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미안. 못 들은 걸로 하고 먼저 가 볼게.” 난 감고 있던 눈을 뜨며 강다니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그 말을 끝으로 비를 맞으며 급히 도로변으로 달려간 나는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향했다. 택시가 출발하자마자 조심스레 창문 너머로 돌아 본 강다니엘의 모습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는 그대로였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비에 젖은 몸을 이끌고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운 나는 이리저리 뒤척이며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는 문제였다, 이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답답한 마음을 이끌고 침대에서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니 여전히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나 혼자 있는 조용한 집 안을 가득 메우는 건 저 수많은 빗소리뿐이었다. - “야, 벌써 답이 나왔구만 뭘 망설여?” “아니, 내가 말했잖아. 난 다시 똑같은 일이 벌어질까봐 무섭다ㄱ…” “나도 계속 말했잖아. 괜히 겁먹고 아무 것도 안 하는 것 보단 뭐라도 해 보는 게 낫다니까?” “하아...” 진짜 어렵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렵다. 뭘 어떻게 해야 맞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 저녁에 카페로 찾아 온 친구의 말을 들으니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마감 시간이 다 되니 친구는 다른 약속이 있다며 가 버렸고, 난 혼자 카페에 남아 뒷정리를 마쳤다. 내가 강다니엘을 뒤로하고 온 그 날로부터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일주일동안 강다니엘은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이번 주는 얼마 전 출장을 핑계로 찾아오지 않았던 그 일주일보다 더 길게만 느껴졌다. 그에 대한 생각을 지우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내 머리는 자꾸만 그를 떠올렸다. 요즘 애들이 쓰는 말로 뭐, 현망진창. 그게 나에게 딱 어울리는 단어였다. 주문을 받아놓고 엉뚱한 음료를 내 주거나 멍 때리다가 뜨거운 물에 손을 데이기도 했다. 이제야 난 내 감정을 이해했다. 난 강다니엘을 다시 좋아하고 있다고.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강다니엘은 날 너무나 쉽게 무너지게 했다. 늦은 밤, 카페 문을 닫고 집으로 가던 길에 드디어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액정에 비친 그의 이름을 보자마자 내 심장은 마구마구 뛰어댔다. 때마침 맨 끝 차선에서 달리던 나는 바로 갓길에 차를 세우고 목을 살짝 가다듬은 후 조심스레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어… 그… 안녕! 나 김재환이야. 나 기억해?” “어? 아… 어, 기억해. 오랜만이네.” 분명 강다니엘의 이름을 보고 받았는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그가 아니었다. 나는 아쉬운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김재환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일단은 내 감정이 우선이니까. “그… 니엘이랑 내가 술을 좀 마셨는데, 얘가 평소보다 좀… 아니 완전 많이 마셔가지구… 취했는데 계속 너만 찾아서 전화했어. 진짜 미안한데 한 번만 와서 얼굴이라도 비춰주면 안될까? 너 안 보면 집에 안 갈거라고 계속 그래서…” “…거기가 어딘데?” 강다니엘은 지금 괜히 김재환에게 응석을 부리고 있었다. 그도 나처럼 많이 힘들었구나. 어쩌면 나보다 더 힘들었을 수도 있겠다. 아니, 그랬어야만 했다. 그래야 내 결혼생활 중 안 좋은 기억이 치유될 것 같았다. 이런 못된 심보를 가지고 열심히 운전하다보니 어느새 김재환이 알려준 장소에 도착했다. 차를 주차한 뒤 조심스레 술집 안으로 들어가니 테이블에 쓰러져 있는 강다니엘과 그 옆에서 안절부절 못 하고 있는 김재환이 바로 보였다. 그래, 이렇게나 힘든 감정소모 이제는 그만해야지. ** 여주가 내게서 등을 보이며 떠나가는 걸 보면서도 난 가만히 서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2년 전 그날처럼. 너무 성급하게 고백을 한 걸까. 그래도 매일매일 출석 도장을 찍으며 나름 잘 했다고 생각했는데.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씁쓸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역시 난 안 되는 건가. 괜히 마음이 쓰려서 꽤나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마트에서 술을 왕창 사 들고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난, 비 오는 날 혼자 청승떨며 꽤 많은 술병을 비웠다. 빨리 정신을 비우고 잠들고 싶었는데,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정신이 또렷해지고 여주만 생각났다. 이렇게나 소중한 그녀에게 난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난 스스로를 수없이 질책하며 주말 내내 술과 함께했다. - 일주일이 흘렀다. 차마 다시 여주를 찾아가 치댈 용기가 없어져 그녀의 카페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이래저래 지친 몸을 이끌고 회사에 앉아 있으니 주위 동료들이 어디 아프냐고 걱정을 해 왔다. 그런 질문들에 대답조차 할 힘도 없는 나는 그저 살짝 웃어 보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난 전혀 괜찮지 않았다. 다시 돌아온 주말, 나는 재환이에게 연락해 또 술집을 찾았다. 한참을 아무 생각 없이 부어라 마셔라 하던 나는 재환이에게 무의식적으로 여주와 있었던 모든 일을 술술 뱉어냈다. “아휴, 미친놈. 그래서 기어이 일을 냈다고?” “나 어떡하냐 진짜... 조금만 더 참을걸. 너무 나 혼자 급하게 막 그랬나보다. 그치?” “…난 모르겠다. 그래도 두 달 동안 너 아예 안 끊어낸 거 보면 걔도 아예 생각이 없는 것 같진 않은데. 아닌가…?” “그럼 뭐해. 못 들은 걸로 하겠다잖아…” “후...” 재환이의 긴 한숨을 끝으로 우리 둘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눈앞에 있는 술을 열심히 마셔 치웠다. 한참을 그러다보니 평소 주량이 꽤나 센 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눈앞이 흐릿해지고, 말투도 어눌해졌다. 재환이는 그런 나를 안쓰럽다는 듯 쳐다보며 혀를 끌끌 찼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도 내 손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입 안으로 술을 집어넣었다. 그냥 다 잊고 싶다는 내 무의식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여주.. 여주 보고싶어, 재환아.” “야이 미친놈아...” “여주 좀 데리고 와 주라... 너무 보고싶다..” “야, 너 취했다. 집에 가자 이제.” “…여주 안 오면 안 가. 안 갈 거야. 아무데도 안 가.” “아씨… 나 보고 뭐 어떡하라고..” 그대로 나는 테이블 위로 고개를 박았다. 내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을 재환이가 가져가는 것도 같았는데 잘 모르겠다. 그냥 나는 여주가 보고 싶을 뿐이었다. * “…야.” “어?! 어, 왔어? 오랜만이다, 야.” “…응, 그러네. 잘 지냈어?” “어, 나야 뭐… 저기, 근데 있잖아...” “어?” “…진짜 너무 미안한데, 내가 집에 급한 일이 있다고 연락이 와서…… 진짜 미안하다 내가 니엘이 데리고 가려고 했는데 나도 방금 막 연락을 받아가지고… 그게… 어,” “알았으니까 가. 얜 내가 어떻게든 해 볼게.” “진짜 미안! 내가 나중에 뭐라도 살게!” 김재환은 거짓말을 참 못했다. 딱 봐도 나랑 둘이 있게 하겠다는 속셈이 눈에 훤히 보였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그냥 그의 거짓말에 속아주었고, 그렇게 김재환을 보냈다. 그리고 나는 강다니엘의 맞은편에 앉아 그를 흔들어 깨웠다. 야, 일어나. “으음… 여주야…” “그래, 그 여주 왔으니까 일어나.” “…으응” 강다니엘은 도대체 술을 얼마나 많이 마신건지 도저히 대화가 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남자 직원을 불러 도움을 받아 내 차에 강다니엘을 태웠다. 그래, 여기까진 좋았다. 근데 문제는 강다니엘의 집을 몰랐다. 우리가 함께 살던 집은 이혼하면서 처리했기에 그 곳에 살 리 없었다. 어딘가로 이사를 했을 텐데, 그 어딘가를 난 알 방법이 없었다. 본가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려나, 그럼 그것도 문제였다. 시부모님이 날 보면 어떤 생각을 하실지, 날 어떻게 대할지 감도 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 난 얘네 집이 어딘 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본가로 데려다 줄 수는 없으니. 오늘 딱 하루만 우리 집에서 재우자.” 그렇게 난 혼자서 자기합리화 라는 꽃을 피우며 우리 집으로 차를 몰았다. 어정쩡한 자세가 불편하지도 않은지 강다니엘은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잘만 잤다. 결국 내가 사는 오피스텔에 도착해서도 정신을 못 차리는 그를 경비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겨우 부축해 집 안으로 들일 수 있었다. 나는 낑낑대며 누워 있는 그의 신발을 벗겨낸 후에야 지친 몸을 씻어내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었다. 내 침대에서 곤히 잠든 그를 보니 당최 깰 생각이 없어 보였기에 나는 침대 옆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 나만의 공간이었던 곳에 꽤나 오랜만에 남자를 들이니 괜히 기분이 이상했다. 게다가 그 남자가 다른 누구도 아닌 전남편 강다니엘이라니. 나는 이리저리 뒤척이다 겨우 선잠에 빠졌다. - 3시간은 잤을까, 누군가가 자꾸 내 머릿결을 쓸어 넘기는 느낌이 들어 나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랬더니 바로 내 시야에 가득 들어차는 건 강다니엘이었다. 언제 바닥으로 내려온 건지, 아니 그 전에 잠은 언제 깬 건지 나른하게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 느낌이 나쁘지 않았던 나는 그저 가만히 그를 올려다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언제 일어났어?” “네가 나 여기로 데리고 온 거야?” “…네 집이 어딘 지 몰라서. 우리 같이 살던 집은 처리했잖아. 그렇다고 내가 널 본가에 데려다 줄 수도 없고.” “나 이거 좋게 해석해도 되는 거야?” “…….” 그의 눈은 마치 나에게 빨리 고개를 끄덕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서 그렇다고 해. 그렇다고 해 줘. 직접 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강다니엘의 마음이 느껴진 나는 내 머리를 만지던 그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켜 앉았다. 나를 따라서 일어난 그는 내 눈을 진득하게 바라봤다. “나 진짜 너 싫어.” “……” “진짜… 너무 미운데, 진짜 싫은데, 자꾸 네가 떠올라.” “……” “내가 너한테 다시 넘어가면 사람도 아니라고 혼자 막 그랬는데… 진짜 다시는 바보 같은 짓 안 할 거라고 다짐했는데… 그랬는ㄷ,” 갑작스레 내 입술을 덮쳐오는 강다니엘 덕분에 나는 뒷말을 이을 수 없었다. 예고 없이 시작된 키스에 당황한 것도 잠시 나는 온 몸의 힘이 풀려 그대로 그를 받아들였다. 아주 조심스럽게 내 허리를 감싸 안는 그의 손길에 대답하듯 나 또한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그렇게 더 가까워진 우리의 숨결은 매우 뜨거웠고, 강렬했다.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사막 한 가운데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것처럼, 강다니엘은 쉴 틈 없이 나를 몰아붙였다. 그렇게 한참동안 맞닿아 있던 두 입술은 민망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고, 나는 번들거리는 그의 입술을 보자 괜히 민망해졌다. “내가 진짜 잘할게.” “…….” “다신 헤어지지 말자, 우리.” 그래, 그러자. 나는 대답 대신 다시 그의 입술에 내 입술을 맞대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하나가 되었고, 새벽은 유난히도 길었다. 환한 달빛이 빛나는 고요한 밤, 우리 둘만의 은밀한 대화는 길게 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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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ㅏ하핳 이게뭐죠.. 예... 이번 편이 젤 민망하네요 주말에 뭐라도 올려야지 싶어서 막 쓰긴 썼는데 벌써 주말은 끝났고 여태 쓴 것 중에 제일 오래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제일 짧네요. 죄송합니다ㅜㅜㅜ 어쨌든 이렇게 여주와 다니엘이 다시 합치게 되었어요. 사실 더 찌통을 주려고 했는데 작가 성격상 우울한 건 안 맞아서 그냥 후딱 붙여버렸어요 ㅋㅋㅋㅋㅋ 이젠 행복하자 여주야 니엘아ㅜㅜ 사실 독자님들도 빨리 행복해지길 원하셨죠 그죠!! 저 댓글 다 봤어요! (핑계) 다음 화는 더 길고 세상 제일 달달하게 한 번 써 볼게요 (말은 잘 함) 독자님들, 이번 주도 힘내시고 오늘 하루도 좋은 하루 되세요! 항상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p.s. 저번편 또 초록글에 올라왔더라구요!! 진짜 너무너무 감사드려요ㅠㅠㅠㅜㅠㅜㅠㅠ 저한테 너무 과분한 것 같아요ㅜㅜ 독방에서도 추천해주셨다고 하더라구요.. 정말 정말 진짜 대박 리얼 헐 완전 감사드려요 사랑합니다!!!!!♥♥♥♥♥♥♥♥♥ 아 그리고 암호닉은 제일 최근편 댓글에서 [암호닉] 으로 신청해주세요:) 혹 누락됐다면 꼭 말씀해주세요! 〈암호닉 명단> [녜리] [0226] [일오] [자두] [수 지] [빙수] [숮어] [영이] [강낭] [윙녤옹환] [줄리] [꾸쮸뿌쮸] [쩨아리] [푸딩] [사용불가] [레드] [0713] [@불가사리] [형광 개구리][호두] [동백꽃] [옹혜야] [파요] [녜리12] [코뭉뭉] [몽구][페이버] [젤리밥] [#요시#] [대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