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좋아하는 임영민
w. 5월
"아, 왜 우는데 진짜."
영민은 여주가 우는 이유를 알지 못했기에 쩔쩔 맬 수밖에 없었다. 영민은 당황스러움에 눈을 도르륵 굴렸다. 우는 사람을 달래준 일은 잘 없었기에 서툴렀다. 영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여주의 옆에 앉았다. 왜, 왜 울어? 응? 다정한 목소리가 서러움을 더욱 북받치게 만들었다.
"어? 김여주 왜 울어?"
"야, 혹시 니가 괴롭혔나?"
화장실에 다녀온 재환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여주를 보며 의아한 듯 물었다. 으르렁 대며 일어난 영민은 재환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야, 나, 나 아니야. 재환은 고개를 세차게 저어댔다. 사람 하나 잡아먹겠네. 경악스러운 듯 인상을 찌푸린 재환은 제 사물함으로 걸음을 뗐다.
"아, 가야되는데."
시간이 훌쩍 흘러 어느새 반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쉬는 시간은 왜 10분밖에 되지 않는 건지. 영민이 불만스러운 듯 미간을 찌푸렸다. 안절부절 하지 못하던 영민은 결국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주는 그런 영민을 눈으로 쫓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겨우 진정되어 가고 있는 눈물이 또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아서였다. 여주는 제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울지 말자. 다 지나간 거잖아. 그렇게 생각하자.
"이유라도 말해줘야 내가 무슨 말이라도 하지..."
"얼른, 가. 수업 늦,겠다."
자리에서 일어서기는 했으나 아직까지 울고 있는 여주가 신경이 쓰였던 영민은 차마 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울음 탓에 뚝뚝 끊기는 목소리로 겨우 영민에게 말을 던졌다. 제 머리를 털어대던 행동을 멈춘 영민이 조그만 여주의 뒤통수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아직 울고 있는 것 같은데. 영민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알겠다. 갈게. 그만 울고."
그렇게 영민이 교실을 나갔다. 여주는 힘없이 책상에 고개를 처박았다. 왜 울어가지고. 영민은 또 제 걱정에 수업도 듣지 못할 것이었다. 괜히 미안해졌다. 하필 그 생각이. 잊고 살려 해도 그럴 수가 없는 현실이 참 고통스러웠다. 나쁜 생각을 할 틈도 없이 행복한 나날이 계속된다면 모를까. 교실에 앉아 할 일 없이 멍을 때리고 있다 보면 자연스레 그 날이 머릿속을 마구 헤집어 놓았다.
"거기. 좀 깨울래?"
"아, 얘 아프대요."
운 탓인지 뭔지, 몸에 힘이 없었다. 수업 시간 종이 치고, 아이들이 선생에게 인사를 하는 소리를 들었음에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결국 선생이 여주를 콕 집었다. 여주를 슬쩍 쳐다본 재환이 여주가 아프다는 핑계를 댔다. 웬일이래, 고맙게. 엎드린 채로 작은 종이 조각과 펜을 꺼내 든 여주가 작게 글씨를 써내려갔다. 고마워. 그리고는 그것을 슬쩍 옆으로 밀었다.
"알면 됐어."
어깨를 으쓱인 재환이 작게 웃었다. 다행이도 이번 수업 시간은 어차피 듣지 않는 세계사 시간이었다. 설명을 못하기로 소문이 난 선생의 가르침은, 딱히 들을 필요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재환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왜. 왜 우는데. 무서운 꿈 꿨나.'
제 눈물에 한껏 당황하던 영민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제 볼을 감싸던 그 손길과 함께. 여주는 제 두 볼이 괜스레 화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쓸데없이 다정하고 난리야, 왜... 고개를 더욱 깊게 파묻었다. 이상하게도 영민의 앞에서 울고 나니 그 날의 생각들을 떨쳐내는 것이 조금이나마 쉬워졌다. 한 번 생각이 나면 발목이 묶여있기 마련이었는데.
"..."
한 번씩은 바라지 말아야 할 것을 바랄 때가 있었다. 바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순전히 제 욕심일 뿐이라고. 영민이 저를, 구원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왜 10반인 건데..."
이상하지. 네가 너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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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도 영민은 꼬박꼬박 제 반에 찾아와 저를 빤히 쳐다보고 가곤 했다. 제가 말하기 민망할 걸 아는 건지, 운 이유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사소한 것에서 마저도 배려를 해주는 영민에게 고맙기만 했다. 여주는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늘이 흐리다. 비 소식은 따로 없었던 것 같은데.
"아씨 깜짝이야!"
하늘이 점차 흐려지더니 큰 소리가 울렸다. 천둥인 듯싶었다. 턱을 괴고서 멍을 때리던 재환이 천둥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엉덩이를 들썩였다. 여주도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뭐야, 비 와? 천둥소리에 반 전체가 술렁거렸다. 곧 비가 쏟아졌다. 비 소식이 없었던 탓에 모두가 당황한 눈치였다. 집에 어떻게 가? 망했네. 보아하니 소나기는 아닌 것 같았다.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은 맑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니.
"너 우산 있어?"
"아니..."
"난 있는데."
왜 물어 본거야, 저 얄미운 놈. 재환은 사물함에 처박아 두었던 작은 우산을 꺼내들며 여주를 놀리다시피 했다. 고마웠던 거 취소다. 재환은 우산 자랑을 하고서 잽싸게 교실을 빠져나갔다. 여주는 창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집까지 어떻게 가지. 여주의 집은 학교에서부터 걸어서 10분은 족히 걸리는 곳이었다. 평소에는 가깝게만 느껴졌던 집이, 오늘따라 참 멀다.
어느덧 반은 텅 비었다. 다들 용케도 우산을 구해서 간 모양이다. 여주는 가방끈을 꼭 쥐었다. 뛰어가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
"우산 없제."
교실을 나서려고 하는 찰나에, 바깥의 누군가가 문을 열었다. 영민이었다. 영민의 손에는 작은 우산이 하나 들려있었다. 여주는 놀란 눈을 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고 내가 왔다 아이가. 영민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손에 들린 우산을 흔들어보였다.
"가방 앞으로 매라. 그래야 덜 젖지."
본관 현관 앞에 도착해 영민은 여주의 가방을 손수 앞으로 매주었다. 그리고는 우산을 펼쳤다. 가자. 여주의 어깨에 팔을 두른 영민이 걸음을 뗐다. 제 어깨에 걸쳐진 손 때문에, 잠시 걸음을 멈출 뻔했다. 여주는 속으로 깊은 숨을 내쉬었다. 설렘인지, 두려움인지 아직까지는 잘 분간이 가지 않았다.
"집까지 데려다줄게."
"아니, 괜찮..."
"내가 안 괜찮다."
단호한 영민의 목소리에 입을 꾹 다물었다. 우산은 한 사람이 써야 적당할 크기였다. 저와 영민이 같이 쓰기에는, 우산의 크기가 턱 없이 작았다. 여주는 영민의 어깨를 슬쩍 쳐다보았다. 다 젖고 있다. 영민의 교복이 빗물로 인해 축축하게 젖어 들어가고 있었다. 영민이 우산을 제 쪽으로 기울여준 탓이었다. 뽀송뽀송한 제 교복을 물끄러미 보던 여주는, 우산을 영민의 쪽으로 밀었다. 영민이 고개를 돌렸다.
"너 다 젖잖아."
"괜찮다."
"그래도..."
"괜찮다니까."
영민은 다시 우산을 기울였다. 영민의 고집을 꺾을 자신이 없었기에 잠자코 있기로 했다. 얼마 전에 산 컨버스가 빗물에 흠쩍 젖어가고 있었다. 양말 또한 축축해진지 오래였다. 찝찝하다. 얼른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옆에 있는 영민을 보면, 그런 마음이 사라지곤 했다.
"조심."
그런 생각 때문에 발 앞에 있는 웅덩이를 미처 보지 못했다. 영민이 여주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어 여주를 제 쪽으로 당겼다. 덕분에 웅덩이에 빠지는 찝찝한 상황은 모면할 수 있었다. 여주는 머리가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건 두려움이 아니다. 가면 갈수록 명확해지는 제 감정에 심장이 마구 요동쳤다. 오죽하면 천둥소리보다 심장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을까.
비 때문에 걸음을 천천히 한 탓에 평소보다 10분이 더 걸렸다. 다 왔나. 영민이 나지막이 물었다. 여주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여주의 집은 작지도, 크지도 않은 주택이었다. 안까지 데려다줄까. 대문을 열자, 영민이 물어왔다. 여주는 손사래를 치고서 재빨리 현관으로 뛰어 들어갔다. 영민은 그런 여주를 보며 못 말린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잘 가, 고마워."
"니 들어가는 거 보고 갈게."
현관 앞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자, 영민도 같이 손을 흔들며 대답을 했다. 비의 양은 좀처럼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흠뻑 젖은 영민의 신발을 본 여주가, 재빨리 가방을 앞으로 맸다.
도어락은 찝찝해서 하기 싫다는 엄마의 의견을 따라 현관은 열쇠로 잠가 놓았다. 여주는 매번 열쇠를 넣어두는 곳에 손을 집어넣었다. 가방 앞 쪽의 작은 주머니였다. 그런데 열쇠가 없다. 당황스러움에 눈을 도르륵 굴렸다. 왜, 왜 없지? 혹시나 싶어 다른 곳도 샅샅이 뒤져보았으나, 그 어느 곳에도 열쇠는 없었다.
"왜?"
한참이 지나도 들어가지 않는 여주를 향해 영민이 의아한 듯 물었다. 가방을 고쳐 맨 여주가 머뭇거렸다. 말을 해야 하나. 영민을 먼저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고집이 워낙 센 탓에. 여주는 입만 벙긋 거리다, 이내 말을 꺼냈다.
"그... 열쇠가 없어."
"어?"
"놔두고 왔나봐..."
여주의 말이 끝나자마자 현관으로 걸음을 뗀 영민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어떡하는데? 물기에 젖은 머리를 털어낸 영민이 물어왔다. 여주는 교복 치마 주머니 속의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일단 엄마한테 전화를 해보자. 몇 번의 신호음이 가고, 엄마의 목소리가 전화 너머에서 들려왔다.
"엄마, 집에 언제 와?"
[지금 밖에 볼 일 보러 나왔는데. 한 30분은 있어야 갈 것 같은데, 왜?]
"나 열쇠 없어... 빨리 와."
[어이구, 잘 한다. 알겠어.]
엄마의 대답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 우산의 물기를 털어낸 영민이 벽에 제 몸을 기대었다. 어머니 언제 오신대? ...30분 뒤에. 영민의 물음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영민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인 후 계단에 엉덩이를 붙였다.
"...안 가?"
"니 들어가는 거 보고 간다고 했잖아."
같이 기다려준다는 소리인 모양이다. 여주는 두 눈을 꿈뻑일 뿐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은 전혀 예상치도 못했다. 멀뚱히 서있는 여주를 돌아본 영민이 웃음을 터트리며 제 옆을 손으로 탁탁 쳤다. 그러고 기다릴 거가. 다리 아프다. 앉으라는 소리였다. 뒤로 맸던 가방을 다시 앞으로 한 여주가 조심스레 영민의 옆에 엉덩이를 붙였다.
"비 오는 날 진짜 싫다."
"...응, 나도."
"근데 오늘은 좀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영민의 광대가 방긋 솟아있었다. 아, 진짜... 여주는 고개를 푹 숙였다. 미치겠다. 옆에 있는 영민을 의식하느라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영민은 그런 존재였다. 오롯이 자신만 생각하게 만드는. 어쩌면 정말로, 저를 구원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존재.
시간이 훌쩍 지났다. 30분은 이미 지난 지 오래였다. 비는 여전히 쏟아지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침에 겉옷이라도 걸치고 나올 걸 그랬다. 몸이 덜덜 떨려왔다. 으, 추워. 여주가 제 팔로 몸을 감싸며 중얼거렸다. 핸드폰을 만지고 있던 영민이 고개를 돌려 여주를 바라봤다. 추위를 잘 타지 않는 편인 저와 달리, 여주는 추위를 잘 탔다. 핸드폰을 교복 바지 주머니에 넣은 영민이 여주에게 물었다.
"춥나."
"아, 조금..."
덮을 옷이라도 가지고 있으면 좋았을 것을. 영민 또한 겉옷이 없었다.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지. 영민은 입술을 말아 물었다. 매고 있던 가방을 벗어 벽에 기대놓은 영민이 몸을 살짝 틀었다.
"안아줄까."
초록글에 오른 기쁨으로... 현생을 아주 잠시 미루고 찾아와써요...
영민이로 인해 여주의 트라우마가 극복! 될 거라는
떡밥을 투척하기 위해서...
기다려주신다고 하는 분들!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다음 달 초까지는 제가 좀 마니 바빠오...
더더 좋은 글로 찾아뵐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