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기가 시작되고 모두 반배정이 나온데로 자신의 반을 찾아가기 바빴다.
"너 몇반이냐?"
"나 11반. 넌 몇반인데"
"아, 진짜 망했어 너 몇반이야? 우리반 완전 양아치밖에 없어"
"너 나랑 같은 반인듯?"
복도에는 이런 소리들로 가득찼다. 북적거리는 가운데 2반으로 준면과 징어가 들어갔다. 둘은 신기하게도 3년 내내 같은 반이었다. 그러나 둘은 지나치게 달랐다. 모범생에 말도 적고 앉아있길 좋아하는 준면과 달리 징어는 말도 많고 활발한데다가 자신의 의견은 확실히 하는 편이었다. 어디서 보나 어떻게 보나 순종적인 성격의 준면과는 상극이었다. 덕분에 준면과 징어는 같은 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닥 친하진 않았다. 하지만 여러의미로 둘은 교내 유명인사이기 때문에 서로 얼굴과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게다가 말했다시피 3년이나 같은 반이었는데 이름 하나 모를리 없었다. 준면은 징어를 선생님 말에 토달기를 좋아하고 여느 여자애들과는 달리 체육시간을 참 좋아하는 활발한 여자애정도로, 징어는 준면을 그저 우리반 회장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준면이 회장을 맡은 건 1학년 때 한 번 뿐이다.) 하지만 준면이 징어를 좋아하는 여자로써 바라보게 된건 한 순간이었다.
***
그 때는 여름방학이 한 달 정도 남은 시점이었다. 언제나 점심시간에 교실에 있는건 준면뿐이었다. 다들 점심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교실밖으로 뛰어나가 급식실 혹은 매점으로 향했고 급식을 다 먹고 나서도 굳이 점심시간동안 에어컨을 틀어주지 않는 교실에 있을 필요를 못느끼기에 남자애들은 운동장에서 축구하고 바빴고 몇몇 여자애들은 그들을 응원하거나 교실보다 더 시원한 도서관에 있곤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많고 시끄러운 곳을 싫어하는 준면에게 점심시간의 교실은 딱 저에게 안성맞춤이었다. 그 날도 늘 하던대로 문제집을 폈다. 그 아무리 똑똑한 준면이라도 단 하나, 못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수학이다. 아무리 문제를 풀어도 풀어도 답을 구하지 못한 탓에 기분이 좋지 못했다. 몇 번을 지웠다 썼다를 반복했을까,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들어왔다. 징어였다. 그녀는 매점에서 사온 음료수를 빨대로 쪽쪽 거리며 들어왔다. 지금이라면 한참 이반저반을 들쑤시고 다니면서 시끄러울 때인데 왜 교실로 왔나, 안그래도 수학문제 때문에 날이 서있던 준면은 심술이났다. 무엇보다 들어온 것도 신경쓰이는데 저 쪽쪽- 거리는 소리가 참을 수 없었다.
"뭐야. 왜이리 조용해, 우리반"
"미안한데, 조금만 조용히 해주지 않을래?"
"응? 아, 그래...뭐하는데 그러냐?"
안그래도 기분이 영 좋지 못한데 반이 왜이리 조용하냐는 쓸데없는 혼잣말이나 하면서 저만의 시간을 방해하는 징어가 얄미웠다. 하지만 남에게 싫은소리 할 줄 모르는 준면이기에 최대한 정중히 말을 꺼냈다. 지금껏 같은 반임에도 불구하고 준면이 수행평가를 내라고 했을 때라던가, 가정통신문을 걷을 때라던가. 그럴 때말고 대화를 해본 적이 없어 준면의 목소리가 참 어색하게 느껴져 친화력 만렙인 징어도 조금 당황했다. 허나 굴하고 말 그녀가 아니었다. 조용히 하라고 그러면 더욱 조용히 하기 싫은 법. 그녀는 딱 청개구리같은 스타일이었다.
"뭐야, 수학풀고 있었냐? 흠...알려줄까?"
"아니, 괜찮아."
그녀는 성격답게 오지랖이 넓었다. 물론 눈치도 있었다. 몇 번이고 풀었는지 모르지만 문제집이 꼬깃꼬깃해진것으로 보아 무척이나 많이 풀었음이 보였다. 그걸보고도 그냥 넘어갈 징어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오지랖이 준면을 더 기분 나쁘게했다. 그는 그저 조용히 교실에 혼자 있고 싶었다. 여태까지 그는 그 일이 이 수학문제를 푸는것보다 몇배는 더 쉽다고 생각해왔는데 전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빨리 징어가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득 담아 특유의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괜찮다고 대답했다. 허나, 징어는 계속 준면의 샤프가 향해있는 문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준면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저기..."
"아, 이거 어렵지? 나도 이거 엄청 끙끙 앓다가 풀었거든. 답도 생각보다 간단해. 봐봐. 여기 x값이 원하는게 이거잖아."
준면의 말은 가볍게 끊고 징어는 문제를 설명해나갔다. 분명 싫다고 거절하려했는데 어느샌가 징어의 페이스에 말려들어 결국 설명을 다 듣고 말았다. 그건 아마 징어가 막무가내인 것도 있지만 그녀가 무척이나 설명을 잘 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징어가 수학을 잘하는 건 거의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덕분에 지금까지 풀리지 않았던 이 문제가 손쉽게 풀려버렸다. 정말 징어의 말대로 간단한 문제였다. 지금껏 풀지못한 저가 바보같다고 생각될 정도로.
"어때, 알겠어?"
"어? 응..."
"그래? 다행이네"
웃었다. 준면은 저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했다. 웃음이 헤픈 징어라 웃는모습을 처음 본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 본 그 웃음은 무척이나 예뻤다. 그것도 엄청. 그 웃음에 준면은 자신도 웃었다. 징어는 그런 준면이 실없다고 생각했지만.
****
제목의 의미는 딱히...없습니다. 그저 얼마전에 '내가 너를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 라는 영화를 보면서 쓴 글이라서 정하게 된 제목입니다. 설전에 간질간질한 글을 한 번 써보고 싶어서 써봤는데 하나도 안 간질간질하네요. 다른 필명으로 오려다가 역시 김준면 글은 이 필명이 맞는 것같아 그냥 오게되었습니다. 신학기에 오고싶었지만 제가 너무 쓰고 싶어서 그냥 지금 와버렸네요. (언제나 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이렇게 주절주절이 되어버리네요)
(+) 다음편을 혹시 기다리는 분들께! 기다리지마세요. 물론 저도 다음편이 쓰고싶긴 하지만 언제 올지도 모르겠고 정말 다음편을 쓰게 될까도 잘 모르겠고. 아마 다음편을 올린다면 새 필명으로 올리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설날 잘보내세요 다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