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Does The Fox Say?
W.LIGHTER
"ㅇㅇ야."
"우...움직이지 마!"
왜? 왜 가만히 있어야 돼?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몸을 일으키는 다니엘은 부러 저를 말리는 ㅇㅇ의 목소리에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인간으로 변한 후로 보이지 않는 귀가 꼭 축 쳐져있을 걸 생각하면 ㅇㅇ는 괜히 제가 말해 놓고도 미안한 얼굴을 했지만 지금 그녀로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반나체의 몸뚱어리를 보는 걸로 충분했다. 구태여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다니엘의 맨몸을 눈 앞으로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다니엘은 제게 냅다 던져진 이불 사이로 빼꼼히 고개를 들이밀더니 정말이지 순수한 얼굴로 물어왔다. 나 늑대일 때도 아무것도 안 입었어. 네가 굳이 부끄러워 하지 않아도 돼.
"이미 볼 거 다 봤으면서."
".....너 어디가서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라."
정말 크게 한 번 사고 칠 놈이네, 이거. 늑대일 때와 지금 모습이랑 같을 수 있냐고 백날 설명을 해봐야 저 늑대 놈은 알아듣지도 못할 게 분명했다. 제 말을 귓등으로 넘기는 건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이해를 할 수 있을리는 만무했기 때문에 ㅇㅇ는 알지 못하게 제 애꿎은 가슴팍만 쳐댔다. 우선 오빠가 입다가 두고 간 옷인데, 이거라도 입어. 이미 출근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시간임에도 자신은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했다. 어찌어찌 해서 씻은 것 외에는 옷도 갈아입지 못했고 화장도 못했다. 해야할 일이 산더미인데 당장에라도 쥐여준 티셔츠를 입기 싫어하는 눈치의 다니엘은 아마 주인이라고 하는 자신의 속도 모르는 듯했다.
"옷 입는 거 답답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 남들 하는 건 다 할 줄 알아야 돼. 내가 언제 네 앞에서 옷 벗은 적 있어?"
"나는 네가 벗고 있어도 괜찮은데."
있잖아 다니엘. 우리 더이상 이런 식의 대화는 그만두는 게 좋겠어. 뭔 말을 해도 왜 자꾸만 이상한 쪽으로 가는 거지. 도통 생각을 해봐도 단순하기만한 다니엘의 말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건 어려웠다. 분명 그런 의도는 아니었을테지만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저런 말을 꺼내면 듣는 입장인 ㅇㅇ, 저는 되게 못된 사람이라도 된 것만 같았다. 입으라면 입어. 내 말 잘 듣는다면서. 다니엘의 팔을 끼워넣으며 티셔츠를 입혀주던 ㅇㅇ는 잔뜩 심통난 얼굴을 하고 있는 제 늑대를 어르고 달래야만 했다. 나 찾아 와줘서 고마워. 우선 네가 내가 키우던 다니엘이라는 것도 믿고 너를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야.
"그래도 널 키우던 내가 너에게 해가 될 일은 할 리가 없잖아, 그치?"
"응."
"그럼 이제부터 내 말 잘 들을 거예요?"
"....네."
잘했어, 예쁘다.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쪽. 아주 찰나에 ㅇㅇ의 입술이 다니엘의 아랫입술에 살짝 맞닿았다 떨어져 나갔다. 제가 조련사였을 적에 줄곧 나오던 버릇이 이럴 때 나올 줄이야.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정작 피해(?)를 당한 다니엘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는데 ㅇㅇ의 얼굴만 새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나, 나는 우선 회사 갈 준비나 해야겠다. 푼수처럼 덜덜 떨어가며 꺼낸 말치고 그녀는 제가 지금 얼굴에 무엇을 바르고 있는지조차 생각나지 않았다는 게 문제인 듯싶었지만.
"나 오늘은 일찍 들어올 수 있을거야. 저녁은 같이 먹자."
"응, 빨리 와."
회사 생활을 언 몇 달만 하다보면 잠을 잘 시간을 늘리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은 30분이면 넘치게 충분했다. 별로 좋아하지도 않은 검은 구두에 제 발을 우겨넣던 ㅇㅇ는 여전히 다니엘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했지만 제법 미안한 어투로 말을 해왔다. 아침도 같이 먹어주지 못했고 점심이라고는 제가 한가득 사놓은 샌드위치가 다였던지라 꼭 집에 강아지 한마리를 두고 가는 이 찝찝한 기분은 사라지질 않았다.
"있다가 꼭 점심 챙겨먹고, 알았지?"
"응, 너 찾으러 다니면서 내가 얼마나 많이 배웠는데. 다 할 수 있어. 걱정 마."
옷 하나도 제대로 입지 못하는 네가 퍽이나 잘하겠다. 어린 아이를 물가에 내놓은 것마냥 좀처럼 개운치 않은 마음에 ㅇㅇ는 이미 지각이 아슬아슬한 시간임에도 당부의 말을 멈추지 못했다. 함부로 가스레인지 알지? 그거 불 나오는 거 막 만지지 말고 괜히 나갔다가 길 잃지 말고 집에서 쉬고 있어. 햇빛이 너무 잘 들어오니까 한낮에는 커튼 쳐놓고 있고 씻을 때는 화장실에서 다 씻고 나와야 돼. 뭔가 해줘야 할 말은 많은 것 같은데 급박한 상황에도 말을 꺼내려니 어디서부터 주의를 주고 알려줘야 할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하필 다니엘이 자신을 찾아온 다음 날이 출근해야 하는 날일 게 뭐람. 오히려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하는 다니엘이 예쁘고 기특할 따름이었다. 아마 자신의 어머니가 저를 혼자 두었을 때 이런 기분이었으리라. 길게 한숨을 이어가며 자신보다 한 뼘은 더 크고도 남을 다니엘의 손을 잡으며 차근차근 되짚어 오는 그녀는 걱정거리와 근심에 휩싸이고 나서야 바닥만 보던 시선을 위로 올려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있었다.
"너무 걱정 안해도 되는데. 잘 갔다 와."
단지, 끊임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ㅇㅇ의 볼에 내닿는 다니엘의 입술과 제가 한 때 다니엘에게 많이 해주었던 말을 되려 아침부터 듣는 덕택에 다시금 그녀는 제 구두의 앞 코에 달려있는 장식들을 관찰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운전을 할 때마다 걸리는 신호에 넋을 놓지나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ㅇㅇ였으니까 말이다.
"오늘도 많이 사랑해, ㅇㅇ야."
*
"저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무슨 정신으로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 분명 준비를 열심히 했는데 회의시간에 한 발표는 말을 절어버렸고 한 번도 틀리지 않았던 문서 작성은 오류 투성이었다. 솔직히 먼저 들어간다고 말하기조차 양심에 찔렸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다니엘 생각 뿐이었다. 그도 그럴게, 집에 가는 길에 들러서 산 먹거리와 쇼핑백들이 차 뒷칸에 가득이었으니까. 언제 늑대로 변할지 모르니까 평소에 챙겨줬던 생고기를 더 많이 사야하나, 아니면 인간이 되어서 먹을 것들을 더 사야하나 하는 단순한 고민부터 생전 처음 골라본 남자 옷들 사이에서 결국 한껏 질러버린 덕에 다음달 나올 카드값까지 평소와 같지 않은 제 모습에 ㅇㅇ는 얕게 숨을 내뱉었다. 다른 사람이 보면 비웃을 지도 모르겠네.
"다니엘, 미안. 너 옷 좀 사고 하느라...."
언제부터 제 집이 이리도 깨끗했나. 현관으로 들어가기가 무섭게 보이는 모든 집안 살림들이 제 자리를 찾아간 것마냥 깨끗하게 정리 되어있는 집 안 분위기가 낯설었다. 아니, 그것 뿐만이 아니라 어디서 난 건지도 모를 앞치마까지 입고 있는 다니엘의 모습에 ㅇㅇ의 손에 쥐어져 있던 쇼핑백들이 바닥으로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제가 다니엘한테 이런 걸 가르친 기억은 추호도 없었는데. 멍한 그녀의 얼굴이 금세 다가온 다니엘의 그림자에 가려졌다.
"일찍 왔네. 짐 이리 줘, 뭘 이렇게 많이 샀어?"
"너 뭐야, 청소 했어?"
"청소랑 빨래만 했어. 네가 불 만지는 건 안된다고 해서 밥은 못했고."
너무나 당연하게 대답을 하는 다니엘도 이상했지만 자신의 코트를 받아내 옷걸이에 걸어두는 그의 솜씨가 더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어젯밤에 느닷없이 찾아온 남자는 반인반수였고 심지어 자기가 키우던 늑대였으며 이제는 집안일까지 하더랜다. 누가 이 말을 들으면 믿을 수나 있을까. 단 하루 사이에 집에 가정부라도 둔 것처럼 깔끔하게 제 할 일을 차곡차곡 하는 다니엘의 모습에 ㅇㅇ는 애써 정신을 차리려고 부던히 애를 썼다.
"너 없는 동안 인간으로 살면서 많은 걸 배웠거든. 대부분 다 할 줄 알아."
"어...그래, 잘됐네."
"아, 맞다. 이젠 나랑 있을 때는 밥 먹어. 나 밥도 잘해."
분명 화제를 돌려보려고 쇼핑백 안에서 옷가지들과 음식들을 꺼냈거늘 좀처럼 눈 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다니엘의 몸짓은 낯설기만 했더랬다. 야생은 아니었어도 나름 동물로서 지낸 세월이 더 많을 늑대라는 놈이 제 자신보다 더 인간다운 행동을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무래도 ㅇㅇ, 저는 한동안 정신이 반쯤 나가있어야 할 것만 같은 먼 미래가 훈수를 두듯 보이는 것만 같았다.
"너 근데 늑대는 언제 되는 거고 인간은 또 어떻게 돼?"
"자유자재로 가능하긴 한데 잠을 자거나 긴장이 풀어지면 늑대로 변해."
"난 너 혹시 몰라서 예전에 네가 먹던 생고기랑 과일같은 거 사왔거든."
"아, 난 그것보다 맘스터치 싸이버거가 더 좋은데."
뭐? 나중에 싸이버거 사줘. 나 그거 진짜 진짜 좋아하거든. 장 본 것들을 냉장고 안에 정리하면서 부러 단호하게 꺼낸 다니엘의 식성에 ㅇㅇ는 별안간 웃음이 새어나왔다. 진짜 인간 다 됐네, 잘했어. 비실비실 입 밖으로 나오는 웃음들 속에서 ㅇㅇ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려왔다. 그래, 다르게 보면 차라리 잘 된 일일 수도 있다. 예전 키우던 강아지처럼 온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고 주인이 없어서 굶어 죽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일이지 않은가. 심지어 회사에 갔다오면 녹초가 된 자신을 위해서 밥까지 친히 해주겠다는데 그걸 마다할 일도 없었다. 그까짓 싸이버거 쯤이야 백만개를 사다 받쳐도 여러모로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
"너 그거 많이 먹으려면 인간으로 오래 있어야 겠네."
"응, 난 늑대보다 인간으로 있는 게 더 좋아."
ㅇㅇ가 사온 옷들을 손수 제 몸에 대보던 다니엘은 입고 있던 티셔츠를 훌렁훌렁 벗어 던지기 시작했다. 대놓고 앞에서 벗는 일이야 제가 주인이라 편하게 생각해서 그럴 수 있다 치자, 근데 옷을 입기 위해서 벗은 거면 대충 뭐라도 좀 입으면 안 되는 건가. 제가 사온 것들 중에서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있는 건지 그의 미간은 곱게 주름지기 시작했다. 아무거나 먼저 입어 봐. 별로면 다른 걸로 사다 줄게. 거진 5분은 생각하고 있는 다니엘의 얼굴에 ㅇㅇ가 소파에서 일어나며 말을 꺼내자 그런 그녀의 손을 잡아 다시 앉히는 손길이 단단했다. 나는 인간일 때가 훨씬 더 진짜 엄청 많이 좋아.
"응, 알아 들었으니까 옷 먼저 입어, 감기 걸려."
"그럼 너랑 같이 밥 먹고 같이 자고 같이 살 수 있잖아."
응? 고작 이 말을 하려고 그 고민을 한 거였나.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사는 건 모르겠는데 같이 자는 건 이제 좀 무리이지 않을까? 달래듯 꺼낸 그녀의 말은 차마 뱉어지지 못했다. 그 긴 문장이 나오는 것보다 ㅇㅇ의 입술에 닿는 다니엘의 숨결이 더 빨랐으니까.
"너랑 이런 것도 할 수 있고, 그치?"
What Does The Fox Say?
Episode 2, fin
안녕, 모두 반가워요. 라이터입니다~
제 글을 좋아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댓글 알람이 잘 오지 못해서 이제야 보게 되었지만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오늘도 열심히 저는 글을 쪄옵니다...
다니엘의 멍뭉미는 다른 반인반수들과 달라요. 암 다르고도 아름답고 사랑스럽지요.
자급자족에 능한 우리 니엘이는 주인이 없어도 혼자서 생존하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혼자 밥을 해 먹는 것도, 집안일을 하는 것도, 심지어 시키면 돈도 벌어올(...) 이건 너무 한 것 같지만 쨌든 뭐든지 할 수 있어요. 따지고 보면 인간인 저보다 더 잘 살아가고 있는 것 같네요ㅠㅠㅠㅠ
그래도 여전히 주인에게 오매불망하는 다니엘 많이 많이 사랑해주셔야 합니다....떠나면 안돼요....
그리고 연말이 벌써 코 앞으로 다가와서 뭔가 한 것도 없는데 2017년이 다 가고 있는 것만 같네요. 저는 요즘 외로움에 사무쳐서 혼자서 러브 액츄얼리나 재탕하고 있는데 정말 크리스마스는 다른 것보다 분위기 때문에 설레는 것 같아요. 요즘은 상가에도 밖에도 캐롤이 안 들려서 그 분위기가 예전만 하지 못하지만 연말엔 따뜻하고 사람들과 얘기도 하고 한 해를 정리하면서 맛있는 것도 먹고 예쁜 트리도 보고 그런 좋은 크리스마스, 연말이 우리 독자님들한테 다가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모두들 감기 조심하고 다음에 또 만나요 우리!
#암호닉 신청은 최신화에 해주세요#
암호닉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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