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지휘자」
㈜솨솨
점심 시간, 애들은 하나 같이 다 밥을 먹으러 가고 오늘따라 배가 아파 밥을 먹지 않겠다는 나를 따라 같이 밥을 먹지 않고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는 민윤기를 바라보다 의구심이 들었다. 왜 굳이 나를? 민윤기는 인기가 많았다. 수업시간이면 민윤기에게 잘 보이려 꽃단장을 하는 애들 혹은 민윤기를 계속 바라보는 애들로 나뉘고, 체육시간에는 남자애들끼리 하는 시합에서 목청껏 민윤기를 응원하고, 각종 데이 때는 책상이 남아나질 않으니, 그걸로 말이 끝이다. 근데, 별 잘난 것도 없고 예쁘지도 않고 성가신 나를 왜 민윤기가?
"야."
"왜."
"너 왜 나 좋아하냐?"
"굳이 대답해야 하나."
"에?"
"그냥 너라서 좋은 거야, 너라서."
재미 없는 대답과 함께 민윤기는 턱을 괴고 날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내 손을 꽉 잡은 민윤기의 손이 따뜻해서 나도 모르게 따뜻한 웃음을 지었다. 민윤기와 나는 10년지기 친구이면서, 5년 째 비밀 연애 중인 커플이다. 항상 겨울이 가득했던 내 마음에 들어선 후에는 봄이 가득했고, 나는 민윤기를 내 봄의 지휘자라고 생각한다.
뭔가 이상하다. 민윤기가 갑자기 날 피한다. 같이 하던 등하교도 항상 먼저 가라고 하고, 급식도 따로 먹자고 하고, 매점도 같이 안 가고, 쉬는시간에도 자리에 잘 없고. 그러니까, 나를 피하는 느낌이 든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되게 잘 지냈었는데, 등하교도 맨날 같이 하고 카톡도 맨날 하고 전화도 맨날 했는데, 연락도 두절이고. 속상하고 서운했다. 민윤기를 붙잡아다 나한테 왜 그러냐고 묻기도 전에 반 여자애들이 내 자리를 가득 에워싸고 침을 튀기며 말했다.
"야, 너 그거 들었어? 민윤기 옆 반 이지은이랑 사귄대."
"솔직히 너 미웠던 건 맞는데, 걘 진짜 아닌데."
"어제도 같이 등 하교하는 거 봤다잖아."
몰랐던 얘기다. 민윤기가 이지은이랑? 어이가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얘기지, 민윤기는 나랑 사귀고 있는데. 라고 생각할 때, 같이 등하교하는 것을 봤다는 얘기에 심장이 내려 앉았다. 어제 분명히 어머님이 차 태워주신다고. 생각회로가 끊기는 기분과 동시에 울화가 치밀어올라 아랫입술을 꽉 깨물자 내 반응을 예상하지 못한 여자애들이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짓고 서로 얘기를 나눠갔다.
"헐 너 진짜 몰랐어?"
"대박, 그럼 뭐야? 민윤기 너 좋아했잖아!"
"차라리 너가 나아. 이지은 걔는..."
쭉 이어지는 이지은의 험담은 귀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믿음이 한 순간에 깨진다는 말이 이런 건가 싶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학교를 돌아다녔다. 옆 반에 들어가자마자 이지은과 붙어있는 민윤기에게 다가가 야, 하고 민윤기를 불렀다.
내 목소리에 민윤기의 시선은 나에게로 꽂혔고, 나를 바라보는 민윤기의 시선은 차갑다 못해 매말라있었다. 너 나한테 왜 그래? 너 이런 애 아니잖아. 잠깐 나와보라는 말과 함께 민윤기의 팔을 잡았는데, 내 팔을 너무 가볍게 내치는 너의 행동에 당황했다.
"나 지금 지은이랑 얘기 중이잖아."
그렇게 다시 이지은과 얘기를 하는 민윤기에 나는 두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나를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하는 민윤기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눈물을 떨구려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떨어지는 눈물이 짜증나 거칠게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교실에서 빠져나와 책가방을 싸고 학교에서 뛰쳐나왔다. 갑자기 저러는 민윤기도 이상했고, 민윤기의 저런 행동에도 민윤기를 싫어하지 않는 내가 싫었다. 눈물을 계속해서 흘렀고, 마음이 아렸다. 벚꽃이 지고 있었다.
며칠동안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민윤기에게 연락을 계속 해 보았지만, 민윤기는 나의 모든 연락을 무시했다. 페북에는 이지은과의 연애중이 올라왔고, 카카오톡 프사도 이지은과 함께 찍은 사진으로 바뀌었다. 너의 상단바에는 나의 연락이 수도 없이 뜰 텐데, 너는 왜 그러고 있을까. 나는 네게 무엇일까. 눈물이 매마른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었다. 눈물이 매마를 새도 없이 눈물이 계속 나는데, 어찌 눈물이 매마를 수가 있을까. 한참을 울고 있으니, 어두웠던 방이 한 순간에 밝아지기에 고개를 들었더니,
그 어떠한 표정을 하고 있지 않은 민윤기가 서 있었다. 민윤기는 당연한 듯 내 침대에 앉았고,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민윤기를 쏘았다.
"이지은은 어쩌고?"
"그런 거 묻지 말고, 우리 헤어진 거 알긴 하냐고."
"너 나 사랑했긴 했니?"
"……."
대답 없는 민윤기를 보고 눈물이 쏙 들어갔다.
"왜 날 사랑해 주지 않아?"
난 네게 모든 걸 걸었어. 다 던졌고, 다 버렸어. 내 안에 있는 욕심을 전부 던져 버리면 널 온전히 채울 수 있을까 봐, 다 버렸어. 매일 밤 네 휴대폰 상단바를 장식했던 내 부재중 기록을 보면서 넌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조금이라도 날 떠올리긴 했을까. 생각은 했을까. 난 네 이름 세 글자만 보면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눈 앞이 까매지는데, 난 네게 결국 가벼웠구나. 결국 나는 그랬어. 그 5년동안의 시간동안 너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고개를 숙여 내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민윤기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내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너 좋아한 적도, 사랑한 적도 없어. 그 뿐이야.'
갈게. 침대에서 일어난 민윤기는 내 방에서 나갔고, 도어락이 잠기는 소리가 들리면서 나는 바닥에 주저 앉았다. 너는 내가 널 미치도록 사랑하게 만들어 놓고 이렇게 결국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구나. 사랑했는데. 모든 걸 통틀어서 사랑했는데. 들어간 눈물이 다시끔 터져나왔다. 입에서는 말로는 차마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이 쏟아져나왔고, 마음이 너무 아파 움켜쥐었다. 벚꽃 나무에 아슬하게 걸려있던 한 점의 벚꽃잎이 결국에는 바닥에 떨어졌다. 봄의 지휘자가 없어졌으니, 봄도 무너졌다. 너로 인해 없어진 겨울이 너로 인해 다시 찾아왔구나.
한참을 울다 고개를 드니 책상에 놓인 커터칼이 눈에 꽂혔다. 지휘자가 없는 봄은 필요가 없었다. 벚꽃이 없는 겨울은 필요가 없었다. 커터칼을 손에 쥐었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네가 앗아간 내 봄을 돌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