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인반고양이 전정국과 아슬한 동거 13
며칠을 남준 씨가 집에 들렸다. 그에게선 처음 정국이를 데려간 그날과는 꽤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올 시간을 기다리는 나도 달라졌다. "남준 씨, 오늘은 일찍 가는 날이죠?" "예. 그래서 점심은 못 먹을 것 같고, 얼굴 보려고 들렸습니다. 점심 차리는 것만 보고 갈게요." 그러나 달라지지 않은 점 하나. 그가 들어올 때 혹시나 오늘은 정국이가 같이 들어올까 싶어서 현관만 바라보는 건 정국이 내 품에서 떠난 그날부터 여전했다. 만나게 해준다는 남준 씨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에 담은 정국이를 잊으려고 했다. 적어도 이 사람과 있는 시간에는 그러려고 노력했다. 나를 온전히 품어주는 눈빛에 녹아 모든 걸 잊은 적이 있었다. 추운 겨울이지만 눈이 아닌 비가 내린 그날, 남준 씨는 비에 젖어서 집에 들렸다. 지나가는 길에 들렸다는 그의 말을 믿었다. 내가 보고 싶어서 오지 않았다는 말도 믿었다. 허나 내게 보여주는 그의 손길과 끊어지는 숨은 믿기 싫었다. 불은 꺼졌고, 집은 적막이 아닌 들뜬 숨으로 가득했다. 정국이가 그렇게 올라오지 못하게 막은 곳을 이렇게 쉽게 내주다니, 내 정신은 그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준 씨에게 빼앗겼다. "제가 어린 아이도 아니고... 혼자 먹을 수 있어요." "그래도 밥 차, 알겠습니다. 그럼 점심 챙기고 이것도 드세요. 며칠 전에 만든 영양제인데 이거 먹고 푹 자요." 투박하지만 색깔 별로 담긴 유리 병을 건네주는 그의 손을 차마 무시할 수 없었다. 분명 그날은 내 잘못도 있었고. 여전히 정국이의 부재만이 제 가슴을 떨리게 하고 있으니깐. 고맙다는 말을 끝으로 어색한 감정을 공유받았는지 남준 씨는 별 말을 남기지 않고, 집을 떠났다. 정국이와 함께 하던 식탁에는 어느 순간 남준 씨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야채를 좋아하고, 해물도 좋아하고, 소세지를 안 좋아하는 그의 입맛에 따라 바뀐 식탁은 허전했다. 가리는 음식이 없었던 내겐 바뀐 식단이 문제되지 않았다. 다만 정국이에게 주려고 마트 행사가 있는 날이면 몇 봉지씩 사오던 내 행동들이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있었다. '주잉, 소세지도 머거' 라고 귀여운 손으로 제 밥그릇 위에 올려주던 정국이의 손길도 사라졌다. 보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속 언저리를 괴롭힌다. 분명 작은 씨앗이었다. 아스팔트에 씨앗이 떨어졌고, 그 씨앗을 작은 화분으로 옮기기만 했다. 내 몫은 내게 남겨진 화분이 아니라 남준의 화단에 씨앗을 심는 일이었을까. 무성하게 자란 장미꽃의 가시가 자꾸만 좁은 내 속을 찌르고 있다. 보고 싶다. . 내게 형형색색의 알약이 담긴 유리병을 건네고, 남준 씨는 더이상 집에 찾아오지 않았다. 그도 알았겠지. 그날 저를 안았던 건 정국의 체향을 더 잘 느끼고 싶어서, 조금이나마 그리운 정국을 느끼기 위해 했었던 미련한 짓이라는 걸. 2 주 가량 집에 드나들던 남준 씨의 부재는 내게 큰 타격을 주지 못했다. 다만 그가 이렇게 찾아오면 어느 날은 깜짝 선물이라면서 정국이를 데리고 오지 않을까 하는 헛된 상상이 현실로도 헛된 것임을 보여줬기에 울적한 나날들로 가득했다. 감정이 일정했던 내게 정국은 여러가지로 혼란을 느끼게 했다. 집밥을 잘 먹지도 않고, 매번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은 내게 밥솥을 만지게 했다. 남자 옷이라곤 하나도 없던 우리 집에 정국이의 옷을 마련했고, 제 옷장을 넘어서서 가득 생기는 바람에 인터넷으로 주문도 했다. 정국이와 어울리는 파란색, 하얀색이 뒤섞인 중간 크기의 옷장. 가을 옷과 겨울 옷, 잠옷을 차례대로 정리했는데. 이번 봄에는 봄 옷으로 가득 채워줘야지 했던 것들이 물거품으로 변해 터졌다. 주책맞게 흐르는 눈물이 오늘은 더욱 원망스럽다. 정국이의 앞에서 울면 걱정하는 바람에 억지로 몇 번 참은 적은 있었다. 근데 이제는 그런 눈치를 볼 필요도 없는데. 마음껏 소리지르면서 울어도 되는데, 예전이 더 그립다. 새벽에 참았던 눈물 흘리고 나면 조용히 들어와서 등을 토닥이던 전정국의 손길을 받을 수 없으니깐. "... 여보세요." "접니다." "아.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어요?" "정국이는 잘 지냅니다. 아주 잘 지내고 있고, 더이상 주인이라는 단어도 꺼내지 않으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이런 소식을 전하려고 어렵게 전화를 걸지는 않았을 남준 씨다. 고작 2 주 정도 만났지만 느낌이 말해주고 있었다. 지금 이 사람, 그날처럼 장난을 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왜 말이 없습니까." "또 놀리면 남준 씨 전화 끊을 거잖아요." "저희 2 주하고, 5일 더 만났었죠." "그런 것 같아요. 짧았네요." "....." "....." "정국이 곧 외국으로 떠납니다." 저와 남준 씨의 일을 꺼내면서도 자꾸 정국이를 언급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는데, 남준 씨는 장난을 치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또 멋대로 상상하고, 꿈 꾸고 있었던 건 제 쪽이었다. 정국이가 외국으로 떠난다. 이번에도 역시 대답을 하지 못하겠다. 손이 떨렸고, 머리에선 불규칙적으로 단어들이 움직였다. 영어를 20 년 이상 쓰던 사람이 처음 영어를 배우는 기분이 이 기분일까. 주어와 서술어가 엉망으로 배열되었다. "비행기 티켓은 두 장 준비했습니다. 전정국... 잘 보살펴 주세요." "... 남준 씨?" "자세한 약 설명이나 주사는 정국이에게 잘 숙지시켰습니다. 혹시나 약 부작용이 생기면 제가 적어드린 곳으로 가시면 될 겁니다. 그분이 도와주기로 하셨거든요. 예... 그리고 죄송합니다." "....." "그날 그렇게 가는 게 옳지 않은 행동인데. 저도 잘 알면서 실수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그의 입에서 사과를 들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그가 잘못한 만큼 내 잘못도 있었는데, 먼저 찾아오고 사과를 뱉는 게 꼭 정국이가 하는 행동처럼 느껴졌다. 동시에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익숙한 속도가 귓가에 울렸다.
? 사담 |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꾸벅)
뭐라고 시작을 할까 고민이 머릿속을 헤집어 놓고 있었어요. 음. 가장 무난한 인사와 작별 인사가 깔끔하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2017 년 3 월 3 일에 처음 올라온 반인반고양이 전정국과 아슬한 동거. 기억하시나요? 휴학을 한 상태라 3 월부터 천천히 오랫동안 적어야지 싶었었는데, 이제 곧 개강을 앞두고 있네요. 조금만 더 끌었으면 1 년...? 하하... 농담이고요. 독자님들, 연재 텀도 불규칙하고 내용도 꽤나 허술했던 제 글이지만 꾸준히 신알신도 눌러주시고 댓글도 챙겨주시고, 추천도 눌러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다 보니깐 조회수가 아무리 높아도 꾸준히 와주시는 분들이나 새로 읽어주시는 분들 반응이 없으면 되게 무기력해지고, 마음 한 편이 울적해지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한동안 마음 좀 추스를까 싶어서 연재 텀 신경을 안 쓰고 왔었어요. 덕분에 이렇게 오랫동안 글을 쓰게 됐네요. 거의 처음으로 인물 캐릭터를 구상하고,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게 다듬고, 메모장에 가득 스토리를 구상하고, 갤러리엔 사진들을 넣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 같아요. 연재 텀이 점점 엉망이 되고, 내용도 허술해지면서 독자님들께 많은 실망을 드린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죄송하고, 슬픈 마음이에요. 그래도 초반에 작성했었던 구성에서 많이 달라진 점이 없고, 보여드리려고 했던 작은 내용들은 많이 넣은 것 같아서 조금은 편하게 마무리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아마도 이 글을 끝으로 제가 생각했던 내용들을 손 보고, 천천히 돌아오겠죠? 이러고 내일 신알신이 울릴 수도 있습니다. 허허... ^ㅁ^ 독자님들! 무난하고 깔끔하게 떠나겠다는 제 마음은 이미 우주로 여행보낸 것 같네요. ㅋㅋ 심각하게 줄어든 반응을 보고, 그냥 아예 접을까 싶었는데 끝까지 와주시고 반응 보여주신 독자님들 덕분에 이렇게 엉성하지만 마무리는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사랑해요. 오늘 새해인데, 우리 독자님들과 제 글을 한 번이라도 읽으신 분들! 새해에는 소망하는 일 모두 이루세요! 저랑 우리 쿠키 그러니깐... 예쁘고 자랑스럽고, 멋지고 섹시하고 똑똑한 정국이가 주인님들 응원하고 있을게요. |
? 치킨 길만 걸으세요, 사랑하는 독자님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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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곧 좋은, 조금 더 탄탄한 이야기로 돌아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