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한참동안 그가 서재 안에서 무언가를 깨부시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발걸음을 돌렸다. 완전히 분리된 서로만의 공간으로.
그는 오늘 그여자의 향수냄새가 아닌,
눈물 냄새가 났다.
내가 곧 잘 흩뿌리는 눈물 냄새를 맡고, 생각했다.
그는 그 여자와 완전히 관계를 끝낸게 아닐까, 하고.
그래서 그 둘이 만나서 술을 걸친게 아닐까, 하고.
무슨 소리야, 무슨 그게... 나쁜 소리야... 솔직히 말해, 나는 나에게 질문을 했다. 그렇게 되길 원한거 아니야? 왜, 니가 더 뭘 못할거 같아? 그 두사이에 억지로 비집고 들어가 결혼까지 했잖아. 언제까지 아련한 여주인공 행새 할거야?
아니야. 그런게 아니야.
혹시 그의 손이 긁혀 찢어지지 않았을까, 혹시 그가 이성을 잃고 날뛰고 제 몸에 흉터를 남기지 않았을까, 혹시 술김에 깨진 유리위를 밟지 않았을까,
혹시 울고있지 않을까.
모두 그가 걱정되서 그런거야.
나는, 그냥 그를 사랑해서 그런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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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방에 들어왔는지 기억이 안난다.
그냥 자연스럽게 턱 밑으로 뚝뚝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면서 침대위로 드러누웠다.
오늘따라 침대는 조금 추운 거 같았다.
힘겹게 파들거리는 눈꺼풀위로 살짝 열려있는 방문을 쳐다보았다.
미세하게 안으로 들어오는 빛은, 나 같았고, 그 같았다.
휘청거리며, 금방이라도 사그라질 듯 좁고, 희미해서 가고 싶은 곳까지 닿을 수 없는 약한 빛.
약하지만, 잠시는 강하게 보이는 그런, 쓸데없는 빛,
누군가가 저 방문을 닫아버린다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빛.
나는 그에게 언제나 전망좋은 빛이 되고 싶었다.
그녀가 그의 전망좋은 빛이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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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를 꽉 짖누르는 압박. 아프기 보다는, 자연스레 맡아진 술 냄새와 같이 비스무리하게 나는 그의 냄새에 눈을 떳다.
"서, 성용씨…"
눈 앞에 보이는 그는 조금 위험해 보였다.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나와 눈을 마주하고 그의 눈동자는 짐승의 그것처럼, 반짝이고 있었고, 그의 눈동자에서 보는 내 얼굴을 그저 먹히길 기다리고 있는 초식동물 같았다. 어깰 꽉 쥐고 있는 그는 낮게 으르렁 거리며 어깰 확 끌어당기었다.
입에 닿는 뜨겁고 물컹한 그의 입술은 씁쓸한 술 맛이 났다. 처음 그와 결혼한 이후 처음 한 그의 입맞춤.
그는 나와 끔찍하리만치 스킨쉽 하는걸 싫어한다.
하지만 왜,
눈을 크게 떠 그를 쳐다보았다. 그도 날 바라보고 잇었고, 그의 입술은 난폭하기 짝이 없었다. 억지로 입술을 벌릴려 하는 그의 행동에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그는 그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나는 그와 이런키스를 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그저 서럽기만 했다.
내가 바랫던 그와의 키스는 이런것이 아니였는데, 내가 바랫던 그와의 키스는 달콤하고, ... 이런 술맛이 나는 키스는 아니였다.
이런 난폭한 키스가 아니였다.
이런, 강요적인 키스가 아니였다.
"왜, 당신이 바라던거 아니야?"
한참동안 날 바라보며 난폭하게 키스하던 그가 입술을 떼어내며 울고있는 날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그런 그는 바라볼 수 없었다. 눈물로 흐릿해진 그의 얼굴이 어떤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차마 날 그렇게 내려다보고 있는 그와 눈을 마주할 수 없었다.
눈가를 손으로 가리고 그를 가렸다.
"어머니가 원하는 애기 갖자고,"
나는 원했지만 그는 원하지 않았던 그의 2세.
어머니는 원해지만 그는 원하지 않았던 나의 피가 섞인 그와 나의 아이.
언제나, 그가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그의 품으로 안길 사랑스럽고 작은 아이.
"뭐해, 눈물 닦고 엎드려."
엎드리레여
다음화는 불맠인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