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처럼 사랑과 비슷한 것이 없고, 또 탐욕처럼 사랑에 어긋나는 것이 없다.
-팡세
-
터질 듯 열기를 내뿜으며 욱신거리는 뺨을 부여잡고 침대에 누워 가만히 흐느끼다 이내 스스로의 분노를 채 담아내지 못하고 죄없는 이불을 주먹으로 세게 내려쳤다.
이태용이 미운만큼, 그리고 내가 처참하리만치 무너지는 장면을 그저 보고만 있었던 정재현과 이민형이 가증스러운 만큼.
분명 그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는 침묵을 지키고 있는 일이 맞았지만, 나의 처참함을 온연히 들어냈다는 그 수치심에 쉽사리 눈물과 주먹질은 멈출 줄을 몰랐다. 이 모든게 그 빌어먹을 이태용의 출장만 아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간신히 안정을 찾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침대 위에 누워 아직까지도 아리는 뺨을 부여잡고 있는 일 뿐이었다.
잘 가라는 인사를 해주기 싫었다.
나는 그가 구축해놓은 이 공간 안에 갇혀 단 한발자국도 자유로이 움직일 수 없는 반면, 제가 원할 때면 언제든지 이곳 저곳 옮겨다닐 수 있는 그가 미치도록 부러워서,
우습게도 그가 부러워서
그의 안녕을 바라주기 싫었을 뿐이었다.
"이거 맞은 데에다 대고 있으래."
민형의 어투는 그가 한 손에 쥐고있는 얼음팩보다 더 차가웠다.
그를 보자마자 치밀어오르는 화기에, 가장 가까운 위치에 놓인 꽃병을 그의 얼굴에 대고 던졌다. 그마저도 한손으로 낚아채버리는 녀석의 행동에 결국 더 화가 나버리긴 했지만.
이제와서 해주는 걱정따위 필요없으니까 꺼지라고 전해. 내 말에 민형은 대꾸조차 하지 않은 채 의연한 얼굴 그대로 침대 맡 탁상 위에 얼음팩을 툭, 소리나게 던진 뒤 내게 등을 보였다.
"생각이 없어, 넌."
여전히 내 얼굴을 외면한 채 내뱉은 그의 말에 주먹을 세게 쥐었다. "고작 잘 가라는 인사하나 안해줬다고 뺨을 후려치는 사람이 더 생각이 없다곤 생각 안해?" 음절 하나하나에 증오를 실어 묻는 내 모습을 한참이나 노려보던 민형이 입을 열었다. "한평생 너 하나 살려내겠다고 개처럼 살아온 사람한테 인사 하나 해주는걸 그렇게나 좆같다고 생각하는 네가 제일 병신같아." 그 한마디와 함께 방을 나가는 민형의 뒤통수에 대고 발악을 해보였다. "그 노력, 해달라고 한적 없다고 나는. 없어, 없다고-" 그리고 민형은 평소의 개같은 모습대로,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쾅, 하는 소리를 내며 방문을 닫아버렸다.
나
하나 살려내겠다고 개처럼 살아온 그에게
내
가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곤 고작 가시돋힌 폭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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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밖 끝없이 펼쳐진 짙고 끈적한 어둠을 배경삼아 나의 우울을 수놓다 가까스로 잠에 든 날 깨운건 볼 주변에서부터 느껴지는 한기였다. 갑작스레 느껴지는 서늘한 감촉에 소스라치게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어둠 속에서 형체를 간신히 드러낸 팔이 내 허리를 감아왔다. 쉬이- 다 괜찮아, 움직이지 마. 귓가를 타고 들려오는 어르고 달래는 듯한 그 목소리에 자연히 감기려는 눈을 애써 부릅 뜨며 허리를 노곤하게 지분거리는 그 팔을 쳐냈다. 거칠게 돌아간 목덜미와 함께 내 시선 가득하니 들어찬 어둠 속의 유려한 낯에 조용히 이를 갈았다. 어두움, 그 이면 위로도 나의 증오가 고스란히 전해지는지, 얕은 한숨을 내쉬며 내게서 제 몸을 떼어낸 태용이 이내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노력해도, 전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어."
제 얇고 단단한 손가락으로 내 발목 언저리를 연하게 쓸어올리며 태용이 중얼거렸다. 그에 대해 내가 해줄 수 있는 대답은 칼날과도 딱딱하고, 날카로운. 그런 기운들만을 머금은 것들 뿐이었다. "그 노력, 나는 해달라고 한 적 없어." 거칠게 발목을 움직이며 돌아 눕는 내 모습을 빤히 눈에 담아보이던 태용이 제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내 등허리께의 파인 부분에 제 얼굴을 묻었다. 뒤에서부터 천천히 올라오는 뜨거운 기운에 눈을 감고 이를 악 물었다. 한동안 크게 숨을 들이 마시고 내뱉던 태용은 이내 내 두 손을 제 한 손으로 결박한 채 유약히 떨리는 내 몸 위로 제 몸을 올렸다. 내 양 손목을 잡고 있지 않은 반대 손으로 허리를 세게 내리누른 그가 귓가에 대고 씹어대듯 말을 끊어 내뱉었다. "뭐든간에, 처음이 제일 두려운거라고들 하던데. 우리 공주님도 처음에만 내 부재를 두려워했나봐?" 조롱하듯 입에 비웃음을 건 그의 입꼬리를 눈에 담아내며 속으로 그를 저주했다.
그래, 처음엔 '출장'으로 인해 그가 집을 비우는 시간들이 너무도 무서웠다.
그의 아랫사람들이 내게 보내는 맹수와도 같은 혐오의 시선이 싫었다.
민형이 가끔 툭 내뱉는 증오섞인 비수들이 몸에 꽃힐 때마다 치가 떨릴 정도로 아팠다.
한숨을 내뱉으며 내 어깨를 쓰다듬는 재현의 동정이 미웠다.
제 손으로 직접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무책임하게 날 홀로 두고 가는 태용의 야속함이 혐오스러웠다.
돌아올 때마다 날 끌어안던 태용의 몸에서 진동하는 피비린내가 두려웠다.
그날 밤 태용은 밤새도록 내 머리칼을 어루만지다, 내가 잠에 들 때까지 온 몸에 키스세례를 퍼부었다.
나는 그의 사죄를 외면한 채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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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 이번에는 되게 오랫동안 나가계실 것 같던데. 괜찮겠어?" 입에 식빵을 문 채 한 손으로 대충 잼을 찍어바르는 재현의 턱을 받쳐주던 손을 위로 세게 쳤다. 악, 소리와 함께 입안에 문 식빵을 바닥에 토해낸 재현의 등을 주먹으로 가볍게 치며 그의 원망섞인 눈초리를 외면했다. 그러니깐, 왜 쓸데없는 걸 물어. 내 말에 재현은 억울한 듯 목덜미를 매만졌다. "처음에는 보스 안계시다고 울고 불고, 애새끼처럼 징징대더니 이젠 좀 숨쉴만한가보네." 민형이 이처럼 재수없는 말을 할 때에는 두가지의 방법으로 대처를 할 수 있다.
첫째, 외면하거나
둘째, 그 지랄맞은 발언에 굳이 지랄맞은 대꾸를 하기.
"좆까, 병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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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인간적으로. 사람이 애인이 생겼으면 성격이라도 좀 얌전해져야 되는거 아니냐고." 교실에 들어서서까지 이민형을 험담하는 내 태도에 지친 듯 기계적으로 맞장구 치는 재현의 손등을 가볍게 친 뒤 자리로 향했다.
"여주야 오늘 너 과학실 청소 당번이래."
자리에 앉자마자 내 가방을 대신 걸어주며 귓띔해주는 도영을 어이없다는 듯 쳐다봤다. "내가? 내가 왜." 한 톤 높아진 목소리로 되묻는 내 말에 도영이 말 없이 칠판을 가리켰다.
[저번 주 청소 도주 김여주 점심시간 과학실 청소]
칠판에 정갈한 글씨체로 적힌 내용을 보자마자 고개를 홱 돌려 재현을 노려봤다. 분명 청소 제끼자고 한 사람은 넌데 왜 내가 청소를 해. 원망스러운 내 눈초리에 소리없이 입모양으로 헐.을 남발하던 재현이 종종걸음으로 내 자리로 다가왔다. "헐. 헐. 김여주 진짜 미안."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미안, 을 반복하는 재현을 장난스러운 미소를 입에 건 채 쳐다보던 동영이 이내 재현의 어깨를 톡, 치며 입을 열었다. "재현아 내가 여주 청소 도와줄께." 언제나처럼 재현나-, 하며 발음을 뭉근히 짓뭉개는 동영의 말투에 아랫배가 간지러워졌다. 동영의 말에 책상을 한손으로 짚은 채 가만히 내 표정을 살피던 재현이 이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제 아랫입술을 귓가에 가만히 붙인 채 속삭였다.
"내가 점심시간에 좀 바빠서, 오늘만 못 본 척 한다."
재현의 말에 머릿속이 영락없이 멍해졌다. 형체 없는 탁한 구름 위를 걷는 듯하던 기분이, 이내 시선에 동영이 걸리자마자 분홍빛 꽃잎의 모양새로 순식간에 탈바꿈을 했다.
"나 도와주느라 점심도 못먹어서 어떡해."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와는 다르게 태평히 걸레질을 하는 내 모습에 과학실 맞은편에서 조용히 흥얼거리며 걸레질하던 동영이 머리를 쓸어넘기며 웃었다. "미안하면 나중에 나랑 점심 같이 먹어주면 되지." 그의 말에 고개를 젖히며 크게 웃었다. "진심이지? 나랑 너랑 정재현이랑 같이?" 아직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내 눈을 어딘가 벅찬 시선으로 제 눈에 담던 동영이 이내 교실 뒷쪽으로 밀어낸 책상에 걸터앉아 턱을 괸 채 입을 느리게 움직였다.
"아니, 정재현 말고. 너랑 나, 단 둘이서만."
과학실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숨을 죄어올 듯 무겁고 뜨겁게,
진득하고 어지럽게
변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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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 다 베꼈지?" 부스스한 머리를 한 채 방 문 너머로 고개를 빼꼼히 내민 재현의 얼굴을 향해 베개를 던지자 능숙하다는 듯 녀석은 고개를 수그렸다. "노크 좀 하고 들어오지?" 책상 위를 손으로 톡 톡, 치며 묻는 내게 재현은 웃기지도 않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거 참, 무슨 우리 사이에 노크를 다...,"
책상 위로 손을 뻗어 제 노트를 가져간 채 방을 나가려는 재현의 뒷통수에 대고 이름을 불렀다. 정재현 너, "오늘 점심시간에 바쁘다 하지 않았었나?" 내 물음에 재현은 당연한걸 묻냐는 듯 어깨를 한번 들썩이곤 고개를 끄덕였다. "교무실 갔다가 동아리실 갔다가. 바빴지." 우리 여주 청소는 잘했고? 장난스레 웃음을 터트리며 묻는 재현의 얼굴에 다시금 베개를 던진 뒤, 이번에는 미처 피하지 못한 채 억울하다는 듯 아우성을 쳐대는 녀석의 면전에 대고 문을 닫았다.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밤하늘의 모양새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무채색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색 없이 검게 빛나는,
이태용의 눈동자를 연상시킨다.
부질없이, 그렇게 유연히 흐르며 내 마음을 난도질한다.
과학실을 오며가며 우연히 시선이 닿은 텅 비어버린 교실에는 정재현만이 홀로 남아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내가 청소를 다 끝내고, 다음 교시가 시작할 때까지 재현은 눈을 감고 있었다.
그것이 재현이 나의 결핍에 속죄하는 방식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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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둘이서만."
김동영의 목소리가 귓가를 타고 흐른다. 마치 아까 전의 일처럼, 성스럽고 외설스럽게.
그의 순수한 손길이 내 마음을 간지럽힘과 동시에 내 입술은 작은 신음을 토해낸다.
이민형이 더이상 부럽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더보기란이 절대 절대 고쳐지지 않는 관계로.... 앞으로는 당분간 이런 식으로 작게작게 찾아봅게될것같네요...ㅇㅁㅇ 아시는 분들은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제가 몇달 전 큰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오랜 시간동안 찾아뵙지 못하게 되었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느와르를 사랑해주시고 독방에도 자주 언급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젠 얼추 완치가 되어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글도 쓸 수 있게 되었고...ㅠㅠ 너무나 감격스럽네요. 다시 느와르를 쓰게 되는 날이 오다니... 항상 느와르를 사랑해주시는 모든분들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항상 느와르와 제 실생활에 도움을 주시는 대띵작 고인물의 주인님,,, 보풀릠 넘나 감사드립니다, 보풀릠 당신은 제 삶의 빛... 여러분 고인물 띵작이에여 다들 꼭 읽어주시길... 앞으로 자주 봅시다. 오늘부터 느와르는 폭주기관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