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헤어졌어요
w.알았다의건아
"여기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벨을 누르고 비어진 술병을 두어번 흔들고선 알바생에게 소주를 하나 더 시켰다. 곧바로 알바생은 소주 한 병과 새로운 영수증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갔다.
"이게 마지막이야."
"알았어. 알았어."
고개를 끄덕이며 다 식어가는 안주만 젓가락으로 쿡쿡 찌르고 있으니 다니엘이 시원한 소주를 내 술잔에 쪼르륵 채워줬다. 채워진 술잔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투명하고 깔끔하게 생긴게 꼭 다 비워진 너의 마음 같아 또 한 번 울컥했다. 그리고선 스스로 자신의 잔을 채우는 다니엘을 보고선 잔을 잡아주었다.
"나보곤 혼자 따르지 말라더니."
"너가 안줬잖아."
치이- 흘러내리는 머리를 쓸어넘기니 다니엘이 그 모습을 보고선 말을 걸었다.
"손톱도 예쁘게 칠했네."
머리를 쓸어올리던 손짓을 멈추고 가만히 무릎위에 올려놓고 손톱이 보이지 않게 주먹을 말아쥐었다. 너에게 예뻐보이려고 한거 맞고 예뻐보였다면 다행인데. 이제 나 너한테 이쁜거해도 아무 소용없는거잖아.
"아, 그런말 하지마."
참아왔던 눈물이 끝내 내눈에 차오르고야 말았다. 흘리면 안돼. 흘리면 안돼. 스스로 최면을 걸고 있는 나는 내앞에 놓인 술잔을 단숨에 털어넘겼다. 쓰디 쓴 술맛에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차오르는 눈물을 감출 수는 있었다.
"네가 그런말 해버리면 나 또 기대하게 되잖아. 그러니까 그런말 하지마."
냉정하지만 물기어린 나의 말에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인 다니엘이 뒤이어 앞에 놓인 술잔을 비우고 다 식어 굳어버린 치즈를 뜯어서 입안에 넣고 오물거린다.
**
"야. 다니엘."
몇 잔을 마신거지. 주량이 고작 소주 세잔인 나는 이미 주량은 넘어섰고 그래서 자꾸 한 병만 먹자고 했던 다니엘의 말에도 오늘만큼은 어기고싶었다. 얼굴은 진작에 벌게졌고, 머리가 멍하다. 몸이 가벼운건지 무거운건지 모를 이 애매한 기분이 이상하다.
자칫 취해보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꾹꾹 눌러서 부른 너의 이름에 다니엘은 나를 가만히 쳐다본다. 나는 조금 쳐진 몸을 등받이에 기대고 한숨을 푹 내쉰 뒤 말을 이어나갔다.
"너 그러면 안돼."
"......"
"내가 널 얼마나 많이 생각하고, 한눈 팔지도 않고 얼마나 잘 기다렸는데."
"......"
"그랬는데.. 너가 그렇게 말하면 안되지.."
"...미안해."
"내가 너한테 지금 미안하다는 말 듣자고 이러는거 아닌거 알잖아."
끝끝내 참아왔던 눈물을 더는 숨기지 못한 채, 한방울, 두방울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네 앞에서 흘리는 눈물이 부끄러워 재빠르게 닦아내고서 바닥을 보이는 술병을 들어 내 술잔에 비워냈다. 말 없이 물잔을 내어주는 다니엘의 손짓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이내 물컵을 들어 물잔도 역시 비워버렸다. 다니엘의 시선은 곧 아래로 떨궈졌고 나는 그런 다니엘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더 붙잡지는 않을건데, 그래도 연락은 하고 지내자."
"그래. 나도 아주 안보고 지내고싶진 않아."
"..좋은 친구 하나 생겼네."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다니엘은 앞에 놓인 물잔을 비워내고 그만 일어날까 라고 물어온다.
아쉬운데.. 그래도 이렇게 헤어지는건 나 너무 아쉬운데..
"..아이스크림 먹고 갈까?"
"얼른 들어가. 데려다 줄게."
"치."
가방을 정리하고서 일어나는 다니엘을 뒤따라서 나도 일어났다. 술기운이 올라 잠시 휘청일 뻔한 몸을 간신히 바로 잡고서 천천히 걸어나왔다.
이제는 해가 완전히 져서 어둑해진 거리를 나와 다니엘 둘이서 서로 발 맞추어 걸었다. 아직도 두근거리고 설레지만 이제는 안된다. 우리 사이에 만들어진 그 선을 난 지켜야한다.
**
"들어가봐."
"아이스크림 먹고 싶었는데."
"나중에 만나면 그 때 먹자."
"...한 번 안아줘."
자신 없는 목소리. 하지만 다니엘을 똑바로 쳐다보고 또박또박 말했다. 잠시 머뭇거리는 듯 싶더니, 내 앞으로 한발짝 다가와 나를 안아준다. 다니엘의 품에 안긴 나는 손을 들어 다니엘의 허리를 감싸 안았고, 머리를 가슴팍에 살짝 기대었다. 품안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넓고 따뜻했다. 먼저 다니엘의 품에 떨어진 나는 고개를 들어올려 어느새 젖은 눈으로 다니엘의 눈을 마주보았다. 다니엘 역시 나를 쳐다보았고, 우리는 술의 힘을 빌려 조금 더 서로에게 다가가 입을 맞추었다.
굿바이 키스였다.
유난히도 밝았던 그날의 달빛. 이젠 아침 저녁으로 춥다고 양팔을 엊갈려 비비고 다니던 시기가 왔음에도 오늘은 유난히 기온이 높은듯, 덥다.
선선한 바람을 타고 동시에 내 눈물도 흘렀다.
나는 오늘.
이별을 했다.
찬란하게 빛나던 시간이었다고
맑은 여름비처럼 고마웠었다고
한줄기 빗물처럼
너무 아름다웠던
투명한 우리들의 이야기
하늘에서 내린 눈물 같아 기억할게
아지랑이 피어나듯이 설레었다고
풀잎에 맺힌 이슬비처럼
기쁘고 때론 슬펐던...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