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비밀
세훈x준면
w.BM
“형은, 학교 안 가요? 대학생이라고 들었는데.”
식사가 끝나고 설거지를 하는 내게 꽂히는 질문으로 인해 나는 잠시 멈칫했다가 다시 아무렇지 않은 척, 마저 설거지를 했다. 어떻게 말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사이 세훈은 굳이 대답을 요구하고서 한 질문은 아니었는지 재촉하며 되묻진 않았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세훈이 틀어 놓은 텔레비전의 잡음과 물소리만 흐르고 있었다. 설거지를 마치고 손에 묻은 물기를 닦아낸 뒤에, 뒤를 돌아 텔레비전을 보는 세훈을 쳐다보았다. 짧게 한숨을 내쉰 후에 세훈의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담배 있어?”
미성년자인 세훈에게 담배 있냐는 질문이 어울리지 않을 법한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세훈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담배 곽과 라이터가 전혀 어색하질 않았다. 오히려, 어쩌면 예상하고 있던 행동이었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담배에 불을 붙이니, 이따금씩 동생 종인이가 달고 오던 그 특유의 향이 풍겼다. 아. 나는 그때서야 어쩌면 동생도 담배를 피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담배를 피우고 있는 잇새로 픽, 웃음을 흘렸다. 내 웃음에 세훈이 나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지만, 나는 꿋꿋이 정면을 쳐다보았다.
“나, 대학생 아니야. 대학교 안 다녀.”
“…….”
“종인이한테 거짓말한 거야. 대학 갈 돈이 어디 있어, 돈 벌어야지. 그래서 칵테일 바에서 일해, 바텐더로.”
“…풉.”
내 말에, 느닷없이 세훈이 웃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저러나 싶어 쳐다보니, 손으로 입을 막고서 큭큭, 거리며 웃었다. 뭐야. 나름 진지하게 이야기했는데 웃어버리니 기분이 상했다. 미간을 찌푸리고서 웃는 세훈을 보니, 세훈이 미안하다며 웃는 것을 멈췄으나 입가엔 여전히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 그러다 새삼 제일 궁금했던, 동생이 퇴학당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세훈은 한동안 나를 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김종인, 바에서도 일했어요. 그래서 웃었던 거예요, 형제가 동시에 바에서 일한다기에.”
“아아…….”
“물론, 종인이가 일하던 바는 조금 성격이 다르지만.”
“…설마.”
“호스트바. 호스트로 일했어요. 그래서 퇴학 당했구요.”
“…….”
나는 또 다시 한 방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지고 말았다. 그냥 바도 아니고, 호스트바? 역시 예상대로 내가 모르는 동생의 비밀이 점점 드러나고 있었다. 손에 들린 담배가 필터 끝까지 타들어가며 불꽃이 손가락 사이에 닿았다. 멍하니 있다가 깜짝 놀라 급하게 재떨이를 가져와 담뱃불을 껐다. 생각보다 많이 충격을 받은 모습에, 세훈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종인이, 형이 대학교 안다니는 거 알고 있었어요. 세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려 세훈을 쳐다보았다. 그 눈동자에는 한 치의 거짓도 담겨져 있지 않았다. 알고 있었구나. 동생은 나에 대해 아는 것이 있었고, 나는 동생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는 사실이 꽤 부끄러웠다.
생각보다 동생은, 나에게 어느 정도 관심을 가져주고 있었던 것 같아 눈가가 시큰해지기도 했다. 문득 방구석에 놔두었던, 동생이 나에게 꼭 전해달라고 했던 피가 묻은 흰색의 돈 봉투가 떠올랐다. 아, 종인아. 눈물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애써 삼키려 고개를 위로 향하게 들었다가 다시 숙이곤, 내 앞에 놓아두었던 담배 곽에서 담배 한 개비를 또 꺼내 불을 붙이곤 연기를 빨아들였다.
묵묵히 담배만을 피우고 있을 때, 세훈은 줄곧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끝까지 모른 척 하려다가 도저히 못 견디겠다 싶어서 뭘 쳐다보냐며 세훈에게 물으니, 세훈은 대답 없이 그저 나를 보기만 했다. 머쓱해져서 어깨를 으쓱, 들어 올리며 담배 연기를 마지막으로 빨아들인 뒤에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세훈이 내 손목을 잡아 다시 자리에 앉게끔 했다. 무슨 상황인지 인식하기도 전에 손목을 잡지 않은 다른 쪽 손이 내 턱을 강하게 쥐고 잡아 당겼다.
“담배 피우는 모습, 굉장히 섹시한데요?”
“무, 무슨 소리를…….”
“키스해도 되요?”
“……조, 종인이랑 어떻게 사귀게 된 거야?”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얼굴에, 차마 밀어내지 못하고 종인이의 이야기를 꺼내며 화제를 돌리자, 그제서야 세훈이 뒤로 물러났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마른 입술을 혀를 내어 축이니, 세훈이 단조로운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가 먼저 사귀자고 했어요.”
“그래?”
“종인이는 자신이 어디서 일하는지 알려주면서 거절했는데 제가 계속 쫓아다녔어요.”
“아…….”
“이쯤하면 이야기가 되었죠?”
“어, 응. …참, 난 일하기 전까지 자야해서, 밤늦게 출근하는 거니까.”
“잘 자요.”
이야기가 끝나고 급하게 세훈에게서 멀어져 방으로 들어왔다. 문가에 기대어 방금까지 들었던 이야기들을 다시 한 번 곱씹었다.
호스트바에서 일하던 동생, 그리고 그런 동생조차 좋다고 쫓아다니던 남자. 돈 봉투는 동생이 호스트바에서 일하고 난 뒤에 받은 돈일 것이다. 점점 밝혀지는 동생의 비밀들이, 동생을 더욱 딱하게 만들었다. 호스트바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퇴학당해야 했던 동생, 그리고 추운 날 교통사고로 객사하고만 동생. 그런 동생에게 조금의 관심을 주지 못했던 내 자신이 미워지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동생과 나는 서로 다른 사람이라고 여기며 벽을 만든 것은, 나 혼자만 해왔던 일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동생은 끊임없이 그 벽을 허물고자 했지만, 나는 그 벽을 더욱 더 견고하게 만들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같은 중학교에 다니던 일 년의 시간동안에도 나는 되도록이면 동생과 마주치려 하지 않았고, 일학년 교실에 가야할 일이 생기면 친구에게 대신 부탁하거나, 최대한 동생 반을 지나치지 않는 쪽으로 다녔었던 것 같았다.
조금은 뒤늦게 동생을 생각하는 내 진심이 생각이 났다.
나는, 나와 어머니가 다른 동생이 싫었다. 이게 내 진심이었다.
***
땅거미가 지고 해가 저물 즈음에 방에서 나왔다. 불 꺼진 거실이 차갑도록 고요했다. 아무도 없는 건가 싶어서 살며시 동생의 방문을 열어보니 세훈은 어딜 간 건지 보이질 않았다. 다시 거실로 나와 빙 둘러보니 저녁상이 차려져 덮개로 덮인 채 있었다. 밥 상 앞에 주저앉아 덮개를 걷어내니 아침상과는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몇 가지 반찬이 더 놓여있었다. 무엇인가 싶어서 밥상을 보다가, 숟가락 옆에 종이쪽지가 놓여있기에 쪽지를 펼쳐보았다. 못난 글씨체로 세훈이 장을 봐서 밥상을 새로 차렸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대충 보니 멸치볶음과 계란찜 같은 것이 세훈이 만든 것 같았다. 곧장 젓가락을 들어 먹어보니 맛이 꽤 좋았다. 고마운 마음에 씻고 나와서 밥을 먹고 밖으로 나왔다.
날이 굉장히 추워서 입고 있는 코트 자락을 더욱 여미며 가게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서니 장사 준비를 하는 사장님과 다른 종업원들이 보여서 눈인사를 주고받은 뒤, 탈의실로 들어가 겉옷을 벗어두고 검정색의 앞치마를 허리춤에 맸다. 준비를 끝내고 밖으로 나가 가게 정리를 도왔다.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하기 전 즈음이 되서야 같이 바텐더로 일하는 찬열이 도착했다. 사장님은 눈도 왔으니 그냥 넘어간다고 했고 찬열은 죄송하다고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급히 탈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안에 강렬한 사운드의 클럽 음악이 틀어지고, 서서히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와 찬열은 앞에 앉아 있는 여성 손님들에게 영업용 미소를 지어주며 쇼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나와 찬열이 하는 칵테일 쇼는, 이따금씩 나와 찬열의 칵테일 쇼를 보기 위해 가게를 찾는 손님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한참 칵테일을 만들어주고 있을 때, 웨이터 한 명이 내게 다가왔다. 그는 어떤 고등학생이 나를 찾아 왔다고 하며, 들여 보내달라는 것을 억지로 막고 있다고 했다. 문득 세훈이 떠올라 웨이터의 뒤를 따라 가게의 입구로 가니, 정말 세훈이 그 자리에 있었다. 캐주얼 양복을 입은 세훈은 내가 오자 화색이 돌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웨이터를 보았다. 나는 웨이터를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세훈의 옷깃을 잡고 바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여긴 어떻게 온 거야?”
“그냥, 집으로 가던 길이었는데 형이 여기로 들어가기에 대충 짐작 되었죠.”
“그렇다고 무턱대고 찾아 와? 미쳤지 정말. 얌전히 여기 앉아 있어. 손님들이랑 말도 섞지 말고.”
“알았어요. 형만 보고 있으면 되죠?”
“그러던지 말든지.”
세훈을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히고서 자리로 돌아왔다. 혼자서 손님들을 상대하던 찬열은 내가 돌아온 것을 보고는, 그 앞에 앉아 있는 세훈을 가리키며 누구냐고 물었다. 이에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동생의 친구라고 대답한 뒤 얼음 덩어리를 들고 구형으로 조각하기 시작했다. 팔을 걷어 부치고 컵에 들어가기 알맞게 얼음을 조각한 뒤에 컵에 담아내고서 그 위로 양주를 따라 담아 여성 손님에게 웃으며 건네주었다.
그 동안에 세훈은 정말로 얌전히 앉아서 나를 보고 있었다. 말썽 없이 가만히 있는 것은 참 좋았으나 바라보는 시선이 부담스러워 세훈을 의식하느라 몇 번이고 컵을 돌리는 손이 박자를 잃고 삐끗했었다.
“괜찮아? 계속 실수하네.”
“아… 괜찮아. 며칠 쉬었더니 이 모양이네.”
“잡는 손부터 잘 못 됐다. 이렇게, 너 원래 이렇게 시작했잖아.”
실수가 계속되자 보다 못한 찬열이 가까이 다가와 손 위치를 바로 잡아 주었다. 손 위치가 잘 못 된 것도 모른 채로 세훈까지 의식하다보니 실수가 계속 되었던 것 같았다. 찬열에게 고맙다고 말을 하니 찬열이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제 자리로 돌아갔다.
손님들을 응대하다가, 조금 발길이 뜸해진 틈을 타서 상큼한 과일 음료와 더불어 알코올이 살짝 들어간 칵테일을 만들어 세훈의 앞에 놓아두었다. 제게 내밀어진 칵테일을 보던 세훈이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싶어서 그 앞에 서있으니 세훈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세훈의 가까이로 상체를 숙이니 그제서야 말이 들렸다.
“저 형이랑 많이 친해요?”
“응, 왜?”
“단순히 친한 사이?”
“응. …야 잠깐, 너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내 동생처럼 게이가 아니야.”
“맞는지 아닌지는 모를 일이죠, 세상 사람들의 80퍼센트는 양성애자라는데.”
“내가 양성애자건 이성애자건 너랑 무슨 상관인데?”
“확인 해볼래요?”
세훈의 물음에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쳐다보았다. 장난스러움이 묻어나오지 않는 표정에 오히려 당혹스러워서 상체를 일으켜 세우려는 찰나 또 다시 세훈에게 뒷목을 잡혀 서로의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눈동자만 굴려 제일 먼저 찬열을 살피니 찬열은 제 앞에 있는 손님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 나를 본 세훈이 조소를 흘렸다.
“아무 사이 아니라면서 제일 먼저 눈치 살피는 건 뭐예요?”
“너 같으면 남자 둘이 이러고 있는 게 정상적으로 보이겠니?”
“이상할 건 또 뭐 있겠어요.”
“…오세훈, 장난칠 시간 없어. 여긴 내가 일하는 곳이고 난 일하던 중…….”
“저 지금, 키스할 겁니다.”
미처 밀어낼 틈도 없이 세훈이 내 뒷목을 조금 더 끌어당기며 가까이 다가왔다. 당황스럽기 만 한 이 상황 속에서 떠오른 것은 세훈은 내 동생 종인의 애인이라는 사실 뿐이었다. 코끝이 맞닿았을 때, 세훈은 내리깐 시선을 들어 내 눈을 보았다. 그 시선에, 알 수 없는 욕망이 담겨져 있었다. 본능적으로 위험하다는 것을 감지했지만 차마 밀어낼 수가 없었다. 숨소리조차 크게 들릴 정도로 가까워진 사이에,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아 버렸다.
“준면아 너 빨리…….”
등 뒤에서 들린 찬열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감았던 눈을 떴다. 그제서야 내 뒷목을 붙들고 있던 세훈의 손에 힘이 빠지고 나는 벗어날 수 있었다. 세훈은 피식, 바람 빠진 웃음을 흘리며 주머니에서 담배 곽과 라이터를 꺼냈다. 등 뒤에 서 있을 찬열 때문에 뒤를 돌아보지 못한 채 앞치마 자락만 꾹 쥐고 있다가 아랫입술을 꾹 깨문 채로 고개를 푹 숙이고서 뒤를 돌았다. 찬열은, 약간은 놀란 상태로 나와 세훈을 번갈아 보았다.
“칵테일 쇼, 할 차례야.”
“어… 갈게.”
“…참, 입술 깨물지 마. 망가지면 보기 흉해.”
찬열이, 시선은 세훈에게 둔 채로 내 턱을 들어 올려 고개를 들게 하더니 엄지손가락으로 내 입술을 살살 문질렀다. 그 행동에 담겨진 의중을 정확히 파악할 수가 없어서 찬열을 올려다보고만 있으려니, 찬열이 세훈에게 두었던 시선을 거두고 나를 내려 보며 웃어보였다. 그 사이로, 세훈이 피우는 담배 향이 퍼져 왔다. 아찔한 그 향을 맡으며 칵테일 쇼를 선보일 자리로 돌아갔다. 찬열이 내 뒤를 따랐고, 등 뒤로 끈질기게 어떤 시선이 따라 붙는 것을 느꼈지만 끝내 모른 척 했다.
또 잠깐의 휴식이 주어져 세훈이 앉아있을 자리로 오니, 비어있는 칵테일 잔만 있을 뿐, 세훈은 보이질 않았다. 때마침 그 앞을 지나가는 웨이터를 불러 세워 세훈의 행방을 물으니, 칵테일을 다 마시고서 담배만 피워대다가 나갔다고 했다. 그 말에 알았다고 답한 뒤,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세훈과 찬열의 행동으로 인해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지 모르겠어서 머리가 아팠다.
코끝에는 여전히, 향이 독특했던 세훈의 담배 향이 강하게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BGM. To the moon - Uncharted Realms
반응이 너무 좋아서 부담스럽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느끼고 있어요. 글잡에 글 올린 이후 처음 맞이하는 댓글 수네요. 소중한 시간 내어서 댓글 달아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해요. 암호닉 해주시는 분들도 정말 감사합니다. 따로 기입해두고 항상 기억하고 있을게요 :) 아 글의 분위기를 위해 배경을 검정으로 하고 있습니다. 눈이 아프시다거나 보기 불편하신 분들은 말씀해주시면 다음 화부터 바꾸겠습니다.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