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우진의 고백 아닌 고백을 들은 날 이후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의식됐다. 그런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런 말을 뱉은 본인은 평소와 별 다를 바 없었고, 그 말을 들은 나만 기분이 이상했다.
박우진과의 관계는 친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집도 가깝고 부모님끼리도 친하셔서 자주 만났고, 딱히 회상해보자면 떨어져 있었던 적이 없었다. 이런 우리에게 로맨스라는 단어는 어울리지도 않았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던 단어이다. 그래서 박우진의 행동이나 말을 단순한 우정으로 치부했다.
내가 좋아하는, 나를 좋아하는 E
"아 좀 조심해. 등신아."
무릎에 붙은 밴드를 보자마자 박우진이 한 말이었다. 딱히 큰 상처는 아니었고, 멍때리면서 걷다 모서리에 찍혀 난 작은 상처였지만 박우진은 유난히 호들갑을 떨어댔다.
"니가 이러니까 내가 잔소리를 하지."
평소 같다면 니가 왜 잔소리를 하냐며 짜증을 낼 말이었지만 오늘은 그런 말조차 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 말을 꺼냈다간 또 어떤 말을 들을 지 몰라서. 박우진의 잔소리에 시선을 바닥으로 떨구고는 앞으로 걸어있으니 뒤에서 나를 잡아당기는 것이 느껴졌다.
"야 앞에 보고다녀. 나 없으면 어쩔래."
"뭘 너 없으면 없는거지, 뭔 그런 말을 하고 그래."
박우진의 말은 평소와 다를 것 없었는데 나만 혼자 이러고 있으니까 뭔가 억울하고 짜증이 났다. 그래서인지 박우진에게 더 심통을 부린 것 같다. 그러게 누가 다 들리게 그런 말 하랬나. 마음 속으로 자기합리화를 한껏하고는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방금 박우진이 완전 이상하게 봤겠다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 그런 거 신경 안 쓰기로 했다. 뭐가 됐든 나를 좋아하는 건 누구도 아닌 박우진이니까.
아. 자리.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학교에서도 박우진과 떨어질리가 없었다. 박우진이랑 짝지였지, 나. 자리로 터벅터벅 걸어가 핸드폰 액정만 보고 있으니 내 뒤에서 따라오던 박우진도 금세 자리로 와 내 핸드폰 액정을 같이 보고 있었다.
"뭐 보는데."
"그냥. 할 거 없어서."
"맞나."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금 말을 걸어왔다.
"근데."
"왜?"
"아니다."
"뭐고, 재미없다."
박우진은 분명 달라진 게 없는데 혼자 이러고 있으니 청승맞기도 했다. 억울한데 또 마냥 그렇지만은 않았다. 설렜긴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도저도 아닌 이런 감정에 얽매여 이러고 있는게 한심해 보일 것 같아서 이런 짓도 그만두기로 했지만 사람 마음이 그렇게 쉽게 접히지는 않았다. 이따금씩 걸어오는 장난에 괜히 놀래 화를 내고, 멍 때리고 있을 때 훅 들어온 박우진에 얼굴에 놀라 나자빠질뻔 한 것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이런 날들에 지쳐갈 때 즈음, 박우진은 자신의 마음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사소하게든, 대놓고든. 박우진은 그랬다.
내가 좋아하는, 나를 좋아하는 E
"있잖아, 김여주. 이거는 그.. 내말고 친구 얘긴데."
"어?"
"하, 아이다. 니가 뭘 알겠노."
"아, 왜. 말해주면 안되냐."
"들어봐봐."
박우진의 얘기인 즉슨 자신의 친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의 짝녀가 걔를 피해다닌다고 했다. 막 부르면 도망가고, 괜히 몸짓도 오바해서 하고. 얘기를 들어보니 꽤나 나랑 상황이 비슷했다. 아무생각없이 짝녀도 걔 좋아하는 거 아냐? 고백해보라고 뱉어버렸고, 그것이 박우진 본인의 이야기라는 걸 깨달은 건 그 얘기를 뱉고 난 다음의 일이었다.
"아 고맙다. 갸한테 전해줄게."
쉬는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박우진은 기다렸다는 듯이 야, 있다아이가. 하며 말을 걸어왔다. 성심성의껏 박우진의 물음에 다 대답해주니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마치 본인얘기가 아닌냥, 친구에게 전해주러 가는 척. 그런 박우진이 사라지니 그 자리엔 임영민이 나타났다.
오늘도 여전히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고는 말을 걸어왔다. 요즘따라 박우진이 없을 때만 오는 건 기분 탓인지. 둘은 이상하리만치 좀처럼 마주하지를 않았다.
"여주, 안녕? 전번 그 때 알려줬는데, 한 번도 연락 안 하더라?"
"아, 맞다. 내가 정신이 없어서."
"아냐 이제부터라도 많이 하면 되지."
"너한테 고마운 것도 많은데 맨날 미안한 일만 만드네."
"고마우면."
"..."
"같이 밥 먹자."
꽤나 당황스러웠고, 전혀 생각치도 못했던 말이기에 임영민을 보고만 있었다. 그러자 웃어보이며 갈 거지? 라 물어오는 임영민에 차마 아니라 대답할 수 없어 어..일단 되면? 이라는 말을 남겼다. 임영민은 끝까지 그럼 연락하라며 핸드폰을 들어보였다.
사실 임영민의 말은 머리속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어쩌면 박우진의 생각으로 머리속이 가득차서 그런지 더 들어갈 공간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 밥 먹는 거
박우진한테는 말 안 했으면 좋겠는데 ㅎㅎ 5:48 PM
핸드폰 화면에는 임영민 이 세글자와 함께 임영민의 카톡이 떴다. 그제서야 아 나 밥 먹기로 했지가 생각났고, 임영민에게 어떤 답을 할 지 고민하다 계속 톡을 읽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안 읽는게 읽고 답 안 하는 것보다 낫겠다는게 내 결론이었으니까.
카톡 창에 뜬 박우진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어쩌면 톡을 보낸 임영민의 이름보다 크게 다가왔다.
억울하고, 설레고 또 마냥 그렇지는 않고 짜증나는 박우진이지만,
하루종일 머릿속에서 그 이름이 떠나가지를 않았다.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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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01 |
오랜만에 글로 신알신 울린 A01입니다. 우선 약속했던 날짜보다 조금 늦게 와서 정말 죄송합니다. 몸도 별로 안 좋고, 글을 쓸 컨디션도 안 되어 오늘에서야 겨우 써서 이렇게 늦은 새벽에 독자님들의 알림을 울리네요 ㅜ.ㅜ 우진이의 행동 하나하나에도 이제 여주는 엄청 신경을 쓰고 있고, 이에 맞서 또 영민이는 데이트 신청을 했습니다. 거의 완전 클라이막스!!! 과연 여주는 어떻게 할지... 오늘도 역시 브금 고민을 엄청나게 했습니다 ㅋㅋㅋ 가사가 좋으면 멜로디가 안 맞고, 멜로디가 좋으면 뭔가 가사가 애매하고의 굴레를 계속 반복하다 결국 이 노래로 정했습니다. 어떠신지요.. 브금 정하다가는 더더 새벽이 될 것 같아 일단 이 노래로 정하긴 했지만 잘 어울렸으면 좋겠는 마음입니다. 쉬는 동안 글 쓰는 방법을 까먹었나봐요.. 정말 엎은 것만 몇 번째인지. 이게 한 다섯번? 정도만에 나온 글인 것 같습니다. 아마 이 때까지 올린 글 중에 가장 시간이 많이 걸렸을 것 같고.. 오래동안 기다리느라 정말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재밌게 보시고 또 다음 글에서 봬요!! |
BGM |
Analogue summer - 너만 보면 그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