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B (GOT7) & 잭슨 (GOT7) - U & I
001. 오세요 구름이네 쉐어하우스
"○○누나! 이리 와라."
호텔경영론 재수강을 이번 학기에 하게 된 게 천추의 한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매주 화요일 아침 9시, 호텔관광대학 203호에 들어서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내게 손 흔드는 그 놈(편의상 그 놈이라 하겠다.)을 본 지 네 차례만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러니까 꼭 다섯 번째로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놈을 향해 입 앞에 검지손가락을 갖다 대며 가만 있어! 를 외치기를 여러 번.
헤헤, 하며 해맑게 웃는 얼굴에 차마 침을 뱉지는 못하고 누가 볼세라 서둘러 놈이 가리키는 자리에 앉았다. 하... 온 시선이 내게 꽂히는 기분이다. 정말 쪽팔린데.
"야. 너 내가 학교에서 아는 척하지 말랬지."
다른 이들의 귀에 들리지 않게 이야기하려 했지만,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너무 크게 나왔다. 내가 터뜨린 목소리에 내가 되려 놀라며 입을 가렸다.
아는 척 한 거 아이고 자리 맡아 놓은 긴데. 해맑게 웃어 사라져버렸던 눈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길고 얄쌍한, 속쌍커풀 진 눈이 내 눈을 맞춰온다.
너 지금 내 이름 불렀어, 안 불렀어. 도끼눈을 뜨며 놈을 흘겨보는 나다. 혼나는 강아지마냥 귀가 축 늘어지면서 뿌우- 하고 입도 조금 나오는 것 같다.
귀여운 건 인정하는데, 과 애들 다 있는 데서 너랑 아는 척하기 부담스럽단 말이야...
"꼭 안 그래두 애들 다 안다. 내 누나랑 친한 거."
"......"
"우리 누나 어제 늦게 잔 거 내 알아서 이렇게 뒷자리 맡았는데. 섭섭타."
"......."
고개를 떨구며 책상 위에 올려진 두꺼운 전공책을 들여다 보는 다니엘. 펴지 않은 전공책의 빳빳한 표지 위에는 Daniel Kang, 제 이름이 필기체로 적혀 있다.
울상을 짓는 다니엘의 등을 토닥이며 달래주었지만 뭔가 우리 쪽으로 집중되는 것 같은 시선은 어쩔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졸업 앞둔 13학번과 16학번은 무슨 조화...
호텔경영론이야 재수강 인구가 원체 많아 학년 구분 없이 듣는다 쳐도, 이렇게 자리까지 맡아주거나, 나무랐다고 서운해 하는 상황은 드문 일이다.
특히 같은 동아리도 아니고, 학회도 아니고, 외양 자체가 아무런 접점도 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호텔경영론 수업이야 늘 반은 졸고 반만 듣는다.
1학년 때 교수님의 씨(C) 뿌리기에 얽혀 성적표에 당당히 C+가 떡하니 껴버린 덕에(껴버렸다고 했지만 당시 성적표는 씨 파티였다.) 졸업 직전에 아까운 3학점을 할애해 가면서까지 듣고 있는 거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했나. 1학년 때와 정말 1도 달라진 것 없이 나는 반은 졸고 반만 듣는다.
사람은 인생이 풍비박산 날 상황을 겪지 않고서야 쉽게 바뀌지 않는다. 물론 나도 그렇다. 그러니 이렇게 꾸벅꾸벅 인사를 잘-하고 있는 거겠지.
"누나 밥 누구랑 무요?"
어느덧 수업의 끝자락. 누구보다 빠르고 남들과는 다르게 가방을 싸는 학우들을 본 뒤 시계를 바라봤더니 그 바늘은 11시 30분을 향해 있다.
오늘도 일찍 끝내주시는 것 없이 완벽한 풀강인가... 제대로 듣지도 않았고 절반은 졸아버렸어도 풀강은 싫다. 잠에 취한 채로 멍하니 있는데 누구랑 밥 먹냐고 물어오는 다니엘이다.
어.... 하고 한 10초 정도 얼버무렸을까. 하하하, 하고 가벼운 웃음 소리가 귓가에 닿아 온다. 왜 웃냐, 인마.
"같이 무요. 김재환 만나기로 했다."
이어지는 내 하품과 얕은 기지개. 고개를 두어 번 흔들어 정신을 차리곤 다니엘을 쳐다봤다. 제 말에 따라올 답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한 눈과 마주쳤다.
야. 고학번이 자꾸 16 이런 애들이랑 같이 다니면 욕 먹어. 나잇값 못한다구. 옹성우 보고 학교 일찍 오라고 해서 먹을게. 재환이랑 둘이 맛있게 먹어.
나는 그 말을 끝으로 가방을 싼다. 호텔경영론 책이 무거워서 화요일에는 백팩을 들고 다녀야 한다. 다니엘은 별 다른 대답이 없다.
서운해서 그런 걸까. 기분 풀라는 뜻으로 백팩 앞주머니에 있던 막대사탕을 하나 꺼냈다. 넣어둔 지 조금 되긴 했는데 요즘 날이 따뜻하지는 않아서 녹지 않았을 것이다.
다니엘의 손에 쥐어주니 눈도 안 마주치고 궁시렁댄다. 내가 뭐 얼란 줄 아나... 얼라지, 인마. 속에 떠오르는 말은 있었지만 굳이 뱉지 않았다.
"나 간다! 집에서 봐!"
수업 끝. 다음주에 봅시다. 교수님의 말이 이어지고, 나는 누군가에게 들리지 않게 최대한 속삭인 뒤 그의 등짝을 두어 번 토닥이고는 일어섰다.
후다닥, 누가 봐도 서두르는 발걸음으로. 누구보다 빠르고 남들과는 다르게 다니엘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 오세요 구름이네 쉐어하우스 -
"어- 엄마. 내다."
"그래. 니 학교 잘 다니고 있나? 집은? 괜찮고? 아들이 안 괴롭히고? 거 남자애들이 많아가 엄마는 만날 걱정한데이."
"걱정 안 해도 된다. 뭘 쓸 데 없는 걱정을 하고 있노."
호관대는 3-4교시 수업이 드물다. 그래서 대부분이 공강인 이 시간, 호관대(호텔관광대) 5층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로비에 놓인 몇몇 개의 푹신한 소파를 하나 골라 몸을 뉘였다. 아... 너무 졸려. 왜 이렇게 졸린 거야... 휴대폰을 꺼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익숙한 통화연결음이 들리고, 그 끝에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간단히 내 근황을 이야기했고, 슬슬 할머니의 수술 소식을 물었다.
"할매 수술은? 잘 끝난 기가?"
"으응. 나이가 있어서 상태가 금방 좋아지지는 않는다 카대. 입원이 더 길어질 수도 있고."
"그쟈. 할매 벌써 여든이 넘었으니까."
"할머니도 잠이 억수로 많아졌다 아이가. 계속 잔다. 엄청 잔데이."
"....나는 할매도 아닌데 왜 이렇게 잠이 많지."
별 의미 없는, 실없는 소리를 했더니 그래도 마지막 학기니까 힘내서 열심히 공부하라는 말을 하는 엄마다.
뭐... 공부야 항상 힘내서 열심히 하지만 마음 만큼 성적이 나와주지 않아서 문제다. 그런데 사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면 그렇게 열심히 하지는 않는다.
취업할 때 학점 너무 높아도 안 좋아한다. 공부만 하고 다른 건 안 했냐고 하면서. 라고 했더니 엄마는 말이 없다. 말이 없다는 건 그냥 조용히 하라는 뜻이다.
그래... 입 다물어야겠다. 허허. 어쨌든 열심히 할게- 하고 무마했더니 응. 밥 잘 챙겨먹고. 하는 말이 들린다. 응, 엄마도- 하며 통화를 마무리했다. 그대로 통화종료 버튼을 꾸욱 눌렀다.
"...엄마야. 깜짝아."
어느 순간부터 소파에 내가 앉은 것보다 더 많은 압력이 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싶었다. 왠지 내 팔 언저리도 좀 따뜻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 온 걸까, 하는 생각은 하긴 했는데 그게 옹성우일 줄이야. 나를 보며 하이. 하고 인사를 내미는 모습에 나도 하이. 하며 웃었다.
흰색, 세로줄이 그어진 스트라이프 셔츠에 남색 면바지. 깔끔하고 정갈한 모습은 누가 봐도 훈훈하기 그지없다. 뭐... 지금까지 봐온 바, 성격은 그와 다르지만.
"나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
"글쎄. 감?"
"단감?"
"곶감."
"...홍시."
"땡. 감으로 끝나야지, 홍시가 뭐야 홍시가."
....실패한 드립에는 여지없이 구박이 날아온다. 이게 뭐라고 진지하게 구박하는 얼굴이 웃겨서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 배를 잡고 웃고 있는데 덥석 손목을 잡아 온다.
야, 가자. 밥 먹자. 나는 계속 앉아있는 상태인데 저만 혼자 일어선다. 악. 야, 팔 떨어져. 했더니 네 팔은 건강해서 안 떨어져. 한다. 이거레알 반박불가... 인정하는 각이고요...
뭐 먹을래? 오늘 화요일이라서 학식에 돈까스 나오는데.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가며 묻는 옹성우다. 나는 콜. 그 어떤 고민도 생각도 없이 콜을 외쳤다.
배고프다. 밥 많이 먹어야지. 하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했는데, 생각해 보니 아침까지 내리 자다가 성운오빠가 해준 토스트를 주워먹고,
수업 절반을 꾸벅꾸벅 졸다가 다시 배고프다며 점심을 먹으러 가고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다.
이러다 돼지가 되어버리는 게 아닐까....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며 하아- 절규를 해보았지만 옹성우는 노관심이다. 무심한 놈.
꼬로록- 내 배에서 나는 소리다. 손으로는 배를 문지르며 눈으로는 소리가 난 그곳을 바라봤다. .....밥이나 먹어야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응. 그럼.
옹성우가 환멸이 가득 담긴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밥 줄 테니까 그만 보채라는 표정이었다.
타이밍 좋게 열리는 엘리베이터. 나는 씩씩한 걸음으로 학식으로 가는 길을 앞장섰다.
- 오세요 구름이네 쉐어하우스 -
"할머니 수술비가 급한데... 당장 빼서 쓸 수 있는 목돈이 ○○가 너 자취방 보증금밖에 없다.
빚을 내볼까도 생각했는데, 그래도 있는 돈 안에서 해결하는 게 제일 나은 기다..."
2학기 개강을 보름 정도 남겨뒀을 즈음.
밤 사이에 진주에서 서울로 올라온 엄마는 내게 와서 할머니 수술비가 급하다며, 자취방을 빼서 보증금을 수술비로 써야겠다는 청천벽력같은 말을 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자취방 보증금을 빼... 나는 학교 어떻게 다니라고. 라고 하기에는 내가 무리해서 서울까지 와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형편을 알기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요즘 뭐, 보증금 적게 내고 들어갈 수 있는 것도 많다대. 함 알아봐라. 간곡한 부탁인 것처럼 서글프게 이야기하는 바람에 쉽게 못한다고 이야기도 못했다.
알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자신은 없었다. 어느덧 자취한 지 5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갑작스레 방을 빼서 다른 곳으로 들어가기에는 무엇보다 개강까지 남은 날이 너무 없었다.
엄마를 다시 진주로 내려가는 차를 태워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원룸 주인 아주머니께 연락을 드렸다.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어 방을 빼야 될 것 같다고 하니, 우리가 남도 아니고 여태까지 산 게 몇 년인데, 보증금 5백으로 깎아줄 테니 한 학기 남은 것 그냥 다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수술비로 필요한 건 자그마치 8백이었다. 8백이 필요하대요. 라고 했더니 아주머니는 아이구.. 큰 수술인가 보네. 하며 혀를 차셨다.
마침 월세 내는 날이 일주일 정도밖에 안 남은 터라 다행이긴 했다. 다행이라는 말이 적당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찌저찌 주인 아주머니와 이야기가 잘 되어서, 별 차질 없이 계좌에는 천만 원이 들어왔고, 나는 노트북으로 엄마에게 8백만 원을 계좌이체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속이 상해 많이 울었다. 그냥 좀... 막막하고 답답했던 것 같다. 보증금 2백 가지고 갈 수 있는 곳은 저렴한 보증금이 메리트인 쉐어하우스뿐이었다.
혼자 살던 사람이 갑자기 누군가와 같이 살게 되는 것 만큼 걱정되고 두려운 게 없는데.
그렇지만 그거라도 구해지면 다행이지, 개강이 얼마 남지도 않은 터라 학교 주변의 쉐어하우스에 빈방이 있을 거란 보장도 없었다.
여기서 집을 못 구하면 꼼짝없이 휴학 신세였다. 1년 휴학했으면 충분한데, 더 이상 늦어지면 취업까지 늦어지니 한 시라도 빨리 돈을 벌기 시작해야 하는 나는 선택권이 없었다.
자취방 살림을 이민가방 두 개에 다 주워담고, 큼지막한 가구는 아빠를 불러 아빠차에 태워 진주로 내려보냈다.
뭐... 안 좋은 일은 늘 겹쳐서 온다고 했나. 자취방을 떠나 모텔에 묵으면서 학교 주변 쉐어하우스를 알아보는데 빈방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남은 방 있냐고 물으면 늘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개강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있겠냐고. 꽉 찼다고.....
푹푹, 한숨을 내쉬어 봐도 지금 내가 처한 현실은 꿈이 아니었다. 정말 못 구하면 어떡하지. 등록금 환불되나...?
별 생각을 다 하며 버스를 탔고, 휴대폰을 만지며 습관처럼 페이스북을 켰다. 피드에 가장 먼저 뜬 글이 하나 있었다.
<동운대학교 대나무숲>
#31427번째 나뭇잎
안녕하세요. 동운대학교 정치외교학과 4학년 황민현입니다. 글 특성상 대숲 지기님한테 허락 받고 실명으로 올려요.
제가 사는 쉐어하우스에 빈 방 하나가 채워지지 않아 주인 형을 대신해서 공지 올립니다.
귀찮은데 본인이 하면 될 것을 꼭 저를 시키네요. 본인은 재학생이 아니라나 뭐라나...
대숲 맨날 들여다 보면서도 글 올리는 건 부끄럽다네요.
제가 사는 쉐어하우스에는 남자 넷이 살고 있습니다. 주인 형 포함해서요.
처음 주인 형이 쉐어하우스를 리모델링할 때는 최소한 여자 두 명은 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방 네 개 중에 두 개를 분홍색 벽지로 꾸며놨는데요.
공교롭게도 그 분홍색 방 하나를 제가 쓰고 있어요. 큰 불만은 없지만 남은 핑크룸 하나는 여성 분이 사용하신다면 주인 형의 뿌듯함이 +100 정도 될 것 같습니다.
남자 분이어도 물론 괜찮습니다. 상남자의 상징은 핑크 아니겠습니까?
각설하고, 어차피 공용공간이랑 개인공간 구분이 명확해서 여자 분이든 남자 분이든 크게 상관은 없어요.
근데 저희 집이 방도 괜찮고 사람들도 좋은데 유독 하나가 놀고 있는 게 좀 아까워서요.
홍보가 덜 되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재학생 중에 방이 진짜 정말 리얼 헐 대박 필요하신 분이 겟하셨으면 좋겠어서 대숲에 올려 봅니다.
저희 주인 형에게 인스타 디엠 주세요. 계정은 @ha_cloud_입니다. 클라우드 양 옆으로 언더바 하나씩 있어요.
장난으로 디엠 주시면 찾아가서 말로 때립니다. 말로 맞아도 아파요. 그럼 저는 20000. 당당정외 만세.
솔깃하긴 했는데 '남자 넷'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곧 내게 닥친 현실을 바라보게 됐다. 찬 밥, 더운 밥 가릴 때가 아니라는 거였다.
이미 내 것이 아니게 된 자취방에, 계속해서 모텔 신세를 지면서 개강을 맞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쿠웅, 그 와중에 버스가 크게 한 번 흔들리면서 내 옆자리에 둔 이민가방을 훅 떠내려보낼 뻔했다. 진짜... 짜증나는 이민가방이다.
그렇게 인스타를 켜고, @ha_cloud_로 디엠을 보냈다. 밑져야 본전이라고, 빈 방 있다는데 남자들이 득실거린다고 못 들어갈 건 또 뭐야.
그냥 들어가서 조용히 살면 돼, 조용히. 찍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어차피 학교 3개월만 다니면 졸업인 거, 너무 그렇게 양반처럼 살려고 하지 말자... 나한테 하나도 도움 안 돼.
그렇게 내 자신을 다독이며 디엠 답장을 기다렸다.
- 오세요 구름이네 쉐어하우스 -
[동운대 학생이시죠?
동운대역 버스정류장에서 신나라 PC방 쪽으로 걸어오시다 보면 파리바게트 있어요.
그거 끼고 돌아서 한 300m 쭉 걸어오면 Cloudy Espresso라는 카페 보이실 거예요. 그 건물로 와서 하성운 찾으시면 됩니다.]
다행히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답장이 왔다. 메세지에 적힌대로 동운대역 버스정류장에 내렸다. 여러 번 가보지는 않았지만 아주 초행길인 것도 아니라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클라우디 에스프레소. 정류장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널찍한 카페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 쉐어하우스를 찾았다. 왠지 거길 가서 하성운이라는 사람을 찾아야 할 것 같아서.
"안녕하세요. 저기... 쉐어하우스가 몇 층이에요?"
"구름이네요? 2층이에요. 요 옆 계단으로 올라가시면 돼요."
"엘리베이터는 없나요? 보시다시피 제가 짐이 많아서..."
"아, 그러면 따라오세요."
눈웃음이 매력적인 남자가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굳이 안내해줄 것 까지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엘리베이터가 쉬이 찾을 수 없는 곳에 있긴 했다. 건물 구조 특이하네...
자취방이 있던 빌라보다는 크고 깔끔한데다 신축인 것 같은 느낌이 퐁퐁 풍겼다.
위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준 남자가 또 매력적인 눈웃음을 보이며 타고 올라가시면 돼요. 했다. 나는 감사합니다. 하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엘리베이터도 깔끔하게 청소가 잘 되어 있는 걸 보면 꾸준히 관리하고 있는 건물인 것 같았다. 건물은 좋네... 혼자 중얼거리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내리니 구름이 두둥실 떠다니는 입구가 눈 앞에 펼쳐졌다. 아크릴로 만들어낸 하늘색 바탕에 흰 구름 모양들이 뭔가... 주인의 취향을 알 것 같달까...
구름 모양을 빤히 쳐다보다가, 이럴 때가 아니지, 하는 생각이 들어 문고리를 쳐다봤다. 어.... 평소에는 닫혀 있을 게 분명한 문인데, 어쩐 일인지 한 3cm 정도가 열려 있다.
"....계세요-?"
초인종을 누르려면 충분히 누를 수 있었지만, 집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아서 그냥 문을 열어젖히고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공용공간인 부엌과 거실이 펼쳐졌다. 널찍한 게 정말 너덧 명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공용공간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하늘색 문이 세 개, 오른쪽에는 분홍색 문이 두 개 있었다. 제일 끝쪽은 방은 아닌 것 같고... 화장실? 욕실? 그런 느낌이었다.
그럼 대숲 글에 올라왔던 비어있는 분홍색 방은 둘 중 하나겠구나. 닫혀 있는 문이 예뻐서 한 번 내부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하늘색 문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모르긴 몰라도 사람이 다 들어와 살고 있다는 건 느껴졌다.
그러던 사이에 퉁, 퉁, 하는 리드미컬한 발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는 내가 들어온 걸 모르는 듯했다.
"저, 저기...."
"우왁!!! 뭐꼬!!!!!"
웃옷을 입지도 않은 채 머리카락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을 수건으로 탈탈 털어대고 있는 허여멀건한 남자애였다.
나를 보자마자 화들짝 놀란 그는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고, 나는 손을 들어 내 눈 앞을 가렸다. 아, 아니... 저기... 채 잇지 못한 말은 그의 말에 막혀 들리지도 않았다.
남자는 놀란 채 사투리가 잔뜩 섞인 말들을 내뱉었는데, 듣고 있는 나는 어쩐지 내 고향집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의 말인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 짧은 겨를에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우습긴 하지만.
"여 어떻게 왔어요?!!"
"문이 열려 있었.... 아, 저... 하성운씨가..."
"성운이형 여 없다! 1층에 있어요, 1층!!"
잔뜩 올라간 톤으로 1층에 가라며 소리소리를 질러대길래 일단 이민가방은 세워두고 1층으로 내려갔다. 와씨... 본인이 놀란 것 만큼 내가 놀랐을 거라고는 생각 안 하나...
내가 뭘 본 건가 싶기도 하고, 계속 눈 앞에 허여멀건한 잔상이 떠오르는 게 영 정신건강에는 좋지 않을 것 같아서 고개를 휘휘 저으며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거 사람 찾기 되게 어렵네... 쉐어하우스는 2층이라 하고, 2층에 갔더니 1층으로 내려가 보라 하고... 짐도 몸도 무거워 죽겠고... 이러다 오늘 안에는 만날 수 있을까, 그 사람.
이게 내가 기억하는 강다니엘과의 첫만남이었다.
도착한 1층. 클라우디 에스프레소라는 카페의 문을 열었더니 눈웃음이 매력적이던 남자 대신 조금 더 진한 인상의 남자가 어서오세요- 하고 인사했다.
나는 쭈뼜대며 아.. 안녕하세요. 저.... 하며 말문을 열었고, 그는 혹시 디엠 주신 분? 하며 물었다. 나는 네네!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미소를 띄운 얼굴로 잠깐 자리에 앉아서 기다려 달라고 했지만, 나는 여기가 안 되면 어차피 다른 곳을 또 알아봐야 했기에 한 시가 급했다.
"저... 제가 좀 급해서요..."
급하다는 내 말에 그렇구나- 라는듯 고개를 끄덕인 그가 일단 커피부터 한 잔 해요. 뭐 좋아해요? 하고 물어왔다.
왠지 내 템포에 이 사람을 맞추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바닐라 라떼요. 아이스 바닐라 라떼. 하고 말했다. 그는 으응, 조금만 기다려요. 금방 갈 테니까. 했다.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지친다... 집 알아보는 건 원래 녹록치 않지만 마음이 급하니 더 지치는 것 같다.
하아... 하고 긴 한숨을 내뱉었다. 피곤하기도 하다. 며칠째 모텔에서 잠을 해결했더니 피로가 풀리지 않은 채 더 쌓여가는 것만 같아서.
가만히 있으면 눈은 감기고 배만 고프다. 식욕과 수면욕은 왜 항상 함께 오는 걸까. 나만 그런 걸까. 왜 이렇게 태어난 걸까. 하는 생각을 해보다 나를 향해 하성운이라는 사람이 걸어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하성운이에요.
1층에는 클라우디 에스프레소라는 카페를 하고 있고,
2층에는 구름이네 쉐어하우스 만들어 놓고 저도 같이 살고 있어요."
아이스 바닐라 라떼를 내게 내민 그는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일반적으로 쉐어하우스 입주 전에는 주인과 간단한 면접 같은 걸 본다고 하던데, 이게 그런 절차인가 싶었다.
그런데 막상 또 면접이라고 하기에는 목소리 자체도 나긋나긋하고 표정도 평화로워서, 그렇게 무섭거나 하지는 않았다.
얼굴 자체는 진한 이목구비인데 풍겨지는 느낌은 꽤 편하다. 웃고 있어서 그런가... 안 웃으면 좀 차가워 보일 것 같기도 하구.
목소리는 조금 높은 톤이었지만 듣기 싫은 정도는 아니었다. 웃기긴 하지만 노래를 잘할 것 같은 목소리라고 해야 하나... 그냥 느낌이 그랬다.
"저... 혹시 계약서가...."
나는 별로 앞뒤 잴 것 없다고 생각해서, 그리고 해봐야 어차피 3개월만 살 집인데 뭘 그렇게 꼼꼼히 따지고 고민할 게 있겠냐는 마음으로 계약서 이야기를 꺼냈다.
앞에 앉은 하성운씨는 내게 그래도 방을 한 번쯤 둘러보고 결정해야 하지 않겠냐 물었고, 나는 여기로 오기 전에 2층에 먼저 가서 쉐어하우스를 둘러보게 된 이야기를 했다.
살짝 열려 있어서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하늘색, 분홍색 문을 봤다고. 거기까지만 이야기했을뿐인데 아, 강다니엘 또 문 제대로 안 닫았어. 하는 짜증 섞인 목소리가 닿았다.
"걔가 좀 칠칠치 못해가지구.. 문을 제대로 안 닫고 다녀요.
이따 가서 등짝 맴매 한 대 때려야겠다."
맴매... 맴매.....? 맴매라는 단어를 마지막으로 들어본 게 언제였나. 굉장히 생소하게만 느껴지는 그 단어에 나도 모르게 내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다.
물음표 가득한 내 얼굴을 보며 하성운이라는 사람은 가볍고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웃어 보였다. 음... 웃음 소리가 좀 특이하신 것 같기도 하구....
뭐, 하여간 계약서에 도장 찍고 남은 단 하나의 분홍색 방에 내 이민가방 두 개를 들여놓기까지는 만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았다.
보증금은 두 달치 월세, 그러니까 백만 원을 밑도는 금액이었고, 월세는 선불이라 함께 계좌로 넣어드렸다. 보증금을 감안하면 원래 살던 자취방에서 월세 자체는 저렴한 축에 속했다.
이 근처에서 이 정도 가격도 찾아보기 힘드니까.. 어쨌든 다행이었다. 다행, 다행, 정말 다행, 그리고 또 다행. 전화위복이란 게 이런 걸까.
벽지도, 침대도, 책상도 분홍분홍한 분홍 느낌이 가득한 분홍색 방. 그 안에 놓인 침대에 지친 몸을 뉘곤 행복에 겨운 팔다리를 마구마구 흔들었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누구지? 싶어서 고개를 돌려 문을 바라봤다.
얼마 간의 틈이 이어지고, 다시 똑똑, 두드려지는 소리에 입을 열어 누구세요- 했다. 잠시 문 열어도 될까요? 묻는 말에 네- 하고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옆방 사는 황민현인데요.
성운이형이 잠깐 다들 모이자고 해서요. 시간 괜찮으세요?"
이게 내가 기억하는 황민현과의 첫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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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Y사원입니다. 생존을 신고하고자 올린 맛보기 글에 많은 성원해주시고, 댓글도 달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실제 시작은 1편부터여서 암호닉 집계는 하지 않았어요. 암호닉은 강과장 최종 암호닉을 그대로 가져올 수 있으시고, 혹시 변경을 원하시는 분들은 따로 말씀해주세요. 그리고 선착순이 아닌 다른 방안으로 암호닉 신청을 받는 걸 고려하고 있으니 새로 신청해주실 분들은 조금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쉐어하우스 1편 어땠는지요? 저는 서툴기도 하고 부딪히고 깨지고, 그래서 아프기도 하지만 다시 일어나야 하는 청춘? 뭔가 그런 이미지를 그리면서 글을 쓰고 있는데요.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면서 함께할 수 있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워너원고 재방 보러 갈게요! 오늘도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 문제되는 움짤계에서 가져온 움짤 삭제했습니다. 앞으로 유의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