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선 레이의 뒷모습은 가히 정적을 방불케 했다. 축 처진 작은 어깨에 어떤 이야기를 얹고 있는지 크리스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잠깐만.."크리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적으로 음침하게 다가오는 싸늘한 바람에 크리스가 살짝 몸을 떨었다. 레이가 입고 있던 하얀 티의 끝자락도 함께 떨리는것을 크리스는 알았다."...물어볼게 있는데..."레이는 팔을 들어 다시 눈가를 비비는것을 보이지 않았다. 눈을 깜빡거리며 돌연 환하게 웃는 모습은 모든것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다시 펜스 앞 크리스에게로 돌아온 레이는 왜요?하고 밝은 목소리로 물었다."......배 안고파?...""..사주시게요?"크리스는 당돌한 말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감촉조차 느껴지지 않던 오백원이 묵직하게 느껴졌다."....아, 아니..""..심심해요? 나 시간 많은데.."레이는 애써 무덤덤한척 하는것 같았다. 적어도 크리스의 생각안에선 그랬다. 레이는 꿈처럼 신비롭게 웃었다. 얼핏 비치는 마음속의 새를 간직한 제제와 같은 천진한 모습은 절로 미소를 짓게 만들기도 했다."응. 심심하다."레이는 펜스를 뒤로 한채로 폴짝 뛰어 펜스에 올라앉았다. 그 폼이 마치 작은 다람쥐처럼 앙증맞았다. 항상 키가 멀대같고 덩치가 산만한 선수들 틈에 살다가 작고 귀여운 무언가가 보이는것은 그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같은 존재였다. 같은 맥락으로 동료들이 가끔씩 시구를 하러 오는 여자 연예인들에 환장하는것이 있었다. 크리스는 레이를 그래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 또래의 모습이 생각나진 않지만 레이는 또래보다 성장이 더딘것 같았다."여기 앉으세요."레이는 빨간 눈을 하고선 자신이 앉은 옆 공간을 톡톡 내리쳤다. 한눈에 봐도 좁아 보여서 일부러 앉지 않은것이었는데 더는 그러지도 못할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는 조용히 레이의 옆에 앉았다. 얇은 펜스위에 얼마나 몸이 편하겠냐만은 레이는 크리스가 앉자 만족한듯이 미소 지었다."..근데 너 몇살이냐.""열일곱이요.""학교는..""자퇴.""...왜.""..그건 나중에."레이는 당황한듯 안절부절해 하는 모습을 보였다. 크리스는 전지전능한 신이 된것처럼 레이를 바라보았다."괜찮아.""뭐가요?"하고 레이는 물었다."학교 말이야. 나도 고등학교는 거의 안다니다시피 다녔어."크리스는 레이의 부모라도 된양 굴었다. 어쩌면 지금의 한마디로 달라질 작은것이라도 존재하지 않을까하는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레이는 그 말에 크게 호응하지 않았다."..너 전에 무릎.."얘기가 끊기자 크리스는 얼핏 생각 나는 말을 뱉었다."......네.""물어봐도 될까?.."크리스는 힐끔 레이의 오른쪽 무릎을 쳐다보았다. 레이는 잠깐 고민하듯 손가락으로 무릎을 두드렸다. 가벼운 손짓이었다."야구하다 찢어졌어요. 그냥 십자인대 찢어진거에요.""지금은 괜찮아?""몰라요."레이는 약간 힘이 들어간 손으로 양 무릎을 두어번 어루만졌다. 크리스는 본능적으로 레이를 읽었다. 그때의 레이와는 다른 모습에 속상한 마음이 커서였다. 자신에 대한 속상함 때문에 크리스는 레이를 보고싶은 대로 해석했다."요즘 청소년은 버스 요금이 얼마지?""..천원이요."크리스는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주머니속의 오백원을 꺼내주며 일어섰다."오백원밖에 없어서. 보태써라.""..."레이의 손바닥에 놓인 오백원은 크리스의 손에서 보다 훨씬 커다래 보였다."...미안하다."크리스는 다시 야구장 주변을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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