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Written by. 치코
RUMIN x XIUMIN
꼬리를 흔들며 기다리는 만두의 밥그릇에 사료를 잔뜩 부어줬다. 어젯 밤 심슨을 연달아 본 탓에 답지 않게 늦잠을 자버려서, 행동 하나하나가 급했다. 물기가 뚝뚝 흐르는 머리를 대충 쓸어넘긴 민석이, 다 식은 토스트에 잼을 발라 입에 물었다. 가방을 한 쪽 어깨에 걸치고 현관에 선 민석을 배웅해주는 만두에게 찐하게 뽀뽀도 해주었다. 도어락이 풀리자 컹컹 짖어대는 만두에게 씁! 하고 겁을 주곤 문을 닫았다. 문이 닫혀도 짖어대는 탓에 문을 발로 한 번 쾅! 차 주자, 사료를 먹으러 돌아서는 발 소리가 들렸다. 뒷 굽을 구겨 신은 신발을 제대로 고쳐 신고 복도 중앙에 놓인 엘레베이터 앞에 섰다. 조금 일찍 시작되는 뉴욕의 아침은 빌딩을 한적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유리로 감싸진 엘레베이터는 뉴욕의 아침을 비춰냈다. 'R' 이라고 적힌 버튼을 여러번 눌러대자, 곧 스르르 닫히는 문에 민석이 비죽 웃으며 젖은 머리를 탈탈 털어냈다. 검은 머리가 물기에 젖자 더욱 짙어졌다. 한 층 선명해진 머리색이 피부를 돋보여주는 것 같아 신경질이 났다. 거울을 보며 대충 머리를 정리하는데, 닫힌 줄 알았던 엘레베이터의 문이 다시 아구를 벌렸다. 뭐야.
민석과 달리 잘 손질된 머리였다. 주름 하나 없는 와이셔츠 위에 곧게 자리잡은 넥타이는 남자를 능력있는 샐러리맨으로 보이게 했다. 시계를 확인하며 들어온 남자의 검은 커프스가 눈에 띄었다. 고개를 들어올리는 남자는 샛노란 머리를 하고 있으나 서양 사람이 아니었다. 어어, 동양인이다. 민석은 거울로 비춰진 남자를 슬쩍 쳐다봤다. 돌아있던 몸을 앞으로 틀자,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한국인입니까?"
엘레베이터의 작동으로 기계음만 들리던 내부에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 아? 먼저 말꼬물을 튼 남자의 입에서 들려온 소리는 익숙한 것이었다. 한국말. 한국말이다. 학교에서 유일한 한국인인 첸과의 대화 이후에 한국어로 대화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알 거 없는데."
"세인트 버나드?"
"그 쪽도 한국인이예요?"
"이 쪽도 알 거 없습니다."
"한국어를 잘 하시네요."
"워낙 다재다능 합니다. 그런데 혹시, 제가 어제 그 쪽한테 행패를 했습니까?"
"예?"
"그런 것도 아니라면, 들러붙어 울기라도 했다던가요."
다재다능? 행패를 한 건 또 뭐야. 뜬금없이 흘러가는 어색한 대화에 민석이 인상을 쓰고 남자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남자도 눈을 맞춰왔다. 키 차이에 민석을 내려다보는 남자의 시선엔 비웃음이 가득했다.
"포스트잇."
"…."
"붙여 놓으셨길래."
"에?"
"제 집 앞에 제가 있었으니."
"헐."
"문제 될 건 없겠죠."
포스트잇의 내용을 다 알아 차린 듯한 남자의 말투에 얼굴을 붉히고 있자, 딱 들어맞게 엘레베이터가 로비에 도착했다. 빌딩 데스크 누나에게 웃으며 안부를 묻는 모습이 방금 민석에게 대했던 태도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헐 매너 있는 척하는 것 좀 봐. 재수없어. 눈은 자연스레 회전문을 막 지나는 남자의 등에 꽂혀있었다. 그러다 그 시선이 제 쪽을 봤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멍하니 엘레베이터 앞을 막아서고 있는 민석에, 흑인 남성이 말을 붙였지만 대답해줄 겨를이 없었다. 헐레벌떡 로비를 가로질러 달리는 민석 뒤에 시계가 정각을 알렸다. 지각이었다.
출근길에 오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가용보다 지하철을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미국에, 아침마다 힘을 빼고 학교에 가야했다. 가뜩이나 옆집 남자 때문에 시간도 마땅치 않아 지하철까지 전속력으로 달렸더니 다리가 후덜거렸다. 민석이 지하철역까지 헉헉대며 뛰어가고 있을 때, 옆집 남자의 뒷 모습은 블루밍데일즈의 입구에 다가서 있었다. 판매원이야, 뭐야. 존나 느긋하네. 그렇게 아침부터 힘을 빼고 달려온 학교에선 출석 점수가 깎였다. 10분을 늦은게 그 이유였다. 거대한 덩치의 담임 선생님에게 알아 듣지도 못 할 핀잔을 듣고, 털레털레 자리로 돌아갔다. 채드의 무리가 시시덕거리는 게 들려, 욕을 읊조렸다. 자신의 반이라곤 하나 5분 가량도 되지 않는 조회를 마친 뒤에 바로 반을 옮겨야하는 식이라, 얼마 앉아 있지도 못한 채 자리를 옮겨야했다.
"Won-ton."
"죽고 싶냐?"
수업이 시작되기 전 책상에 늘어져있는 민석의 옆자리에 첸이 자리를 잡았다. 채드가 민석을 놀릴 때나 쓰는 단어를 내뱉으며 얼굴을 들이미는데, 그게 또 능글거려서 쳐내지 못했다. 만두라는 뜻이었는데, 볼살이 통통해 붙어진 별명이었다. 사실 첸은 민석보다 한 살이 어렸다. 그럼에도 첸과 민석이 같은 수업을 듣는 이유는, 10학년 과정을 모두 이수하고 11학년으로 올라온 성적 우수자였기 때문이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교재를 피는 첸을 보던 민석이 말을 붙였다.
"첸, 내 옆집에 동양인 살아."
"진짜? 어때, 말은 통해?"
"말은 통하는데, 좀 재수없어."
"말이 통해? 한국인이야?"
"아니. 동양계인데, 확실히 한국은 아냐. 그런데 한국말을 해. 좀 어눌하긴 해도."
"차이니즈인가."
"모르겠어. 블루밍데일즈로 출근하는 것 같던데."
"흠, 오늘 그 사람 때문에 늦었구나."
속삭이 듯 묻는 첸에게 어깨를 들썩이자, 첸이 시원스레 웃었다. 얼마쯤 지나자 자리에 학생들이 모두 들어찼다. 곧 선생님이 수업의 시작을 알렸다.
작가 - 음, 분량이 적은 대신에 매일 매일 글 올리려고 노력할게요. 짧아도 이해해 주세요. 시간 내서 쓰는 거니까! 그리고 제가 직접 미국에 산 적이 없기 때문에 미국 문화와 다른 점이 분명 있을거예요. 최대한 반영하려고 하나 부족한 점에선 제가 허구로 채워 넣습니다. 감안해주세요! 오타, 반복 수정은 댓글! 감사합니다.
암호닉 - 흰자, 오미자차, 날끼, 홍삼, 빤짝이, 립, 월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