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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하나 건드릴 수 없을 것 같은 정적이 하늘을 문다. 짹짹거리는 참새소리만이 눈치있게 정적을 갈라주었다. 말이 없는 김용국과 집을 같이 간다는 것은, 게임 속 궁극의 퀘스트를 깨는 것 만큼 힘든 일이었다. 맨땅에 헤딩할 것처럼 땅만 보고 걷다가 고개를 들자, 김용국의 너른 등짝이 햇빛을 받고 고운 융단처럼 펼쳐졌다. 그곳에 파묻힐 수 있다면 내 무덤이 되리라,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잘 벌어진 어깨, 험한 일 한 번 해보지 않은 것 같은 섬섬옥수, 긴 학다리. 그것은 사춘기 소녀가 학교의 인기남에게 빠질 수 있는 조건을 모두 갈아넣은 공식 같은 것이었다. 더불어 쨍한 여름의 기운을 덮어주려 어깨를 잡고 날 왼쪽으로 슬쩍 밀어주는 세심한 매너까지. 길게 내려온 치마 안에 삐죽 튀어나온 실밥이 놀리듯이 덜렁거렸다. 흙 묻은 운동화도, 손에 잡히는 여드름 무더기도, 키의 10을 넘어가는 몸무게 때문에 김용국에 비해 참으로 짧고 뭉툭한 다리도. 외적인 것에는 여자라는 차이를 주고서라도 미디어의 여신들과 현저히 차이나는 그 갭이라는 것에 나는 기가 죽고 말았다. 나의 자존감은 낮은 편이 아니었으나 이런 완벽한 남자와 이뤄지게 해 달라는 꿈은, 내 분수에 어울릴까란 생각을 입안으로 곱씹었다. 그럼에도,[프듀/김용국/켄타] 조용한 고양이와 사악한 댕댕이 C | 인스티즈 


 


 


"...배고파." 


 

"....어?" 

"....저.." 

"아, 얼른 집 가서 밥 해먹자!!" 


 

꼬르륵 소리가 요동친다. 5초 뒤, 다시 한 번 크게. 내 완벽한 고양이 왕자님의 뱃속에서 사람다운 소리가 흘렀다. 순간 픽 하고 웃음을 제끼는데, 귀가 토마토처럼 불그래졌다. 황급히 돌린 고개에 열이 오르는지 용국이 손부채질을 했다. 새하얗게 마음이 맑아졌다. 무언가 힐링되듯이. 김용국이 아드레날린을 무더기로 처넣은 약을 온 몸에 바르고 다니는 건 아닌가 의심스럽다. 그런게 아니면, 이렇게 사랑스러울 리 없고, 그 사랑스러움에 이렇게 내 심장이 요동칠 리 없다.  


 


 

"어? 너 김용국 아니야?" 

"옆에는...ㅇㅇ이네?" 


 


 


 


 

얄쌍한 그림자가 김용국의 그림자와 겹쳐 거대한 몸뚱아리를 가진다. 매끈한 바디라인을 가진 불청객은 머리카락을 오른쪽 어꺠로 넘기며 요사스러운 손짓으로 인사한다. 김용국은 시큰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큰 쌍커풀 눈에, 오똑한 코에, 날렵한 턱이 내 동그란 얼굴을 내리치듯 기를 죽였다. 나를 슬쩍 보다가 한쪽으로 입꼬리를 묘하게 올렸다. 용국아, 둘이 사귀어? 라는 말에 대차게 고개를 흔들었지만 김용국은 묵묵부답으로 현희를 쳐다보았다. 그것은 마치 네 일이 아니야 라고 선을 긋듯 완강한 제지의 표현처럼 보였다. 용국이 귀찮단 듯이 내 등뒤를 툭툭 밀며 고갯짓했다. 무시를 당한 현희가 살짝 어이없단 표정으로 이를 씹으며 내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지나가는 뒷모습의 다리가 끝도 없이 길쭉하길래 나는 또 한 번 아래를 쳐다보며 울상 지었다. 


 


 


 


 

*** 


 


 


 


 

"알알알!!!" 


 


 


"시끄럽다. 켄타" 

[프듀/김용국/켄타] 조용한 고양이와 사악한 댕댕이 C | 인스티즈
 


 


 

오자마자 강아지로 변한 켄타가 나를 맞았다. 내 다리에 얼굴을 부비자, 용국이의 인상이 묘하게 일그러지더니 켄타를 손으로 안아 들었다. 수컷의 동질성을 손에서 맡은 켄타가 용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쳤다. 주방에서 양파를 꺼내자, 용국이가 칼과 도마를 씻기 시작했다. 낮에 설거지 좀 해놓지.. 강아지가 된 켄타 녀석을 원망스러운 듯 발로 툭툭 밀었다. 원래 손님에게 집안일을 시키진 않지만 용국인 늘 당연한 듯 주방에서 옷자락을 위로 걷었다. 오늘은 용국이 늦잠을 자는 바람에 아침을 나 혼자 차렸는데, 그게 지각하는 바람에 설거지가 쌓여버린 것이다. 수북히 쌓인 설거지에 초파리가 꾀어 날아다닌다. 더럽고 게으른 여자. 나 자신을 백 번 나무라도 모자랬다.  

 밥을 다 먹고 용국은 재빠른 손으로 설거지를 마치더니, 바닥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걸레질을 할 때마다 푸석히 쌓여가는 먼지때문에 민망함에 고개를 숙였다. 원래도 청소를 잘 하지 않는 타입인데다, 김용국에게 엉덩이를 보이는 꼬라지가 싫어서 청소를 늘 대충 물티슈로만 했더니 벌어진 참사였다. 켄타가 난동질을 할 때마다 사뿐히 내려앉은 털도 이따금 섞여 들어갔다. 저 지랄견의 털을 다 뽑아버릴까 하는 마음이 솟구쳤다. 용국은 아무렇지 않게 청소를 마치고, 냉장고를 열어 뼈다귀를 꺼낸 뒤 켄타 앞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그릇이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민망해 황급히 청소기 필터를 가는 시늉을 하였다. 


 


 


 

"미안해 용국아." 

"...뭐가?" 

"...그 청소." 


 

[프듀/김용국/켄타] 조용한 고양이와 사악한 댕댕이 C | 인스티즈
 

"아, 나 방금 다했어." 


 


 

용국이는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안경을 꺼내 썼다. 그러자, 교수님처럼 학구열이 강한 얼굴로 변했다. 기지개를 펴는 데 정말 뿌듯한 얼굴이었다. 학교에서 하도 요지부동의 자세로 있길래, 과연 움직임을 구사할 줄 아는 것인가 의문이었는데 그는 반전으로 나보다 부지런했다. 용국은 소파에 올라서더니, 담요를 펴고 자신의 온몸을 맡겼다. 용국이 청소를 하고 담요에 얼굴을 묻는 것은 하루의 일과를 끝내는 행동이었다. 담요 속에 들어가 있는 김용국의 몸짓이 정말 고양이 같아서, 나는 픽 웃음을 터뜨렸다. 김용국이 이상하게 쳐다본 건 안비밀. 


 

*** 


 

"너, 김용국이랑 사귀어?" 

"진짜? 진짜?" 


 

교실문을 열자마자 귀를 덮치던 노는 아이들의 물음이었다. 여기서 노는 아이들의 특징이란 김용국에 대한 광신도 집착과, 담배와, 가출 등등 탈선한 청소년들이 시도해 볼 수 있는 것들을 모조리 하는 아이들이었다. 웅성거림에 내 이름과 김용국의 이름이 겹쳐 귀에 또박또박 박혔다. 그 중간중간 섞여 들어가는 가벼운 욕과 무거운 조롱은 자체 필터링되어 웅웅거렸다. 켄타가 내 뒤에서 불쾌한 듯이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가방을 책상에 내려놓자, 친구라 할 수 없는 학급 학우들이 떼거지로 몰려들었다. 너네 사귀어? 언제부터? 김용국이 고백했어? 등등 사귀는 사이에 물어볼 수 있는 온갖 질문들을 퍼부었다. 아마 어제 입 가벼운 현희를 마주친 것이 화근이라 생각되었다. 뻔한 인과관계에, 예상되는 전개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김용국이 여자와 어울리는 꼴을 본 적이 없는 터라 그가 나와 있었다는 것이 세간의 이슈가 될 만하였다. 나의 자존감은 늘 자신만만한 얼굴로 당당한 목소리를 외쳤지만, 어쩐지 그 도도한 김용국과 엮이면 이렇게 내 목소리를 내기 힘든지. 

 멀리서 들릴법하게, 혹은 안들리게 소곤거린다. 그것은 김용국이 아깝다, 김용국은 저 애의 뭘 보고 사귀나 정도의 발언이었다. 이 나이 먹고 유치하게 왕따를 시키진 않을 나이였으나, 언어폭력인지 모르는 언어들이 나를 휘둘렀다. 가슴이 기분나쁘게 두근거렸다. 착한 얼굴에 착한 성격을 지닌 친구들이 내 옆자리로 와서 진짜 사귀어? 하고 되묻는다. 적어도 사랑은 분수에 맞게끔 했어야 하는데. 갑자기 낮아진 자존감이 날 파고들었다. 웃으며 아니 라고 말하자, 아아~ 그럼 그렇지 라는 반응들이 나를 묘하게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굴욕의 탑에서 나를 굴리듯이 친구들은 다시 일상이야기로 화제를 전환시켰다. 

[프듀/김용국/켄타] 조용한 고양이와 사악한 댕댕이 C | 인스티즈
 


 

"너네 왜그래?" 

"조용히 해, 괜찮아." 


 

켄타가 눈치 없이 큰소리로 구석진 곳의 여자아이들을 보며 외쳤다. 태생이 강아지인 켄타는 귀가 미친듯이 밝았다.  


 


 


 

"아니이이, 제가 그런 게 아니라 쟤네가 먼저!!!" 

[프듀/김용국/켄타] 조용한 고양이와 사악한 댕댕이 C | 인스티즈 

 


 

"...들어가." 


 

언제 들어왔는지 모를 용국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가방끈을 고쳐매었다. 길을 막는 아이들이 불편했던지 참고 기다리던 용국이 한 마디를 던졌다.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것은 말을 하지 않는 저 고양이가 학우들한테 날릴 수 있는 최대의 음성이었을 것이다. 현희가 김용국에게 쪼르르 달려가서 너네 둘이 사귀냐고 독촉하듯 물었다. 아까 한 번 답변 받았으면 물러날 줄도 알 것이지, 언제까지 날 굴욕의 늪에서 굴릴 건지 의문이었다. 용국이 언제나 그렇듯 답변이 없었다. 학우들의 웅성거림을 하나의 소음으로 치부하고 조용히 의자에 걸터 앉자, 머리에 나비핀을 꼽은 여자애가 다가와 물었다. 너 저런 애랑 사귀어? 


 

"저런 애가 어떤건데?" 


 

"...어어??" 


 

말을 하는 것도 모자라 살짝 까칠한 어투에 여자는 당황한다. 나도 모르게 침이 뒤로 넘어갔다. 김용국이 나를 주제로 음성을 냈다는 것조차 황송하여 나는 황급히 고개를 아래로 깔았다. 예상치 못한 긴 문장에 여자는 우물쭈물하다 한 마디를 간신히 꾸물꾸물 뱉었다. 


 


"그냥... 딱봐도 알지 않나, 네가 아까운 거.' 

"...모르겠는데? 내가 아깝다고? 아닌 것 같은데." 

"...어?" 


 

[프듀/김용국/켄타] 조용한 고양이와 사악한 댕댕이 C | 인스티즈
 


 


 

"사귄다고 해도 알바 아니고, 그리고 친구고. 저런 애가 사랑스럽고 귀여운 거 말하는거면 맞아." 

"...허얼, 미친." 


 

"...부탁이니 신경을 안썼으면 좋겠네. 제발." 

"너, 미쳤어 김용국?" 


 

켄타가 황급히 더 말하려는 용국을 제지한다. 용국은 목구멍이 칼칼거리는지 인상을 찡그리며 자신의 목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곤 황급히 교실 뒤쪽으로 뛰어갔다. 지면과 마찰하는 교실문이 엄청난 굉음처럼 귀를 쑤셨다. 복도를 뛰는 실내화소리가 나와 멀어지려는 듯이 들려, 가슴이 시큰했다. 아이들은 다시 웅성거리다, 종소리가 들리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의자에 착석했다. 하나의 가벼운 에피소드처럼 지나가는 듯 하였으나, 나는 무슨 고백이라도 들은 것 처럼 심장이 벌렁거렸다. 정말, 내 '분수'에 맞지 않게. 선생님이 교실문을 열고 출석부를 꺼내들자, 자연스럽게 내 시선이 주인이 있지 않은 김용국의 앞자리로 쏠렸다. 그의 빈자리를 가끔 볼때마다 불완전한 교실이 된 것처럼 사무친 불안함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용국이는 대답을 늘 하지 않아 손으로 자신의 존재를 표시하곤 했다. 그 섬섬옥수가 부재라니, 오늘 수업에 집중하는 것은 틀렸다.  


 

"용국이는 어디 갔니?" 

"...저..모르겠어요." 

"...용국이가 가끔 무단조퇴를 할 때가 있단 말이지. 저번 음악 시간 다음에도 그러지 않았나? 맞지?" 

"그런 것 같아요. 가창시험이었나, 그때가." 


 

선생님이 무심하게 빨간펜을 들고, 지익- 하고 그의 이름을 그었다. 소리가 거슬렸다. 


 


 

"응? 뭐야. 건태는 어디갔어?" 


 

*** 


 


 


 


 

"오늘부터 다들 야자 시작인거, 알지? 미리 예체능이라고 말했던 건태와 현희, 소현이, 민희, 동한이 등 20명 제외, 모두 한 명도 빠짐없이 야자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에에에~~ 개싫어!!" 


 

"...시끄러! 아휴, 우리반은 하여튼 정신상태가 글러 빠져서. 야자 13명이 뭐야." 


 


 


 


 


 

야간자율학습의 강제가 금지된 것이 꽤 오래됐음에도 불구하고 나름 지역 명문고라는 그 위상에 걸맞도록 자율이라는 이름에 위반되는 행위를 보여준다. 학생들이 모두 불만 섞인 표정으로 연필을 책상에 꼽으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갑자기 말도 없이 사라져 버린 켄타는 저녁 시간이 다가오는 8교시가 끝나자마자, 김용국의 옷깃을 끌고 교실문을 열었다. 무단조퇴라고 여겼던 김용국의 재등장에 모두 부엉이눈이 되어 쳐다보았다. 쏠리는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김용국은 최대한 발소리를 죽여 의자에 착석했다.  

자율 시간은 자리를 맘대로 조정 할 수 있어서 학우들은 모두 자신과 친한 아이와 앉기 바빴다. 나는 너무나 늘 혼자를 주장하는 용국이와 앉고 싶었으나 일이 일인지라 적당히 용국이 뒷뒷자리를 슬쩍 차지해 보았다. 그것 역시 여학우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으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반에서 가장 친한 친구 한 명과 자리를 잡았다. 이어폰을 꼽은 용국의 뒷모습이 갑자기 휙 나를 향해 돌아보았다. 나는 잠깐 멈칫했으나 무슨 배짱이 갑자기 튀어나왔던 건지 예쁘고 얄쌍한 눈을 똑바로 응시하였다. 눈이 맞자, 무슨 스파크가 튄 것처럼 세계가 요동쳤다. 그것은 어두컴컴한 밤의 세계를 찢고 나비 한 마리가 날아온 것처럼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확실한 건 나만. 용국이의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이 나를 의아스럽게 만든다. 용국이는 다시 서둘러 앞을 돌아보았다. 찬 물을 부어야 할 것 같은 빨개진 귀와 함께 동그란 뒷통수가 색색거렸다. 스각스각 연필거리는 소리가 부정확한, 규칙적이지 못한 글씨체가 빼꼼히 공책을 뚫었다. 책 한쪽 모서리를 보자, 언제 썼는지 모를 김용국의 글자가 빼곡했다. 나도 모르게 옷자락으로 그것을 안보이게 슥슥 지웠다. 옷자락에 때가 묻었다. 


 


 


 

야자 2교시가 되자, 체력이 방전되었던 건지 아니면 야자 첫날의 나태함인 건지 아이들 모두 고개가 하나 둘 씩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이스 굿 타이밍이란 것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나는 또 갑자기 저 도도한 고양이에게 들이대고 싶은 욕심에 오늘날의 모욕감을 잊고 자리를 한 칸 옮겼다. 손을 휘휘 저어 대충 친구의 수면상태를 확인하고 용국이의 뒷자리로 한칸을 땡기자, 용국이 의식되었는지 고개를 반바퀴 정도 돌렸다. 그리곤 소리소문없이 가방걸이에 걸린 가방을 들고 내 옆자리에 가방을 약간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그의 냄새를 맡고 엎드려 있던 고개가 먼저 반응한다. 이어폰이 귓구멍에서 힘없이 떨어졌다. 놀란 토끼눈을 살짝 맞추어준 용국이 티나게 고개를 반대로 돌렸다. 어쩐지 후덥해진 열기를 견딜 수 없어 손부채질을 하기 시작했다. 용국과 옆에 붙어있었던 적은 많았지만 이 교실안의 짝꿍이라는 단어적 의미가 나에게 참 크게 다가왔다. 연필을 쥔 손에 힘이 풀린다. 반듯하게 내려앉은 용국의 손 안의 연필이 쉼없이 흔들거리며 까만색이 공책에 덮힌다. 그 연필이 되어보고 싶었다. 단 한번만이라도. 이 난쟁이 같은 손가락이 아닌, 용국의 길고 예쁜 손가락이 되어보고 싶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동경이라고 하기엔 조금 멀고, 사춘기 소녀의 순수한 성적 호기심이라고 표현해야 맞겠다. 그 어두운 생각이 커지자, 나도 모르게 연필을 쥔 용국의 손등 위에 손을 겹쳤다. 부드럽고 촉촉한 촉감이 온몸을 덮쳤다. 심장에 고였던 피가 거꾸로 쏠리는 기분이었다. 마디에 땀들이 줄줄 배었다. 용국이 깜짝놀라 손을 움찔하자, 나는 답지 않게 갑자기 부끄러움이 들이닥쳤다. 지난 날 쓰레빠를 신고 김용국에게 번호를 달라던 그 패기는 어디로 가고, 나는 황망히 손을 거두어 오른쪽 손으로 왼쪽 손을 슥슥 닦았다. 용국이 내 책상 선을 넘어 내 공책에 무엇인가를 적었다. 


 

[프듀/김용국/켄타] 조용한 고양이와 사악한 댕댕이 C | 인스티즈
 


 

'방해 하지마.' 


 


 


 


 

나는 공포 영화를 본 인간 처럼 글귀를 보고 떨기 시작했다. 물론 용국이에게 티는 나지 않게.(티가 났을 수도 있다) 무엇이 방해되었던 것일까? 안 쳐다보는 척 하면서 다 꼼꼼히 쳐다본 것? 손을 만진 것? 10분전에 뭐하냐고 장난스럽게 쪽지를 던진 것? 

 이런 나의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 지, 김용국은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사람 마음을 헤집어놓고 천연덕스레 공부라니, 나를 안 좋아하는 사람인 것을 알기에 더욱 약이 올랐다. 나는 슬몃 쪽지에 무엇인가를 적고 김용국의 어깨를 툭툭 쳤다. 아무리 고교시절 낭만이라지만 난데 없는 쪽지놀이에 의구심이 동한 용국이 집중을 깨고 쪽지를 폈다. 표정이 묘하다. 답은 예 아니면 아니오인 이지선다였음에도 용국이 답안을 지우개로 썼다 지웠다 하는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질문은 다음과 같았으며 답도 다음과 같았다. 


 

Q :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 아니 


 

답변에 뭔지 모를 안심이 들었다. 나를 좋아할 극악의 확률보다, 다른 사람을 좋아할 최악의 상황을 방어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시 질문을 쓱쓱 적어, 용국에게 건넸다. 이미 공부에 집중하기는 틀렸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늘 공책을 응시하던 모범생 용국이는 내 쪽으로 몸을 트는 양아치 짓을 하고 말았다. 아까처럼 다시 질문을 펴자, 용국은 아까보다 더 오랜 시간으로 질문에 대한 답을 고뇌했다. 사실 아까와 같은 유사한 질문으로 고뇌할만한 답은 아니었음에도. 


 

Q : 그럼 관심있는 사람은? 

   : 있다. 


 

뭔가 싸한 느낌으로 가슴을 쓸어 내렸다. 관심 있는 사람이 있다고? 누구? 쟤? 아니면 맨 앞자리에 앉은 쟤? 될대로 되라의 무대뽀를 좌우명으로 삼았던 내가 명탐정 코난처럼 무언가를 추리했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번호 달란 대쉬가 씨알도 안 먹혔던 3개월의 악몽을 생각하면 나일리는 없고. 누구냐, 누구냔 말이다. 우리반 몸매대장 현희? 우리반 공부잘하는 김용국의 이상형일 것 같은 요조숙녀 세현이? 아니면 우리반에서 제일 예쁜 민지? 나는 머리칼을 쥐어뜯고 싶은 심정을 억누르고 다시 질문을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애도 알아? 

...아니, 나만 관심 있어." 


 

머리가 아득해졌다. 위로를 건네야 할지 아니면 무슨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할지, 모범 답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쓰는 것을 망설이던 찰나, 용국이 글자 몇 개를 더 끄적였다. 


 

[프듀/김용국/켄타] 조용한 고양이와 사악한 댕댕이 C | 인스티즈
 


 


 

조금 

속상해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집에 컴퓨터가 잘 안되는데 본가에 내려가 있었거든요ㅠㅠ그래서 오늘 급히 업로드하는 거..안비밀.. 

자그마한 일상 이야기가 많다고 느껴지실 수 있는데 거기서 용국이의 비밀을 쉽게 눈치 채실 수 있어요!  

늦게 업로드한 제 죄가 크므로 다음편은 내일이나 모레 올리겠습니다. 다들 굿주말 되세요!! (다음부터 켄타분량 급많아질지도...) 

제가 약간 전개를 느리게 하는 걸 좋아해서 질질 끌리는 감이 없잖아 있네요..ㅠ참고 기다려주세요! 흑 그럼 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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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ㅠㅠㅠㅠㅠㅠㅠ기다렸어요 작가님!
6년 전
독자2
이제 서브 여주가 나오는 걸까요 아님 관심 있는 학생이 여주인걸까여ㅠㅠ 진짜ㅜ하나두 모르겠어요 용국이의 비밀두...
6년 전
켄콜개짱
용국이의 비밀 서서히 밝혀질 예정입니다. 생각보다 글이 길어질 것 같은 느낌 ㅠ 성의있는 댓글 감사드립니다!!
6년 전
비회원190.121
세상에ㅜㅜㅜㅜ이게얼마만이에요ㅠㅠㅠㅠㅠㅠㅠ
기다렸어요ㅠㅠㅠㅠㅠㅠㅠ

6년 전
켄콜개짱
앗, 저도 비회원님 댓글 기다렸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6년 전
독자3
아 기다렸어요ㅠㅠ❤ 진짜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 집중하게됐어요 진짜 글 한자한자 몰입도 최강이예요.. 다음이 너무 궁금해지는데요.. 잘보고가요 감사해요ㅠㅠ❤❤
6년 전
켄콜개짱
헉, 그렇게 과분한 칭찬을 해주시다니ㅠㅡㅠ 읽어주시고 댓 달아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6년 전
독자4
여주 자존감이 너무 낮은 것 같아여ㅠㅠㅠㅠㅠㅠㅠ보는 나가 다 속상해ㅠㅜㅜㅜㅜㅜㅜㅜㅜ
6년 전
켄콜개짱
저도 속상해요ㅠ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밌게 봐주세요!!
6년 전
비회원81.32
아 너무 설레요ㅠㅠ 왜 우리반엔 용국이가 없는걸까ㅠㅠ
6년 전
켄콜개짱
저도 주변에 용국이 같은 사람 한 명만 나타나줬음 하는 작은 소망이 있어요!! 감사합니다^ㅡ^
6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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