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다 보고 온 곳은 베스킨라빈스였다. 이대로 집가기엔 날씨도 너무 덥고, 집에 가기도 싫어서 여기저기 돌어다니다가 보인 아이스크림 가게에 그 곳으로 바로 직행했다. 아이스크림을 고르고 앉아 서로 어색하게 먼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박우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갑작스러운 박우진의 물음이었다. 무얼 어떻게 생각하는지 주어 하나 없이 말해버리면 내가 어떻게 알란 말인지.
"뭐? 영화?"
"나를."
영화가 어떻냐고 물어보는 줄 알았던 나는 제대로 영화를 안 본 것을 후회하며 그나마 남아있는 장면 몇 가지들은 겨우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려던 찰나 박우진의 입에서는 나를. 이라는 말이 나왔고 모든 사고회로가 정지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나를 좋아하는 H
박우진은 그런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고, 나는 여전히 눈만 깜빡거리고 있었다. 이게 갑자기 무슨 말인지.
"이제 알 때도 되지 않았나."
"..."
"니 눈치 챈 걸로 알고 있었는데."
"..."
"그건 아닌가보네,"
연이은 박우진의 말에 정신은 더더욱 없었다. 그동안 혼자서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박우진의 목소리로 직접 듣는 말이었기에 느낌이 달랐다. 내 대답을 재촉하는 듯이 내 얼굴을 계속 빤히 쳐다만 보고 있었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지금 무슨 대답을 하더라도 평범한 친구사이는 물 건너갔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내가 만약 여기서 거절한다면 예전같이 스스럼없이 지내기는 어려울 것 같았고, 그렇다고 받아준다면... 그것 또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내는 계속 니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고 있다.
임영민이 니한테 계속 말 걸어서 짜증났고 보기 싫었다.
그런거 하나 못 말하는 내가 등신같아서 화낸거고."
"이제 좀 받아주면 안되겠나."
박우진의 목소리가 점점 떨렸다. 마지막 말을 하고는 결국 고개를 바닥으로 떨구었고, 둘 사이엔 정적만이 흘렀다.
이때까지 박우진의 마음을 약간은 알고 있었던 것도, 그걸 모른 척한 것도 다 맞다. 그래서인지 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기다려줄까."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무슨 말을 해야할 지도 어떻게 꺼내할 지도 모르겠는 마음에.
"그래. 내 그래도 기다리는 건 잘한다."
내가 좋아하는, 나를 좋아하는 H
그렇게 박우진의 고백 이후 나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먼저 가라는 박우진의 배려 덕에 집으로 가는 길엔 혼자 갈 수 있었다.
어떤 말을 전해야 할지. 아직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박우진에 설렜고,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긴 했지만 고백을 받는다는 생각조차는 못 해봤다. 이래도 저래도 정리가 하나도 되지 않는 머리속에 마음은 복잡만 해졌다. 이럴 땐 몸이라도 굴려야 한다 싶어 부산스럽게 움직이기만 했다.
"니는 왜 그렇게 싸돌아다니는데. 더워 죽겠구만."
결국 엄마께 핀잔을 듣고 나서야 자리에 앉았다. 티비를 보는데도 박우진의 얼굴이 보였고, 밥 먹을 떄는 급식을 챙겨주던 박우진의 모습이 보였다. 이대로는 하루도 못 살 것 같았다. 이게 뭐하는 짓인지. 입맛도 없고, 생각도 많아 집 밖으로 향했다. 어둑어둑한 하늘이었지만 설마 비가 오겠냐는 생각에 무작정 향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흐리긴 했지만 해가 남아있던 하늘인 어느새 구름으로 가득히 메워졌고 차가운 물방울들이 곧 떨어지기 시작했다. 무작정 앞으로만 걷던 나는 생각보다 멀리 온 걸 깨닫고 주위 편의점으로 향했다. 돈을 꺼내려 넣은 주머니엔 지갑이 아닌 천원짜리 지폐 한 장만이 들어있었고, 아무것도 사지 않고 앉아있기에 미안했던 나는 우유 하나를 사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비는 그칠 기미가 안 보였다. 어쩔 수 없이 엄마에게 전화해야 했고, 곧 데리러 오겠다는 답을 받았다. 한결 여유로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던 앞에는 우산을 든 엄마가 아닌 박우진이 서있었고, 나를 발견하자 놀랐는지 눈이 커졌다. 내가 있는 줄 모르고 엄마가 시켜서 왔나보다.
"자. 우산."
박우진은 우산을 접어 나를 향해 건넸고, 다시 우산을 사려는 듯이 우산이 진열 되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우산 사게?"
"어. 니 불편하잖아."
"됐어, 같이 써."
"됐다. 쓰고 가라. 어서."
어서 쓰고 가라며 손을 휘적휘적 젓는 박우진의 손을 잡고 끌고 와서야 겨우 옆에 세울 수 있었다. 박우진의 손을 끌고 펴져있는 우산 안으로 데려왔다.
"잡아줘. 우산이든, 뭐든."
한 손으로는 우산을 반댓쪽 손으로는 내 어깨를 감싸고 작은 우산안에 둘이 몸을 구겨넣고 걸었다. 걷는 동안 말은 오가지 않았지만 떨리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박우진 덕분에 하나도 젖지 않고 올 수 있었다. 정작 본인은 다 젖었는지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셔츠 어깨 부분을 털어댔다.
이젠 나도 모르겠는 내 마음이여서 마음 내키는대로 해보기로 했다.
내 마음은 박우진을 좋아하는 것에 끌리나보다.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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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01 |
박우진!!!!! 만약 제가 여주였다면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고는 좋아!!!! 라고 고백받자마자 소리쳤을 겁니다. 우산 들고오는 우진이는 그냥 보고싶어서 마지막에 넣었네요. 그래서 여주와 영민이는? 여주와 영민이는 ㅎㅎ... 남주는 오늘 드디어 밝혀졌습니다. 처음부터 정하고 쓴 글이라 약간 분량이 압도적으로 많긴 했쥽다 히히. 저의 목표는 앞으로 두 편 이내에 완결을 내고 새로운 작품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ㅜ.ㅜ 쓸 때는 오늘따라 길게 썼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확실히 읽으니 평소보다 정말 꼬딱지만큼 많네요@:₩@ 요즈음 날이 더우니 피곤한지 맨날 집에만 오면 축 쳐져 있습니다. 연재 텀도 점점 늘어지는 기분... 겨우 정신을 붙잡고 쓰고 있습니다 흑흑 독자님들 싸루매요. ♡♡♡♡ 항상 글 올릴 때마다 하는 얘기이지만 더운 여름날 고생많으십미다. 저두 더워 죽게쓰미다.ㅠㅠㅠㅠㅠㅠ 선풍기에 의존해서 사는 삶.. 모기에 물리는 삶... 고것은 나의꿈이 아닌데.....독자님들 건강 조심하시고 다음 화에서 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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