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아이
w.터쉬
"나는 어른 아이였던 적은 없어. 어른이였을 뿐이지. 그걸 왜 이제 알았을까? 한심하게……"
김기범, 짤막한 세글자가 울려퍼졌다. 여긴 낙원이 아니야. 아니, 너와 내가 존재하는 이상 낙원이 될 수 없어. 나는 종현의 목소리를 담았다. 기계음, 사람들이 입력해놓은 단어들, 더듬어가며 맞추는 목소리까지.
"너의 그런 점이 싫어! 너는 왜 어른 아이인 척 하는 거야? 너도 어른일 뿐이면서!"
울부짖었다. 울부짖고 싶었다. 나의 말은 메아리가 되어 다시 내 심장에 깊숙히 박혔다. 더 이상 헛된 희망을 품고 싶지 않아. 지치고 싶지도 않아. 행복해지기 위해서 들어온 낙원인데, 행복해질 수 없어. 나는 그럴 운명이였어. 넋이 나간 듯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곧 종현의 심장에 박혔다. 우린 행복해질 수 없어. 함께 할 수 없어. 사랑할 수 없어.
"…기범, 아, 나, 는……"
"낙원이라며! 낙원을 원하냐고 했잖아! 나는 낙원을 바랐어! 이런 지옥을 바란 게 아니라고!"
낙원을 원해? 현실에서 벗어나길 원해? 그럼, 여기로 와. 모든 근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낙원으로. 나는 현실에서만 벗어난다면 악마와 거래를 해도 좋다 생각했다. 현실에서만 벗어나 준다면. 이 지긋지긋한 어른에서 벗어난다면. 그래서 낙원으로 왔다. 거기에서 김종현을 만났고, 사랑도 했고, 서로 마음을 공유하기도 했다. 행복했고, 현실에서 살았으면 즐기지 못할 것들을 맘껏 맛보았다. 그렇지만, 이제 낙원은 없다. 없다. 없다. 없, 다.
"미, 안, 해……"
"……"
"내, 잘못, 이야…"
낙원은 황폐했다. 낙원이라고 불릴 수도 없었다. 종현은 조심스레 다가오더니 내 뺨을 어루만져 주었다. 위로의 의미였는지, 작별 인사였는지는 알 수 없다. 김종현만이 알고 있겠지.
"돌아…… 가고, 싶니…?"
"……"
"네가, 원한다면…"
나는 김종현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리움, 애틋함. 어째서인지 평소엔 생각하지 못한 것들만 생각이 났다. 이제 낙원은 없다. 그리고, 김종현도 없다. 김종현. 김, 종현…
"기범이가, 나 구해줬다. 그래서 나 살아있어."
"그 말만 도대체 몇 번째야. 딴 얘기는 없어?"
"딴, 이야기…? 미안해. 그런 건 입력 되있지 않다."
"바보야. 단어로 알아 먹으면 어떡해. 하여간."
"…… 좋아해."
"……."
"여기서, 평생, 살자. 나랑…."
"그래……. 나도, 좋아해. 종현아."
end
작가 |
웹툰 삼단 합체 김창남을 읽고 로봇이랑 인간의 이야기를 적어보고 싶었어요. 단편이라 기범이가 왜 낙원에 오게 됐는지, 어째서 기범이는 모든 걸 종현이 탓이라고 하는지, 기범이가 어떻게 종현이를 구했는지에 대한 걸 다루지 못해 슬픕니다. 너무 짧은 단편이라 죄송해요. 아무래도 로봇에 대한 이야기는.. 동경으로도 벅찰 것 같습니다. 처음 올리는 글이 새드 단편이라니^_TTT 망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