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아 에어컨 좀 틀어봐." "어." 이젠 축구부 동방이 나의 아지트가 될 판이였다. 오늘도 다니엘을 피해 성우 오빠가 있는 축 동방에서 각자 낡아빠진 쇼파에 누워 농땡이를 피우고 있었을까, 벌컥 열린 문에 방금 시킨 짜장면이 벌써 왔나 고개를 들었는데. "......" "......" 문 앞엔 거의 2주 만에 처음보는 다니엘이 서 있었다. 너무 놀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게 이런 기분이구나, 느꼈다. 녀석도 내가 여기 있을거란 생각은 못했는지 한참 동안 얼빠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 보더니 곧이어 헛웃음을 지으며 안쪽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나는 급한일이 있어서." 덩달아 당황한 성우 오빠가 급하게 나가는게 문제가 아니였다. 아직도 문 옆에 자리한 벽에 기대서 나를 뚫어저라 쳐다보는 그 얼굴를 마주할 수 없는게 문제였다.
"꿈에도 몰랐네." "......" "여기 숨어 있을 줄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알 수 없이 차오르는 감정에 평소 버릇도 아니던 손톱 옆 살을 뜯기 시작했다.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다니엘은 소리없이 쇼파에 앉아 있는 내게 천천히 다가오더니 이내 바로 앞에 자리한 탁자에 앉아 내 두 손을 한 손으로 덮었다. 하지마. "뭔데." "......" "뭐가 불만인데." "......" "니 아무 말도 안하고 뭐하자는건데 나랑." "......" "평소처럼 재밌게 놀아놓고 바로 다음날에 연락 끊긴거 보고 무슨 생각 했는지 아나?" "......" "아냐고." "......" "것도, 내랑만 끊은거라 카네. 어?" "......" "내 모를 줄 알았나." 녀석의 마지막 말에 순간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알고 있었냐는 내 말에 그렇다고 대답하는 듯한 눈빛이였다. "차라리 욕이라도 하지 그랬어." "뭐?" "한대 치기라도 하지 그랬어." "......" "가시나 지가 뭔데 니한테 그딴 말을 해." "......" "와 그걸 가만히 듣고 있는데 닌." "......" "와 그 가시나한테 내한텐 니가 더 소중할 꺼라고 말 안했는데." "......" "...와 니는 내를 그렇게 못 믿는데." 그때 너는 초등학생 이후 처음으로 내 앞에서 울었다.
PING PONG!
PING PONG!
D
어니부기 마냥 물을 뿜은 여주의 입가를 투박한 손길로 닦아주던 다니엘이 종현에게 장난스레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렸다. "괘안나? 아, 형은 왜 쓸데없는 말을 꺼내가지고." "그럼 형, 지금도 사귀세요?" "아니지 헤어진지 꽤 됐지." "아 그럼 여주 누나 때문에 헤어진거에요?" 저 놈의 주댕이를 진짜. 아직까지 다니엘의 손길을 받고 있던 여주가 여전히 손에 쥐고 있는 뼈다귀를 다시금 우진을 향해 치켜 올렸다. "아이다." "......" "그냥 내가 헤어지고 싶어서 헤어졌지." "......" "그리고 여주 이, 가시나랑 노는게 더 재밌더라고." "그건 인정." 묘한 분위기를 생성하기에 딱 좋은 말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아무렇지도 않는 두 사람과, 익숙한 일인 양 태연하게 식사를 계속 이어가는 형들 속에서 우진은 새삼 여주와 다니엘에게 부러움을 느끼며 홀로 미소를 지었다. "많이 먹었나." "배불러서 짜증 날 지경." 말이 진심인듯 어째 퉁명스러운 표정을 짓는 여주에 다니엘은 헛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작게 쓰다듬었다. "......" "......" 졸리나. ...응. 평소보다 느려지는 여주의 발걸음에 힐끗, 얼굴을 바라보자 거의 눈이 반이나 감겨 있었다. 그럼 뭐, 천천히 가지. 덩달아 느려지는 다니엘의 발걸음을 채운 밤거리엔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녤아." "와, 업어줘?" "너 그때 진짜 나 때문에 헤어진거냐?" "응." 뭐? 순간 커진 눈을 마주한 다니엘은 실 없는 미소를 짓더니 태연하게 눈썹을 들썩였다. "맞다." "너 설마 아직까지 마음 있는데 나 때문에 안 만나는거야?" "......" "...맞구나." "아, 뭐라노." ...장난이 심했나. 어째 급격히 안좋아진 여주의 표정에 어찌 할 줄을 몰라 뒷목을 긁적이던 다니엘이 "...큼." 코를 한 번 찡그리더니 입을 열었다. "좋아한 적 없다." "......" "생각해보니까 아니더라고." "......" "...걍 호감?" 뭐여, 시방 그게. 잔뜩 구겨진체 저를 바라보는 여주의 미간을 엄지로 만지작 거리며 다시 한 번 입이 열렸다. "니랑 있는게 더 재밌는 거면 말 다했지 뭐." "......" "내는 안 좋아했다." 진짜로. 확신했다. "...미친 사람들." 도를 닦아 수행해도 모자랄 판에 더워 죽겠음에도 좋다고, 경기장을 뛰어다니는 강다니엘 외 10명을 바라보던 여주가 관중석 한가운데에 앉아 혀를 끌끌 찼다. "저거 민현 선배 아니야?" "맞는듯." 문득 들리는 지인의 이름에 여주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1학년인지 아직까지 풋풋한 티를 내고있는 여학생 무리가 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역시, 죽지 않았군 황민현. "피지컬 진짜 오진다." 인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던 여주가 뒤이어 들려오는 소리에 미간을 찌푸린체 고개를 돌려 아예 관중석에 자리 잡은 여학생 무리를 바라보았다. "나 어제 다니엘 오빠 번호 땄잖아." 시발 이건 진짜 인생의 수치다 김여주. 다니엘도 따인 번호를 나는 못 따여 보다니, 내가 걸기 쉽게 번호도 '010 - 8765 - 4321' 로 바꿨는데! 왠지 모르게 뒷통수를 거하게 맞은 듯한 기분을 여주는 애써 침착하게 날씨 탓으로 돌렸다. 날씨 더럽게 덥네. "마." "얘 왜이래 더위 먹었냐?" 언제 쥐도 새도 나도 모르게 경기가 끝났는지, 관중석 한가운데에 앉아있는 나를 발견한 성우 오빠와 다니엘이 펜스를 폴짝 폴짝 넘어와 내 앞에 서 있었다. "...어, 끝났어?" 얼빠진 내 모습이 이상한지 요리, 조리. 살펴보던 얼굴이 끝내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끝났다. "뭐고 이건." "...니 빤스." "...아 와 시키지도 않은 짓을." "정렬적인 호피무늬임." 내 말에 소리내어 웃는 성우 오빠 뒤로 황급히 손에서 쇼핑백을 빼앗어 가는 손길에 따라 웃음을 지었다. 참나 부려 먹을땐 언제고. "오빠 안녕하세요." 낯선 목소리에 뒤를 돌자, 동시에 자신에게 박히는 세 쌍의 눈동자 중 당연하게 다니엘의 눈을 맞추는 저 얼굴은 아까 뒤에서 녀석의 번호를 얻었다던 아이였다. "...어, 안녕." 처음보는 녀석의 모습에 의외의 눈을 갖고 바라보자 그런 나를 마주하지 못하고, 뭐 마려운 강아지 마냥 굴던 녀석이 이내 내 어깨에 손을 올려 나를 감싸듯 발걸음을 옮겼다. ...가자. 입술을 꽉 깨물은 녀석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참, 날씨가 사람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와- 이 누나 진짜로 몰랐나 보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억수로 많아요. 억수로." ...일주일간 다니엘을 지켜본 결과, 녀석은 의외로 아는 여자가 많았다. 4일전 다니엘과 동방을 지나가던 도중, 녀석에게 먼저 인사하던 세연이. 국문학과 여신이였다. 또 3일전 같이 학식을 먹다가, 메뉴로 나온 음료를 녀석에게 쿨내나는 척(관심 있는거 다 티남) 던져주고 가던 지현이. 역시 다니엘과 같은 과 현대무용 여신이였다. 또, 2일ㅈ "누나." "...어?" "저기 저, 모자 쓴 애 보이죠?" "저기?" "아이, 거 옆에요." "...어, 보여." "쟤도 방금까지 저한테 형 번호 물어봤거든요." "진짜?" 누나 지금 완전 긴장 타야 돼요. 여기서 돈까스 썰고 있을때가 아니라니까요? 장난끼 가득한 덧니를 보이며 태연하게 돈까스를 우적이는 박우진의 말을 나도 모르게 심각하게 받아드리고 있었나보다. 야, 잠만. 근데 내가 왜 긴장 타야 돼. "다니엘? 인기 많지." 원치 않는 대답에 나도 모르게 인상을 구겼었나, 성우 오빠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너 나 죽이겠다? "남자들 사이에 그런 소리가 있어." "뭔데요." "클럽 갈땐 나, 옹성우." "......" "다니엘." "......" "황민현. 셋 중 하나라도 함께 가라." 오빠는 양심적으로 좀 빼요. 진짜 드러워 죽겠네. 경악에 가득 찬 내 반응에 오히려 날 뛰는건 옹성우였다. 야, 안 믿어? 고개를 저으며 무시하니 곧이어 얌전해 지는 몸이였다. "......" 특, 특. 고요한 적막 속에서 답지 않게 손톱을 깨무니 만화책을 읽던 그 몸이 다시 말을 걸어왔다. 뭐. 또 뭐가 궁금한데. 하여튼 눈치 백단이였다. "...근데." ...걔, 클럽도 다녀요? 이쯤되면 내가 아는 다니엘은 다니엘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다니엘의 이중생활. 넘치는 인기. 또, 김재환은 그랬다. "강다?" "어." "야 걘 슈퍼스타지." ...내가 알고 지낸건 슈팅스타 먹는 녤이였는데. 이유를 알 수 없는 현타에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학교 앞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가방 속에서 휴대폰이 울리고 있는 지는 꿈에도 모른체 "...하여튼간 진짜." 6통 째 받지 않는 전화에 다니엘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헝클였다. 휴대폰은 폼이지 아주. "......" ...해볼까, 말까. 아 어색한데. 눈 앞에 놓여진 번호에 두 개의 자아와 싸우던 다니엘이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발신 버튼을 눌렀다. "......" 어째, 받을 생각 없이 길게 이어지는 컬러링에 지친 다니엘이 안되겠다 하고 포기 할 쯤 건너편에선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니엘아. "...어, 안녕." "......" "...혹시 여주 어딨는지 알 수 있을까." 역시 여주를 제외한 여자들과의 접촉은 익숙할래야 익숙해지지 않았다. ...내가 니 때문에 별 짓을 다한다. 무사히 통화를 끝낸 얼굴이 헛웃음을 지었다. 곧이어 다니엘의 발걸음은 빠르게 학교 앞 정류장으로 향했다. "번호 달라니까요?" "...에?" 벌써 3번째 되묻는 상황이지만 아직도 사태파악이 되지않았다. 저 오늘 화장도 안했어요. 쌩얼이라니까요? 아무말이나 내뱉고 마는 나의 다급함을 남자는 화사한 미소로 덮어버렸다. "그게 쌩얼이에요?" "에?" "귀여운데요." 할렐루야, 하마터면 두 손 들고 외칠 뻔했다. 애써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 당기다가,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아니 저는 솔직히 그 쪽이 제 번호를 왜 묻는지도 모르겠," "반했어요." ...아니, 아직이야. 벌써 넘어가면 안돼 김여주. 작게 심호흡 하는 내 모습을 봤는지 남자는 귀엽다고 웃었다. "...아니, 뭐 정 그러시ㅁ," "김여주." ...어떤 새끼야. 난데없이 우리 사이에(벌써 '우리'라는 호칭v^^v) 끼어드는 불청객의 모습을 확인 차,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을까, 누군지 알아 볼 틈도 없이 나를 끌어 당긴 그 품의 향기는 모를래야 모른 척 할 수가 없는 향기였다. ...아, 이거 미친놈 진짜. "......" "......" 벗어나려고 몸을 들썩이자 더 꽉 안아오는 몸이 당황스러워 커다란 다니엘의 어깨 넘어 잘 보이지도 않는 정류장의 끄트머리를 바라보며 사태파악에 나섰다. "...거 죄송한데, 안돼요." 웅웅, 녀석이 말할때마다 울리는 가슴팍에선 어쩐지 쿵쿵 뛰는 심장소리도 섞여 들리는 듯 했다. "......" 녀석은 몇 차례 더 남자와 대화를 주고 받는듯 싶었는데, 이상하게 귀에 하나도 들려오지 않았고 어느새 나도 녀석의 허리에 손을 두르고 있었다. "......" "......" "...전화는 폼이지." "전화했었어? 난 몰랐ㅈ," 상태에서 고개만 들어 녀석과 눈을 마주했을까, "......" "......" 숨이 턱 하고 막혀오는게 이런 기분인듯 싶었다. ...확실히, 요즘 들어 날씨가 사람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episode
카톡. 울리는 핸드폰에 동방에서 만화책을 보고 있던 성우가 귀찮은듯 미간을 찌푸리며 팔을 뻗어 자신의 여유를 한껏 방해하는 인물을 확인했다. "......" 형왜
여주 인기 많아요? "...귀여운 것들." 어째 누구와 똑같은 질문을 하는 다니엘에 성우는 헛웃음을 지었다. 요즘 들어 묘하게 변해 가는 그들을 지켜보는것 또한 최근 성우의 즐거움이였다. 내가 또 나서 줘야지. 형왜
여주 인기 많아요?ㅇㅇ
아마 긍정을 뜻하는 제 답장에 혼자 머리를 부여잡을 다니엘의 모습이 눈 앞에 선해 성우는 혼자 킬킬거리며 다시금 만화책을 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