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소년과 어떻게 아는 사이냐며 닦달하기 바빴지만 그 면전에 대고 당신 아들의 질투 유발을 위해 이름도 모르고 입술을 부빈 사이라고 대답할 수는 없었으므로 그냥 학교에서 오다가다 몇 번 봤다고 둘러댔다. 어쨌든 틀린 말은 아니니까. 이름은 김태형이라고 했다. 굉장히 시원하다는 느낌을 주는 이름이었다. 철옹성 같은 전정국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 어쨌든 민윤기는 식사가 끝나자마자 잘 먹었다는 의례적인 인사와 함께 쥐도새도 모르게 꽁무니를 내뺐고 전정국은 밤늦게까지 들어오지 않았으며 김태형은 의미 모를 윙크를 남기고 떠났다. 잠결에 유리창이 깨지고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를 얼핏 들은 것도 같다.
"아, 자기."
"꺼져라."
"또 보네?"
김태형은 교실에서든 옥상에서든 급식실에서든 화장실에서든 나를 아는 체하기 바빴다. 제 약혼을 알리지 못해 안달난 사람 같았다. 전정국의 갈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꾸역꾸역 우리 둘 사이에 끼어들어 밥을 먹었으며, 매점에서 먹을거리들을 한가득 사들고 와 내게 안겼다. 김태형과 내가 약혼했다는 사실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귀가 얇은 아이들은 풍문으로 떠돌던 전정국과 내가 이렇고 저렇다는 소문을 금세 잊고 새로운 화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자기야."
"응, 자기야."
그리고 나는 그런 김태형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역할을 해내고 있는 중이었다. 낯간지러운 호칭을 서로에게 잘도 불러대고 웃기지 않은 일에도 재밌다며 깔깔 웃는다. 무슨 속셈인지는 몰라도 김태형은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다. 허구한 날 인상을 찌푸리고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전정국이나 항상 무표정 아니면 입꼬리만 올려 웃던 민윤기와 달리 김태형과 둘이 있으면 편했다. 전정국과 같은 차를 타교 하교하는 날이 드물어지기 시작했다. 김태형과 밤늦게까지 옥상에서 시시덕거리는 일이 잦아졌다.
"피워 볼래?"
타는 듯한 노을을 마주하고 김태형에게 담배를 배웠다. 콜록대는 내게 고개를 튼 김태형이 담뱃불을 옮겨붙였다. 김태형과 내 입가에서 차례로 작은 노을들이 번쩍거렸다.
"자기야."
"왜."
"원래 인생은 한방이야."
"......"
"그러니까, 걍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얌전히 살고 결혼하고. 그렇게 적당히 살자."
"......"
"나는 네가 어떻게 살았든 그런 거 다 상관 없으니까."
그 날 나는 땅거미가 지는 옥상에서 김태형과 두 번째 첫키스를 했다. 담뱃재가 섞인 입술은 매캐하고 지독했지만 따뜻했다.
요새 전정국은 하루라도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이 없다. 새아버지는 아예 그를 방관하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날마다 무언가를 때려부수는데도 아이러니하게 깔끔한 전정국의 방. 김태형과 붙어있는 시간이 많으니 당연히 전정국과 얼굴을 마주할 기회는 줄어들었다. 피곤한 몸으로 신발을 벗고 들어서자마자 술냄새가 훅 끼친다. 더 이상 때려부술 물건이 없는지 얌전히 소파에 늘어져 있던 전정국과 눈이 마주친다.
"정국아."
"요새 늦네, 계속."
"술 작작 마셔."
"지금 나 걱정해?"
전정국이 비척이며 소파에서 일어난다. 한껏 바람 빠진 웃음을 흘린다. 그 웃음이 나사라도 하나 빠진 것처럼 슬프고 또 공허하다. 얼마나 들이부었는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발이 꼬여 휘청거린다. 힘겹게 내 앞에 선 전정국이 고개를 들고 나를 노려본다.
"일찍 들어와."
"뭔 상관이야."
나는 전에 없이 차갑게 대답한다. 가뜩이나 초점 없는 전정국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어렴풋 눈물이 차오른 것도 같다. 자꾸만 제가 피해자처럼 구는 전정국에 신물이 났다. 당장이라도 전정국의 멱살을 잡고 지금 이 모든 것도 네가 자초한 일이라고, 그러니 그딴 눈으로 쳐다보지 말라고 마구 따져대고 싶었지만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한 번만 더 집안에서 소란을 피운다면 요새 김태형과 자주 만나니 참아주는 눈치지만 여전히 나를 증오하는 새아버지의 눈밖에 나게 될 것이 분명했다. 통로를 가로막고 서 있는 전정국을 요령껏 피해 방에 들어가려고 몸을 숙였다. 아. 나지막한 탄성과 함께 몸이 돌아갔다. 무시무시한 악력으로 내 손을 잡아챈 전정국이 순식간에 벽으로 나를 밀어붙였다. 흔히 말하는 벽치기를 이런 식으로 그것도 전정국에게 당하게 될 줄은 몰랐다. 방심한 순간 치고 들어오는 능력은 여전하다.
"뭐 해? 놔."
"김태형이랑 뭐 했어?"
"놓으라고, 좀."
"키스했어?"
"......"
"했구나."
전정국은 기막히다는 듯 코웃음을 한 번 치고는 내 얼굴에 제 얼굴을 뚫어버릴 기세로 가져다 댄다. 미간을 찌푸리며 시선을 피해보지만 그 때마다 남은 한 손으로 족족 내 얼굴을 잡아올려주는 덕분에 꼼짝없이 전정국과 얼굴을 마주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공기조차도 통하지 않을 정도로 입술이 가까워졌다. 달싹이는 입술에서 양주 냄새가 아닌 싸구려 소주 냄새가 났다. 입술이 맞닿은 건 말릴 새도 없는 순식간이었다. 강압적으로 나올 전정국을 예상하고 몸부림치려 했으나 웬일인지 그저 조용히 입술만 맞대고 있는 전정국에 김이 빠졌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전정국이 희미하게 움직이더니 이내 내 입술을 톡톡 두드려왔다. 차마 글로 적을 수 없는 간절함과 애절함, 그런 것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나는 그 파도에 무력하게 쓸려들어간다. 저항하지 않는 내가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고개를 틀던 전정국이 슬그머니 눈을 뜬다. 피식 웃더니 주문처럼 웅얼거린다. 불명확한 발음들이 이상하게도 가슴을 쿡쿡 찌른다.
"김태형한테 가서 말해."
"......"
"나는 내 이복남매랑 키스한다고."
"......"
"걔보다 내가 훨씬 먼저였다고."
"......"
"가서 얘기해, 김여주..."
울음 섞인 뒷말을 삼킨 채 입술을 부딪혀오는 전정국을 받아들였다. 여태껏 다른 여자들과 입술을 부비고 다니던 게 헛질은 아니었는지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키스를 잘한다. 눈앞에서 마구 불꽃이 튀었다. 전정국은 힘에 부치는지 벽을 잡고 있던 손을 내 허리로 옮겨 감싸안는다. 나는 그에 대답하듯 힘없이 늘어트리고 있던 손으로 전정국의 뒷목을 잡아 끌어당긴다. 내 입안에 남아 있던 담배 냄새와 전정국의 술냄새가 역하게 섞인다. 김태형과 했던 두 번의 키스 때는 느껴보지 못했던 끈적한 절망. 숨이 차서 어깨를 두드리면 정말 잠깐의 틈만 주고는 다시 밀고 들어온다. 입술이 부르틀 정도로 물고 당긴다. 나는 이제 전정국이 나를 싫어하는지 내가 전정국을 싫어하는지, 그것도 아니면 서로가 서로를 싫어하는지 알 수 없다.
암호닉과 사담 |
저번 편 댓글을 보니 정국이가 자꾸 뭘 던진다고 그러시던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국아 이번엔 포크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많이 집어던지네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유잼이었읍니다. 아 맞다 우가 말고 또 뭐 보고 싶은 글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그럼 20000 암호닉은 최신 화에서 신청 + 중복 및 누락 확인 부탁드려요. ♥ 거짓말 / 러빈 / 땅위 / 김말이야 / 동글아미 / 뿌이뿌이 / 쿠크바사삭 / 뉴이 / 사쿠라 / 김 / 수저 / 비비탄 / 천상계 / 스케치 / 가짓 / 바게트 / 융봄 / 진진츄 / 국산비누 / 앙 / 끌로에 / 짐고 / 바다코끼리 / 사랑해 / 달슈가 / 희48 / 대추차 / 과수밭 / 빛나무 / 염치 / 단잠 / 청포도 / 꾸꾸쓰 / 예화 / 코코링 / 혜향 / 침침이 / 구루메 / 태태 / 0428 / 미남과야수 / 얏빠리윤기 / 메리진 / 착한공 / B612 / 찡긋 / 오빠아니자나여 / 짐니어무니 / 미미미 / 델리만쥬 / 슝아 / 인연 / 윤맞봄 / 우유 / 피치 / 딸기 / 해말 / 예삐침뀽 / 태썸 / 나무야나무 / 뿡쁑 / 아모 / 삐삐걸즈 / 슙달 / 잘자네아무것도모르고 / 그레이스 / 너지 / 김까닥 / 봄아 / 지은쟁이 / 토끼 / 덮빱 / 보라보석바 / 갤3 / 감나무밑입쩍상 / 버츠비자몽 / 한우밭 / 시금치 / 전정국 / 습기 / ㄱㅎㅅ / ♥알루미늉기♥ / 모찌섹시 / 까꾹 / 핑쿠판댜 / 첫사랑 / 가위바위보 / 마일 / 망개구름 / 망개꽃 / 뀨쮸 / daydream / 유뇽뇽 / 망개와나 / 기억 / 다람이덕 / ♡구기 / 보보 / 0831 / 코코넛워터 / 자몽사탕 / 0501 / 딸기우유 / 우봄봄 / 전봇대 / 데스페 / 도로시 / 봄소서 / 붕어 / 다홍빛 / 레몬사탕 / 새벽 / 금잔화 / 벌스 / 짜근 / 너지 / 정꾸 / 냥꽁 / 무네큥 / 흑설탕융기 / 1225 / 탄둥이 / 코튼캔디 / 구리부리 / 헤몬 / 침침이 / 진진자라 / 두부 / 정국어 / 빛세 / 꾹푸린 / 1978 / 청멍 / 우유메 / 은아 / 흥흥 / 설한화 / 알루미슙 / 만두짱 / 그럴거야 / 쀼뀨쀼 / 이땡글 / 물결잉 / 보노보노 / 방울이 / 룰루랄라 / 초코틴틴 / 망개침침 / 정국왕자 / 자몽탍 / 꾸꾸뀨 / 빈반 / 봄플 / 1158 / 봉석김 / 우와탄 / 뷔스티에 / 비트윈티 / 알파카 / 롸아미 / 핀아란 / 1101 / 핑쿠판댜 / 캔디 / lunatic / 윱 / 쿠마몬 / 윤치명 / 룰렛 / 김다정오빠 / 0404 / 찜찜 / 섞진 / 눈꽃이 / 슈가나라 / 국 / 보라도리 / 밍글밍글 / 빅닉태 / 꾹푸린 / 숭아복 / 물망초 / 나로 / 우아한가족사 / 밍죠 / 토마토마 / 밍밍한 설탕 / 여지 / 뿡빵빵 / 가야금 / 대머리독수리♥ / 홉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