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다니엘.” “응?” “……우리 재혼할까?” 네 말을 들은 나는 내 두 귀를 의심했다. 정녕 네 입에서 나온 말이 맞을까. 내가 그토록 바라던 그 일을 넌 진작 알면서도 모른 척 했던 거였나. 나는 순간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진심이야?” “뭐… 싫음 말고.” 싫을 리가. 내가 얼마나 간절히 원했는데. 널 그렇게 보내고 나서 내가 후회를 얼마나 했는지 너는 알까. 그저 먼저 용기를 내 준 여주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워서 나는 내 품에 그녀를 가득 안았다. 숨 막힌다며 괜히 투정을 부리는 그녀였지만 그럴수록 난 더 세게 끌어안았다. 절대 안 놓칠 거야, 이젠. “조금만 더 기다려줘. 내가 프로포즈 다시 할래.” “뭐야… 그래서 싫다고?” “아니, 아니. 완전 좋아서 미칠 것 같은데 억지로 참고 있는 거야. 내가 다시 할 거니까 기다려줘.” “치, 그 때 누가 받아준대?” 표현에 서툴러 괜히 툴툴거리는 여주를 잘 알기에 난 그냥 말없이 웃으며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아버지가 건강이 예전 같지 않다며 본격적으로 회사를 물려받을 준비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던 차였다. 나는 머릿속으로 승진하면 근사하게 여주에게 다시 한 번 프로포즈를 해야겠다며 나름의 계획을 세웠다. 아, 빨리 그 날이 왔으면 좋겠다. 한참을 내 품 안에 갇혀 있다 보니 이제 그만 숨 막힌다며 놓아달라는 여주의 말에 나는 팔에 힘을 살짝 풀며 귓가에 속삭였다. “사랑해, 여주야.” “…나도.” “정말 많이 사랑해.” “나도. 진짜 많이.” “내가 더.” “아, 뭐야-” 아프지 않게 내 가슴팍을 때린 그녀는 편하게 자세를 고쳐 눕더니 잘 자라는 말을 남기고는 먼저 눈을 감았다. 여주는 평생 모를 일이었다. 자는 그녀의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쿵쾅대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한 나는 한참동안 잠 못 이루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는 것을. * * * * * * “강 대리님, 사장님 호출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한 직원이 내게 다가와 아버지가 부르셨다는 말을 전해왔다. 그 직원이 내 옆 자리에 서서 날 내려다 볼 때의 그 표정은 딱 이거였다. 고작 대리를 사장님이 왜? 나는 애써 그 눈빛을 무시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향했다. 똑똑- “들어와.”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은 나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고, 눈이 마주친 아버지의 손짓을 따라 사무실 중앙에 있는 소파에 가 앉았다. 손수 차를 내 주시겠다는 아버지의 호의를 정중히 사양한 나는 그저 아버지가 먼저 입을 여실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그래, 생각은 좀 해 봤니?” “네, 아버지. 빨리 진행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지난번에는 별로 생각 없다더니. 갑자기 생각이 바뀐 이유라도 있어?” “…저 여주 다시 만나요, 아버지.” “……그래?” “재혼하려고요. 승진하고 좀 안정되면 프로포즈 할 계획이에요.” “허허, 녀석 참….” 내 말에 아버지는 그저 웃으시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래, 그럼 당장 다음 주에 공고 내리도록 하마. 주변 사람들이 함부로 욕 못 하게 그 동안 행동처신 잘 하고. 계속해서 잔소리를 늘어놓으시는 아버지를 향해 그저 고개를 끄덕인 나는 타이밍을 슬쩍 보다 이만 일어나겠다며 몸을 일으켰다. “너희 엄마 내일 생일인 건 아냐?” “아… 안 그래도 본가 찾아뵈려고 했습니다.” “여주도 데려와라. 오랜만에 우리 며느리 보고 싶구나.” 그 말을 들은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아버지와 마주했다. 아버지는 저 여주랑 재혼하시는 거 반대 안 하세요? “내가 반대하고 말고 할 게 뭐 있어. 네가 좋을 대로 해. 그리고 내가 여주를 좀 예뻐했냐?” “…감사해요, 아버지.” “대신 너희 엄마도 찬성한다는 보장은 못 한다. 내일 데려와서 얼굴이라도 비춰.” “…아직은 너무 이른 것 같아요, 아버지. 제 일 마무리되면 그 때 같이 데리고 찾아뵐게요.” “뭐… 그래. 알아서 해. 아무튼 넌 내일 저녁에 집에 오는 걸로 알고 있으마.” “네.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버지와의 대화를 마친 후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온 나는 잠시 멍하게 앉아 있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다시 일에 집중했다. 빨리 처리해놔야 일찍 퇴근하고 여주에게 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만 가득 찬 내 머릿속은 다른 생각 따위 들어올 자리가 없었다. * * * * * * 딸랑- “나 왔어-” 야옹- “뭐야…?” “어, 왔어?” “어어. 웬 고양이야?” “완전 귀엽지! 요 앞에 누가 버리고 갔더라고. 나쁜 새끼… 이거 봐, 버린다고 광고하는 것도 아니고, 쪽지까지 써 놨어. 예방접종 다 시킨 게 자랑이다, 미친놈.” 퇴근 하자마자 곧장 여주네 카페로 간 나를 제일 먼저 반기는 건 붉은 계열의 바탕색에 갈색 줄무늬가 들어간 털을 가진 고양이었다. 사람 손을 탔던 고양이라서 그런지 내게도 쉽게 다가와 다리에 치대기 시작했다. 평소 고양이를 좋아하던 나는 그것을 쉽게 안아들고 계속해서 정체 모를 누군가를 욕하는 여주에게로 향했다. 그녀가 내 눈앞으로 들이민 쪽지에는 ‘아비시니안. 6개월. 예방접종 다 마침. 중성화 완료.’라고 적혀있었다. “얘 키울 거야?” “카페에선 안 되지- 손님들이 싫어할 수도 있으니까. 집에 데려 갈 거야.” “진짜 네가 키우게?” “응. 안 돼?” “아니- 안 될 게 뭐 있어. 나야 좋지-” “아무튼 그래서 오늘도 마감 일찍 할 거야. 나 얼른 정리하고 나올 테니까 우리 토니 물품 사러가자.”
“토니?” “응. 얘 이름이야.” “그새 이름까지 지어놨어?” “응. 잘 어울리지?” 정말 작명센스도 여주답다는 생각을 했다. 평소 아이언맨을 좋아하던 그녀는 고양이에게까지 아이언맨의 이름을 붙였다. 나는 그저 소리내어 웃으며 토니를 안고 그녀를 기다렸다. 뭐가 그리도 급한지 서둘러 정리를 한 뒤 카페에서 나온 여주는 곧장 내게서 토니를 빼앗아 들고는 자연스럽게 내 차로 먼저 가 버렸다. 뭐야, 나 지금 고양이한테 밀린 거야? 우리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애완용품 마트에 가서 기본적인 물품들을 사 들고는 여주 집에 도착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여주는 캣타워를 설치하고 배변장소를 마련하는 등 토니의 공간을 꾸미라며 내 등을 떠밀었다. 나는 별 수 없이 그저 묵묵히 토니를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여주가 좋은 건 나도 좋은 거니까. 토니는 곧잘 여주의 집에 적응을 잘 하는 듯 했다. 난 그런 토니를 보며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잠시, 내가 퇴근한 후로 단 한 번도 내게는 신경을 써 주지 않은 여주가 괜히 원망스러워 툴툴거리기 시작했다.
“토니는 좋겠네- 집사님이 이렇게나 좋아해줘서-” “…나 말하는 거야?” “야, 부럽다 토니야- 난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와도 뽀뽀한 번 안 해주던데-” “야, 뭐하는 거야-” “아이고- 이 고양이만도 못한 삶을 어쩌면 좋아….” “참나…….”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내 옆에 붙어 앉은 여주는 내 손을 잡더니 손등에 가볍게 뽀뽀를 했다. 나는 애써 웃음을 꾹 참으며 더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거기 말고 여기.” “애 같이 왜 이래- 자고 갈 거면 얼른 가서 씻어!” “씻고 오면 뭐 해줄 건데?” “…내가 뭘 해줘야 하는 게 있어?” “에이,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쫓겨나고 싶어?” “아아! 나도 몰라, 그럼. 안 해.” “아오, 진짜….” 결국 괜히 툴툴거리던 내 입술에 가볍게 뽀뽀를 한 여주는 내 등짝을 때리며 욕실 쪽으로 밀었다. 실실 새어나오는 웃음을 결국 참지 못하고 기분 좋게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여주는 소파에 앉아 캣타워 위에서 잠든 토니를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내 인기척에 고개를 돌린 여주는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발소리를 죽이며 내게 다가오는 것 같더니 그냥 나를 지나쳐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의 물기를 털면서 부엌으로 향했다. 맥주 두 캔을 꺼내들고는 거실에 앉아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를 묶어 올린 채 화장을 말끔히 지운 여주가 등장했다. “웬 맥주?” “할 말 있어서. 이리 와봐.” “왜, 뭔데?” 내 옆에 앉은 여주에게 맥주 한 캔을 따서 건넨 후 나 또한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축였다. 나는 살짝 뜸을 들이다 이내 곧 승진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아버지께 재혼할 계획을 말씀드린 것도 잊지 않았다. 내 이야기를 모두 들은 그녀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더니 이내 웃으며 장난스럽게 입을 열었다. “뭐야, 결국 낙하산 타네?” “뭐…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네.” “너 괜히 이미지 안 좋아지는 거 아니야? 그래도 나름 열심히 일 했다며.” “괜찮아. 어차피 겪어야했을 일이잖아. 넌 그냥 사모님 소리 들을 준비나 하세요.” “웃기고 있네… 됐거든요. 사모님은 무슨.” “나중에 내가 사장되면 넌 사모님이지 그럼 뭐야.” 내 말에 그저 소리 없이 웃어보이던 여주는 이내 굳은 표정으로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아버님은 뭐라고 하셨어? 나 미워하시지? “아니? 아버지는 너 얼른 보고 싶어 하셔. 내일 본가에 데려오라고 하셨는데 내가 나중에 간다고 했어.” “내일? 아… 어머님 생신이지?” “어, 기억하네? 내일 가서 저녁만 먹고 올게.”“…나도 갈까?” “진짜? 괜찮겠어?” “뭐… 나도 어차피 언젠가는 겪을 테니까. 매는 빨리 맞을수록 좋다고 하잖아.” “그럼 내가 퇴근하자마자 카페로 데리러 갈게. 6시 반쯤 될 것 같은데.” “알았어. 기다리고 있을게.” 말은 씩씩하게 하는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굳은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여주를 보니 괜히 마음이 아려왔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없이 힘을 실어주었다.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나는 내 마음이 그녀에게 잘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맥주 캔을 말끔히 비웠다. * * * * * * “저 왔어요-” “어, 왔냐.” “아들- 왔어?” “네. 저… 손님도 데려왔어요.” “손님?” 나는 퇴근 하자마자 곧장 여주를 데리고 본가로 향했다. 나는 문 앞에 서서 한참을 망설이다 큰 용기를 낸 여주의 손을 꼭 잡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여주에게 거실로 가는 길에 있는 복도 모퉁이에서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건넨 뒤 내가 먼저 부모님과 마주했다. 손님을 데려왔다는 말에 어머니는 반문했고, 그 때 여주는 조심스레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셨어요, 어머님 아버님.” “아이고, 이게 누구야. 우리 새아가도 왔구나.” “…새아가는 무슨 새아가예요. 얘들 이혼한 지가 언젠데.” “어허, 사람 앞에 두고 말을 그렇게 하면 어떡해. 춥지? 둘 다 얼른 이리 와서 앉아.” 나와 아버지가 어느 정도 예상했던 대로 어머니는 여주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으신 것 같았다. 괜히 눈치가 보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개의치 않기로 했다. 내가 정신 차리고 여주를 잘 챙겨 줘야 여주가 덜 힘들테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저녁 식사가 시작되었다. 여전히 어머니는 별 말씀 없이 그저 식사만 하셨고, 나는 일부러 더 말을 많이 하며 분위기가 처지지 않게끔 노력했다. 다행히 아버지가 내 편을 들어주셔서 한결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새아가, 음식은 좀 입에 맞았니?” “네! 진짜 맛있었어요.” “요새는 다니엘이 속 안 썩여?” “에이, 아버지. 제가 요즘 얼마나 잘 하는데요!” “그건 네 생각이고, 이놈아.” “아, 아니에요. 진짜 잘 해줘요. 하하….” “…여주야. 잠깐 나 좀 보자.” 식사가 끝난 뒤, 다시 거실에 모여 앉아 과일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던 그 때, 혼자 부엌에 계시던 어머니는 여주를 데리고 마당으로 나가셨다. 그렇게 두 여자가 나간 뒤, 아버지와 단둘이 남게 된 나는 그저 어색하게 웃는 일 밖에 할 수 없었다. “…걱정되냐?” “안 된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괜찮을 거다. 네 엄마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닌 거 너도 알잖아.” “그럼요. 당연하죠. 그래도 그냥 뭔가….” 아버지와 어색한 대화를 나누며 기다린 지도 어느덧 30분이 지났고, 곧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먼저 거실로 들어오신 어머니는 그저 내게 피곤할 테니 이만 가보라는 말씀만 하시고는 침실로 들어가셨다. 뒤이어 들어온 여주의 모습에 아버지는 대충 분위기를 살피시더니 이내 옅은 미소를 지으시며 잘 가라는 짧은 인사를 남기시고는 어머니를 따라 침실로 들어가셨다. . . . 본가에서 나온 나는 여주의 집이 아니라 내 집으로 차를 몰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아무 말이 없던 여주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내게 안겨왔다. 나는 그저 묵묵히 그녀의 작은 등을 토닥이며 먼저 입을 열어주기만을 기다렸다. 한참을 그러고 서 있었을까, 내 품에서 벗어난 그녀는 촉촉한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보며 한참만에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어머님도 재혼 허락해 주셨어.” “진짜? 정말로?” “응. …더 잘 살라고 하시더라. 옛날 생각 하지 말고 그냥…….” 나는 다시 내 품에 가득 여주를 안으며 조금씩 떨려오는 그녀의 몸을 다독여주었다. 어머니와 정확히 무슨 대화를 나눈 건지는 몰라도, 지금 그녀가 흘리는 눈물 속에는 기쁨이 담겨있는 건 확실해 보였다. 나는 그저 그녀를 달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던 그녀가 조금 진정되었을 때, 난 그녀의 눈물자국을 닦아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 마음을 전했다. “이젠 정말 행복하기만 하자, 우리.” “…….” “사랑해.” “…나도. 나도 사랑해, 다니엘.”
작가의 말 |
절 마구마구 패주세요 여러분... 엉엉 현생에 치인 나머지 이렇게나 긴 연재텀을 만들어내고야 말았네요ㅠㅠㅠ 어제 이 글의 독자이기도 한 제 친구한테 엄청 혼나고 왔어요. 얼른 글 쓰라고, 독자님들께 미안하지도 않냐고 막 얼마나 잔소리를 하던지...ㅎ하핫 근데 너무 오랜만에 써서 그런지 제 손가락이 막 지맘대로 움직여버리고.. 이번 글은 진짜 너무너무 창피해요ㅠㅠㅠㅠ 진짜 드릴 말씀이 없어요... 대가리 박고 더 반성하겠습니다 흑흑 지난 편도 이렇게 막 초록글에 올려주셨는데ㅠㅠㅠ 제가 보답은 못할망정.. 네.... 그냥 죽여주세요.. 그게 답인 것 같아요.... 제가 또 언제 다음편을 들고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빨리 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진짜 리얼 대박 헐 진심이예요ㅠㅠ! 제 부족한 글에 항상 재밌다고 해 주시는 모든 분들 제가 진짜 많이 사랑합니다. 그럼 전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일주일 마무리 잘 하시길 바랄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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