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oTher to DAeTh
0.
박지민은 견고했다. 차근차근 그의 것, 자신의 소유를 쌓아올린 뒤 어느 하나의 균열도, 틈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의 손이 닿인 모든 것은, 제 색을 잃어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곤 차츰히 물들었다. 그리곤, 스며들었다. 박지민은 그런 아이였다. 세상의 모든 것들을 제 아래에 두고 사는. 그에게 나 같은 사람이란 그저 발 밑에 치이는 작디 작은 먼지, 아니, 그 조차도 되지 않을 것이 뻔했다. 적어도 내가 그와 시선을 마주하기 전까진.
지민아, 네 덕분에 선생님이 너무 편해. 반장으로서 해줘야 할 일을 아주 잘해주고 있구나.
아, 아니에요.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요, 선생님. 다 선생님이 잘 가르쳐주신 덕분이죠.
한 톨의 먼지조차 허용하지 않은 그는 새하얬다. 그의 빛으로 주변의 어두움을 다 집어삼킬 듯 했다. 그 깊이가 너무도 깊었던 탓에 어둠이 빛인지, 빛이 어둠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였다. 잠시 미간을 찌푸려 선생의 옆에서 수줍게 웃으며 제 머리를 만지는 박지민을 곧게 바라봤다. 아. 예상치 못한 시선이 마주했다. 착각인 건지, 환상인 건지 잠시 눈꺼풀을 닫았다 들어올리는 사이 마주했던 시선은 지난 밤 꾸었던 악몽 마냥 금새 사라졌다. 고개를 약하게 뒤흔들었다. 턱을 괴고 있던 팔을 내린 후 책상 위로 얼굴을 묻었다. 잠이 부족했다. 진득히 따라오는 무언가는 나의 착각이려니, 잠시 생각의 뒤로 덧입혔다.
1.
아미야. 너네 아버지, 꼬리 잡혔다는데.
… 관심, 없어요.
양주병이 담겼던 빈 궤짝을 힘주어 내려놓은 내게 술 잔을 깨끗한 천으로 느긋이 닦던 남준이 나에게 넌지시 내질렀다. 지겹다, 저 소리. 놀음에 모든 걸 바치곤 어머니든 자식이든 내버려두고 제 몸 하나 챙기고자 꽁무니를 뺀 작자,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라는 사람은 더이상 내 안엔 없었다. 유일한 피붙이인 할머니가 그들에게 목숨을 잃고, 뭣도 모르고 막대 사탕 하나를 입에 문 내가 남준의 손을 잡고 세상의 악을 마주하던 순간, 태워버렸다. 받은 것이 없어 진실되지 않아 손 끝조차 닿지 못한 애정은 한 줌의 재도 남기지 않았다.
아. 아까 옆 가게에서 부탁한 건데 이거, 좀 갖다주고 와줘.
그런 나를 묵묵히 바라보던 남준은 옅은 웃음을 제 얼굴에 띄운 채로 곂곂이 보자기로 쌓인 것을 내게 건넸다. 더이상의 호기심은 없었다. 무심히 후드의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은 나는 다시금 가게 밖으로 발을 내딛었다. 얼른 집에 가 쉬고 싶었다. 꼭 약 심부름을 시킨 날이면 남준은 되도 않은 죄책감이 드는 건지 평소 가게가 마치는 시간보다 일찍 나를 들여보냈다.
어, 아미야. 벌써 출근했어?
….
요거, 요거, 귀여운 거. 남준이 심부름 가는 거야?
가게 문을 나서며 마주한 정호석의 웃음에 묵묵히 고개를 숙이자 그는 제가 진짜 삼촌이라도 되는 듯 퍽 따뜻하게도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호석의 옆에 줄줄이 늘어져 있던 사람들이 시선을 모았다. 익숙하게 비린 시선들을 받아낸다. 게중에는 호기심을 참지 못해 입을 여는 쫄개도 더럿 있었다. 형님, 거 쪼그만 아는 뭡니까? 후드 주머니 안쪽으로 푹 쑤셨던 손에 힘을 주었다.
알려고 하다간 다쳐, 새끼야.
사람 좋게 헛헛 웃어보인 정호석이 나의 어깨를 살살 밀어냈다. 그제서야 발을 뗀 나는 고개를 한 번 푹 숙이곤 다시금 발을 뗐다.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듯, 정호석이 어떤 표정을 짓든 나는 관심을 두지 않아야 한다. 입에 담아서도 안 된다. 남준과 호석은 어린 나에게 다정히도 일렀다, 앞으로 네가 있을 이 곳엔, 어디든 너의 손끝이 닿아서는 안 된다고. 알아도 모르는 척, 몰라도 아는 척. 귀를 타고 흐르는 것들은 그저 한낮 벌들의 속삭임일 뿐이라 여겨야 한다고. 내 아버지가 나에게 일찍이도 쥐어주었던 이 세상은 감당하기엔 더럽게도 힘든 곳이었다. 살아가기 위해 기꺼이 팔을 벌려 나를 받아들이는 그들을 아버지와 어머니로 여겼다. 여기서 내 이름은 존재하지 않았다.
…김아미.
그가 거기서 내 이름을 입에 담기 전까지는.
주변의 공기가 멈춘 듯 내 몸은 뻣뻣해졌다. 어깨를 움찔인 내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벽에 제 몸을 기댄 박지민이 작게 조소를 흘린다. 학교에서 보다 여기서 보니까 반갑네, 아미야. 그치? 습관처럼 제 머리를 쓸어올린 그는 천천히 나와 제 거리를 좁혔다. 그의 빛이 파도를 일었다. 숨이 막히는 듯 목이 죄어왔다. 여기서 뭐 해? 내 아버지들과는 다른, 속을 갉아대다 못해 깨뜨릴 만큼 단 목소리로 그는 물었다. 옅은 떨림에 머리가 흐트려졌다. 박지민은 다정히도 내 머리를 귀 뒤로 쓸어넘긴다. 내 허리춤을 잡아 제 가까이 끌어당긴 그는 내 귓가에 얕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네 아버지가 드디어 잡혔어.
….
그러니까, 널 나에게 팔아넘겼다고, 아미야.
박지민의 입술이 내 귓가를 스친다.
1이 달릴지도, 달리지 않을지도 모를 글 내려놓고 도망갑니다...
너무 너무 굉장히 많이 오랜만이에요 여러분... ㅎㅎ
(아까 울린 쪽지 알림음은 제 실수임다 죄송해요 ㅜㅜ)
+ 오랜만에 키보드를 두드려 글이 똥망진창인 점, 이해 부탁드릴게엽... 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