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angle
09
요즘 민형이가 조금 이상하다.
"민형…"
"… 여보세요? 알았어 지금 갈게."
"어디 가?"
"친구가 불러서요."
아니 많이 이상하다. 이상해도 너무 이상해!
피자를 먹은 그날 이후로 민형이는 요즘 티 나게 나를 피하고 있다. 이유라도 알면 내가 이렇게까지 속이 답답하진 않았을 거다. 이 모든 이야기를 들은 유타는 물을 마시다 말고 그대로 풉 하고 뱉어버렸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한테 뿜어버린 건가. 내가 너 남자친구라고 오해하고 있다고? 입가에 묻은 물기를 닦으며 유타는 그렇게 물었다. 너도 이해 안 가지? 응… 그러게 나도 이해가 안 돼.
"오해면 풀면 되잖아."
"날 보기만 하면 바로 피해버려서 얘기할 틈이 없다니까."
얘는 지금까지 대체 무슨 얘기를 들은 거야.
점심 시간, 학교 앞 새로 생긴 파스타 집이 맛있다고 소문이 자자하길래 유타를 끌고 왔다. 로제 파스타를 포크로 돌돌 말다 말고 유타는 묘한 웃음을 지었다. 어딘가 음흉한 그 표정에 접시 옆에 놓인 물컵을 잡고 그대로 꼴깍꼴깍 마셔버렸다. 원래도 민형이와 대화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 점점 사이가 가까워진다고 생각했는데 가까워지는 건 어렵고 멀어지는 건 진짜 한순간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민형이가 너 좋아하는 거 같은데."
"… 풉, 뭐?"
"아씨 더럽게."
갑작스러운 유타의 말에 이번엔 내가 물을 뿜어버렸다. 더럽긴 뭐가 더럽다고… 자기도 뱉었으면서?
내가 뱉어버린 물이 자기한테까지 닿았는지 옷에 튀긴 물기를 툭툭 터는 유타였다.
그나저나 방금 뭐라고 개소리를 지껄인 거지? 나유타의 특기가 개소리긴 하지만 이건 정말 역대급 개소리였다. 개소리 오브 개소리랄까. 나는 혹시 누가 들을까 검지를 입에 갖다 대며 쉬쉬- 했다. 조용히 해 미친 놈아! 그러다 누가 듣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아니 혹시 모르는 거라니까?"
"아니 혹시 아무도 모르게 죽고 싶니?"
"거 형님… 농담이 좀 지나치십니다."
이게 농담으로 들리냐? 나이프를 잡고 있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 나이프로 귀라도 파줄까 했지만 정말 무서운 듯 작게 떨리는 유타의 동공을 보곤 나이프를 다시 탁자 위에 놓았다. 근데 나유타의 개소리가 학교에 들어서도 끊이질 않는다 이 말입니다. 옆에서 계속 종알종알 거리는 저 자유분방한 주둥아리를 어떻게 해야 잘 처리했다는 소문이 돌까 곰곰이 고민하다 그냥 손으로 놈의 입을 잡고 쭉 늘렸다.
"아! 내 입술!!"
내게 잡혔던 입술을 손으로 매만지며 나를 세모눈으로 째려보는 유타에게 검지와 중지로 눈을 팍 찌르겠다는 시늉을 했다. 그제야 좀 조용해졌다. 강의실에 들어와 유타는 가방을 놓고 화장실에 간다며 잠깐 자리를 떴고 나는 핸드폰을 들어 민형이에게 문자라도 하나 보낼까 하다 갑자기 나타난 도영의 얼굴에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안녕."
"어? 어… 안녕."
짧은 인사 뒤로 김도영과 내 사이에서 작은 대화 한 마디도 오가지 않았다. 차라리 나는 이게 더 편했다. 그나저나 많고 많은 빈자리 중 왜 하필 내 옆자리에 앉은 거람.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민형이도 그렇고 이해할 수 없는 날의 반복이었다. 화장실을 다녀온 유타도 내 옆에 앉아있는 김도영을 보고는 당황한 눈치였다. 슬금슬금 자리에 앉은 유타는 제 팔꿈치로 내 팔뚝을 툭툭 치며 눈알을 도르르 굴렸다. 뜻은 이러했다. 김도영이 왜 네 옆에 앉아있어? 그러게 말이다. 나도 모르겠다.
우리는 헤어졌다. 김도영 뿐만 아니라 어쩌면 학교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을 사실이었다. 근데 왜 너는 내게 다가오는 걸까? 딱딱하게 굳어버린 내 머리론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강의실 안에 있는 학생들의 시선이 자꾸만 이쪽을 향한다. 저들끼리 소곤거리는 작은 소리 속에 김도영과 내 이름이 넘실거렸다. 나는 금방 그치겠지 하고 안일하게 넘어갔다. 근데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이따 같이 가."
"어?"
"어차피 가는 길 똑같잖아."
수업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시점에 김도영은 그렇게 말했다. 가는 길이…… 똑같긴 하지. 오늘은 카페를 가는 날이었다. 김도영도 그렇겠거니 싶었다. 우리는 수업이 끝나고 단둘이 가는 길을 같이 걸었다. 유타는 중간에 무슨 약속이 있다는 같잖은 핑계로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유타라도 있으면 덜 어색할 텐데 하고 생각했었는데… 망했다.
"오늘 끝나고 뭐해?"
카페로 향하는 걸음이 떼지질 않았다. 아마도 그건 김도영이 옆에 있기 때문인 걸까.
"뭐 하긴… 바로 집에 가야지."
12시에 끝나고 집까지 걸어가면 12시 30분에 도착하려나?
"같이 가."
"응?"
"어차피 가는 길 똑같은데."
아 그렇지, 김도영도 집이 해찬동이지. 이번에도 거절할 말이 딱히 생각이 나지 않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답을 대신했다. 나란히 카페로 들어온 우리를 보고 태일 오빠는 약간 놀란 듯 그런 눈을 하고서 우리를 반겨주었다. 아는 사이라고만 했지 이렇게 같이 다니는 사이인 줄은 당연히 몰랐겠거니 했다. 나도 김도영이랑 이런 사이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지 못 했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옷을 갈아입고 서로 맡은 일을 하기 바빠 다른 사적인 대화를 할 틈이 없었다. 난 그게 좋았고, 김도영은…… 글쎄다. 카운터에만 서 있으려니 다리가 점점 뻐근해진다. 슬쩍 고개를 돌려 김도영을 쳐다보니 커피를 만드느라 정신없는 뒷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저기."
"… 어?!"
한 눈을 팔아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김도영한테. 나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다시 돌려 앞쪽을 바라보면 저번에 만났던 민형이 친구, 그러니까 이름이…… 이름이 뭐더라? 아, 그래! 이름이 특이해서 기억하고 있었지.
"제노? 제노 맞지."
"누나 안녕하세요."
제노 특유의 눈웃음을 짓고서 인사를 건넨다. 제노, 제노가 왔다면 설마…? 그래. 정말 설마 하는 마음에 제노 너머로 카페 안을 눈으로 더듬더듬 거렸다.
"민형이 저기 있어요."
"응?"
"민형이 찾으시는 거 아니에요?"
정곡을 콕 찌르는 제노의 말에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거리고 말았다. 제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쪽을 향해 시선을 돌리니 정말로 그곳엔 공부를 하는 건지 펜을 잡고 시선은 책을 향한 채 미동 없이 앉아있는 민형이의 옆선이 멀리 보였다. 제노는 주문을 하곤 바로 자리로 돌아갔다. 아는 애야? 갑자기 툭 튀어나온 얼굴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니 언제 이쪽으로 온 건지 나를 내려다보는 그 두 눈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민형이 친구. 짧게 떨어지는 내 말에 도영은 그랬다.
"그럼 민형이도 왔겠네."
"응, 저기."
"공부도 잘 하는 앤가 봐."
"응. 민형이 공부 잘 해."
누가 보면 민형이 엄마라도 되는 줄 알겠다 뭘 그렇게 뿌듯해 해. 낮게 웃으며 김도영은 나를 놀려댔다. 엄마는 아니더라도… 누나라면 모를까. 자꾸만 놀려대는 김도영의 어깨를 주먹으로 툭툭 내려치며 그만하라고 몇 번을 말했는지 모르겠다. 다음 손님이 주문을 할 때까지 놀려대는 바람에 나는 그냥 될 대로 대란 식으로 어깨를 치던 손을 내렸다.
나는 한가할 때를 틈타 허니 브레드를 만들어 민형이 테이블로 갔다. 공부도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우리 민형이 당 떨어지면 어떡해. 이런 걱정도 들었고 뭐라도 해주고 싶은 누나의 마음에서 비롯된 거라고나 할까. 내가 테이블로 다가가자 문제집에 시선을 두고 있던 민형이는 고개를 들더니 나를 보고는 조금 놀란 기색이었다.
"이거라도 먹고 해."
"누나 감사합니다."
"…."
보기 좋은 웃음을 지으며 제노는 허니 브레드를 받았다. 그에 비해 민형이는 여전히 차가운 낯을 하고선 나를 보고 고개를 작게 위아래로 까닥였다. 민형이가 갑자기 차가워진 이유라도 알면 풀기라도 할 텐데 이유도 모른 채 미움을 받으니 나는 나대로 갑자기 슬퍼지기 시작했다. 그 슬픈 감정은 금방 없어질 줄 알았는데 민형이가 10시 쯤 카페를 나가면서까지도 없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말 한 번 안 할 수 있어?! 너무하다…… 진짜. 나는 그날 하루 온종일 우울한 모드로 카페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태일 오빠가 무슨 힘든 일 있냐며 내게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묻기까지 했으니까 말이다. 나는 힘든 일 없다며 억지로 미소를 얼굴에 단 채 카페를 청소하는 걸로 오늘 일은 마무리가 되었다. 옷을 갈아입고 카페를 나서는데 벽에 등을 기댄 채 딸랑- 소리가 나자 이쪽을 쳐다보는 김도영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물린다.
"너 괜찮아?"
"응? 뭐가?"
"오늘 하루 종일 힘이 없는 거 같아서."
어지간히 내가 티를 내긴 했구나 싶었다. 김도영이 이렇게까지 물을 정도라니. 시간이 시간인지라 이미 까만 하늘엔 오랜만에 보는 별들이 총총 박혀있었다.
"있잖아 시민아."
"응?"
하늘을 올려다보며 작지만 제 빛을 뽐내는 별들을 신기해하며 바라보고 있는데 내 이름을 부르는 도영의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려 도영을 쳐다보았다. 갑자기 진지해진 분위기에 당황했다. 왜 그렇게 보는…….
"나 많이 불편해?"
이거 어디서 들었던 말인데. 미간을 팍 찌푸렸다. 누가 그랬었지… 누가 분명 그랬었는데.
어디선가 들었던 질문이었다. 그 질문이 김도영 입에서 나올 줄은 몰랐다. 알면서 물어보는 걸까 아니면 진짜 몰라서 묻는 걸까. 도통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최근 김도영은 내게 그러한 존재였다. 알 수 없는 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애. 잘 가던 걸음을 뚝 그친다. 조금만 더 가면 집이었다.
나보다 두 발자국 쯤 앞에 서 있던 넌 내게 뒷모습만 보인 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나 진짜 못된 거 아는데."
"…."
"나 너랑 잘 지내고 싶어."
잘 지내고 싶어. 이 말은 무슨 의미가 담겨 있을까. 다시 예전처럼 지내고 싶다는 걸까 그게 아니면 그냥 어색하고 불편한 사이가 아닌 친구가 되자 이런 뜻인 걸까? 나는 네게 묻고 싶은 질문이 많았지만 하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그냥… 하기 싫었다.
나는 질문이 아닌 그동안 네게 하고 싶었던 말들을 줄줄 내뱉기 시작했다.
"네가 불편하냐고 물었지. 응, 난 아직 네가 불편해."
"…."
"그래서 요즘 네가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차분하게 이어지는 내 말을 모두 듣고 있던 너는 나를 바라본 채 쓰게 웃으며 고개를 툭 떨군다.
"잘 지내자고? 어떻게 그래."
"…."
"너는 그게 쉬워?"
아무렇지 않게 잘 지내자고 하는 네가 솔직히 말하면 미웠다. 보기 싫었다. 그게 내 마음이었다. 나는 네가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그 자리를 피하듯 서둘러 벗어났다. 조금만 더 가면 집이었다. 조금만 더 가면… 조금만……
"왜 이렇게 늦게 다녀요."
"…."
"늦게 다니지 말라니까."
집 앞에 서 있는 너를 보고 나는 그대로 주저 앉고 만다.
무릎에 얼굴을 박은 채 길을 잃은 어린 아이처럼 펑펑 우는 나를 보고 너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무슨 일 있어요?"
"…."
"내가 뭐라고 해서 그래요?"
"…."
"아니… 난 그냥 걱정 돼서."
당황한 듯한 네 음성이 머리 위로 톡톡 떨어졌다. 우왕좌왕 당황하는 네 얼굴을 보고 싶어 고개를 들까 했지만 떠오르는 도영의 얼굴에 나는 얼굴을 더 깊숙이 박은 채 엉엉 서럽게 울어댔다.
어니언's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오늘 올리지 않으면 뭔가 더 늦어질 거 같아서 서둘러 써서 올려요 흑흑.
제가 면접이 하나 더 추가 되었어요. 1단계 합격이라 일단은 기쁘지만 그 두렵디 두려운 면접을 또 봐야 한다니 한 편으로는 무섭네요ㅠ
그래서 또 언제 컴퓨터를 킬지 몰라요. 이래놓고 또 자주 들어오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다들 유타날과 스청날에 어떻게 보내셨나요? 저는 유타날에는 아티움에 가 생카를 얻었는데 스청날에는 못 갔어요 흑흑 그게 많이 아쉽네요.
아, 그리고 암호닉 댓글 보고 조금 놀랐어요 생각보다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많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