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 사랑의 불청객 - 등장
레드벨벳 - 빨간 맛
"집에 갔다가 가면 안돼?"
"집에 갔다가 안 갈 거잖아요."
"아냐, 진짜. 갈게."
"......."
"진짜로."
오늘따라 부쩍 투정이다. 그럴 만도 한 게 요 며칠 바쁘답시고 출퇴근 할 때 얼굴만 잠깐씩 본 게 다였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데이트를 해본 게 언젠지 기억도 안 난다. 어느덧 프로젝트는 중반을 지나고 있었고 나는 줄곧 일에 치여왔다.
결과야 어찌 되었든(물론 잘 끝나야 하겠지만) 끝나기만 하면 팀장님 얼굴 앞에 휴가신청서를 딱! 소리가 나게 내려놓고 훌쩍 떠나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다.
간만에 둘다 일찍 퇴근한 금요일이었다. 회사 근처에서 같이 저녁을 먹고 집이 있는 동네로 왔다. 일주일 내내 잔뜩 축이 나 몸은 천근만근 무거운데 정신은 또렷하다.
무언가 해야겠긴 했는데 나가서 돌아다니자니 귀찮고 덥기도 하고,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비 때문에 꿉꿉하기도 해서 집에 있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평소 같았으면 주저 않고 데려갈 수 있었을 테지만 며칠 전 엄마로부터 온 전화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여보세요. 어, 엄마."
"어. 딸. 잘 지내? 별 일 없어?"
"응 뭐... 그냥 그래요. 왜?"
"지훈이 방학했대- 한국 온다고-"
".......아...."
여름이지... 그치, 지금 여름 맞지.... 그럼 박지훈 방학이지.. 박지훈 방학마다 우리 집에 얹혀 살지.. 시애틀에서 온 내 귀한 사촌동생 박지훈님..
나는 바보처럼 아, 하는 깨달음이 담긴 탄성을 냈고 엄마는 말을 이어갔다. 바뀐 주소 알려줬어. 금요일인가, 토요일인가 도착한댔는데.
아까 분명히 시간까지 알려줬는데, 엄마가 까먹었다 얘. 근데 뭐 상관 없지? 엄마가 요새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무지 깜빡깜빡해. 정신 없이 산다니까.
엄마한테 보이지는 않겠지만 고개를 주억거리며 알겠어요, 알겠어. 하고 대답했다.
어차피 나도 바빠서 집에서 잠만 자고 나오는 게 전부인데다, 박지훈도 지낼 곳만 필요한 거면 크게 거슬릴 일도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거슬리는 것도 하루이틀이어야 거슬리지, 일년에 두 번씩 여름과 겨울이면 염치 불구하고 한두달씩 꼭꼭 있다가 가는데 이제 도가 텄다.
다만 요즘은, 예전이랑은 좀 상황이 달라져서... 그게 조금, 아주 조금 마음에 걸렸던 거다.
"오늘은 그럼, 진짜 자지 말고 가야 돼요."
"응."
"약속."
"약속."
보통 토요일 아침 비행기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다. 인천에서 일산까지 와야 하니 오전 아홉시나 열시 정도면 도착할 거였기 때문에 그 전에는 집에 아무도 없어야 했다.
그러니까 혹여 집에서 잠들어버려서 늦잠이라도 자면 큰일인 거다. 나는 새끼손가락을 걸어 약속까지 받아놓고나서야 우리 집으로 향했다.
집에서 뭘 하면 재밌을까. 원카드 할까? 근데 원카드 둘이서 할 수 있나? 집 데이트를 자주 하니 집에서 뭘 하면 재밌을지를 고민하게 된다.
둘다 집돌이, 집순이에다 이불 밖이 세상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걸 보면 어찌나 죽이 잘 맞는지 모른다. 그래도 잘 맞아 다행이다 생각하며 슬금슬금 웃음이 나왔다.
-
"........?"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집 비밀번호를 눌렀다. 문을 여는데 안에서 TV 소리가 들리는 거다.
아침에 TV를 켜두고 나왔나? 하루종일 켜둔 거야 TV를? 세상에... 하면서 내 정신 좀 봐, 전기세 아깝게. 하며 집으로 들어서는데,
"누구세요?"
내 뒤에 선 강과장님을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며 누구냐 묻는 생명체는... 박지훈이다.
시끄러운 TV 소리는 귓가를 둥둥 울리고, 박지훈은 '뭐냐?' 하는 표정으로 나와 강과장을 번갈아서 쳐다보고 있다.
강과장님은 '너야말로 뭐냐?'는 표정으로 박지훈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고, 그 사이에 선 나는 누구에게 먼저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고르고 있다.
도르륵 도르륵, 소리가 날 정도로 빠르게 머리를 굴리다가 일단 박지훈에게 말을 건넨다. 너 왜 벌써 와있어? 했더니 어이 없다는듯 코웃음을 친다.
"이모한테 말했는데. 목요일 밤 비행기 타고 가서 금요일에 도착한다고."
"........"
"아니 내 존재감이 이 정도밖에 안돼? 섭섭하다, 섭섭해.
됐고. 이 분은 누구?"
"어? 아..... 어....."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아는 사람에게 강과장님을 소개시켜준 적은 한 번도 없어서 어떤 호칭으로 소개를 해야 할지 순간적으로 엄청 고민이 되었다.
어.... 과장님? 이라고 하기에는 과장님을 왜 집에 데려오나 싶고, 남자친구라고 하기에는 그런 호칭으로 불러본 적이 몇 번 안 되어서 오글거린다.
애인? 아는 오빠? 아는 사람?.... 그 어떤 것도 딱히 적당하지가 않아서 입술만 달싹이는데,
"남자친구."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뱉은 뜬금없는 네 글자는 '남자친구'였다. 나는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 강과장을 쳐다보며 커진 눈을 꿈벅였고,
과장님은 눈썹을 한 번 들썩이며 왜. 뭐. 하는 표정으로 날 봤다. 나는 곧바로 박지훈에게 시선을 돌렸다.
'남자친구'라는 소리를 들은 박지훈은 제 눈을 가늘게 감았다 뜨며 입꼬리를 스윽 올렸다. 뭐지... 음흉해.
"아, 어... 그러니까, 그게...."
"안녕하세요. ○○가 누나 사촌동생 박지훈이라고 합니다."
"○○가 남자친구 강다니엘이에요."
음흉하게 웃던 얼굴이 갑자기 눈을 또랑하게 뜨며 싹싹한 표정으로 확 바뀐다. 저 교활한 처세술의 달인같으니.... 제가 비빌 언덕이 어디인지 너무 잘 아는 놈이다.
과장님은 마치 예전부터 그래왔다는듯 너무 태연하게 나의 남자친구라는 호칭을 다시 사용했고, 나는 동공지진이 오는 걸 가릴 수가 없었다.
강과장이 박지훈을 향해 오른손을 내밀었고 박지훈도 제 오른손으로 그 손을 잡아내며 힘주어 흔들었다.
맞잡아 흔들리는 두 손을 보면서 나는 망했다, 는 생각을 했다. 그 세 글자가 너무나 선명하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들어오세요."
살가운 악수를 마친 박지훈이 제 집마냥 들어오라고 이야기한다. 너네 집이세요?... 나와 강과장은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거실 한 켠에는 채 풀지도 않은, 제 몸집의 두 배만한 커리어가 서있다. 짐이라도 좀 풀고 TV를 보지... 뻔히 빈 방 놔두고 거실에 커리어를 왜 놨대.
박지훈의 시선이 내리꽂힌 TV에서는 뭔가 푸른 게 번쩍번쩍하고 있다... 뭐야, 저게. <프로듀스 101>?
"뭐 보냐, 박지훈."
"프듀."
"프듀? 그게 뭔데."
"어이구야... 누나도 회사 다니더니 늙었네, 늙었어.
요즘 대세인데. 몰라? 연습생 백한 명 나와서 서바이벌 하는 거.
작년에 여자 꺼 했잖아. 올해는 남자 꺼 했다고. 근데 이미 끝났어. 지금 재방 보는 거야."
아아... 들으니까 알겠다. 그나저나 넌 남자애가 남자애들 나오는 거 뭐 좋다고 보고 있냐... 뭐 나도 예쁜 사람 좋아하긴 하지만.
내게 간단한 설명을 마친 박지훈은 다시 TV에 시선을 고정한다. 나는 번쩍번쩍하는 화면과 박지훈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녀석이 입고 있는 옷이 내 옷임을 깨닫는다.
이 자식이.... 올 해도 또 전쟁이 시작되는구나 싶어 한숨이 푹 나왔다. 아우, 환멸나, 환멸나. 정말.
"국민 프로듀서님들, 내 마음 속에 저! 장!"
저 닮은 애가 TV에 나와서 왠 요상한 제스처를 하는 것까지 따라하고 있다... 어휴, 박지훈 언제 철 들래. 국민 프로듀서는 또 뭐야....
과장님은 컬쳐쇼크를 받은듯한 표정을 하고 소파에 앉았다. 이미 들어온 사람을 대뜸 내보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더 머물라고 하기에는 셋이서 공유하는 공기가 썩... 유쾌하지는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사촌동생의 사 자도 언급한 적이 없으니 놀라기는 엄청 놀랐을 것이었다. 나는 어떻게 할까 하다가 일단 부엌으로 가 컵을 세 잔 꺼냈다.
전에 사둔 레몬에이드 분말이 있었는데... 박지훈이 여기에 또 환장한다. 일단 이것부터 먹여야겠다 싶어서 전기주전자에 물을 끓이면서 냉동실에서 얼음을 뺐다.
"뭐해?"
거실 소파에 앉아있던 과장님이 부엌으로 왔다. 여기는 좀 위험하다. 말소리가 박지훈에게 모조리 들리고도 남을 거리이기 때문이다.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서 메모장을 켰다. 과장님이 잘 볼 수 있도록 자판을 두들기며 메모장 위에 내가 해야 할 말을 적었다.
[사촌동생이에요. 미국에서 고등학교 다니는데 방학마다 우리 집에 얹혀 살아요.
작년까지는 내가 서울에서 살았으니까 서울이 좋다고 하면서 우리집에서 같이 지냈는데,
내가 이사 왔어도 막상 한국에는 여기 말고 가 있을 데가 없는 애라...
미리 못 말해서 미안. 보통은 토요일에 왔거든요. 이번에 마땅한 비행기가 없었나봐요.]
엄지손가락에 불나듯 키패드를 두드리니, 과장님이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입가에 살짝 미소가 걸쳐진 채다. 그렇게 어두운 표정은 아니어서 마음이 좀 놓였다.
정적이 길어지면 보나마나 눈치 빠른 박지훈이 알아채고 부엌으로 올까봐, 일부러 '레몬에이드 만들어요!' 라고 소리를 낭낭히 냈다.
과장님도 눈치를 채고 되려 나처럼 목소리를 크게 냈고, 나는 그 모습이 웃겨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컵에 끓인 물을 따르고, 분말을 넣어서 휘휘 젓다가 컵의 남은 부분을 모두 얼음으로 채웠다. 그렇게 세 잔을 만들고 쟁반에 올려서 거실로 가져갔다.
과장님은 본인에게 달라고 했지만 내가 드는 게 나을 것 같아 내가 하겠다고 말했다. 읏차, 하면서 바닥에 쟁반을 내려놓으니 박지훈의 눈이 둥그레진다.
"와!!! 레몬에이드!!!!!"
거실에 우렁찬 목소리가 울린다. 언제 이렇게 남자 목소리가 다 됐대... 시간 참 빠르다 싶으면서도 박지훈이 벌써 고등학생이란 사실에 혀가 내둘러진다.
그러고 보니 키도 부쩍 커졌고, 아직 어리지만 제법 고딩 뽄새가 나는 게 보고 있자니 웃겼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광대가 올라갔나 보다.
"누나는 먹는 게 다 광대로 가?"
"뭐?"
"볼 때마다 딴 데는 안 찌는데 광대에 살이 쪄."
.....죽일까? 사뭇 진지하게 말하는 박지훈의 말에 옆에서 풉, 하고 강과장님의 웃음이 이어진다.
나는 괜히 강과장님을 향해 눈을 흘긴다. 강과장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 태연한 표정을 짓는다.
광대에 살이 찐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라 손을 들어 광대를 내렸다. 씨... 내 광대가 얼마나 매력인데. 이 자식이...
박지훈은 쩝쩝대며 레몬에이드를 삼키더니 맛있다며 크으- 하는 소리를 낸다. 술도 아닌데 술 마시는 것처럼 미간까지 좁혀가며 캬아- 하는 게 웃기다.
누나는 진짜 레몬에이드 전문점 차려라, 나중에. 내가 단골손님 할게. 하며 잘 마시는 걸 보니 좀 뿌듯해졌다.
"근데, 남자친구는 집에 왜 데려왔어?"
왜 데려왔겠냐. 몰라서 묻는 건 아닐 테고, 내게 쫄리게 하려고 던진 질문이다. 분명 이 사실을 이용해서 우리 엄마한테 이른다 만다로 방학 내내 나를 괴롭힐 것 같은데.
지금 시점에서 이야기를 잘 해두지 않으면 내내 피곤해질 것 같은 생각에 또 다시 도르륵 도르륵 머리를 굴렸다.
입을 삐죽대던 내가 입을 열자마자 과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국에서 사촌동생 왔다고, 소개시켜준다고 해서 왔어요."
태연하고 차분했다. 오오... 그럴 듯한데. 이야기를 듣던 박지훈도 그럴만 하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 편하게 하세요. 제가 훠얼씬 어릴 것 같은데. 하는 박지훈이다. 과장님은 그럴까, 하면서 사람 좋게 웃어 보였다.
"누나랑 언제부터 만났어요?"
당돌한 새끼....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는데 나와 과장님 둘 다 조금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부터가 딱 1일이다, 어쨌다 하고 체크해놓은 적이 없어서다.
그러고 보니 처음 시작했던 때가... 등산간 날이었나. 그때를 시작으로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등산 갔던 때가 봄이었으니 얼추 3개월 정도는 지난 거였다.
내가 선수를 쳐 3개월, 이라고 이야기하니 박지훈이 고개를 끄덕인다. 인터뷰 하냐.. 뭘 그렇게 물어보는 거야, 꼬맹이.
또 한 번 이어지는 질문에 마시고 있던 레몬에이드가 목에 걸릴 뻔했다.
"누나 어디가 좋아요?"
....왜 저래 진짜..... 울고 싶다. 우리 가족 다 조용하고 차분한데 얘만 이래요, 얘만. 얘만 이렇게.... 애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어휴.
질문을 받은 과장님은 어, 음... 하면서 살짝 고민하는 눈치더니 이내 마음을 정했는지 대답을 하신다.
"당돌해서."
.....? 예, 당돌한 건 가족력인 것 같습니다. 제가 경솔했네요. 잘못했습니다.. 박지훈만 그런 게 아니네요. 예... 그렇죠. 암요.
박지훈은 나를 향해 살짝 비웃으며 그렇죠, 그렇죠. 저희 누나가 좀 당돌하죠.. 하면서 인정한다. 너가 뭘 알아 꼬맹아... 어이가 없네.
과장님이 가고 나면 이마에 꿀밤을 한 대 때려박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몸집이 커져 내가 때려도 오히려 나를 때릴지 몰라서 무서워 해야 할 것 같지만.
얼마간의 Q&A가 더 이어졌다. 어쩌다 사귀게 되었어요, 뭐 하면서 노세요, 그런 것들을 묻다가 잠깐의 공백이 생겼다.
나는 이제껏 박지훈을 감당해낸 과장님이 안쓰러워 반격을 준비했다. 이모한테 들었는데, 박지훈 여자친구 있다고. 그것도 미국인..
"야, 너야말로. 여자친구 있다며."
"아이, 있지. 그럼. 당연하지."
"사진 있어, 사진?"
"그럼- 그럼-"
멀찍이 떨어져 바닥에 놓여있던 휴대폰을 가지고 오더니 갤러리를 보여준다.
오, 예쁜데? 소리가 절로 나오는 아이였다. 긴 생머리가 매력적인 금발에 파란눈. 둘이 사이좋게 같이 찍은 사진을 보니 뭔가 신기했다.
일찍이 미국에서 생활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미국 친구들과 같이 찍은 사진을 본 건 처음이라 그랬다.
박지훈은 신나서 사진을 넘기면서 예쁘지? 예쁘지? 하고 물었다. 나와 과장님은 머리를 맞대고 박지훈의 여자친구를 봤다.
둘 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거다. 박지훈 능력 좋군.... 뭐 이런 생각. 박지훈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가지고 갔고, 나와 과장님은 대단하다는 표정으로 시선 교환을 했다.
"능력 좋네. 동생."
"그럼, 그럼."
"근데 얜 네가 왜 좋대?"
"잘생겨서 좋겠지, 뭐."
....쿨해. 아주 쿨해. 역시 쿨해. 쿨한 놈이야. 박지후이.
나는 으응... 그래...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박지훈은 얼마 남지 않은 레몬에이드를 쫍쫍 소리까지 내며 끝냈다.
TV에서 번쩍이던 프로듀스 뭐시기는 끝난 지 오래. 또랑또랑했던 눈에는 졸음이 가득 담겨 있다. 그러고 보니 시간이 꽤 흘렀다.
"누나, 나 졸리다."
졸리다고, 저 잘 거니까 과장님은 집에 보내든지 하라는 이야기다. 박지훈 특유의 교활한 화법이다.
나는 과장님의 눈치를 살핀다. 사촌동생이 졸리다는데. 더 머물면 안 될 거라는 걸 느낀 건지 과장님도 슬슬 갈 채비를 한다.
왠지 아쉽다. 첫째는 박지훈이 오늘 올지 몰랐고, 둘째는 집에서 뭔가 알콩달콩 하고 싶었고, 셋째는 이왕이면 단 둘이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터다.
할 수 없지 뭐. 하면서 일어서는데 몸이 천근만근이다. 마음 같아서는 박지훈만 재우고 나가고 싶은데 그러기에는 박지훈이 너무 막... 너무 고딩이 되어버렸다. 너무.
"과장, 아, 아니... 오빠 좀 바래다 주고 올게."
하마터면 입에서 과장님이라는 단어가 나올 뻔했다. 이래서 습관이 무서운 거다. 박지훈은 살짝 눈썹을 꿈틀, 하더니 이내 알았다고 대답한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는 모습까지 본 박지훈이 연신 눈을 비벼대며 다음에 또 봬요, 한다. 과장님은 그래. 하면서 웃어 보인다. 하.. 착한 사람이야.
나는 삐빅- 하며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는다. 과장님은 나보다 앞장서서 걸어가고 있고, 나는 한 달음에 걸어가 그의 허리를 꼭 감싸안았다.
근데 다시 띠리링- 하면서 문이 열린다. 나는 깜짝 놀라 얼른 팔을 풀고 문 쪽을 바라봤다.
"안 올 건 아니지, 누나?"
한 쪽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물어오는 박지훈이다. 저 새끼가.....
알았어, 알았어. 얼른 와- 안녕히 가세요- 하며 나와 강과장에게 각각 인사를 건네는 박지훈이다. 이내 삐빅- 소리를 내며 다시 문이 닫혔다.
나는 깜짝 놀라 거의 숨 쉬는 방법을 잊어버린 상태가 되었다. 과장님이 손을 뻗어 나를 안아오고 나서야 편하게 후우, 하고 숨을 내쉬었다.
"동생 귀엽네."
품에 안긴 나와 눈을 맞추고 내 볼을 쓰다듬으며 달콤하게 이야기한다. 나는 여기 있으면 혹시라도 들릴 수 있으니 한 층만 내려가서 이야기 하자고 한다.
결국 층계에 자리를 잡았다. 여름이 온 게 느껴진다. 후덥지근하고 꿉꿉한 날씨. 그래도 붙어있고만 싶은 걸 보니 사랑에 빠진 게 확실하다.
"귀엽긴 한데... 싹수가 노래요.
건방지고. 당돌하고."
"누구랑 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그 누구가 누구.... 저요? 나? Me? 눈이 동그래진 채 손가락으로 날 가르치며 물으니 하하, 하고 소리내어 웃어버리는 과장님이다.
그나저나 진짜 알콩달콩하고 싶었다고요, 속으로 말하며 손을 뻗어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가 낮게 웃으며 내 머리를 감싸안는다.
"그래도, 동생 와있으니까 좀 덜 걱정된다."
"걱정이요?"
"응. 혼자 안 재워도 되니깐.."
그럼 여태까지는 나 혼자 자니까 걱정했던 건가. 어쩌면 과장님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세심하고 섬세한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치만 박지훈이 와서 좋은 점보다는 안 좋은 점이 더 많은 것 같다... 당장에 집에 데려 올 수도 없고, 또 마음대로 나가서 잘 수도 없는 노릇.
우리 엄마랑 친하기는 또 얼마나 친한데. 함부로 행동했다가는 쪼르르 달려가서 일러바치면 끝이기에 박지훈은 늘 경계대상이다.
아마 오늘 남자친구가 왔다는 것도 잘못 대답했으면 약점 잡혀서 저 좋을대로 이용하기 딱 좋았을 거다. 그나마 과장님이 빠져나가서 다행인 거지.
이래저래 할 말은 많은데 하나하나 다 이야기할 수는 없으니 일단 접어두기로 하고, 지금은 품에 안겨 있는 시간을 최대한 즐기자고 생각했다.
"으으- 좋은 냄새.
과장님 이 향수 진짜 잘 어울려요."
"응. 나도 좋아.
근데 너 이제 진짜 과장님이라고 부르면 안 되겠더라."
아까 실수로 과장님이라는 말이 나올 뻔 한 게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그렇네. 습관의 무서움이었어..
"과장님이 입에 붙어서 편한데."
"습관 다시 들여야지, 뭐."
"뭘로요?"
"뭐긴. 있잖아, 그거. 두 글자짜리."
제가 말해놓고 부끄러운지 내 어깨에 고개를 묻는다. 나는 아- 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알겠어, 알겠어. 뭔지.
"오빠?"
크큭, 속삭임과 같은 웃음소리가 귓가에 닿는다. 말하는 나보다 듣는 제가 더 부끄러운 거다.
나는 문득 과장님을 놀리고 싶어졌다. 한 치도 떨어지지 않고 붙어있던 몸을 떼고 과장님과 눈을 맞췄다.
오빠? 하고 부르니 눈을 꾹 감으면서 웃는다. 허리에 감겨있던 팔을 풀어 그의 목에 감았다. 조금 더 가까워진 위치에서 오빠? 하고 한 번 더 불러본다.
부끄러워 하는 모습이 재밌는 거다. 이제는 나에게서 아예 눈을 돌려버리려고 하길래 볼을 잡아가지고 와서 또 오빠, 하고 불렀다.
눈동자가 안 보일 정도로 잔뜩 휘어졌던 눈이 다시 제 자리를 찾아 내 눈과 마주친다.
"....가시나..."
옅은 미소와 함께 낮게 읊조린 말을 끝으로, 부드럽고 뜨끈한 입술이 겹쳐졌다.
울 박지후이. 불청객이라 생각했는데 뭐... 꼭 굳이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고맙다. 동생아.(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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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암호닉 신청: 60명 [꼬꼬망] [빨간머리] [뉴욕] [포카리] [징징이] [워너도] [1210] [깅깅] [요니] [동그리] [댕댕과장] [마카롱] [방구뿡] [땁답] [회사워니즘] [영단즈] [녤과장] [수 지] [수선화] [녤꽃] [다녤쿠] [맡] [늘봄] [슬] [샤넬] [오후] [제이] [로지] [송송아] [똥이뚱이] [칸타타] [마늘] [녕부기] [다녤이랑워니랑] [애정] [살사리] [세병] [슈크림] [켘케] [카르스트] [윙크탑] [오랭] [옹성우] [강심장] [옹성옹성] [새벽] [짐느러미] [옹기종기] [츄얼] [꽃눈] [물만두] [룰렛] [바나나우유] [동태] [유나] [태침] [B06B] [녜르] [우럭] [쿠쿠] 19편 암호닉(0~3차 암호닉 신청자에 한함. 20편 업로드 전 19편에 달린 댓글에 한함.) [다정] [우주] [#0613] [피치씌] [짠따라] [밍밍이] [만두] [인턴] [몽글] [어피치] [디눈디눈] [짱짱맨] [체크남방] [넌내희망] [DMR] [녜리] [졔졍] [딸기시럽] [일오] [청포도] [샘봄] [사용불가] [0302] [필통] [이스트팩] [호다닥] [춘쟝] [덧깨비] [요거팅팅] [다녤맘] [회사워니즘] [다녜링] [일개사원] [쫑쫑] [마이관린] [뚠뚠] [데헷] [꽃녤] [분홍색솜사탕] [망개몽이] [어어] [0226] [옹옹] [갓의건] [뇽뇽] [SRJ] [ㅇㄱ39] [진이진] [퍼지네이빌] [비버] [리베0511] [체리] [리베르떼] [국국] [수저] [율예] [루이비] [옹피치] [키친타올] [너부리] [크앙] [짹짹이] [히릿] [댕댕이 강다니엘] [참참참] [여지] [뉸뉴냔냐] [뀨쓰] [11023] [블라썸] [강사모예드] [녤옐♡] [피치수플레] [애벌레] [1122] [녜르] [다녤의만두] [아이셔] [남융] [불꽃] [666666] [휘린] [응] [린] [L4L] [포로리] [둘셋0614] [알바생] [묭묭이] [도앵도] [121027] [주황주왕] [참새] [민트향] [댕댕] [블리블리] [자몽] [파요] [030901] [몽구] 안녕하세요, Y사원입니다. 이번 3차 암호닉 신청 완료되었습니다. 확인 댓글 받으신 분들 축하드립니다. :) 제 생각보다 너무 많은 분들이 신청해주셔서 다음에는 숫자 높여서 받을게요... 약속!! 죄송해요 이번에 너무 적게 받았나 봅니다..ㅜㅜ 그치만 제가 기억하는 데에 한계가 있기도 하고 그래가지고.. 대신 빈도를 조금 늘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새벽에 올린 단편 글은 재밌게 읽으셨나요?? 새벽감성으로 쓰고 나니 오탈자가 많이 보여서.. 이거 올리고 수정하러 가려고요.. 하하ㅜㅜ 그래도 저는 이번주 목표를 다 이뤘습니다! 강과장 20편까지 쓰는 게 목표였는데 성공해서 넘 기분이 좋아요... 오늘 저녁에는 좀 쉬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일찍 글 들고 왔습니다. 여태 한 15편부터였나? 계속 분위기가 찌통에 슬프고 막 우울하고.. 계속 그래가지고 마음이 안 좋다가, 오늘은 좀 작정하고 밝아보자! 일단 감정선은 살짝 미뤄두고 서사를 좀 진행시켜보자! 하는 마음으로 지훈이를 등장시켰습니다!! 짝짝(지성박수) 뭔가 어디로 튈지 모르고 되바라진 느낌의 여주 사촌동생을 독방에 살며시... 물어보았으나(결국 자삭..) 지훈이가 젤 어울리는 것 같다는 판단 하에 지훈이로 결정했어요. 여러분들이 좋아해주시면 성공으로 알겠습니다. 호호호 +_+ 니엘이의 '가시나'도 독방에서 의견을 받긴 한 건데.. 그냥 제가 너무 넣고 싶어서 넣었어요. 자기만족이에요, 자기만족. 막상 사투리 사용하시는 분들은 에이, (관린ver.) 하실 수도 있겠지만... 머... 따흐흑.. 감정선 위주로 진행되는 것과 서사 위주로 진행되는 것의 밸런스가 잘 맞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이지만 여러분들도 예쁘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응원 부탁드려요! 늘 독방에서 홍보해주시고 추천해주시고, 좋다고 해주시는 분들 항상 너무 감사합니다. 댓글 남겨주시는 분들 한 분 한 분도 다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주는 또 언제 올지(...눈물) 모르겠지만, 여튼 재밌는 글 또 들고 올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오늘도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