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Does The Fox Say?
W.LIGHTER
다니엘은 하루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평소라면 세제의 향이 폴폴 묻어나는 빨래를 개고 있어야 할 시간이었지만 걷어 놓은 빨래더미가 거실 바닥에 쌓여져 있는 것만 봐도 그랬다. 매일 아침 급하게 ㅇㅇ가 출근을 하고 나면 깨끗하게 정리를 해두었던 침대 위에서 다니엘은 몸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나름 제 분함을 표현하고 있었단다.
"ㅇㅇ는 날 싫어하는 걸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ㅇㅇ가 쥐어준 핸드폰 넘어로 전해져 오는 목소리는 지친 기색이 가득이었다. 그도 그럴게 핸드폰에 찍혀져 있는 통화 시간만 벌써 한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이제는 하다못해 들고 있는 핸드폰마저 그만 좀 전화하라고 성내기라도 하듯 뜨거워지고 있었는데 여전히 심통이 난 다니엘은 그마저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나보다. 야, 얼른 대답해봐. 간만에 만나게 되면 되게 애틋하고 보고싶고 그렇다며. 나 진짜 ㅇㅇ 보려고 고생한 거 너도 다 알잖아.
-응, 그래. 네가 싫은가 보다. 됐냐?
"야, 이 토끼 똥보다 못한 새끼야."
-너 지금 토끼 앞에서 토끼 똥 무시하는 거냐.
확, 그냥 전화 끊어 버리는 수가 있어. 성운의 짐짓 진지해진 말투에 다니엘은 결국 제가 꺼낸 본전도 못 찾고 있었다. 아니, 원래 토끼는 초식계가 아니었던가. 물론 자신도 풀떼기면 풀떼기, 과일이면 과일 가리지 않고 잘 먹지만 우선적으로 좋아하는 건 육식인 육식계였다. 따지고 보면 엄연히 다니엘, 제가 성운보다 무서운 존재임은 맞는 것 같은데 매번 말을 할 때마다 밑져야 본전 찾기 심산인 듯한 스스로를 볼 때면 마지막에 손을 든 자는 반드시 자신이었다. 주인이라고 뭐, 다 좋아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냐. 살다보면 이런 일도, 저런 일도 있는 거란다. 동생아. 같은 동물원에서 나고 자랐던 성운과 다니엘이었다. 성격만 해도 정반대였는데 그럼에도 각각 무리에서 어울리지 못해 간간히 케어를 받기 위해 만날 때면 줄곧 말이 잘 통했었다. 그런데 지금 퉁명스럽게 꺼내는 성운의 말에 다니엘은 아무래도 자신이 그동안 성운을 너무 과대평가를 하지는 않았나 싶었다.
"나 진심 심각하거든. ㅇㅇ가 요즘 나랑 눈도 안 마주쳐. 이제는 밥도 같이 안 먹는다고."
아이씨, 괜히 말하니까 더 서글퍼지는 것 같네. 코를 한움큼 먹어가는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제 서러움을 토해내는 다니엘은 진심으로 슬펐단다. 동물도 감정이 있었다. 감정이라고 해봐야 뭐 그리 대단한 건가 싶겠지만 동물 모습을 하고 있을 때도 ㅇㅇ가 슬픈지, 기쁜지부터 좋은지, 아닌지까지 다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인간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그녀를 마주한 자신은 오죽할까. 성운과 제법 먼 길을 돌아다니면서 배운 건 의사소통이라는 건 꽤나 대단한 일이라는 것이었다. 말만 통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는 일이라고 느꼈다. 말로써 꺼내는 단어나 음절 따위보다 가끔은 마주보는 눈빛 하나로도 느낄 수 있는 것이 더 많다고 그러지 않는가. 요즘 보는 드라마에서는 사랑하면 서로 보기만 해도 좋아 죽는 듯했거늘 어떻게 다니엘, 저를 보는 그녀는 요근래 제 시선을 피하기에 바쁜 것인지 울적하기만 했다.
-야, 나 주인이 불러서 가봐야 돼.
"응, 그래 좋겠네. 불러줄 주인도 있고."
-너도 그냥 주인한테 말해. 너 외롭다고.
혼자 고민해봤자 답 안 나온다. 몇 개월 먼저 태어났다고 형처럼 말하기는. 입술을 삐쭉 내밀며 낮게 혼잣말을 하던 다니엘은 어느새 끊어져 버린 핸드폰을 한 쪽으로 던지면서 침구에 제 얼굴을 가만히 비비적 대고 있었다. 자신이 처음 ㅇㅇ를 만난다면 다른 것보다 먼저 사랑한다 해주고 싶었다. 갑작스레 변하게 된 몸이 신기하고 낯설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그녀에게 해주고 싶은 말과 표현을 이제는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제가 ㅇㅇ를 사랑하는 만큼 또 그녀에게 사랑을 받고 싶었다. 자신에게 그녀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주었던 것처럼 ㅇㅇ에게도 다니엘, 자신이 그런 존재였으면 했다. 근데 그 놈의 돈이 문제인 듯싶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리 생각해도 ㅇㅇ가 자신을 피하는 이유는 피곤해서였고 피곤한 이유는 돈 밖에 더 있지 않던가.
"나 왔어."
이젠 하다하다 정작 말도 못하는 지폐 쪼가리 하나에 화가 날 지경이었던 다니엘은 금세 들리는 ㅇㅇ의 목소리에 무의식적으로 나온 귀가 머리카락 사이로 예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니엘? 제 이름을 부르는 ㅇㅇ의 말에도 다니엘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마음은 이미 하루의 절반이 다 가고 나서야 만난 ㅇㅇ가 반가워서 죽을 지경이었는데 다니엘의 몸은 침대 위에서 한 발자국도 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누가 보면 비웃겠지만 이게 제 딴에 부리는 오기이자 그녀에게 할 수 있는 마지노선의 분풀이었다. 낮에는 소파를 다 물어 뜯어버릴까 싶었지만 그건 너무 똥강아지만도 못한 짓이라 결국 고민을 하고 또 해봐도 할 수 있는 일이 그녀를 마중하지 않는 것이 다였으니까.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
"어디 아파? 왜 그래, 응?"
하필이면 그런 다니엘이 걱정이 되었는지 급하게 외투를 벗으며 침대 맡에 다가오는 그녀의 말은 왜그리 다정하고 난리인지. 왜 하필 제 이마를 어루만져주는 손길은 따뜻하기만 한 지. 오늘은 정말 ㅇㅇ랑 아무 말도 하지 않을거야, 했던 자신의 다짐마저 무너져 내리게시리. 다니엘, 나 봐봐. 진짜 어디 아파? 우리 병원 갈까? ㅇㅇ의 손이 다니엘의 볼 언저리를 부드럽게 만져왔다. 언제 이렇게 자랐는지 조금씩 자신의 눈가를 찔러오던 앞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물어오는 그녀를 어떻게 미워할 수가 있을까. 다니엘은 눈을 감고 있어도 코 끝을 간지럽히는 그녀의 냄새가 좋았다. 화장품의 냄새와 바깥의 찬 바람의 냄새, 그리고 겨울마다 챙겨 바르는 베이비 로션의 핸드크림 냄새까지. 냄새 하나에도 여러가지가 섞여 들어가 있는 ㅇㅇ가 너무 좋아 그 와중에도 대뜸 그녀의 품에 안기고 싶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이젠 너무 바보 같았다.
"ㅇㅇ야."
"응? 왜, 무슨 일인데."
"나 미워? 나 이제 더이상 필요 없어?"
나는 네가 너무 좋은데. 너 없으면 난 못 사는데 ㅇㅇ는 내가 싫어? 결국 일은 저질러졌다. 성운이 앞을 먼저 본 건지, 어떤 건지는 모르겠다만 정말 성운의 말처럼 본의 아니게 꺼내버린 제 본심에 다니엘은 스스로도 놀란 표정을 짓다가 문득 다시금 울 것 같은 얼굴을 해보였다. 무슨 이유인지도 모르고 걱정만 가득했던 ㅇㅇ의 얼굴 또한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게끔 말이다.
"난 하루를 꼬박 여기에 있어."
"......"
"온통 네 냄새랑 네 흔적이 가득 있는 이 집에, 혼자 있는단 말야."
안 보고싶어 해야지, 널 힘들게 안 해야지 하다가도 돌아서는 모든 공간에 네가 있는데 어떻게 그래. 어린 아이처럼 곧이어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혀있는 다니엘의 눈가를 어루만지던 ㅇㅇ는 그 말을 듣자마자 누군가 제 뒷통수를 쿵, 하고 때리고 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지금 뭘 한 거지. 생각해보면 ㅇㅇ, 제가 밖에서 일을 한다고 일주일 중에 근 5일을 나가 있는 날들이면 다니엘은 항상 집을 지키고 있어야 했다. 간신히 주말에 산책이나 외출을 하는 것 외에는 바깥 공기를 마셔본 기억도 아마 없을 것이다. 그가 믿고 있는 사람은 자신 밖에 없을텐데. 매일마다 기다리는 사람도 자신 외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도 자신은 대체 이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가.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다니엘."
정말 많이 미안해. 고작 이 음란마귀가 씌인 제 이상한 마음 때문에 아무런 잘못도 없는 다니엘만 힘들게 했다. 혼자서 뭐든 척척 해내는 다니엘을 너무 많이 간과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보호자 입장으로 있는 자신이 어떻게 제가 맡아서 키우는 아이의 입에서 자신을 싫어하지 말아 달라는 말까지 나오게 할까. 팔을 길게 뻗어 침대에 모로 누워있는 다니엘의 얼굴을 끌어당겨 안은 ㅇㅇ는 긴 숨만 간신히 뱉어내고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여러번 되뇌이며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실어 다니엘을 안고 있었을까 갑자기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는 투박한 손길이 느껴졌다.
"내가 널 어떻게 미워해."
"......"
"이렇게 예쁜 짓만 골라서 하는데."
먼 이야기도 아니었지만 ㅇㅇ가 막 어른의 문턱을 넘었을 때에도 곁에 있어준 건 다니엘이었다. 힘들 때마다 하소연을 들어주었던 것도 누구보다 제 편이 되어주었던 것도 다니엘이었던지라 어쩌면 익숙해졌을 지도 모른다. 익숙함은 언제나 망각을 가져다주는 법이니까. 분명 이럴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자꾸만 흐르는 눈물을 한 손으로 훔쳐내자 울지 마, 라는 말을 해주는 다니엘의 목소리가 귓가를 가볍게 울렸다. 세상에 이렇게 예쁜 늑대가 또 있을려나. 뜬금없이 자신을 찾아온 다니엘과 함께 한 지 한달이 가까워지는 시기에 ㅇㅇ는 그러한 소중함을 느끼고 있었다. 따뜻하고 훈훈한 밥 한 끼 안 먹어도 행복할 것만 같았던 그런 날들을.
"그럼 나 너한테 뽀뽀 해도 돼?"
금세 산통을 깨버리는 다니엘의 말만 아니었다면야. 요즘 이 각박한 세상에서 간만에 따뜻함 좀 느껴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끝을 맺어야 되겠니, 다니엘아. 순간 안고 있던 팔을 풀며 넓은 그의 등을 약하게 때리던 ㅇㅇ는 혹시나 싶어 입술을 굳세게 앙다물고 있기 바빴다.
"...너무해."
나 상처 받았어. 다시금 억울한 듯한 표정을 짓는 다니엘의 모습에 ㅇㅇ는 정말이지 어딘가에다 소리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아니 지금 너무할 사람이 누군데. 나야말로 너의 그런 점이 너무하다고. 훈훈한 저녁녘의 해가 빠르게 저물 무렵 차마 속 시원히 꺼내지 못한 ㅇㅇ의 고민과 다니엘의 때 아닌 투정이 날로 깊어지는 밤이 아닐 수 없었다.
What Does The Fox Say?
Episode 3, fin
안녕하세요, 라이터입니다.
벌써 또 한 주가 다가고 있네요. 잘 지내고 계셨나요?
원래는 이번화는 늦지 않게 화요일 즈음에 올릴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제가 우리 워너원을 아끼는만큼 또 좋아하던 아티스트 분이 고하신 이른 작별에 거의 이틀은 내내 울기만 하다가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날들이었던 것 같아요. 사람이 사람을 보내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더라구요.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제는 만나는 사람보다 떠나보내야 하는 사람이 더 많을텐데 이별을 끝맺는 건 아직도 저에겐 조금 많이 벅찼던 것 같아요.
한동안 혼자 가만히 생각에 잠기다가 오늘이 되고 나서야 그 분을 마음 편히 보내드릴 수 있게 되어서 이렇게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짧은 시간동안 솔직히 아무런 것도 할 수가 없었던 지라 좀처럼 글을 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또 글을 쓰면서 마음이 한결 나아지는 걸 느끼는 걸 보니까 새삼 글 쓰는 게 이렇게 즐겁고 행복한 일이라는 걸 알겠되었네요.
우선 이번 3화에는 성운이가 추가 캐릭터로 나왔어요. 다니엘의 친구이면서 형아미가 넘치는 아이가 누가 있을까 하다가 성운이 외에는 아무도 생각나지 않더라구요ㅎㅎ
분명 다니엘은 늑대인데 본 성격을 작가인 제가 멍멍미 돋게 만들어서 그런지 애완견의 입장에서 써보려고 이번 화는 많은 고생(?)을 했던 부분이였습니다.
주이니만 보고 있는 다니엘을 누가 미워할 수 있겠어요 그치요~? 아무리 어른스럽고 할 일 다해도 주인이 없는 멍멍이 같은 늑대는 외톨이인걸요.....(애잔)
이번화의 중점은 이제 본격적으로 다니엘에게 흔들리고 있는 여주와 망충미가 돋지만 은근 밀당의 귀재인 다니엘이 중요 포인트 입니다!!!! 밑줄 쫙쫙, 메모 필수!
아, 그리구 저번화가 초록글에 올라간 소식을 들었어요. 아주 짧은 시간만 올라가서 확인은 못 했지만 저는 너무너무너무너무 행복해욯ㅎㅎ 이번화도 잘 읽어주시구 신알신 해주시구 예쁜 댓글도 꼭꼭 남겨주세요~!!
+) 아 참 우리 소듕한 성운이는 토끼 종류 중에서도 롭이어 토끼입니다.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시다구요~~~?
요로코롬 생겼습니다. 축 쳐진 귀가 포인트에요.....사랑스러워라 우리 셍언이....흐규ㅠㅠㅠㅠ
셍언이의 라이프도 차근차근 보여드릴테니까 우리 예쁜 독자님들 어디 가시면 안됩니다, 호오온나요!!!
그럼 다음에 만날 때까지 안녕히, 아디오스.
*암호닉은 최신화에 신청해주세요*
암호닉 확인해주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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