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건아, 나 책 좀 줘. "
" 개명했다 안하나. 좀. 진짜 "
" 의건아, 필기 보기 싫어? "
" 가시나, 진짜. 니 사람 약점 가지고 그러는 거 아이다. "
" 약점이라니. 니가 필기만 잘하면 될 걸. "
" 하아... 못 산다 내가. "
틱틱거리면서도 책을 건네주는 사람이 바로 강의건. 뭐 이제는 개명했다고 하니 강다니엘.
사람이 익숙해져야 한다며 다니엘이라고 부를 걸 강요했지만 이미 20년 동안 의건이라는 이름이 입에 붙었는 걸 어쩌라는건지.
익숙해져 있는 걸 지우는 게 얼마나 힘든데. 간단히 소개를 하자면 흔히 말하는 남사친 여사친. 그것도 22년 된 관계이다.
보통 특이한 케이스가 다들 그렇듯 엄마끼리 동창이고 단짝이라 자연스럽게 우리도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왔다.
다만 같은 초등학교에, 같은 학원을 다녔지만 5학년이 되었을 때 잠시 얘가 부산으로 전학을 가서 떨어지게 되었다.
" 니 레포트 다 썼나. "
" 뭔 레포트? 아, 어. 다했는데. 모레 제출인데 당연히 다하지. 너 안했냐 설마? "
" 와... 배신자 아이가. 겁나 부럽네 진짜. 내 혼자 내빼고 니만 하나. "
" 응, 아니야. 내가 그렇게 하라고 했는데 니가 안 해놓고 왜 제탓을 하시는지요? "
" ...... 그래도 진짜 너무하네. "
" 찔리는 거 다 보인다. 집 가서 얼른 노트북 켜. 도와줄게. "
" 니 밖에 없는 거 알제. "
" 지랄났다. "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니 다시 저 혼자 전학을 왔다. 부모님이 외국으로 발령이 나셨댔나.
부산에 혼자 있기는 싫고 서울로 다시 왔다는데. 계속 연락은 해서 그랬는지 6년간 공백 아닌 공백이 있었지만 별다른 어색함 없이 지내왔다.
그리고 같이 남은 고등학교 생활을 보내며 서로에게 무슨 영향이라도 갔는지 현재 같은 대학교 같은 과에 진학 중이다.
정확히 나는 간신히 붙은 두 곳 중 유일하게 가고 싶은 과였고, 강의건은 정시가 대박 나서 그냥 이곳이 좋다며 선택해서 왔다.
이 새끼, 제일 배신자 새끼. 부산해서 뭘 했는지 공부는 존나 잘한다.
" 야, 니가 올꺼가 아이면 내가 갈까. "
" 먼저 가. 오늘 좀 늦게 갈 걸. "
" 어데 갔다올라고? 아이면 같이 갔다가 집 같이 가든지 "
" 도서관에 잠깐 갔다가 교수님 면담. 나중에 저녁 때 넘어갈게. "
" 교수님? 아... 갔다가 바로온나. "
그렇게 서로의 합격 소식을 안 엄마들은 기뻐하며 오피스텔 빌딩에 방을 구해다 주셨고 나란히 12층을 쓰고 있다.
걔는 1210호, 나는 1211호. 과제나 시험공부는 같이 할 때가 많았고 대부분 내가 옆집으로 갔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청소하기 싫어서. 그렇게 우리는 걔 집으로 가서 과제를 하려고 했다. 분명 그랬다.
아기와 너
W.22개월
" 하아... 교수님 제발... 저한테 왜그러세요...! 아이 진짜...! "
혹시라도 들릴세라 목소리를 죽인 채 연구실을 떠나 복도를 걷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학과 대표로 사진을 찍는 데 왜 저랑 강의건인가요? 교수님? 전 이해가 안 되는데요? 심지어 다음 주 기말인데요?
사진을 찍는 거야 좋다 이거야. 근데 그건 셀카 한정입니다만? 전방 카메라와 후방 카메라의 갭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데.
그거 막, 어? 홈페이지에 걸리고, 홍보 영상에 쓰이고, 학과 팜플렛에 들어가고 그런 거라는데 쪽팔려서 어떻게 하냐 진짜.
' 다니엘은 알겠다고 하는데 ㅇㅇ이 너도 한 번 생각해보렴. '
교수님의 제안을 곱씹다 보니 강의건은 수락했다는 장면이 떠오른다. 이 새끼, 미리 알고 있었구나. 그래서 선수 친 거야.
" 아 진짜 이 새끼를 그냥... "
아까 왜 군소리 없이 먼저 갔는지 알겠구먼. 한 소리 하려고 휴대폰을 드는데 카톡보다는 문자 하나가 눈에 보였다.
[ 너밤아, 지성이 오빠야. 급하게 부탁할 일이 있는데 지금 전화가 안될 것 같아서 문자 남겨. 다니엘한테 설명 들으면 될 것 같고 진짜 미안해ㅠㅠ 정말 급해서 문자 남겨.
최소 한 달 정도 외국에 있을 것 같은데 더 길게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 도착해서 다시 연락할게! - 지성씨]
뭐지. 이건 또 언제 왔지. 시간을 대충 보니 교수님과 상담할 때인 것 같은데. 그나저나 이 오빠가 이렇게 급해 보였던 적이 있었던가.
거기다가 외국이라니. 꽤 급한 건가보다 싶어 ‘알겠어요. 그러니까 올 때 메로나.’라고 간단히 답장을 보냈다.
사촌동생인 다니엘을 챙길 때마다 나를 더 챙겨줬던 오빠한테 받는 첫 부탁에 강다니엘도 같이 받은 거고 하니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울리는 진동소리에 벌써 비행기가 도착한 건가 싶어 화면을 보니 지성이 오빠가 아닌 다니엘의 문자다. 아, 맞다. 나 카톡 확인하려고 했었지.
[야, 빨리온나. - 깡의건]
[아니, 천천히 안다치게 조심해서 빨리 - 깡의건]
... 개새끼. 하나만 해라. 상반되는 단어를 한 번에 보내는 내용을 보고 이것도 재주다 싶어 답장을 하려는 순간 하나의 문자가 더 왔다.
[내 좀 살려주라 - 깡의건]
조금 알 수 없는 문자가.
22개월입니다!
제가 결국 숨김 기능을 활용하지 못하고 이렇게 인사를 드립니다.
읽기 편하신가요? 불편하실까봐 걱정이 되네요...
첫 편을! 드디어! 질렀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