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아빠 박지훈
요즘 수정이가 과 모임이다 동아리 활동이다 레포트쓰랴 할 것이 많아서─박지훈은 나때문에 과 모임에 가지않는다고 들었다 가기만 하면 번호를 물어본다는 소문이─ 만나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만났다.─오랜만이라고 해봤자 이틀인가 사흘이지만 오랜만은 오랜만이다─ 보자마자 하는 말이 너 살쪘다? 였다. 아니, 살이 쪘다니. 나 그렇게 많이 안 먹었는데? 아, 박지훈이 날마다 도시락을 싸와서 많이 먹긴했구나… 부정하고 싶지만, 그 말도 맞는 말 같아서 고개를 끄덕이자, 수정이는 어이없다는 표정 반, 부럽다는 표정 반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이어, '그래도 잘 돼서 다행이다.' 라고 말을 덧붙였다. 그 말에도 고개를 끄덕이자, 수정이는 정훈이를 보고싶다며 보러가면 안되냐고 졸랐다. 아니, 정훈이를 보고싶어하는 사람들이 왜이렇게 많은거야? 정훈이가 무슨 월드스타도 아니고 말이야.─물론 박지훈을 닮아 잘생기긴 했지만─ 수정이가 자꾸 어린애처럼 떼 아닌 떼를 쓰길래 한숨을 쉬다 갑자기 박지훈이 한 말이 생각나서 수정이에게 말했다. 박지훈이… 집을 합치재.
" 뭐? 대박. "
" 일단 고개 끄덕이기는 했는데, 그게 잘 한건지 모르겠어. "
" 넌 참 고민도 많다. 아, 물론 고민이 필요할때도 있긴한데. 정훈이 아빠도 만났겠다, 보아하니 너도 박지훈 좋아하는거 같은데 완전 땡큐베리감사지. "
항상 드는 생각이지만, 수정이는 나와 성격이 정말 다르다. 땡큐베리감사라는 이상한 말을 쓰지 않나, 나는 잘 쓰지 않는 욕을 수정이는 그렇게 많이 쓴다. 그래서 옆에서 우리 둘이 같이 다니는 것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뭐 어때. 내가 좋다는데. 아무튼, 수정이의 말이 꽤 그럴싸해보였다. 수정이에게는 장점이자 단점이있다. 남을 잘 홀린다는거. 여우처럼 남자를 잘 꼬신다는게 아니라, 듣기 좋은 말로 남을 유혹한달까? 즉, 이렇게 걱정은 하고 있지만, 박지훈과 집을 합친 다는 것에 관심을 두고있다는 말이다. 누가? 내가.
사실, 정훈이에게도 물어봤다. 아무리 6살짜리 꼬맹이라고 하지만, 정훈이는 또래에 비해 눈치도 빨랐고, 정훈이에게도 아빠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때문에, 정훈이의 의견은 어떠한지 물어봤다. 그때, 난 정훈이의 그런 표정을 처음 보았다. 마치, 엄마 그런걸 왜 물어봐? 당연히 같이 살아야 되는 거 아니야? 라는 표정. 뭔가 어이없다는 듯 한 쪽 입꼬리를 올리며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아니, 정말 내가 박지훈과 같이 살고싶어서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일까. 에이, 설마.
수정이와 일주일에 딱 한 번 든 겹친 강의가 끝나자, 거의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그 전에 수정이는 오늘 같이 있어주고 싶지만, 소개팅이 잡혀있다며 울상 아닌 울상을 짓고는 먼저 간다고 했다─사람들이 다 나갈때까지 기지개도 켜고, 머리가 산발이 돼있는것같아, 묶어있던 머리를 풀고, 다시 머리를 묶었다. 그리고 나도 뒤이어 자리에서 일어나 강의실을 나오자, 나를 기다리고 있는─그냥 왠지 그럴것같았다 우연은 아닐테니까─ 박지훈의 뒷모습이 보였다.
" 머리 묶었네. "
" 어? 아, 어어. "
" 둘 다 예쁘긴 한데, 난 푼 게 더 좋아. "
박지훈에게 다가가 어깨를 툭툭 치자, 기다리느라 지쳤다는 표정을 지었던 박지훈이,─표정을 보지 않아도 뒷모습에서 뿜어져나오는 아우라가 그래보였다─ 나를 보더니 활짝 웃고는 같이 발을 맞춰걸었다. 머리 묶었네. 나를 빤히 쳐다보길래 왜 보나 싶어 물어보고싶었지만, 곧 시선을 거둘것같아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머리 묶었네. 그래, 난 오늘 오랜만에 머리를 묶었다. 그냥, 뭔가 머리를 묶으면 훤히 다 보이는 목선과 얼굴형이 부끄러웠다.─부끄럽다는 표현이 좀 뭐하긴 하지만 마땅히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그런데도 오늘 머리를 묶은 이유는─절대 머리를 안 감았다거나 그런건 아니다─ 박지훈에게 항상 똑같은 모습만 보여줘서 오늘은 조금 다른 모습도 보여주고싶었다. 나를 계속 쳐다보던 박지훈은 내 머리를 묶어주고 있던 머리끈을 풀었다.─사실, 살살 묶어서 푼 느낌이 나지는 않았는데, 등에 머리카락이 닿은 걸 보고 머리가 풀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둘 다 예쁘긴 한데, 난 푼 게 더 좋아. 살살 묶어서 그런지, 다행히 머리를 묶은 자국은 남지 않았다.─만약 남았다면, 박지훈에게 왜 풀었냐고 화를 냈을거 같기도 했다─
" 자, 수업도 끝났겠다 이제 같이 가볼까? "
" 어디를 같이 가? "
" 내새끼 데리러. "
" … 정훈이 어린이집을 같이 가겠다고? "
마치 왜, 집도 합칠건데 안 될게 뭐가있어. 이런 표정인 박지훈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좋은 뜻도 아니고, 나쁜 뜻도 아닌 그런 웃음. 정훈이… 박지훈이 정훈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환경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게될까. 걱정이 앞섰다. 방금 나온 웃음은 아마 이 걱정이 섞여있는게 아닌가 싶다.
나는, 아빠가 없다. 엄마와 아빠가 성격 차이로 내가 초등학교 5학년때 이혼하시고, 나는 엄마 편에 서려고했다. 그러자, 아빠는 자신에게 나를 제외한 자식이 없어 처음에는 양육권 문제로 엄마와 많이 다투셨다. 난 그 가운데에 끼여 몇 달 간은 이도저도 안 되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그걸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장에 문제가 생겨 병원을 많이 다녔다. 저번에도 말했듯이, 지금 엄마는 원래 내가 살던 곳에 혼자 계시고, 나는 학교 문제로 이곳에 와있는데, 그러다보니 돈도 많이 들고, 무엇이든지 어떻게든 줄여야되는 상황이었다. 정훈이가 여섯 살이면 유치원을 가야될 나이인데도, 어린이집보다는 유치원이 비싸 유치원을 갈 형편이 되지 않았다. 유아교육학과를 온 이유도 그것때문이다. 다른 경영이나, 신문방송학과같은 대학보다는 아무래도 취업이 꽤 되는 축에 속하기 때문에. 학교 다니랴, 정훈이 보랴. 알바할 시간도 없고, 결론은 그래서 박지훈의 부모님이 아시는게 두렵다는 것이다. 저번에도 말했듯이, 요약해서 말하자면, 박지훈은 잘 산다. 잘 사는 축에 속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대놓고 잘산다. 그런데, 그런 박지훈이 정훈이의 교육상황과, 우리집의 경제상황을 알게된다면. 반응이 어떨지 나도 잘 모르겠다.
" 나중에. "
" 왜 항상 나중인데. "
" 조금만 … 더 준비가 되면. "
" 무슨 준비. "
" … … "
몇 분 동안 박지훈에게 아직은 안 된다고, 나중에 같이 가자고 말해도 이번만큼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정말 정훈이를 보고싶어서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 건지 싶었다. 급기야 박지훈의 말투가 딱딱해지기 시작했다. 뭐 숨기는거라도 있냐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아니, 숨기는게 아니라 이런 모습 보이기 싫어서 그런건데. 만약, 내가 이런 안 좋은 상황을 보였다가 박지훈이 동정을 하기라도하면. 난 그 동정이 너무 싫을 것 같았다. 아니,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싫다. 저번에 마트에서 박지훈을 만났을 때, 박지훈이 우리집 앞까지 온 적이 있다. 그때 물론 우리집 주변을 봤겠지. 우리집 주변은 박지훈의 집 주변과는 다르게 뭐가 되게 없다. 그냥 말그대로 마트. 좀 걸어나가야 번화가가 나왔다.
"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다 말해줬으면 좋겠어. "
" … 응. "
" 나는 나도 너가 필요하고, 너도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 "
" … … "
" 서로를 믿고 의지했으면 좋겠어. 그게 부부잖아. "
다행히, 박지훈의 딱딱하게 굳어진 표정이 풀리고, 내게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다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 박지훈의 심정도 이해를 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박지훈은 말을 이었다. 나는 나도 너가 필요하고, 너도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 맞다. 나도 박지훈이 필요한 것이 맞다. 박지훈이 부재했을때까지만해도, 느끼지 못했었는데, 아니, 없어도 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박지훈이 이렇게 내 옆에 있으니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이런 마음을 겉으로는 내색하지 못해 가만히 있자, 박지훈은 또 말을 덧붙였다. 서로를 믿고 의지했으면 좋겠어. 그게 부부잖아. 그 말은, 박지훈은 우리를 부부라고 생각하고 있던 걸까? 내가 항상 바랐던 관계의 정의. 그것을 지금 박지훈이 해준 것일까? 박지훈에게 묻고싶었다. 우린 지금 부부냐고.
결국에는, 박지훈이 이겼다. 나는 박지훈이 마지막에 한 말에 못이겨 박지훈을 데리고 정훈이에게 가고있는 중이다. 박지훈과 십 몇 분 동안 대치하고 있어 조금 늦어진것같아 저번처럼 정훈이가 또 혼자 나와있을까봐 걱정이 됐다. 만약, 정훈이가 혼자 나와있다면, 박지훈은 나에게 왜 애가 혼자 나와있냐고 물어볼테니까. 그럼 나는 원래 이 어린이집이 그래. 라고 하면 박지훈은 화가 나겠지. 아… 생각만해도 끔찍했다. 혼자 별 걱정을 다하니, 어느새 어린이집 근처에 도착했다. 설마했는데, 정말 설마했는데, 정훈이가 혼자 가방을 메고 나와있었다.
" 정훈아! "
박지훈은 정훈이가 혼자 있는 것을 보고 정훈이에게로 뛰어갔다. 박지훈이 뛰자, 덩달아 나도 같이 뛰었다. 박지훈은 혼자 있는 정훈이를 제 품에 꼭 안아주더니, 저보다 몇 발자국 조금 늦게 도착한 내가 제 옆에 서자 나를 쳐다보았다. 정훈이 왜 혼자 나와있어? 그 말에 나는 아까 이곳을 오면서 혼자 생각했던 말을 쉽게 꺼내지 못했다. 왜 여기 혼자 나와있냐고. 한껏 상기된 박지훈의 말투에 대답을 했다. … 좀 늦게오면 선생님들이 문 닫고 먼저 가. 내 말에 박지훈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화가 난듯 얼굴이 새빨개졌다.
" 지금 이런 곳에 애를… 후, 이런 곳에 애를 보낸 거야? "
" … … "
" 이래서 같이 가면 안 된다고 했구나. "
고등학교 1학년때를 통틀어서 박지훈이 이렇게 화난 적은 처음보았다. 박지훈이 화난 모습을 보이니, 정훈이도 무섭다는 듯 울먹거리려고 했다. 나는 이런 상황이 매번 반복되면서, 어린이집을 옮기지못한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정훈이에게 미안해서 땅만 쳐다보았다. 박지훈은 내게 소리질러서 미안했던건지, 아님 여기서 말을 한다면 화가 섞여나올것이 뻔하기때문에 말을 하지 않은 건지, 아무튼 말을 하지 않았다.
" 이름아. "
" … 어? "
" 우리집으로 가자. "
" … … "
" 원래 내가 너희집으로 가려고 했는데, 너랑 정훈이가 우리집에서 사는게 내 마음이 편할거같아. "
한동안 말이 없던 박지훈이 입을 열었다. 우리집으로 가자. 지금 잠깐 가자는 것인지 아님, 내가 너희집으로 들어가야한다는 것인지 중의적으로 해석돼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그 중의적 표현에 대답이라도 해주는 듯, 박지훈이 말했다. 원래 내가 너희집으로 가려고 했는데, 너랑 정훈이가 우리집에서 사는게 내 마음이 편할거같아. 그 말을 듣고 나는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지금 대답을 할 수 있는 그런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자, 박지훈은 한 손으로는 정훈이를 안고, 남은 손으로는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너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 이름아.
──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냐면,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박지훈은 박지훈의 집으로, 나는 내 집으로 들어왔는데, 몇 시간 뒤 쯤에 박지훈에게 전화가 와 받았더니, 다짜고짜 우리집이 몇 호냐고 물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202호라고 말을 해주었더니, 전화를 끊고 몇 분 지나지않아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박지훈이었다. 집 안까지 들어온 적은 아직 없기에 당황스러워 문을 열어야되나 말아야되나 고민하고 있는데, 박지훈이 계속 벨을 눌렀다.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었고, 박지훈 뒤로 보이는 것은 아주 큰 캐리어였다. 불안해서 미칠 거같아, 이름아. 라고 말하더니, 챙길 게 무엇이 있냐고 물었다. 예측하지 못한 말에 당황해, 정훈이 옷이랑 내 옷이라고 말했고,─가전 제품은 처음부터 많이 있지도 않았고, 붙박이식으로 붙어있는 가구라 가지고 갈 필요가 없었다─ 정훈이한테는 장난감도 얼마 없어 정말 챙길것이 별로 없었다. 나는 내 옷과 정훈이의 옷을 챙기면서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박지훈에게 묻고 싶었지만, 바빠보이는 박지훈에 물어보지 못했다.
지금 박지훈의 집을 갈 것이라고는 예상을 했다. 짐을 다 챙기고, 자고 있던 정훈이는 내가 업고, 큰 캐리어는 박지훈이 끌었다. 1층으로 내려갔더니, 차가 있었다. 박지훈이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내 버튼을 누르자, 문이 열렸다. 도대체 차는 언제 있었던거지? 라는 생각도 못하고 정훈이가 깰까 차 뒷자리에 올라탔다.
" 어디가는거야? "
" 우리집. "
" … … "
" 오늘은 늦었으니까 내일 너가 살던 집 처분하자. 아, 구청도 가고. "
" … 구청은 왜? "
" 혼인신고서쓰러. "
+ 헐 여러분 어제 제 글이 초록글이 되었대요... 알림 떴을때 바로볼걸... 바로 안 봐서 확인도 못하고 그냥 알림만 보고..
어느새 1화 구독자수가 천 명이 넘었습니다!... 이게 다 여러분들 덕분인........
여러분들의 성원에 아픈 몸을 이끌고 이렇게 적어내렸습니다,,,
댓글보면 막 이 글이 한줄기의 빛이다 이러시는 분들 계시는데
아시죠? 제 인생에 한줄기의 빛은 바로 여러분이라는거,,쿡,,,☆
사랑해요!!! 댓글도 여러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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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글보고 결혼하고싶어졌어요ㅠㅠ 넘.' 이라고 적어주신 분 사실 저두요
이 글 쓰면서 결혼이 너무 하고싶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