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엄마, 진짜 맙소사…” “…와우.” “와우? 야, 와우라는 소리가 나오냐, 지금?!” “어허, 자기야. 화내면 안 돼. 아가들이 듣고 있을지도 몰라.” “무슨 소리야, 아직 그만큼 크지도 않았어!” 테스트기를 통한 확인을 마친 우리는 아침을 두둑히 먹은 뒤-다니엘이 무조건 많이 먹어야 된다며 으름장을 놓은 덕분에-산부인과에 들러 검사를 받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내 뱃속에 자리 잡은 아기집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쌍둥이라니. 진짜 생각지도 못한 일들의 연속이라 정신줄을 놓칠 것만 같았다. 나는 병원에서 나온 뒤에도 그저 허허 웃으며 초음파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다니엘을 뒤로 하고 먼저 차에 탔다. 저 화상, 그렇게도 좋을까. “여보, 배 안 고파? 밥 먹어야지!” “…다니엘, 우리 아침 먹은 지 이제 겨우 한 시간 반 지났어.” “우리 아가들이 배고파 할까봐! 아, 우리 아가들 태명은 뭘로 할까?” “어휴, 내가 못 살아 진짜…” 나는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다니엘을 보며 아프지 않게 어깨를 툭 쳤다. 운전이나 똑바로 해. 우리는 우선 병원에서 가까운 다니엘의 집으로 향했다. 일단 집에 가서 차근차근 계획 세워야지. 갑자기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아져 차에서부터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내가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빠져 있으니 이내 인상 펴라며 한 마디 하는 다니엘이었지만 내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현실은 현실이니까. . . . “그래서 내 말은, 그냥 간단히 양쪽 부모님들 모시고 식사하는 걸로 끝내자고.” “나야 뭐 딱히 상관없는데…, 너 진짜 괜찮아?” “내가 왜?” “아니, 뭐… 드레스 입고 식 안 올려도 돼?” “옛날에 한 번 했으면 됐어. 그리고 나 몸에 꽉 끼는 옷 입으면 안 되잖아.” “오… 엄마 포스 좀 나는데?” “아이, 뭐래…” 집에 돌아온 우리는 하나씩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제일 중요한 건 아무래도 본격적인 재혼 준비인 것 같아 곰곰이 생각을 해봤더니 아무래도 식을 또 올리는 건 무리인 듯 싶었다. 홀몸이 아닌 내 몸도 몸이고, 솔직히 자랑도 아닌데 괜히 일을 크게 벌려 좋을 게 없을 것 같았기 때문에. 그냥 양가 부모님들과 함께 식사 한 번 하고 혼인신고를 다시 하는 걸로 대충 가닥을 잡고, 함께 살 집도 다시 구하기로 하고, 이것저것 다 정하고 나니 마지막 남은 건 바로 저기 캣타워 정상에 얌전히 앉아 있는 토니였다. “난 토니 계속 키우고 싶어.” “나도 그렇긴 한데… 애기한테 안 좋지 않을까?” “그렇다고 버릴 순 없잖아!” “아니, 버리자는 게 아니라… 음, 우리 본가에 데려다 놓는 건 어때?” “…어머님 아버님이 허락하실까?” “어차피 나 어릴 때 고양이 키운 적도 있고, 두 분 다 동물 좋아하셔서 괜찮을 거야. 내일 찾아뵙고 말씀 드리자.” “알았어- 으아, 나 이제 좀 잘래. 오랜만에 머리 굴렸더니 피곤해.” 애매한 시간이라 낮잠을 자기 좀 꺼려지긴 했지만 그래도 몸이 너무 피곤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 침대에 누우니 언제 온 건지 토니가 내 옆에 다가와 따라 누웠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결국 헤어져야 한다는 걸 눈치 챈 건지 오늘따라 유독 나를 잘 따르는 토니였다. 괜히 마음이 아려오는 나는 재빨리 눈을 감았다. 다니엘은 홀로 집정리를 하는 듯 했고, 나는 가끔씩 들려오는 작지만 둔탁한 소리를 들으며 곧 잠에 빠져들었다. * * * * * * “어머 세상에…” “너희 아주 그냥, 속전속결이구나! 허허…” 다음 날, 나와 다니엘은 양쪽 부모님께 임신 사실을 알려드리기 위해 아침부터 분주했다. 당연히 시댁으로 먼저 갈 줄 알았던 나는 무슨 소리를 하냐며 도둑놈이 먼저 사죄드려야 한다면서 친정으로 차를 모는 다니엘에게 또 한 번 치였다. 진짜 어른이 되긴 했구나, 내 남편. 점심시간에 맞춰 도착한 우리는 엄마, 아빠와 함께 점심을 먹고 난 후, 거실에 둘러 앉아 과일을 나눠 먹으며 슬쩍 눈치를 보다 조심스레 초음파 사진을 꺼내들었다. 사진이 테이블 위에 놓이자 다니엘은 곧장 무릎을 꿇었고, 옆에 있던 우리 엄마는 극구 말리며 그를 편하게 앉게 했다. “뭐 죄 지었니? 축하받을 일인데 왜 사과를 하고 그래-?” “그래도 엄연히 따지고 보면 제가 도둑놈이지 않습니까, 하하-” “고마워, 다니엘. 우리 사위 정말 제대로 철 든 것 같다.” “좋은 건 맞는데, 그래도 그렇지 처음부터 쌍둥이가 뭐야. 우리 딸 힘들겠네.” “역시 내 편은 아빠밖에 없네!” 그렇게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친정을 떠난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시댁에서도 마찬가지고 임신 사실을 알려드렸다. 감사하게도 시부모님 또한 우리 부모님과 별반 다를 것 없이 좋아해주시는 덕분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딸 쌍둥이면 좋겠다. 그래야 여주 네가 덜 힘들지- 안 그래요, 여보?” “에이, 그래도 니엘이가 안 심심하려면 아들도 있어야지.” “하하, 전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아버지-” “여주 네 생각은 어떠냐?” “음…, 저는… 두 아들만 아니면 좋겠어요…” 내 조심스런 고백에 시부모님을 비롯해 다니엘까지 모두들 호탕하게 웃으셨다. 고개를 끄덕이며 나도 그것만은 피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던 어머님은 옆에서 내 손을 조심스레 잡아오셨다. 별 말씀은 안 하셨지만, 힘들어도 잘 이겨내라는 위로가 담긴 듯한 어머님의 눈빛에 나도 양 손으로 어머님의 손을 꼭 잡았다. 그렇게 한창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쯤, 다니엘이 먼저 조심스럽게 토니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니, 아버지. 저 부탁드릴 게 있어요.” “응, 뭔데?” “저… 고양이 좀 키워주세요.” “응? 웬 고양이 타령이야?” “사실은 제가 몇 달 전에 카페 앞에서 버려진 고양이를 데려다가 키우고 있었거든요.” “근데 저희 이사도 해야 하고, 애들 태어나면 고양이한테 더 신경을 많이 못 써줄 것 같아서요. 대신 좀 키워주시면 안될ㄲ…” “너무 좋지- 오늘 데려오지 그랬어. 안 그래도 둘이 있으니 영 적적해서 고양이 한 마리 살까 했었는데.” 나는 일이 이렇게나 잘 풀릴 줄은 몰랐다. 토니 문제까지 모두 일사천리로 해결되고 나니 속이 후련해졌다. 이렇게까지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너무 행복한 요즘, 더 이상 바랄 것도 없는 완벽한 일상이었다. * * * * * * 무심하게도 시간은 너무나도 빠르게 흘렀고, 내 배는 점점 불러왔다. 한 명이 아닌 두 명이 내 뱃속에 자리 잡고 있으니 보통 임산부들보다 더 빠르게 배가 커졌고, 갈수록 내 체력은 점점 떨어졌다. 하지만 옆에서 잘 챙겨주는 다니엘 덕분에 크게 힘들지는 않았다. 우리는 혼인신고를 다시 했고, 넓은 집에서 다시 함께 살게 되었다. 토니는 더 넓은 다니엘의 본가로 가 잘 적응하여 살고 있었고. “싫어.” “하아…, 여주 너 진짜 자꾸 고집 부릴래?” “아, 몰라. 싫어. 안 해.” “…여주야.” “싫다니까?!” “후… 나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 쾅- 임신 5개월 차, 누가 봐도 임산부인 걸 알 정도로 배가 꽤 많이 불렀지만 나는 여전히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다니엘은 그런 내가 걱정이 됐는지 이제 카페 일을 그만두라며 잔소리를 해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아직까지는 버틸 만하다며 싫다는 말만 계속했다. 오늘 퇴근 후에도 피곤해하는 내게 다니엘의 잔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많이 힘든 것도 아니고, 아기들한테도 너한테도 많이 무리일 텐데 이제 그만하는 게 어떻겠냐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싫다는 나 때문에 다니엘은 화가 많이 난 건지 바람을 쐬고 오겠다며 집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는 그렇게 다니엘의 뒷모습을 보고 나니 괜히 서러움이 밀려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앉아있다 일어나니 빈혈 때문에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아아…” 나는 바로 앞 식탁을 짚어 다행히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갑자기 우울함이 몰려왔다. 너무 오래 일을 해 와서 그런지 나는 집에서 가만히 쉰다는 것 자체가 내 맘대로 잘 되지 않았다.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고, 집 밖으로 꼭 나가야 할 것 같은 그런 기분 때문에. 그런 내 마음을 몰라주는 다니엘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어지러움 때문에 식탁 의자에 앉아 머리에 손을 댄 채 가만히 눈을 감고 있기도 잠시, 다니엘이 다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여주. 어디 있ㅇ… 뭐야, 너 왜 그래. 어디 아파?!” “……씨, 강다니엘 너 진짜 싫어….” 내게 한 걸음에 다가와 걱정해주는 다니엘을 보니 서러운 마음이 커져 그만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 할 만큼 웅얼거리며 다니엘의 품에서 한참을 울던 나는 겨우 울음을 그치고 아프지 않게 그의 가슴팍을 툭툭 때렸다. 너 진짜 미워. “내가 다 미안해. 그래도 너 걱정돼서 그런 거니까… 너무 싫다고만 하지 말고…” “…알았어. 생각 좀 해 볼게.” “으유, 눈 붓겠다. 이리 와. 일찍 자고 내일 아침에 병원 가야지.” 나는 또 다시 어지러움을 느낄까 최대한 조심스럽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침대에 누우면서도 허리가 아파 절로 신음소리가 나왔다. 그런 나를 안쓰럽다는 듯 내려다보던 다니엘은 이내 내 옆에 붙어 누워 머리칼을 조심스레 쓸어 넘겨주고는 내 배를 조금씩 토닥여주었다. - “축하드려요- 공주님 왕자님 다 있네요.” “진짜요?! 와아! 어디, 누가 딸이에요?!” 초음파 검사를 받던 도중, 임신 5개월쯤이면 아이들의 성별을 알 수 있다던 엄마의 말이 떠오른 나는 눈치를 보다 의사 선생님께 한 번 여쭤보았다. 내 질문에 화면을 더욱 더 유심히 보시던 의사 선생님은 환히 웃으며 나와 다니엘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고, 옆에 있던 다니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화면을 뚫고 들어갈 듯 고개를 들이밀었다. 괜히 창피해진 나는 그의 팔을 붙잡고 앉히려 했지만 내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초음파 사진을 받아들고는 신이 나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다니엘을 보니 나는 또 헛웃음이 나왔다. 싱글벙글. 우리 아가들의 태명처럼 그렇게도 좋은지 입이 찢어질 듯 웃는 다니엘이 너무나도 귀여웠다. 그렇게도 좋을까. 지금 생각해보니 태명 한 번 참 잘 지은 것 같았다. 항상 이렇게 내게도, 다니엘에게도 웃음만 가져다주는 싱글이와 벙글이의 존재 자체가 너무 고마웠다. 아가들아, 세상에 나와서도 엄마와 아빠에게 웃음만 주는 그런 사람이 되길 바라. 나는 그렇게 마음속으로 아이들에게 말을 건네며 다니엘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작가의 말 |
녤루입니다! 연휴가 시작되기도 했고 작가한테도 조금 여유가 생겨서 뭐라도 써야겠다 싶어서 글을 썼는데 이번편은 분량도 내용도 꽝이네요ㅜㅜㅜ 글태기가 온걸까요..? 힝 항상 죄송스러운 마음뿐입니다.ㅠㅠㅠㅠㅠ 다음편은 아마 마지막편이 될 것 같네요! 항상 과분한 사랑 주시는 독자님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그럼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시고, 다음 편에서 만나요!! + 8편도 초록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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