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흔적
"어때, 누나. 응?"
"없는 번호래."
빨리 김성규를 만나서 모든 일의 진상을 들어야만 했다. 물어볼 것이 산더미 같았다. 네가 정말 어릴 적의 그 아이인지. 맞는다면 왜 지금까지 숨기고 있었는지. 왜 기껏 나를 찾아와놓기까지 하고 다시 사라졌는지. 집에 돌아오자마자 누나를 추궁해 김성규에게 수댓번 전화를 걸어댔다. 하지만 난감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붙잡고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누나를 보자 우현은 맥이 탁 풀려버렸다. 김성규는 아예 처음부터 사라질 작정을 했던 것이다. 야속했다. 그 하얗던 얼굴을 보여주지도 않고 사라져버린 김성규가. 우현은 피아노 의자에 앉아 흰 건반을 눌러보았다. 맑은 피아노 소리가 우현의 주위를 맴돌았다.
"나무야, 바람이…."
불, 면. 건반을 누르던 우현의 손이 맥없이 피아노 아래로 떨어졌다. 피아노 소리처럼 예뻤던 김성규의 목소리 말고는 김성규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다음에 알면 된다고 실없이 웃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화가 날 것만 같았다. 다음. 다음이라는 것이 없을 줄, 상상도 못헀는데. 멍하니 앉아있던 우현은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눈이 다시 안 보이면, 김성규가 다시 나타나줄까. 우현은 손을 내려 건반 위에 올려놓았다. 그럴 턱이 없지. 이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하는 자체를, 김성규는 알지도 못할 텐데.
"우현아. 이것 봐."
갑자기 등을 톡톡 두드린 누나의 손길에 우현은 뒤를 돌아보았다. 작은 쪽지를 한 손에 들고 흔들어대고 있었다. 누나는 우현을 살짝 밀어내고 피아노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 뒤, 우현의 손에 종이쪽지를 쥐어주곤 피아노 뚜껑을 닫았다. 우현은 시선을 쪽지에 고정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가만히 쪽지만 들여다보고 있는 우현을 바라보던 누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김성규. 스물 둘. K대 실용음악학과."
"…."
"집 주소 같은 건 몰라도, 학교에 연락해보면, 혹시…."
누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현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쿵쾅거리며 2층으로 올라갔다. 오랜만에 보는 자신의 방은 마치 다른 사람의 방처럼 낯설었다. 하지만 우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옷장 문을 열고 대충 걸려있는 재킷을 집어 들어 어깨에 걸치고 팔을 꿰넣었다. 이곳에 가면 김성규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대로 방을 빠져나가려던 우현은 책상 위에 놓인 조그만 액자를 보고 멈칫했다. 그러고선 액자에서 사진을 빼내어 지갑 속에 넣었다. 전신 거울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가다듬던 우현은 거울에 손을 갖다 대었다.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나 큰 걸 보니, 역시 세월은 세월이다 싶었다. 그렇지만.
"금방 만나러 갈게. 성규야."
허겁지겁 계단을 내려오니 누나와 중년의 남성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린 시절에도 함께한 시간이 많지 않아 얼굴이 긴가민가할 정도였지만, 우현은 그가 풍기는 아우라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우현은 발소리를 죽여 살금살금 그들을 지나쳐갔다. 걸리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우현의 안내견이 우현에게 달려들지만 않았어도. 갑자기 뛰어오른 백구 덕에 우현은 괴상한 소리를 내며 거실바닥에 넘어지고 말았고, 누나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총총총 뛰어와 우현을 일으켜 세웠다.
"괜찮니? 그런데, 어디 가?"
"친구…. 만나러…."
"남우현."
상대방에게 중압감을 주는 목소리. 우현은 자신도 모르게 점점 움츠러들고 있었다.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몇 번을 말해."
"하지만, 아버지…."
"올라가. 낫는 대로 공부 시작해야 되니까."
우현은 순간 속이 울컥하는 것을 느꼈다. 10년 전 아버지도, 지금의 아버지도. 그는 큰 소리만 낼 줄 알 뿐, 자식에 대한 사랑 따윈 없었다. 우현은 서재의 문고리를 잡은 아버지의 뒷모습에 대고 소리쳤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요."
"안 돼."
"지금 만나지 않으면 만나지 못해요."
"기회는 언제든지 있다."
"없어요. 다음이란 건 없어요. 전…."
아버지처럼 후회하고 싶지 않아요.
우현은 문을 열고 쏜살같이 밖으로 튀어나갔다.
*
"도련님. 같이 들어갈까요."
"아뇨. 제가 이따 연락하면 다시 와주세요. 고마워요."
결국 아버지의 차를 얻어 타고 온 우현은 K대학교의 정문 앞에 서 있었다. 실용음악과는 경쟁률이 몇 백대 일이나 하는 대단한 학과였다. 역시 김성규는 예삿사람이 아니었어. 우현은 지나가는 학생들을 붙잡고 묻고 물어 음악동 건물을 찾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까지는 여차저차 다녔는데, 대학교는 처음이었다. 우현은 쭈뼛쭈뼛 중앙 현관을 통과해 학과사무실로 향했다.
"그러니까, 집 주소라도 좀 알자고요!"
"학생의 신상보호 문제가…."
"친구가 행방물명인데! 조교님은 걱정도 안 되세요?"
"무슨 사정이 있겠지. 저기, 목소리 좀 낮…."
"아, 형!"
학과사무실에는 날티 나게 생긴 남자와 조교가 언성을 높여 싸우고 있었다. 조심스레 들어온 우현을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저기요. 우현이 누군지 모를 대상을 불렀으나, 사무실 안의 두 사람은 책상까지 쾅쾅 쳐대며 싸워댔다. 얼핏 봐선 금발 머리의 남자가 조교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남자의 다음 말에 우현은 그들의 싸움을 말릴 수밖에 없었다.
"실용 11 김성규요! 김!성!규! 형도 잘 아시잖아요?"
"잘 알지, 동우야.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된다니까?"
아, 무슨 사람이 그렇게 융통성이 없어요! 동우는 볼멘소리로 책상을 걷어찼다. 우현은 다급하게 동우의 팔을 붙잡았다. 그제야 우현의 존재를 알아차린 두 사람은 멀뚱멀뚱 우현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자신의 본분을 깨달은 조교였다. 우현은 여전히 동우의 팔뚝을 붙잡은 채로 조교 쪽으로 얼굴을 쑥 들이밀었다.
"김성규. 학교 안 다녀요?"
"아, 오늘 김성규 찾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조교는 들고 있던 학적부를 책상위로 휙 내리치며 화를 내었다. 김성규, 이번 학기 초에 자퇴했고. 이유는 개인 사정이라 자세한 건 못 들었어요. 곧 있으면 이사 갈 예정이라고, 집 주소도 바뀐다고 했어요. 알겠어요? 두 분이 김성규랑 무슨 사이인지는 몰라도, 지금 내가 주소를 알려줘봤자 소용이 없다는 얘기에요. 우현과 동우는 멍하니 서서 조교가 아장아장 따지는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었다. 그래도 굳이 정리하자면, 김성규에 대한 정보는 여기서 얻을 수 없으니 저리 썩 꺼지라는 말이었다. 동우는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다가, 우현의 손을 잡고 사무실 문을 쾅 닫고 나왔다. 문 너머에서 장동우 저 새끼, 라는 조교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동우는 인상을 쓰고 건물 중앙 라운지까지 묵묵히 우현을 끌고 갔다. 자리에 우현을 앉혀놓은 동우는 자판기에 다가서더니 시원한 이온음료 두 캔을 뽑아왔다. 마셔요. 조교와 싸우던 그 무서운 모습은 어디가고, 동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우현에게 캔을 건넸다.
"감, 감사합니다."
"김성규, 알아요?"
"…당신은 누군데요?"
잠깐의 정적이 흘렀고, 이윽고 동우는 하하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내 소개를 안했네. 난 장동우고, 성규 동기에요. 같은 과이기도 하고…. 아니 글쎄, 김성규가 갑자기 자퇴서를 낸 거예요. 집에 가도 없고요. 연락을 해도 받지도 않고, 몇 달 간은 계속 병원에 누구를 간병 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병원에 찾아갔는데, 성규가 간호하던 사람은 이미 퇴원했다고 하더라고요. 혹시 이사 간 주소, 조교님은 알지 않을까해서 추궁했는데 결국 모른다고 하고. 말을 끝낸 동우는 입술을 삐죽였다. 친구라고는 나밖에 없는 놈이 어디 가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하다못해 그 병원에서 같이 있었다는 사람이라도 알면 물어볼 수 있을 텐데. 가장 마지막에 본 사람이니까요. 뭐라도 알고 있지 않을까 해서. 근데, 누구세요?
"…저도 몰라요."
"네?"
"김성규…. 제일 마지막까지 본 사람이 저일 텐데, 아무것도 몰라요. 사라졌어. 사라졌어요, 김성규."
"진짜에요?"
끄덕끄덕. 우현의 대답에 동우는 허, 하는 한숨을 쉬고 테이블 위에 엎드렸다. 동우는 물끄러미 우현을 주시했다. 자신 앞의 이 남자는 꽤나 수심이 깊은 얼굴이었다. 보는 사람도 기운 빠지는 큰 한숨을 쉰다거나, 눈에 갑자기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거나, 가슴을 쾅쾅 친다거나. 동우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우현의 어깨를 다독였다.
"짧은 사이에 정이 많이 들었나봐요."'
"짧은…."
네가 나와 함께한 그 시간들의 의미는 뭘까, 성규야.
*
"어, 아직 있다."
"그래요?"
아직 철거 안 됐네요. 수백 개의 사물함 중에서 제일 구석진 곳에 위치한 사물함. 그 곳에는 '김성규' 라는 이름이 적힌 종이가 끼워져 있었다. 우현은 성규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만지작거렸다. 통성명을 끝낸 우현과 동우가 제일 먼저 하기로 한 것은 김성규의 흔적을 쫓는 일이었다. 우리가 김성규가 되는 거예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디로 갔을지. 혹시 알아요? 김성규가 텔레파시라도 보내줄지. 동우의 실없는 소리는 우현의 얼굴에 잠깐이나마 희미하게 미소를 띠게 했다. 읏차. 동우가 쪼그려 앉아 사물함에서 두꺼운 책들을 꺼냈다. 온 사방팔방에 적힌 김성규, 라는 이름. 아마도 제가 직접 적었을 것이었다. 우현은 책을 들고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다. 열심히 공부한 흔적들, 배고프다는 낙서, 졸리다 는 낙서. 강의를 들으면서 책에 낙서를 끄적였을 김성규를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어? 웃었다, 웃었다. 그쵸?"
"네?"
"우현 씨는 웃는 게 훨씬 잘생겼어요."
아마 김성규도 그렇게 생각할거에요. 동우는 성규의 남은 물건들을 메고 온 백팩에 넣은 뒤, 우현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아파요. 우현이 미간을 곱게 찌푸리며 툴툴대자, 뭘 이런 걸 가지고, 라며 동우가 허허 웃었다.
"배고프지 않아요?"
"저, 괜찮,"
"성규랑 자주 가던 가게 있는데 가서 밥 먹어요! 배고프다."
늦게 가면 자리 없으니까 빨리 가야돼요! 우현은 내리막길을 날아가듯이 뛰어가는 동우를 따라잡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십오 분 가량을 쉬지 않고 달려 도착한 곳은 허름한 돈까스 집이었다. 동우의 말대로 가게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 북적댔다. 겨우 빈자리를 찾아 껴 앉은 동우는 제 맘대로 고구마돈까스 두 개!를 외치고 포크와 칼을 우현의 앞에 놓아 주었다. 정말 독특한 사람이야. 우현은 동우의 제멋대로에 혀를 쯧쯧 차면서도 여기까지 쫓아온 자신이 더 어이가 없었다. 가게 안은 많은 사람들 덕에 더웠다. 우현은 입고 온 야상을 벗어 의자에 걸쳐놓았다.
"어?"
"왜요?"
"그거, 내가 골라준건데."
"네?"
"성규가 선물해준거 아니야?"
"맞아요. 아."
공룡 같은 애. 그 친구가 동우인 것 같았다. 같이 있으면 정말 시끄럽다며, 동우를 데려오는 것은 한사코 거부했던 성규의 마음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잘 어울리네. 동우의 칭찬이 들리자 성규는 괜스레 콧잔등을 긁적였다. 아무 생각 없이 손에 집히는 대로 입고 온 옷이 김성규가 준 선물이었다니. 갑자기 우현은 모든 일이 잘 풀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눈 안 보인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수술한 거야?"
"네. 며칠 전에."
"잘 됐나보네. 다행이다. 수술이 안 되는 사람도 있다던데. 성규는 귀가 잘 안 들려서…."
"귀요?"
"어어."
우현의 전혀 몰랐다는 표정에, 동우는 어벙벙하게 입을 열었다. 성규가 노래는 잘 하는데, 그게 진짜 피나는 노력이야. 성규가 청각장애가 있어서, 소리가 잘 들리지가 않거든. 몇 급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그래서 맨날 보청기 끼고 다녔어. 옛날부터 그랬다고 하더라고. 선천적인 것 같았어. 보청기가 있어도 완벽하게 커버되는 게 아니라서 사람 입모양 보고 읽기도 하고. 수화도 할 줄 알더라. 예전에 같이 봉사활동 갔었거든.
"주문하신 식사 나왔습니다."
"아, 예. 감사합니다."
동우는 종업원에게 꾸벅 인사를 하곤 칼을 집어 들었다. 이 집 진짜 맛있어. 동우가 돈까스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입에 쏙 넣으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우현은 무덤덤하게 칼질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왜 그래. 맛없어?"
"혹시, 형. 수화 할 줄 알아요?"
"기본적인 건 성규한테 졸라서 좀 배웠지. 근데 왜?"
"이것 봐요."
얼떨결에 동우는 한 손에 포크를 들고 우현의 현란한 손동작을 봐주는 모양새가 되었다. 우현의 짤막한 동작을 본 동우의 표정은 아리송했다.
"무슨 뜻이에요?"
"첫 번째는 보고 싶었다."
"그리고요?"
"두 번째는…."
사랑한다.
'왼손을 주먹 쥐어봐. 그리고 그 위에 오른손을 펴서 올려. 그리고 원을 그려.'
'이건 뭔데?'
'이것도 비밀.'
"…김성규."
"응?"
"진짜…. 나쁜 것 같아요."
사랑한다며. 그런데 이렇게 날 두고 어디 간 건데.
세륜개강 |
제가 주4인데요 일교시가 세번이 있거든요 근데 나머지 하나도 이교시에요 아 죽을 것 같다 진심............. 저 집회 갔다왔어요 저 2층이었거든요 멤버들이 안 올 줄 알았어요 앵콜 할 때 온거에요 성규오빠가 제 앞을 지나갔는데요 올 거라고 생각을 못해서 입벌리고 ㅇ0ㅇ 이러고 봄 ........ 오빠.......잘생겼어요............... 왜 앞을 지나가도 보지를 못하니.............................. 왜...................... 조금이라도 잘 보려고 렌즈 세척까지 하고 갔는데...... ........왜............. ▼ 요 밑은 암호닉 목록이에요. 프롤로그부터 찬찬히 찾았는데....... 혹시 누락되셨으면 제나 이 계집이 개강 덕에 많이 힘들구나.....이해해주시고 다시 신청해주세요. 그리고 더 이상의 암호닉 신청은 없습니다. 귱 몽림 규닝 유자차 환 여우 리니 써니텐 군만두 에비 롱롱 제시 무럭자라 에몽 복자 치쯔 밀크 규꼬리 쫄란규 동우야내가 감성 제이 이랴 / 케헹 감규 / 석류 익명인 / 빵형 하니 / 감자 국어사전 몽몽몽 환상그녀 지게 사인 / 모닝콜 모모 민낯 |