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기저귀 갈아야 하는 거 아이가.”
“ 아인데... 괘안타, 울지마라. 뚝. 괘안타. 어이구, 뭐가 그리 서럽노. ”
“ 임마 배고픈 거 아이가. ”
호기롭게 전쟁을 해보겠다 말은 하지만 힘든 건 힘든 거다.
뻥튀기 뜯어먹고 잘 놀길래 다니엘이 알아서 잘 보겠지 싶어 한 시도 눈을 떼지 마라고 당부한 후 잠깐 집에 들러 책과 노트북 등 이것저것 챙기고 있는데 급하게 전화를 받고 달려오니 보이는 건 안절부절 하지 못하는 다니엘. 그리고 숨이 넘어가듯 우는 선호. 분명 집 나온 지 10분 정도 된 것 같은데.
그 사이에 달래려고 노력은 한 건지 거실 위에 여기저기 놓여있는 아기 장난감까지 난장판이다.
“ 그, 뭐고. 그 가방 아이다. 저기 파란색에 아 먹는 거 있다 카드라. ”
“ 파란색? 어, 어. 잠시만. ”
“ 일단 아부터 안아봐라. 이러다 아 숨 넘어가긋다. ”
선호를 안자마자 등을 토닥여주니 조금씩 잦아드는 울음에 한숨부터 나왔다. 미리 물을 끓여놓은 건지 분유를 찾자마자 젖병에 타는 다니엘을 보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방안을 돌아다니며 토닥이고 있다가 이제 좀 식힌 건지 쪼르르 다가와 젖병을 건네주는 다니엘에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잡았는데...
“ 손 대봐. ”
“ 손? 손. 손은 와. ”
“ 손 바닥 말고 손 등. ”
“ 손 등. ”
내 말을 반복하며 멀뚱거리다 손 등을 내놓는 다니엘 손 위로 몇 방울을 떨어뜨리니 이내 알겠다는 듯 다시 부엌으로 간다. 그래, 이 온도는 아기 먹기는 뜨겁다 의건아.
계속 칭얼거리던 아기에 혹시나 싶어 기저귀를 다시 보니 축축하다. 분명 아까 확인했을 때 아니라고 했는데.
짐을 뒤져 기저귀와 물티슈를 챙겨 아기를 눕히고 기저귀를 갈자 방긋 웃는 선호를 보니 덩달아 허탈한 웃음이 나온다.
이거였구나. 아무래도 하나씩 다 알려줘야 할 것 같다.
“ 들고 왔다. 아 인제 안우나. 인자 온도 좀 맞춘 것 같은데 함 봐봐라. ”
“ 기저귀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먹여봐야 하나. ”
“ 내 아까 확인했는데? 그럼 이건 우야노. ”
젖병을 들고 시무룩해진 다니엘을 보니 뭔가 나라도 먹어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시간도 저녁 시간이고 먹여볼까 싶어 선호를 안아들어 젖병을 물려주니 내 손에 제 손을 겹쳐 잘도 먹는다.
“ 잘 먹네. 이라니까 이쁘다. ”
“ 아, 깜짝이야. 덥다. 떨어져. ”
“ 싫다. 내도 아 볼란다. ”
어느새 내 등 뒤로 딱 붙어 고개만 내미는데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애를 보는 거라 뭐라 하지도 못하고 가만히 있으니 불편해 죽을 맛이다.
그래도 선호와 다니엘을 번갈아 보니 아기 둘을 보는 것 같아 나도 엄마 미소가 나왔다.
다른 건 몰라도 강의건 웃는 모습 하나는 인정하니까. 아마 저 눈웃음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 이리 있으니까...”
“ 젖병으로 맞기 싫으면 말 잘해라. ”
“ 뭐가. 셋이서 같이 오순도순 사는 가족 같지 않나. 아빠, 엄마, 아들. ”
“ 그. 즉긑은 스르 흐즈므르. 증그릅드. ” (가, 족같은 소리 하지 마라. 징그럽다. )
“ 아 앞에서 예쁜 말. ”
취소다. 눈 찔러버리고 싶다.
아기와 너 03
W. 22개월
“ 저녁 내가 할 테니까 선호 좀 보고 있어. ”
“ 알긋슴다. 이거 매트 깔아야 안 되나. ”
“ 아, 어. 그것도 깔아야 해. ”
“ 짐도 풀어야 안 되나. ”
“ ...시켜 먹자. ”
“ 내는 뿌링클. ”
아기는 한시도 눈 밖에 두면 안 된다고 배웠다. 어릴 때 동생을 보다가 잠깐 티비를 보고 있었더니 소파에서 떨어져 크게 혼난 이후로 사촌동생이든, 조카든 아기를 보면 어리면 어릴수록 다른 건 다 제쳐두고 아기에게만 집중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니엘에게 맡겨두고 밥을 하려고 했더니 다니엘 입에서 나오는 하나씩 늘어가는 해야 하는 일에 결국 휴대폰을 쥐어 배달 어플을 켰다.
“ 아기 옷은 따로, 기저귀 따로, 젖병하고 이유식 할 때 쓰는 것들은 식탁. ”
“ 선호 내가 안고 있으까. 안 무겁나. ”
“ 어, 좀 안고 있어줘. ”
“ 우쭈쭈, 일로 온나 우리 아들. ”
돌이 안 지났다고 해도 아기를 안으며 짐 정리하는 건 벅차다. 그새 또 아들이라 칭하며 좋아죽는 다니엘에 선호를 넘겨주니 한결 편해져 순식간에 정리를 끝냈다.
짐을 다 풀고 나니 딱딱하던 집이 순식간에 아기 키우는 집 같아졌다. 보행기에, 장난감에, 매트에 이걸 다 어떻게 들고 왔나 싶을 정도로 많은 짐이 집을 뒤덮었다.
시험공부는 무슨. 시험 시간에 제때 맞춰가도 성공이다. 그러고 보니 선호도 적응을 빨리 하는 건지. 생각보다 낯을 안 가린다. 보통 돌 때 다 되면 낯을 가린다고 들었는데.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인건가. 그러고 보니 지성이 오빠의 문자를 받은 지 하루가 지나지도 않았는데 너무 많은 것이 바뀐 기분이다.
여러 가지 생각에 복잡해져 다니엘과 선호가 놀고 있는 모습만 보며 멍 때리고 있는데 갑자기 나를 보며 웃는다.
" 시험 치지마까. 계속 이렇게 집에 있고 싶다. "
쟤도 이상해. 집만 바뀐 게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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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레포트는. ”
“ 사실 다 썼지. 니가 그리 닦달을 하는데 누가 안 쓰겠노. ”
“ 허? 그럼 시험공부는. ”
“ 자고로 시험은 메달을 따기 위한 장소다. 내 모르나. 메달리스트 강다니엘. ”
지랄한다. 선호 때문에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말을 꾹꾹 눌러 담고 들고 왔던 짐을 다시 챙기고 나가려고 하니 어딜 가냐고 묻는다.
어딜 가긴 집에 가지. 어차피 내일은 주말이겠다. 오늘은 공부를 건너뛰어도 되겠다는 생각에 가려는데 돌아오는 건 축 처진 다니엘의 모습이다.
강아지 귀가 있었으면 분명 축 늘어졌을거다. 그러더니 선호를 다리 사이에 앉히고 슈렉에 나오는 고양이처럼 쳐다본다.
뭐, 왜. 갈 거야. 말리지 마.
“ 가나. 내랑 얼라 이리 놔두고. 좀 더 있다 가지. ”
“ 가야지. 그래도 잠은 집에서. ”
“ 내랑 얼라 둘이 집에 놔두고? ”
“ ...... ”
“ 내랑, 선호, 이리... ”
“ 아, 진짜 좀. ”
이게 단점이다. 친하면 친할수록, 안 지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서로를 다루는 법을 잘 안다. 어떻게 말을 하면 지는지, 이기는지. 어떻게 나가면 어떤 반응이 나오는지.
끝까지 밀어붙였어야 하는 건데 순간 방심했다. 푸우, 한숨을 쉬고 말랑한 매트 위에 누우니 선호가 기어 와 품에 쏙 안긴다. 그래, 선호만 아니였으면...
아기가 이렇게 힘이 되는 존재인가. 나도 모르는 모성애가 알게 모르게 솟아오르는 기분에 선호 볼을 톡톡 치니 방실방실 웃는다. 그래, 내가 너 때문에 좀 더 있다 간다.
“ 그리고 아직 치킨 안 왔다. 바보가. ”
선호야 미안, 이유가 하나 더 늘었어.
22개월입니다! |
극 중 선호의 나이를 초반에 15개월에서 20개월로 하려고 적었으나 10개월로 수정하게 되었습니다! 때 아닌 아기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ㅎㅅㅎ 누가 제 검색 기록 볼까봐 겁나요... 엉엉... ㅠㅅㅠ 느리다면 느리게 느껴지실수도 있는데 최대한 질질 끄는 느낌이 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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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6] [소보녜루] [셸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