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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CIRCLE/강다니엘]
번외 첫 번째,
W. LIGHTER
"우리 바다 보러 갈래?"
응? 바다 보러 가자. 무더운 여름도 아니었다. 오히려 평균 이맘때보다 더 추운 날씨에 ㅇㅇ의 코는 이미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근데, 이런 날에 바다라니. 이따금씩 종 잡을 수 없는 행동을 많이 하는 애라고는 생각했지만 문득 집으로 향하는 길에 제 손을 잡아끌며 바다를 닳도록 부르는 ㅇㅇ는 오늘따라 조금 이상했다. 다니엘은 가만히 제 손 끝을 잡아오는 ㅇㅇ의 손을 꾹 쥐었다가 여적 목도리 하나 챙기지 못하는 그녀의 부주의함을 탓하며 제 목도리를 대신 매어주고 있었다.
"갑자기 왜 바다가 가고 싶어졌어."
"그냥, 이제 우리 얼마 안 있으면 졸업이잖아."
수능도 끝난 기념으로 가면 좋을 것 같아서. 뜬금없이 꺼낸 말치고는 그다지 설득력이 있는 답은 아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길래 제 얼굴 하나 제대로 보지 못하는 걸까. 굳이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언제부터인가 자신과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 수능이 끝났고 그렇게나 원하는 자유가 주어졌음에도 ㅇㅇ는 그나마 웃는 일조차 손에 꼽을 정도였다.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말이라도 해주면 위로라도 해줄 수 있을텐데. 시덥잖은 것들은 잘도 얘기하면서 왜 정작 제가 힘들어하는 건 숨기려고만 하는건지, 슬쩍 바라본 그녀는 여전히 자신을 보지 않았다. 됐어. 그냥 투정이야.
"가자."
"응?"
"바다 가자고, 너 가고 싶다며."
그게 둘이서 떠난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이었다. 그 다음날 가야하는 학교조차 생각하지 않고 매우 즉흥적이다 못해 충동적이었던 여행. 터미널에서 바로 속초로 가는 표를 뽑고 버스에 올라타 꽤 긴 시간동안 잠을 자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해 도착한 바다였다. 바다는 그리 가까운 곳에 위치한 것도 아니었던지라 다니엘은 왜 바다를 굳이 찾아가서 봐야하는지 의문이었다. 따지고 보면 그러한 제 식상함으로 인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주한 바다는 깜깜했다. 소금기 가득한 짠내와 바닷바람으로 눅진하게 젖어가는 머리카락들이 괜스레 마음을 설레게 했다.
"예쁘다."
"그러게, 밤에 보는 것도 꽤 좋네."
"난 바다는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데 파도 소리가 좋아서 매번 오고 싶어지는 것 같아."
파도 소리가 크면 클수록 물살도 거세지잖아. 그럼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아무도 듣지 못할테니까. 숨기고 싶은 것이 있을 때는 이만한 장소도 없다고 그녀는 말했다. 다니엘은 그 순간부터 바다도, 들리는 파도 소리도, 그 어떤 것 하나 들어오지가 않았다. 딱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제 감정은 오로지 그녀에게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싫고 좋은 게 무엇인지 표현할 수 없을만큼 싫은 건 그녀가 싫어하는 것이었고 좋아하는 것 또한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던 노래도 그녀가 좋아한다고 하면 한 번쯤 뒤돌아서 다시 듣게 만들었던 것도 모두 온통 너였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숨기고 싶은 게 많다는 그녀의 말에 자신은 신발 사이로 들어오는 모래 한 톨의 감촉도 느껴지지 않는 듯했다.
"그러니까 너도 가끔은 여기 와서 숨고 그래."
"......."
"사람이 언제나 다 들어내놓고 살 수는 없으니까, 정말 쉬고싶어 질 때 와."
그녀의 한숨이 뭉게져 공중에서 흩어져 나갔다. 그 때도 나랑 같이 와주면 안돼? 갑자기 왜 이런 말을 꺼냈는지 모르겠다. 어두컴컴한 밤 바다에 그녀만큼 잘 어울리는 건 또 없을 것 같아서, 그만큼 이러다가 조만간 자신의 곁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가자 불현듯 꺼낸 말은 반쯤 무의식적으로 나온 것이었지만 제 진심이었다. 언젠가 또 오게 되는 바다면 그것도 그녀와 함께 오고 싶었다. ㅇㅇ의 왼손을 잡아 제 코트 주머니에 넣던 다니엘은 자신의 손에 놓여진 작은 손이 괜히 좋아서 실없는 웃음을 흘려보냈다.
"그 때도 너랑 같이 올 수 있을까."
먼 발치에서 꺼낸 그녀의 말이 못내 성가셨다. 왜 꼭 다시는 못 만날 것처럼 말을 하는 걸까. 자신의 손을 마주잡고 있는 그녀의 손은 여전히 이렇게나 제 옆에 있는데 입버릇처럼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 라고 말하는 ㅇㅇ가 처음으로 미워지는 날이었다. 괜한 불안감으로 인해 그녀의 손을 더욱이 꽉 잡았을 때, 신기하게도 그보다 먼저 그녀의 붉게 물든 귓가가 보였다. 작게 떨리는 손, 자신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눈. 아, 그제야 너가 보였다.
"우리 여기 앉았다 가자."
그 날 왜 자신은 그 말밖에 꺼내지 못했나. 다 알고 있었으면서. 자신과 눈을 마주칠 때마다 열이 오른듯 상기되어있는 두 뺨이 그랬는데. 그녀가 무엇을 숨기고자 하는지, 무얼 말하고 싶어하는지 다 알았으면서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까마득한 바다만 바라보다가 문득 제 옆에서 잠이 든 그녀를 한참이나 바라보는 게 다니엘, 제가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였다. 정확한 정의도 내려지지 않은 선에서 앞서버린 감정은 무서운 거라고 헛된 변명이나 하면서도 손을 놓아주기 싫어서 그 작은 손톱을 몇 번이고 매만지고 있는 자신은 참으로 이기적이었다.
"비도 오는데 왜 이렇게 입고 와, 감기 걸리게."
꽤나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ㅇㅇ였다. 방학하고 나서 분주하게 살아가는 게 버릇인 그녀라서 이번 방학에도 그래서 연락을 못했던 것이라 생각했었다. 간만에 그녀에게서 온 연락이 그렇게나 좋을 수가 없었는데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간 ㅇㅇ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제 앞에 놓인 커피가 무색할만치 ㅇㅇ는 커피잔만 매만지다가 꺼낸 말은 재환을 만났다는 말이 전부였다. 정작 할 말은 그게 아니면서 또 그녀는 그 때처럼 실없는 말만 꺼내고 있다는 걸 다니엘은 알고 싶지도 않아도 알아야만 했다.
*
'나랑 같이 가.'
중학교를 들어오고 나서 처음 맞이하는 학부모 참관 수업일이었다. 유독 그 날만큼은 부모님의 부재가 크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다니엘은 버릇처럼 눈가를 어루만지다가 제 손을 잡아오는 ㅇㅇ의 손을 가볍게 쳐냈다. 싫어, 너네 부모님이랑 가. 하필 거기서 왜 괜한 투정을 부려서. 사실 제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부모님이 뒤에 버젓이 기다리고 있는 그녀가 자신과 같이 가고 싶다고 하는 말이 좋았다. 자신보다 한참이나 작은 그녀에게 무슨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던 건지 마음에도 없는 말을 꺼내면서도 여러차례 제 손을 잡는 그녀를 더이상 내치고 싶지 않았다.
'왜 나랑 간다고 그랬어. 부모님이 기다리시는데.'
'나는 네가 더 좋아.'
너랑 가는 게 훨씬 편해.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말이 상대방에겐 퍽이나 쑥스러운 표현으로 다가오는지 알기나 하려는지. 웃음을 짓는 모양을 따라 그녀의 볼 사이로 보조개가 음푹 패였다. 단발머리에 단정한 교복을 입고 있는 ㅇㅇ의 모습과 잔뜩 구겨져 있는 자신의 와이셔츠가 대조적이었다. 평상시에는 이런 것 쯤이야 신경 쓰고 살던 자신이 아니었는데 막상 의식을 하고 나니 어울리지 못하는 기름과 물처럼 저와 그녀 사이가 가까워질 수 없는 것만 같아 싫은 날이었다. 나 가다가 문방구 좀 들려도 돼? 학교에서 얼마 가지 않아 크게 나있는 문방구점 앞에서 ㅇㅇ는 매번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번에 뽑기 당첨 되면 좋겠다.
'아, 나 이 인형 있는데. 너 가질래?'
뽑기를 할 때마다 그렇게나 운이 없다고 하면서 막상 뽑는 족족히 필요 없는 물건만 받아가는 것도 ㅇㅇ의 요령이라면 요령이었다. 하얀색도 아닌 누렇게 물든 곰인형을 제게 안겨주고는 금세 사가지고 나온 아이스크림을 먹는 그녀를 보다가 다니엘은 목에 있는 리본조차 흐트러져 있는 곰을 답지 않게 소중히 안고 있었다. 인형은 딱히 가져봐야 짐밖에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이 모조리 자신의 아버지의 손에 부수어지는 것을 보고 있노라 하면 차라리 집에 아무것도 없는 편이 맞는 입장에선 나았다. 근데 누런 손 때가 묻어서 리본의 매듭도 처량한 곰인형도 누군가에겐 필요한 존재가 되었으면 했다. 자신의 처지와 다를 게 없는 이 인형이 나름 저에게 있어 소중하게 여겨진다면 혹시나 다니엘, 저도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지는 않을까.
'ㅇㅇ야'
'응?'
그 날부터 다니엘의 와이셔츠는 곱게 다려져 있었고 투박한 그의 손에는 아직 익숙치 않은 일에 잔뜩 데이고 만 흔적들이 가득 자리하고 있는 날이 많아졌다. 아마, 그는 제 손을 보고 화를 내는 그녀에게 하는 고작 꺼내는 말이 이게 내 최선이라는, 그 따위의 말밖에 하지 못하겠지.
'우리 나중에 바다 보러 가자.'
<다니엘, 너를 사랑했었나.>
첫 번째 외전 完
작가의 TALK |
오랜만이에요, 라이터입니다. 오늘은 러브서클의 외전 중 하나인 다니엘 외전을 들고 왔어요!!!!!! 가장 먼저 외전을 준비하게 된다면 다니엘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여러분께 잘 전달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이렇게 번외 한 편으로 여주와 다니엘이 함께 했던 도합 6년을 보여드릴 수 있게 되었네요. 왠지 쓰면 쓸수록 다니엘이 너무 찌통이어서 마음이 쏘 머취 아프지만 이게 어쩌면 녜리 나름대로의 애정의 표현이니 어쩔 수 없지 않았나 싶어요. 아쉽게도 제 글에서는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언젠가 다니엘도 좋은 짝을 만날 거예요. 뭐, 그렇지 않다면 워너블의 것이 되는걸로! 외전은 총 세 개로 두 편은 글잡에 올리고 나머지 한 편은 메일링으로 보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원래 한 개만 공개를 하려고 했는데 비암호닉 분들과 뒤늦게 제 글을 읽어주실 분들을 생각하면 한 편을 더 업로드 해야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여러분이 좋아했으면 좋겠어요(수줍) 앞으로 남은 게 성우 외전과 정말 그냥 외전같은? 글 하나가 남아있는데 틈틈이 써서 러브서클로 돌아오도록 할게요!!! 요즘 다달이 토익 점수 때문에 시험을 보러 다니느라 영어 울렁증이 생기고 있어요ㅠㅠㅠㅠㅠ 아직 보여드릴 이야기가 많은데 연말이 다가오고 나서야 조금씩 쉴 틈이 생겨서 기다려주신 분들에겐 항상 죄송하고 또 감사합니다. 글잡에 자주 오지 못했던 몇 주간 수험생 분들은 수능도 끝냈고 본격적으로 날씨가 겨우우우우우룰ㄹㄹ- 하는 날씨로 바뀌었네요. 책상이 바로 창문에 있어서 막 손이 얼어버릴 거 같도다...... 빨리 크리스마스가 오고 전기장판에서 귤이나 까먹는 라이프를 지향하며, 우리 또 만나요. |
최종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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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링은 제가 외전을 다 쓰는 걸 기점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3개의 외전을 다 쓴 뒤에 메일링 공지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최종 암호닉에 계신 분은 그 때 댓글을 달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