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달맞이꽃
김성규의 대답이 영 시원찮다. 동우는 영 못미더운 시선으로 성규를 위아래로 쏘아보았다. 의심의 눈초리가 거두어지지 않을 것 같자, 성규는 피식 웃으며 동우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속고만 살았냐. 살짝 누그러진 성규의 태도에 동우는 우물쭈물 거리며 조잘대었다. 너, 알지. 내가 원래 촉이 되게 뛰어나거든? 근데 지금 안 좋은 촉이, 딱! 딱, 이라고 하는 말과 함께 동우의 주먹이 성규의 이마에 콩, 하고 내리꽂혔다. 이게 진짜! 성규가 다시 눈을 부라리며 동우를 향해 달려들자, 동우는 양손을 머리 위로 들고 항복, 항복을 외쳐댔다. 도망가는 동우를 눈에 불을 켜고 쫓아가려던 성규는 요란한 벨소리가 울리자 발걸음을 멈칫, 하고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누구야?"
"몰라. 처음 보는 번혼데. 여보세요?"
아, 호 선생님. 하고 전화를 받은 김성규의 표정변화를 시시각각으로 지켜보던 동우는, 전화를 끊고 사색이 된 얼굴로 뛰쳐나가는 성규를 따라 얼떨결에 달음박질을 했다. 성규야, 김성규! 동우는 숨이 넘어갈 듯이 헉헉대며 성규의 이름을 불러댔지만 성규는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택시들이 잔뜩 줄 서 있는 정류장에 도착해서 맨 앞 택시에 몸을 실었다. 택시가 막 떠나려는 순간에 간신히 택시에 몸을 던진 동우는 숨을 고르고 있었다.
"S대학 병원이요."
"병원? 왜, 누구 아프대?"
도리도리 내젓는 고갯짓엔 힘이 없다. 성규의 표정에서 더 심각한 무언가를 읽어낸 동우는 가만히 성규의 한 손을 감싸 쥐었다. 아저씨, 빨리 가주세요. 동우는 여전히 성규의 손을 꽉 쥔 채로 말했고, 택시는 조금 더 속력을 내어 도로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성규를 고개를 푹 숙이고 초조한 듯한 쪽 다리를 달달 떨어댔다. 성규의 핸드폰 액정이 반짝이는 것을 본 동우는 손을 뻗어 문자를 확인했다.
S대학 병원 장례식장. 17호.
-
"거짓말하지 마세요, 아버지."
"…"
"내가 정말로! 우현이 눈을 멀게 했으면. 아버지가 지금까지 절 그냥 내버려뒀을 것 같아요?"
그 막내 사랑이 대단한 아버지가요? 악에 받친 절규였다. 듣기에도 처절한 아들의 목소리를 애써 외면했다. 힘없이 제 자리에 무너져 내리는 인영이 보였다. 입술을 깨물고 눈을 감았다. 언제부터 이렇게 어긋나기 시작한 건지 어렴풋이 생각이 날 것 같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유달리 몸이 약했던 우현이기에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더 신경을 썼었다. 그 조그만 아이들이 뭘 안다고, 다 이해할 것이라 생각했다. 질투가 많아 우현을 괴롭히긴 했어도 나름 잘 챙기는 모습에 그래도 형이라고 동생을 챙기는구나 안심했다. 우현이 눈을 다쳐 병원에 실려 온 그 날 전까지.
온 몸을 덜덜 떨면서 한참을 울다가, 잠시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일어났던 녀석이 못내 걱정스러웠다. 동생이 자기 때문에 다쳤다는 죄책감에 비틀거리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수술실에선 수술이 한창이었다. 아들을 따라가 보겠노라 잠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아내의 가냘픈 어깨를 감싸 안아주고 화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화장실로 들어가려는 찰나,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는, 아들의 소름끼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화장실 문고리를 붙잡고 오고가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믿었던 아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무서운 말들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양쪽 뺨을 누가 세게 휘갈기는 듯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누가 저 아이를 괴물로 만들었는가.
큰 아들은 어디 있냐고 물어보는 아내의 말에 길이 엇갈렸나보오, 라고 말한 후 시선을 회피했다. 잠시 후, 아직도 두 눈이 벌겋게 부어 히끅거리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선 가슴 속에서 응어리가 졌다. 저 아이의 잘못을 아내에게, 딸에게, 수술실에 누워있는 작은 아이에게 말하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냉정하게 상황판단을 해야 했다. 한참을 생각한 후 내린 결론은 묻자, 였다. 아들의 애처로운 눈망울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는 시선을 회피했다. 그것이 그 아이를 똑바로 쳐다 본 마지막이었다.
그 후 10년. 지금 다시 저 아이의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왜!"
"기다렸다."
"죄인이잖아요! 동생을 그렇게 만든 쳐 죽일 놈이라고!"
"누구보다 자랑스러웠던 내 큰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노라고.
하, 기가 찬웃음을 짓는 아들의 모습이 보였다. 입은 웃고 있고 두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리는 기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달아!"
둘만 있던 공간 속에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두 남자는 동시에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당에서 꾸벅꾸벅 졸던 우현의 안내견이 제 주인을 알아보고 품 안으로 뛰어들었다. 차가운 돌멩이 같은, 초점이 없는 눈망울이 개의 모습을 훑는 듯 했다. 아들이, 동생이 왔는데도 멀뚱멀뚱 서 있는 모습이 이상했는지 차에서 내린 기사가 큰 소리로 그들을 깨워냈다. 사장님. 도련님. 아버지랑 형도 계셨어요? 왜 말을 안 했어요. 우현이 방글방글 웃으며 안내견이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현이 한 발, 두 발 다가올수록 형은 주춤주춤 뒷걸음질을 쳤다.
"아버지? 형?"
"그래."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형?"
"…어어."
형은 마지못해 대답하고 그대로 쿵쿵 발소리를 내며 제 방으로 올라가버렸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우현은 잠깐 산책이나 하고 오겠노라고 목줄을 그러쥐었다. 고개를 끄덕이던 아버지는, 우현이 눈이 안 보인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자각하고 다녀오너라, 하고 짧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낭랑한 우현의 목소리가 사라지자, 우현의 아버지는 힘없는 발걸음으로 서재로 향했다.
"이 비서."
"예, 사장님."
"우현이 수술. 예정대로 진행되는가?"
"예. 제출 서류도 예전에 다 넘겼고… 무슨 일이십니까?"
"아닐세."
혹시 몰라 두 장씩 복사해놓은 서류를 불태운 아들의 행동에, 확실히 깨달았다. 저 아이의 질투심은 극에 달아 증오로 변하고 만 것이라고. 의자에 기대앉은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상태로 괜찮을까. 무슨 해결책이라도 필요했다. 응어리진 속을 그대로 둘 순 없었다. 창문 밖으로 우현이 해맑게 내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가슴이 헛헛했다. 이 모든 것은 나의 죄, 라고.
잠시 후, 2층에서 가정부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
앰뷸런스 소리가 요란했다. 언제 들어도 익숙하지 않은 앵앵대는 소리에 우현은 두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피투성이가 되었다는 둥, 꼴이 엉망이라는 둥,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한데 엉켜 우현의 귀를 괴롭히고 있었다. 형의 손을 잡은 우현은 손등에 흐르는 끈적끈적하고도 뜨뜻한 액체의 기운을 느끼며 쉴 새 없이 형을 불러댔다. 이리 가까이 오라는 형의 말에 우현은 상체를 숙였다.
"…있어. 네 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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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일찍 올 줄 몰랐는데."
"우현이는요?"
"일단 절 먼저 하고."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또 총알같이 뛰어나간 성규를, 동우는 미친 듯이 쫓아갔다. 병신아! 반대쪽이라고! 장례식장은 오른쪽이라고! 그 말은 어떻게 용케 듣곤 방향을 바꿔 또 미친 속도로 달려가는 것이 아닌가. 둘 다 오늘 우연치 않게 검은색 옷을 입고 와서 망정이지. 동우는 얼떨결에 장례식장까지 따라온 자신을 탓하며 애꿎은 제 머리를 쥐어박았다. 장례식장 입구에서 누군가를 만난 성규는 깍듯하게 인사를 하기에 앞서 '우현이는요' 라는 말을 내뱉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긴 한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아 동우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자신을 정신과의사 이호원이라고 소개한 깔끔한 인상의 남자는 착잡한 표정이었다. 지하 3층으로 내려가자, 어마어마한 크기의 영안실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동우는 성규와 호원 사이에 껴서 절을 하곤, 그제야 영정 사진을 똑바로 쳐다볼 기회를 가졌다.
지금 김성규의 손에 이끌려 나간 남자와 닮은 남자.
"…왜 말 안했어."
"어떻게 왔어요."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
"미안해."
우현은 의외로 순순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눈을 내리깔았다. 그 모습에 김이 팍 샌 성규는 벽에 기대어 서서 팔짱을 꼈다. 끊은 지 오래 된 담배 생각이 간절하게 났다. 펴면 안 돼. 단호한 누군가의 말이 생각나자 성규는 담배 대신 들고 다니는 딸기맛 사탕을 입 안에 넣고 오물거렸다. 우현은 아직도 아무 감정 없는 표정으로 허공에 시선을 두며 말했다.
"와 줘서 고마워. 일단 가. 다음에 봐요."
"야. 남우현."
"으응."
"내가 널 안지는 얼마 안 된 건 알겠는데."
"어."
"그렇게 울 것 같은 표정 지으면서 사람 쳐다보면 어떻게 해."
내가. 어? 성규가 우현의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검지로 슥 닦아내자, 그것이 무슨 신호라도 된 듯 우현의 눈에선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흘러내렸다. 우현의 두 팔이 허리께에 감겨왔다. 성규의 가슴팍이 우현의 눈물로 범벅이 되기 시작했다. 울어라, 울어. 그래, 울어. 성규가 사탕을 오도독, 깨물었다. 한참을 쿨쩍거리던 우현은 성규의 품 안에서 벗어나 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
"형이 날 정말 싫어했어."
"넌 형 좋아했잖아."
"내 눈을 멀게 한 건 형이야."
"그래, 알…. 뭐?"
뜬금없는 돌발 발언에 성규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우현을 쳐다보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형이 왜 네 눈을 멀게 해.
"내가 눈을 가리고 모래사장에 쓰러졌을 때."
구급차를 부르고 다 난리가 났어. 그 때 형이 옆에 와서 괜찮다고 했어. 옆에 형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말이야. 내가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깼다가 계속 그랬거든. 근데 형이 귓가에 대고 말했어. 뭐라고 했는지 알아?
"…뭐라고 했는데."
"그냥 네가 콱,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콱. 우현은 그 음절에 힘을 주어 말하며 왼 손으로 무언가의 목을 확 휘어잡는 동작을 해 보였다. 엄청난 내용과는 달리 말투도, 표정도 너무나 덤덤해서 성규는 어안이 벙벙했다. 듣지 말아야 할 말들을 들은 것만 같았다. 성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성규는 일단 우현의 옆에 걸터앉았다.
"그런데 형이 죽었어."
"…."
"사람들은 형이 벌을 받은 거라고 했어. 근데 벌은 내가 받은 것 같아. 왜냐면."
"…."
"형의 마지막에 내가 있었거든. 그래도 마지막에 내가 형을 용서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다행이야. 우현은 그 말을 한 번 더 반복했다. 그 때 갑자기 찬바람이 불었고, 얇은 옷을 입은 우현이 흠칫 몸을 떨자 성규는 재킷을 벗어 우현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우리 형은 겨울바람 같았어. 매섭고. 나를 항상 아프게 했거든. 춥고. 외롭고."
"지금도 외로워?"
"지금은…."
네 곁에 있어.
"형이 나한테 봄바람을 주고 갔거든."
네가 찾는 사람은 가까이에 있어. 네 곁에.
귱 몽림 규닝 유자차 환 리니 써니텐 군만두 에비 롱롱 제시 무럭자라 에몽 복자 치쯔
밀크 규꼬리 쫄란규 동우야내가 감성 여우 제이 이랴 케헹 감규 석류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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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금 좋다 그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