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이스트 - Love Paint
003. 똑똑똑
황민현이었다. 황민현이긴 했으나 책에 코를 거의 박다시피 하고 열공 중인 사람한테 다가가 살갑게 인사할 자신은 없어서,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자리를 잡았다.
드르륵- 의자를 꺼내는 소리가 나도 몰래 좀 크게 들리는 듯해서 깜짝 놀라 주변을 살폈다. 주변이라고는 했지만 사실 황민현의 주의를 끄는 게 싫었던 터라 황민현의 눈치를 살핀 것이었다.
방학의 도서관. 앉아 있는 사람들이라곤 드문드문 두세 명 있는 게 전부인 한가하고 휑한 곳이라, 조금이라도 큰 소리를 내면 바로 내 존재를 들키기 십상이었다.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으려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살금살금 책을 들고, 살금살금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10장은 넘겼을까. 분명 흥미로워 보여서 집어들었고, 대출까지 한 책인데 집중이 하나도 안 되었다. 재미는 둘째 치고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책 대신 눈에 들어온 건 황민현의 얼굴이었다. 아까부터 본인의 책에 곱게 고정되어 있던 시선은 좀처럼 움직이지를 않았다.
"집중력 좋네..."
마음 속으로 말한다는 게 말로 꺼내버렸다. 다행히 큰 소리로 뱉은 말은 아니라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내 스스로 나 자신에게 놀라 손을 들어 입을 가렸다.
책 속에 얼굴을 파묻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하지만 그마저도 크게 움직여버리면 황민현의 시선을 끌게 될까봐 조심해야 했다.
결국 손은 책상 위에 책을 내려놓고 말았다. 책보다 황민현의 얼굴이 너무나 유잼인 걸요. 사는 이유는 아름다움 아니겠습니까. 같은 아름다움이라면 책보다는 사람 얼굴이 낫잖아요?
그렇게 합리화하며 본격적으로 황민현의 얼굴을 감상했다. 어제는 잘생긴 걸 몰랐는데, 오늘 보니까 엄청 잘생겼다.
왜 보자마자 알지 못했던 걸까. 난 바보야... 그리고 잘생긴 게 최고야. 책보다 황민현 얼굴이 재밌다. 더 흥미롭다. 온갖 미사여구보다 아름다운 저 비주얼이란... 황홀했다.
".......?!"
헉.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다가 번뜩 고개를 드는 황민현의 속도를 피하지 못해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나는 눈이 둥그렇게 커진 채 피할 새도 찾지 못했다.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띄운 황민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걸어왔다. 나는 어떤 반응을 할 생각도 못하고 그냥 그 얼굴이 가까워지는 짧은 시간을 온전히 느끼고 있었다.
넋 놓고 바라보던 잘생긴 얼굴이 한 걸음, 한 걸음 성큼성큼 나에게로 가까워졌다. 세상 모든 소리는 음소거된듯 전혀 들리지 않았고, 꿀꺽, 내 목에 침이 넘어가는 소리만 겨우 울렸다.
"하하... 안녕하세요."
"안녕. 잠깐 나갈래?"
잠깐 나가자는 말에 네, 하며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먼저 나갔고 나는 가방에 있던 휴대폰을 찾아 들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
탈칵, 하는 소리와 함께 자판기에서 캔음료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저 뒤를 따라와 저가 나를 봐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내게 그가 포카리스웨트를 내밀었다.
파랗고 시원한 포카리스웨트가 꼭 그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탄산으로 자극적이지 않은 것 또한 그의 담백한 성격을 닮은 것 같다는 생각도.
"감사합니다. 무슨 공부하세요?"
"시험공부. 외교관후보자시험. 옛날 이름으로는 외무고시인데, 지금은 이름이랑 전형이 좀 바꼈어."
"아.. 외교관... 멋있어요. 그 시험 엄청 어렵다는 말 들었는데."
"응. 힘들어."
하하하. 하고 맑은 웃음소리를 내는데 힘들긴 해도 아주 힘들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외교관후보자시험이라면 5급공무원 뽑는 시험이다. 엉덩이가 무거운, 진득하게 공부하는 끈기가 필요한 9급, 7급 시험과는 달리 타고난 머리가 있어야 하는 시험이란 소리다.
애초에 시작하는 사람들 자체가 어느 정도 승산이 보여야 시작하는 시험이고, 선택받은 사람들을 위한 그들만의 리그이다. 냅다 시간과 돈을 투자해봐야 기본 머리가 없으면 나가떨어지는. 그런 류의 시험이라고 보면 된다.
어제 파티 때 이야기를 들었다. 12년도에, 그러니까 민현선배가 입학할 당시에, 민현선배는 문과계열 입학생 중 수능성적 기준 전체 수석이었단다.
보통 문과계열 수석은 경영학과에서 도맡아 하는데, 그해에는 특이하게 정외에서 나와서 교수님들 사이에서 화제였다고. 그 화제의 주인공에게 '자네 꿈이 뭔가?'라고 물으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외교관입니다.' 했더랬다.
그리고 그는 4학년 1학기까지 전학기 수석이라는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고, 이제 막 4학년 2학기를 앞두고 있었다. 두껍고 많은 책더미 속에서.
"동기들은 다 9급하더라고요. 근데 그것도 힘들다고 그러던데..."
"응. 뭐 다들 그렇지. 공부만 힘든 건 아닌데, 공부할 땐 공부가 제일 힘드니까."
맞는 말이다. 세상에 공부 말고도 힘든 일은 많은데, 공부를 할 때는 정말 공부가 제일 힘들다. 굳이 공무원 시험까지 준비하지 않더라도 매 중간고사, 기말고사 때마다 느끼는 바다.
선배는 내게 방학인데 도서관에는 어쩐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책 반납하고 빌리러 왔다가 조금 읽고 가려 했다고 답했다. 책 좋아하는구나. 선배가 말했다.
좋아한다고 하기에는 많이 읽는 편은 아니라, 어쩐지 멋쩍어 뒷머리를 긁적였다. 나도 책 좋아하는데. 선배는 본인 몫의 포카리를 한 모금 마시고 이어 말했다.
"집에는 언제 가?"
"성우 방송국 회의 끝나면요. 같이 와서..."
"으응. 가서 성운이형한테 맛있는 거 해달라고 해."
네에. 선배는 언제 오세요? 물었더니 나도 곧 마무리하고 들어가야지. 하는 답이 돌아왔다. 같이 들어가실래요? 했더니 한 세트 더 풀어야 한단다. 먼저 가라는 말 뒤에 눈웃음이 있었다.
잔뜩 집중한 무표정은 조금 사납고 차가워보였는데 웃으면 따뜻해졌다. 이 집 사람들은 무표정일 땐 차갑고 웃으면 따뜻해지는 게 특징인가... 다들 그게 공통점인 것 같다.
어쨌든 그렇게 눈을 휘어 웃어주는 얼굴에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느낌이 났다. 뭐야, 이거... 심장 왜 이래?
괜히 목이 타 절반쯤 남아있는 포카리를 꿀꺽꿀꺽 삼키고는 순식간에 비워냈다. 민현선배는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버려줄게. 역시 매너는 사람을 만들었다.
선배는 다시 열람실로 들어가는 문을 열었다. 내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다 다 들어오고 나서야 문을 닫는 손짓에 자그마한 감동이 일었다.
다정한 사람이구나. 그때 처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 오세요 구름이네 쉐어하우스 -
"도서관에서 민현오빠 봤다."
아직 저녁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일단 클라우디 에스프레소에 가서 성운오빠를 기다리자는 옹성우의 말을 따라 우리는 클라우디 에스프레소로 향했다.
도서관에서 민현오빠를 봤다는 내 말에 옹성우의 무미건조한 답이 닿아왔다. 응. 형 거기서 거의 살아. 월세가 아까울 정도야. 옹성우가 말했다.
"근데 엄청 잘생겼더라고. 그렇게 잘생긴 거 어제는 몰랐다."
"나는? 나도 잘생겼는데."
....말을 말아야 하는 건가. 내가 괜한 이야기를 꺼낸 건가. 뭐라 할 수도 없이 뻔뻔하게 말해오는 옹성우를 향해 자연스럽게 미간이 좁혀졌다.
잘생긴 건 알고 있지만 괜히 인정하기가 싫었다. 곧이 곧대로 인정하자니 왠지 자존심이 상하는 기분이어서. 그래서 너는 내 스타일 아니야. 라고 했더니 진심으로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참나. 야. 나도 인기 많거든? 나 좋다고 따라다니는 애들 많다."
"걔네는 네가 취향인가 보지. 저도 제 취향이 있습니다만."
와- 하루만에 나 편해졌다 이거지? 하고 물어오는데 정말 하루만에 많이 편해진 게 맞았다. 응. 편한데. 했더니 사실은 나두 그래. 헤헤. 하면서 애같이 웃는다.
선한 웃음이다. 옹성우는 웃는 게 선하다. 해는 한여름보다 짧아져 뉘엿뉘엿 제 자취를 감추어가고 있었다. 아직 더운 기가 남아있던 터라 우리는 더워하면서 클라우디로 가는 길을 걸었다.
"배고프다. 우리 저녁 뭐 먹어?"
"....성운이형만 알아. 무조건 형만 알아."
"무슨 소리야? 왜?"
"아침에 '오늘 저녁에는 닭볶음탕 해야겠다-' 해도, 막상 저녁은 김치찌개고 그래."
"...아....."
어떤 말인지 너무 잘 알겠어서 고개를 끄덕끄덕, 수긍했다. 결국 메뉴는 예측 불가라는 이야기다. 옹성우는 나와 몇 걸음을 더 걸어가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집에 가는 길목에 있는 신나라 PC방 앞이었다. 옹성우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방향을 틀어 PC방으로 향했다. 당황한 나는 급한 목소리로 옹성우를 불렀다.
"야아. 어디 가? 거기 왜 가?"
"여기서 2분만 기다려."
2분만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계단을 내려가버린 옹성우였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기다리라고 하니까 기다려야 했다.
아스팔트 위에 하릴없이 운동화 앞 코를 두어 번 찍었다. 운동화 좀 낡았네... 하나 사야 하려나. 근데 당장은 월세 내기도 빠듯하다. 아르바이트도 구해야 하는데.
아르바이트는 어디서 구하지. 주말만 할 수 있는 걸로 해야 되는데... 아, 아닌가. 월금 공강 만들었으니까 주4일 해도 상관 없긴 한데. 어차피 성적도 버렸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보낸 2분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2분 뒤. 의외의 사람이 건물 밖으로 나왔다. 다니엘이었다.
그 뒤에 따라 나오는 건 다니엘의 뒷덜미를 잡은 옹성우였다.
"내 갈게! 내 알아서 간다고, 햄!!"
사고 친 대형견의 뒷덜미를 주인이 잡고 혼내는 것과 흡사한 모습이었다. 다니엘은 PC방에 있었던 모양이다. 이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걸 봐서는 늘상 이래왔을 것이고.
다니엘은 제 뒷덜미를 잡은 성우의 손을 떼어내며 알아서 가겠다고 소리쳤다. 성우는 팩 눈을 흘기며 다니엘을 쏘아보았다. 다니엘은 모른 척했다.
그렇게 나는 둘 사이에 껴서 클라우디까지 얼마 남지 않은 길을 함께 걸어갔다.
"아아. 쫌만 있으면 렙업이었는데.."
다니엘의 중얼거림은 덤이었다.
- 오세요 구름이네 쉐어하우스 -
"가자. 밥 먹으러."
우리는 클라우디에 자리를 잡고 성운오빠를 기다렸다.
7시쯤 되었을까. 성운오빠는 그 눈웃음이 매력적인 분(매장 매니저인 것 같았다. 이름은 윤지성. 성우한테 들었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한 뒤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가자. 밥 먹으러. 밥 먹으러 가자는 말에 대한 반응은 다니엘이 가장 빨랐다. 길쭉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귀를 쫑긋 세우는 게 영락없는 대형견같았다.
집으로 들어서자 밥솥에서는 김이 나고 있었다. 아까 올라와서 밥만 먼저 올려놨어. 성운오빠가 말했다. 뭐 도와드릴 거 없어요? 하고 물었더니 거실 가서 TV 보고 있으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그 말을 정직하게 따를 수는 없어서 부엌에서 알짱거렸다. 성운오빠는 아니면 씻고 와도 된다고 말했다.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러워진 반존대였다. 나야 내가 말하는 건 존댓말이 더 편했지만.
성우와 다니엘이 먼저 씻으러 들어간 바람에 어차피 나는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그동안 식탁 위에 수저를 깔고, 컵과 물을 두는 간단한 일을 도왔다.
"보통 오빠가 이렇게 차려주시는 거예요-?"
"돌아가면서 하지. 매번 다 같이 모여서 저녁 먹지는 않으니까, 그날그날 모일 수 있는 사람들끼리만 같이 먹어."
"아- 가족같고 좋네요.."
혼자 산 시간이 꽤 되어서 혼자 먹는 밥에는 도가 텄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혼자 밥을 먹는 게 다반사였지만, 가능하다면 여럿이 먹을수록 맛있는 게 또 밥이니까.
그래서 이렇게 도란도란 모여서 먹는 저녁식사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랄까, 가족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부엌에는 금방 김치찌개 냄새가 한가득 퍼졌다. 씻고 나온 다니엘은 오늘도 상반신은 옷 없이 자유로웠다.
성운오빠는 옷 좀 입어라, 야. ○○가도 있는데. 하면서 등짝 스매싱을 날렸지만, 아! 아프다. 햄 손 왜케 맵노! 하는 말만 뱉을뿐 웃옷을 입는 변화가 일어난 건 아니었다.
그에 반해 옹성우는 검은색 민소매티와 반바지를 입고 돌아다녔다. 금방 김치찌개가 완성될 것 같아, 나는 밥을 다 먹은 다음 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잘 먹겠습니다-"
옹성우의 선명한 목소리로 저녁식사가 시작됐다. 처음 먹어보는 성운오빠의 음식은 그럭저럭 맛있었다. 찌개가 조금 짠 느낌이 없지않아 있긴 했지만, 그야 밥을 많이 먹으면 되었다.
다니엘은 후루룩 첫 공기를 비우고, 두 번째 공기를 비우기 시작했다. 잘 먹네... 하기사, 저 덩치 유지하려면 잘 먹을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그의 상반신 누드에 내 눈이 조금씩 적응하는 것 같다. 옷 좀 입어라. 좀. 핀잔같은 성운오빠의 말은 공중에서 분해되어버렸다. 듣는 척도 않는 다니엘이라서.
"그건 그렇고, 다음주 개강인데 기분 어때?"
"아아- 싫어어-"
작은 입을 오물오물 움직이며 조용히 밥을 먹던 옹성우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목청도 좋고 발성도 좋아서 그 짧은 말에도 귀가 둥둥 울렸다.
성운오빠는 특유의 깔깔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옹성우는 팀플도 많고 영강까지 있는 데다 저녁방송도 해야 해서 헬게이트 오픈이라고 했다.
다니엘도 이제 전공파티라며 몸에서 호경 냄새가 날 것 같다고 미간을 좁혔다. 다니엘의 전공이라는 건 곧 나의 전공이기도 해서, 무슨 수업 듣냐고 물었다.
"기억 잘 안 난다. 어.... 일단 호경론 있었고."
호텔경영론? 하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아, 나 재수강인데.... 했더니 누나 내랑 수업 같이 듣는 거가?! 하면서 얼굴에 화색이 돈다.
어... 뭐... 그렇네... 하고 미지근하게 답했더니 좋은데? 내랑 핵교 같이 가요. 하면서 씨익 웃는다. 나는 어... 어...? 굳이....? 하는 생각으로 다니엘을 쳐다봤다.
"잘됐다. 내 아침에 잘 인난다. 누나 깨워줄 수 있다."
"어... 근데... 굳이 같이 가지는 않아도...."
"같이 가고 같이 앉으믄 되겠네. 내 친구 많은데 누나랑 같이 앉아주는 기다."
....그게 시작이었던 거다. 화요일 아침만 되면 나를 흔들어 깨우는 다니엘의 손짓으로 침대에서 일어나게 된 거다.
저는 나보다 한참 먼저 씻고, 나한테 아침 먹자며 토스트를 들이미는데 의욕이 과해서인지 양이 좀.... 많았다. 남은 건 결국 그대로 다니엘의 입에 들어갔다.
신나라 PC방을 지나 학교로 가는 길. 쫄랑쫄랑 내 뒤로 따라붙는 다니엘은 나보다 훨씬 긴 다리와 넓은 보폭을 가지고 있음에도 나와 걸음을 맞추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그뿐이랴. 애가 눈에 좀 띄는 스타일이어야지... 훤칠한 키에 자그마한 얼굴, 밝은 머리색과 주렁주렁 달린 악세사리까지.
시선이 꽂히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외양 때문에 강의실에 들어서자마자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건 당연했다.
그런 녀석이 호텔관광대학 입구에만 닿으면 거의 뛰다시피 해서 나를 앞질러 갔고, 내가 203호에 도착하기 전에 미리 자리를 잡아두었다.
그러고나서는 강의실을 들어서는 나를 보면 손을 번쩍 들고 누나! 누나!! 하고 부르는 것이다. 다니엘의 '누나'는 나였고, 그대로 다니엘에게 꽂혀 있던 시선이 내게로 돌아왔다.
일찍 도착함에도 맡는 자리는 거의 맨뒤에 가까웠는데, 그건 철저히 나를 위한 배려였다. 애초에 나는 수업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시험만 잘 보고 C+만 안 받으면 되었던 것이다.
그러기를 한 달. 쉐어하우스에서 지낸 지도 한 달이 넘은 그 즈음에, 화요일마다 이어지는 다니엘의 집중케어에 부담을 느낀 나는 결국 '따로 가기' 명령을 내렸다.
"다니엘. 우리 따로 가자."
"와요."
"너랑 다니면 사람들이 너무 쳐다봐. 너 너무 눈에 띄어."
"별로. 아무도 안 쳐다본다."
"아니야. 내가 봤어."
".......치."
"그리고, 학교에서 웬만하면 아는 척하지 마.
지난 번에 너 동기라는 애가 나한테 선배 다니엘이랑 친해요? 하는데, 내가 별로 안 친하다고 했더니 그럼 같이 안 다녀주면 안 되냐 하더라.
너 좋아한다고 그러면서."
"갸가 누고? 그리고 좋아하든 말든 무슨 상관인데요. 하나도 상관없다 아이가."
"여튼. 내가 불편해서 그래."
다니엘은 입을 삐죽였다. 다니엘이 좋은 뜻에서 한 행동이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불편한 건 불편한 거였다. 사실 그렇게까지 할 것도 없었고.
주눅이 든 건지 한참 가만히 땅만 쳐다보고 있더니, 그럼 자리만 맡아줄게요. 했다. 나는 그 정도는 괜찮겠다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고마워. 라는 말도 함께.
다니엘은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뭐 이렇게 철벽이고, 누나는. 투정 섞인 말에 손을 올려 다니엘의 어깨를 두어 번 툭툭 쳤다.
"...철벽은 무슨. 철벽 쳤으면 너랑 이러고 있지도 않았어."
"이러고 있는 게 뭔데요."
"고맙다고 했잖아. 너한테 고마워하고 있다고... 그러니까 서운해하지 마."
"........."
"알았지?"
".....아. 알았다."
알았다. 마지못해 하는 대답이었지만, 지금은 이게 서로 최선이라는 걸 다니엘도 모르지 않았던듯 싶다.
물론 그 다짐이야 얼마 가지 않았고, 나는 강의실에 들어서자마자 날 향해 손을 흔드는 다니엘을 또 봐야 했지만... 그 때문에 굳이 하기 어려운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랑 밥 같이 무요."
그리고 무엇보다 다니엘은 부지런했다. 녀석의 네버엔딩 치대는 스토리에 두 손, 두 발을 다 든 건 그 후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부지런히 치대고 들이대는 강후배에게 항복 선언을 한 건 결국 내쪽이 먼저였다.
그렇게 녀석은 꾸준히 나를 똑똑똑 두드리고 있었다.
더보기 |
002편 암호닉(강과장 최종 암호닉 리스트에 계신 분들에 한함. 003편 업로드 전 댓글 달아주신 분들에 한함.) [121027] [분홍색솜사탕] [녤부] [어어] [꼬꼬망] [도앵도] [옹성우] [수 지] [슬] [블라썸] [지블] [피치수플레] [쌈장] [포카리] [해령] [짠따라] [녤과장] [마카롱] [입학하자] [숮어] [짚고긴한커피] [칸타타] [휘린] [에비츄] [엘제이] [샤넬] [파요] [알바생] [강달리엣] [11023] [@불가사리] [사모녤드] [일개사원] [말랑] [리베르떼] [몽쟈] [꽃녤] [녜리] [리본] [무네큥] [뚜띠따띠] [송송아] [크뽀] [둡돌고래] [구원자] [굥뷰죰햬] *댓글로 암호닉 신청 받지 않습니다. 별도 공지 기다려주세요.* 안녕하세요, Y사원입니다. 한 주가 휘리릭 지나고 저는 토요일인 오늘 다시 돌아왔습니다~ 스밍, 스밍, 또 스밍! 그렇게 보낸 평일이었던 것 같아요~ 노래 넘 좋져..ㅠㅠ 제 최애곡은 갖고싶어입니다! 헤헹.. 아직 워너원고 3화는 보지 못했지만 이따 9시에 할 재방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말 죠하.. 오늘은 쉐어하우스 구조를 그려왔어요. 보시는 대로이고, 앞으로 글 읽으실 때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다정다정 황선배와 츤츤한 옹친구, 부지런히 치대는 강후배와 여주한정 스윗남 하주인까지.. 여주는 인지하지 못하겠지만 참 행복한 사람이네요...ㅎㅎ 여튼 오늘도 구름이네와 함께 즐거운 주말 되시기를 바랍니다~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모두모두 정말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