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5. 인연과 연인, 그 사이 어딘가
40 - 봄을 노래하다
"안녕하십니까-"
모두가 피곤한 수요일 아침. 힘찬 인사 뒤로 따라붙은 건 팀장님의 씁쓸한 미소였다.
○사원, 나랑 잠깐 이야기 좀 할까. 하시는 말씀에 책상에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팀장님께로 걸어갔다. 목에 살짝 뒤집어진 채로 걸린 사원증을 다시 뒤집으면서.
팀장님은 아니야. 여기로 올 건 없고 소회의실 가서 이야기하자.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나는 커피라도 좀 챙길까요? 하고 물었으나 팀장님은 아니. 하며 고개를 저으셨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소회의실의 문이 닫혔다. 오전 9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 9시도 안 되었는데 무슨 업무길래 이렇게 급하게 나를 부르는 거냐고 묻기에는 그래도 내가 눈치는 있어서.
짐작은 갔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 그 이야기를 하려고 이렇게 급하게 저를 부르셨군요- 라고 할 수가 없어 순순히 자리에 앉았다.
팀장님은 큼큼, 하시며 목소리를 가다듬었고 나는 팀장님의 입이 열리기를 가만히 기다렸다. 무릎 위에 공손히 모아진 두 손을 올려두는 것은 본능에 가까웠다.
"나로서는... 이런 이야기 전하는 것도 굉장히 안타깝고, 또 아쉽기도 하고 그래요."
"....네, 팀장님."
"○사원이 어떤 이야기를 들었을지 안 들었을지 나도 잘 모르는 거라 그냥 제로 베이스에서 이야기할게요."
"....네.."
"......."
팀장님도 입이 잘 떨어지지는 않는 모양이다. 쩝, 하면서 입맛을 한 번 다시고는 재차 입을 여셨다. 나는 고개를 떨궈 책상 위에 시선을 두었다.
옹성우 과장이... 더 이상 우리와 함께 일하지 못하게 되었어요.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말에 크게 놀란 건 없었다. 놀랐다기보다는, 이미 박힌 못이 더 깊이 박혀 빠질 수도 없게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짧다면 길고, 길다면 짧은 순간에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고민했다. 놀란 표정? 안타까운 표정? 슬픈 표정? 어떤 표정을 지어보여야 맞는 건지, 잘 모르겠어서.
"...옹과장..님이요?"
"...도쿄로 이직할 예정이어서. 곧 모두 알게 되겠지만 ○사원의 경우는 직속 상사니까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알고 있는 게 맞는 일 같고."
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안타가운 표정으로 바꾸어갔다. 다른 사람들보다 내가 먼저 알고 있는 게 맞는 것 같다는 팀장님의 말에 문득 황대리와 박사원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하나도... 먼저 알고 있는 게 아닌데. 씁쓸한 웃음이 번졌다. 대체 무엇을 먼저 알고 있는 거라고 해야 할까. 먼저 알고 있었던 게 하나도 없는데.
팀장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새 사람을 뽑고 있긴 하지만 그 사람이 옹성우 과장 역할을 잘 해줄 수 있을지는 나도 알 수 없어요.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게 우리 바람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네... 알겠습니다. 할 수 있는 말이 한정적이어서 알겠다고만 했다. 아랫사람의 입장에서 윗사람이 관두고, 떠나고, 새로운 윗사람이 온다고 한들 무엇을 어떻게 취사선택해서 막고, 받아들이고 할 수가 있을까.
떠나는 사람도, 가는 사람도, 남겨진 사람도 각자의 몫이 있는 걸.
"안 좋은 일로 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사원이 요 몇 달 동안 옹과장한테 도움 많이 받았으니까..
옹과장 가는 길에 조금이라도 신경써주면, 옹과장도 많이 고마워 할 것 같네요."
네에. 알고는 있다 해도 쉽지는 않은 일. 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말이 없기로는 팀장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그렇게 잠시 서로 아무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 팀장님이 나갈까요? 묻는 말에 네에. 하고 한 번 더 대답. 소회의실의 불을 끄고, 문을 닫고 나오니 자리에 앉아계신 옹과장님과 눈이 마주쳤다.
싱긋, 보여주는 상쾌한 미소에 나 또한 웃음이 나왔지만 이내 '옹성우 과장이 더 이상 우리와 일하지 못하게 되었어요.'하는 팀장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다크초콜릿을 한 움큼 삼킨 것처럼 목구멍이 먹먹했다.
"안녕하십니까, 과장님."
"좋은 아침이에요. ○사원."
"......"
"입술색 바뀌었네. 가을인가 보다."
섬세한 사람이다. 좀처럼 디테일한 걸 놓치는 법이 없는, 세심하고 배려심 많은 사람.
어젯밤에 강과장님, 옹과장님, 그리고 황대리님 셋이서 술을 한 잔 했다고 그랬다. 지난 번 강과장님과 옹과장님 둘이서 술을 마셨을 때 이야기도, 앙금도 잘 풀렸던 게 이번 세 명의 회동에 밑거름이 되었더랬다.
어제 생각했던 것보다 강과장님이 집에 늦게 들어가는 바람에 피곤할까봐, 오늘 아침에는 조금이라도 더 자라고 이르며 나 혼자서 출근했다.
황대리님이야 워낙 술을 안 드시니까 어제 세 명이 모였더라도 둘이서 모인 것보다 훨씬 많이 마셨을 거라고 생각은 안 하는데, 그래도 잠은 부족할 테니 조금 더 쉬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냥... 괜히 내가 찔렸던 거다. 불편하기도 하고.
옹과장님이 떠난다고 하니 자연스레 옹과장님께 신경쓰이는 일이 많았고, 그러다 보니 강과장님은 조금 서운하고 속상하고 그래도 나한테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거다.
옹과장님과의 갈등은 해결됐지만 그렇다 해서 아직 정리되지 못한 미묘한 감정까지 없었던 일이 되어버릴 수는 없는 건데. 그 감정의 탓을 누구에게 돌리고, 잘못을 가릴 수가 없는 상황이라는 게 더 갑갑했다.
"잘 어울려요. 예쁘다."
그리고 부딪혀오는, 조금은 무거운 시선. 이런 시선을 마주할 때면 정말 아무 감정도 없고, 아무 생각도 없이 옹과장님과 대화하고 있다고 말하기에는 어려웠으니까.
최소한의 양심의 가책 때문에라도 강과장님이 마음에 걸리는 건 당연했다. 무어라 단언할 수 없는 애매한 감정과 기분을 하나하나 설명할 수는 없는 일.
감사합니다. 다섯 글자 뒤로는 어색한 미소가 따라붙었다. 그 어색함까지도 너무나 꿰뚫고 있을 옹과장님이라서, 어쩐지 나는 내가 또 죄인이 되어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조금 더 나를 숨길 수 있었더라면.... 애초에 그가 도쿄로 떠날 일은 없었을까. 하는 터무니 없는 생각이 이어졌다.
-
"다 됐어- 먹자-"
황대리님의 결혼식이 있는 주말 아침이다. 강과장님은 내가 일어났다는 메세지를 보냄과 거의 동시에 띵동, 하고 우리집 벨을 눌렀다.
예전 같았으면 맨얼굴 보여주는 게 부끄러워서 잠깐만요! 라고 외치고 일단 집에 들여놓은 뒤 10분, 15분은 족히 걸려 사람 몰골을 만들어냈을 테지만,
요즘은 쏟아지는 야근에, 쌓이는 피로에... 예전 같은 외모를 사수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맨얼굴을 뻔뻔하게 드러내고 있다.
"........"
"왜 그렇게 쳐다보세요.."
"...왜 이렇게 사랑스러운가 싶어서."
물론 그마저도 이렇게 사랑스럽다 하니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과장님이 자꾸 이래주니까 더 뻔뻔해지는 것 같다. 그건 반박할 수가 없다.
최근 들어 과장님은 곧잘 곰실거리는 멘트를 뱉는 데에 익숙해지셨다. 뭐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 멘트를 날렸을 때 닿아오는 내 반응 때문이 아닐까 싶다.
뻔뻔하지만 그래도 부끄럽고 쑥스러운 건 잘 알아서, 그런 멘트가 날아오면 붉게 볼을 물들이고 마니까 그대로 과장님한테 볼을 붙잡혀 입술을 뺏긴다.
버둥치며 달아나려 하면 긴 두 팔로 나를 꼬옥 안아온다. 그러면 말로는 놔요- 라고 해도 놓을 수가 없어진다. 세상 사랑스럽다는 그 눈빛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잘난 얼굴로 그런 눈빛까지 쏴주니 나로서는 피할 구멍이 없는 거다. 반칙이야, 반칙. 하면서도 싫은 건 절대 아니다. 다만 부끄러울뿐.
엄마 말에 안 그러던 사람이 그러면 더 그래진다고 했다. 목적어가 생략되어도 아주 단단히 생략되어버린 문장이지만 그걸 못 알아들을 리는 없었다. 강과장님을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아니 과장님 왜 이렇게 요새... 막 부끄러운 말도 아무렇지 않게 하시구..."
"왜? 싫어?"
"뭐... 싫은 건 아니지만...."
"그러게. 생각해보니 그렇네... 나 원래 이러지 않았는데."
원래 이러지 않았다고 말하며 묵묵히 숟가락을 움직이는 과장님. 식탁 위에는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이며 볶아낸 김치볶음밥이 자리해 있다.
물론 그 위에는 철저히 내 입맛을 따라온 약간의 피자치즈가 있는 건 안 비밀이다. 피자치즈를 좀 넣어주면 맛있다는 내 말에 고개를 저으며 안 믿으려던 때는 언제고, 지금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꼬박꼬박 챙겨서 이렇게 솔솔 뿌려주신다.
어느새 입맛까지 많이 닮아있는 우리다. 시간이 빠르다는 말조차 무색할 만큼 가까워졌고, 닮아가고, 깊어졌다.
"그, 그래도 싫은 건 아니에요!"
"....그래?"
"...부끄러워가지구... 그냥....."
말을 얼버무리는 나. 그리고 내 말이 끝났다 생각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밥그릇과 수저를 들고 내 옆으로 와서 앉는 과장님.
나는 놀라서 내 오른편을 바라보고, 과장님은 마주보는 것보다 옆에 있는 게 좋아서. 하면서 씨익 웃었다.
아- 하며 입을 벌리라는 말에 얼떨결에 입을 벌렸더니 숟가락 가득 담긴 김치볶음밥이 내 입 안에 안착했다.
이렇게 대놓고 쑥스러운 상황은 가급적 피하고 싶었으나, '사랑은 혼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도 같이 해주는 것'이라는 강과장님의 가치관을 세뇌받았기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점점 더 과장님께 의지하고, 점점 더 과장님 없이는 안 돼요- 가 되어버리는 것 같다. 다른 여자들이 그렇듯, 그러면서 불안감이 커지기도 하지만.
"근데, 과장님 오늘따라 멋있네요."
"오늘따라?"
"네... 뭐... 오늘 여직원들도 많이 올 거구... 한사원도 올 거구...
다들 오면 마주칠 텐데 우리 과장님 너무 혼자 멋있는 거 아닌가 해서...."
"......."
혼자만 보고 싶은데, 여러 사람한테 보여줘야 하니 불안해지는 마음을 들킬까 싶어서 괜히 눈을 마주치지 않으며 말했다.
한참 조용한가 싶었더니 하하, 하면서 나긋한 웃음소리가 터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귀여운 앞니를 톡 드러내며 웃고 있다. 해맑은 아이 같아서 나 또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질투 나? 나 그럼 너무 기분 좋은데. 웃음기가 가득 담긴 과장님의 말에 나는 다시 숟가락을 움직였다. 몰라요. 나도 오늘 예쁘게 꾸밀 거예요. 했더니 손을 뻗어 나를 안아온다.
"싫어. 하지마. 불안해."
"뭐 나는? 안 불안할 줄 알고?"
"마음 같아서는 맨얼굴에 잠옷 입고 데려가고 싶다... 그마저도 예뻐서 탈인데."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과장님은 웃지마. 진짜니까. 하면서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또 근엄한 멍멍이 같아서 귀여웠다. 손을 뻗어 과장님의 턱을 쓰다듬으며 귀엽다, 과장님. 강아지 같아요. 했더니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고개가 삐딱해졌다.
"...이렇게 섹시한 강아지 본 적 있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목 언저리로 과장님의 얼굴이 다가왔다. 내 어깨에 제 얼굴을 살짝 올려두고, 내가 고개만 살짝 돌려도 금방 입술이 닿을 만한 자세를 하는 게 영 묘했다.
심장 뛰는 속도가 빨라지는 게 금방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를 것 같아서 훅 얼어버렸다. 과장님은 손을 뻗어 내 허리를 안았다.
나는 흐읍, 하면서 크게 숨을 한 번 들이쉬게 됐다.
"아, 아니다. 나 그냥 강아지 할게. 그러니까 좀 이뻐해주라."
"...제가 안 이뻐했던 적이 있었나...요...."
"요즘 좀 덜 했던 건 사실이지. 너도 알지?"
"........"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기에 반박할 수 없었다. 더 이상 밥을 먹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가만히 숟가락을 내려놓으니,
쪽, 쪽, 두어 번 어깨와 목을 타고 과장님의 입술이 도장 찍듯 꾹꾹 눌린다. 간지러운 마음에 흐으, 하고 밭은 소리를 내면 과장님의 입꼬리가 스윽 올라간다.
".....방으로 갈까? 시간 좀 될 것 같은데."
나긋하게 속삭이는 말투에 나는 그대로 K.O.
정신 차려보면 그대로 과장님 품 속이라, 나는 거절하고 말고의 위치는 못 되고 만다. 역시나 오늘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주인 좋아하는 티를 못 숨기는 강아지마냥 내게 입을 맞추고, 사랑을 듬뿍 부어주면, 그대로 나도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를 이길 수가 없다. 사랑이라서.
-
결혼식은 금방이었다. 황대리님은 멋있었고, 정대리님은 아름다웠고. 둘은 잘 어울리는 선남선녀였다.
회사를 다니는 내내 둘의 관계를 의심조차 못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둘은 너무나 잘 어울렸고 처음부터 맺어진 짝인 것처럼 예뻤다.
나는 과장님과의 관계를 티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한참 떨어진 곳에서 따로 앉았다. 집에서 식장으로 갈 때도, 식장에서 집으로 올 때도 함께였지만 식장 안에서만큼은 남남이었다.
그래도 부서는 같아서 앉다 보니 마주보고 앉게 되었다. 과장님 왼편에 바로 옹과장님이 앉아계신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마음이 편할 수 없었지만.
옹과장님이 세심하고 섬세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는 나는, 중간중간에 강과장님과 눈빛을 교환한다든지 하는 것은 엄두도 못 냈다.
이미 셋 사이에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을 일부러 꺼내어 한 사람에게 굳이 다시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게 내 연인을 조금 힘들게 할 수 있을 지라도 말이다.
"자, 사진 촬영할게요! 모여주세요-"
그러려다 보니 사진촬영을 할 때에도 최대한 멀리 떨어지려고 노력했다. 부서의 팀장님, 부장님은 우리는 같은 부서니까 부서끼리 자리해도 된다고 했으나,
나는 굳이 강과장님과 가까이에서 한 사진에 담기는 게 좀 부담스러웠다. 우리 둘만 가까운 게 아니라 옹과장님까지 가까워져야 했으니까.
시간이 흘러 다시 그 사진을 보면, 어쩐지 쓴웃음밖에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강과장님이 조금 서운해질 수 있을 거란 걸 알면서도 모른척했다.
"......"
"........."
멀찍이 떨어진 상태에서 눈이 마주쳤으나 먼저 피한 건 내 쪽이었다. 과장님은 마음이 상한 듯했다.
우리 사이를 모르는 남이 볼 때에는 그냥 ○사원이 강과장을 불편해 하나 보네, 정도로 끝났을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둘이 싸웠나? 싶을 정도로 내가 좀 유난이었다.
부케를 던질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나는 부케를 받기에는 한-참 어린 나이라 부케를 받을 확률은 정말 1도 없었다.
그런데 황대리님과 정대리님이 미리 말을 맞춰둔 건지 뭔지, 내게 부케를 받으라 하시길래 나는 한사코 됐다며 거절했다.
보통은 부케 받을 사람을 미리 정해두고, 이야기를 맞추는 게 일반적인 건데 정대리님은 그러지 않으셨다고 했다. 당일이 되어 본인이 주고 싶은 사람한테 주려 했다는 말이 이어졌다.
그 상황에서 옹과장님은 아무런 말이 없었고, 강과장님은 내심 내가 받았으면 좋겠다는 표정으로 그저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당황해서 줄곧 어버버 했고...
옹과장님과 강과장님의 눈치를 살피던 나는 결국 부케는 못 받겠다고, 죄송하다고 말씀 드렸고, 이내 부케는 다른 대리님에게로 돌아갔다.
사전에 이야기된 것도 없고... 누가 봐도 나는 부케를 받기에는 너무 어린데. 내가 받는 건 정말 아니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결혼이라도 앞두고 있다면 모를까... 그것도 아닌데. 안 받는 게 맞았다.
"......"
"........"
근데 문제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였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띌까 싶어서 일부러 멀리까지 걸어 나와서 강과장님의 차에 탔다.
조수석에 타고 안전벨트를 맬 때까지, 매고 나서도 과장님은 한 마디 말이 없었다. 뭐지, 아까 화났던 건가... 내가 너무 유난이었긴 했다... 미안하다고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했다.
그러다 갑자기 과장님이 말문을 열었다.
"받지 그랬어, 부케."
"...그걸 제가 어떻게 받아요."
"....그래도 정대리가 그렇게 준다고 하는데.. 선배 체면 생각해서라도 받아주지 그랬어."
"......."
거기까지는 생각지 못했다. 내가 당황스러운 것만 생각했지, 정대리님의 체면이 상할 건 생각하지 못했던 거다.
순간적으로 내가 잘못한 건가, 내가 잘못 생각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수가 적어진 나를 의식한 건지 과장님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내가 잘못한 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먼저 입을 열었다. 혹시라도 싸움으로 번지기 전에 미리 불씨를 꺼야 했다.
"그것까지는 생각 못했어요... 정대리님 체면은. 그냥 그 상황에서는 제가 너무 당황해서.
....그래도, 당장 결혼할 것도 아니고... 저보다 나이 많으신 분들도 수두룩한데...
제가 너무 어린데 받는 것 같아서... 민망하고."
"........"
"....과장님 이야기 들으니까 제가 좀 실수했던 것 같아요.
정대리님한테 죄송하다고 이야기 해야,"
"당장 결혼... 나는 하고 싶은데."
"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목소리를 따라 눈까지 커져서 동그래진 채로 과장님을 바라봤다.
나는 당장... 하고 싶다고. 나와 눈을 맞추며 말하던 과장님이 드라이버 위치를 바꾸며 살짝 엑셀을 밟았다. 어쩐지 핑 도는 것 같은 느낌이 왔다.
"네가 부케 받으면, 나한테 말 못하고 혼자 고민할 것 같아서."
"....."
"그래서 고민하기 전에 나랑 결혼하자고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
"안 받아오니까 내가 말할 수 있는 핑계가 없네."
나직히 닿아오는 말은 진심이었다. 놀란 건 놀란 건데, 닿아오는 진심을 모른척할 수가 없어서 벙 찐 표정으로 과장님을 봤다.
빨간 신호등 앞에 잠시 멈춰 선 과장님은 옆자리에 앉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나는 결혼하고 싶은데... 넌 어때?"
"...."
"프로포즈는 아닌데, 일단 물어보는 거야. 나랑 같은 생각하고 있나... 해서."
"....."
낮은 과장님의 목소리에 나는 해야 할 말을 까먹었다.
한 번 잊어버린 할 말은 좀처럼 다시 생각나지 않았고, 그 사이에 과장님은 한 번 더 내게 쐐기를 박았다.
"같이 살고 싶다.
...떨어지기 싫어."
심장이 쿵, 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헤어지기 싫다는 말 뒤로 과장님의 따스하고 큰 손 안에 내 손이 자리했다.
마른 침이 목울대를 타고 넘어갔다. 내 입이 채 열리기도 전에 답은 정해져있는 듯했다. 답은 마주잡은 그 손에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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