 초코틴틴 / 망개침침 / 정국왕자 / 자몽탍 / 꾸꾸뀨 / 빈반 / 봄플 / 1158 / 봉석김 / 우와탄 / 뷔스티에 / 비트윈티 / 알파카 / 롸아미 / 핀아란 / 1101 / 핑쿠판댜 / 캔디 / lunatic / 윱 / 쿠마몬 / 윤치명 / 룰렛 / 김다정오빠 / 0404 / 찜찜 / 섞진 / 눈꽃이 / 슈가나라 / 국 / 보라도리 / 밍글밍글 / 빅닉태 / 꾹푸린 / 숭아복 / 물망초 / 나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